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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2000
스위스 루체른(Lucerne)
bs2000

 

 

국토의 1/4이 눈을 이고 있는 고산 준령이지만 눈이 쌓이는 그 바로 아래까지 방목하는 소들의 워낭소리가 고즈넉이 들리는 듯하며, 빨간 지붕의 집들이 간간히 보이는 스위스 고속도로 주변의 경치는, 포도밭과 올리브나무가 즐비하였던 이탈리아의 노변 풍경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취리히 남서쪽, 루체른 호의 북서부로부터 발원하는 로이스(Reuss) 강이 시를 두 개로 나누어 놓는 루체른! 루세른(Luzern)이라고도 불리는 ‘빛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아름다운 호반 도시다. 

 

 

 


8세기 지어진 성당을 비롯한 옛 건물들과 카펠교, 빈사의 사자상 등이 있으며 인근의 필라투스산을 비롯하여 훌륭한 주위 경관, 온화한 기후, 철도 및 도로를 이용해 쉽게 출입할 수 있는 점들 때문에 스위스에서도 크고 주요한 관광중심지가 되었다. 


호수에서 운행되는 증기선이 산지의 여러 철도 및 공중 케이블카와 연결되어 있으며, 동계 스포츠 요충지인 엥겔베르크와는 협궤 철로에 의해 직접 연결된다. 

 

 

 


첫 번째 관광지는 카펠교(Kapellbrucke)라는 루체른의 랜드마크로 1333년 세워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다. 수없이 많은 다리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가운데 돌이나 철로 만든 다리도 무너지고 유실되는 것이 비일비재하였지만 이곳의 다리는 그 뼈대가 목조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70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 모습을 유지하며 아직도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제일 먼저 들려 보는 관광지가 된 것이다. 


나무다리 위에 지붕이 얹혀 있고, 그 지붕에 17세기 화가 하인리히 베그만(Hans Heinrich Wagmann)이 그린 루체른의 역사, 그리고 성인에 대한 158개의 판화 그림이 펼쳐져 있어 그 자체가 그림전시장이 된 것이다. 다리 중간에 있는 팔각형의 “물의 탑”은 호수로 잠입하는 적들을 감시하기 위해 망을 보던 곳이었단다. 나중에는 고문실과 감옥, 보물실과 기록 보관실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로 운영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1993년 화재로 그때까지 현존하였던 147개의 판화들 중 47점만이 화마를 면하였다. 다음 해에 다리는 완전하게 복원되었지만 판화 그림들은 아직 30점만 복원이 되었단다. 하긴 화가가 죽은 지 오래고 그 그림들을 모사할 제자들도 없으니….


전 유럽을 걸쳐 유일하게 이런 형태로 건설된, 길이가 무려 204m에 달하는 귀한 다리지만 많은 관광객들은 다리의 초입에서 조금 걸어 들어갔다 되돌아 나온다, 다음 행선지, “빈사의 사자상”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루체른의 사자 Lion of Lucerne 


1792년 8월, 프랑스 대혁명의 와중에 파리의 튀를리 궁전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수호하다 전멸한 스위스 용병들을 추도하며 베르텔 토르발드젠(Bertel Thorvaldsen)이 디자인한 “루체른의 사자(Lion of Lucerne)”를 덴마크의 조각가 루카스 혼(Lukas Ahorn 1770-1884)이 1820-21년 사이에 루체른의 동쪽에 있는 개인 소유의 연못가의 커다란 바위에 암각으로 조각하였다. 

 

 

 


1882년에 루체른 시에서 구입하여 지금은 루체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 조각에는 슬픈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혁명군에게 궁전이 함락되기 직전, 루이 16세는 자신을 호위하던 스위스 용병들에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왕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본분을 다해 최후의 한 명까지 왕을 지키다가 몰살당하였다고 한다.


이 때 전사한 스위스 용명 786명을 기리기 위해서 만든 사자상으로, 고통스럽게 최후를 맞이하여 부러진 창을 꽂은 채 지쳐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애달픈 모습이다.


아무리 용맹스러운 스위스 용병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땅에서 786명의 적은 수로 어찌 극도로 흥분하여 인해전술로 달려드는 혁명군들을 막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루이 16세에게 충성을 다 바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향 스위스에 남겨 두고 온 가족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었다고도 한다. 

 

당시 산악지역으로 척박했던 스위스 땅은 농업 생산량이 좋지 않아 남자들은 용병에 많이 종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혹시라도 도망쳐서 용병으로의 신의를 잃게 된다면 후손들은 다시는 용병자리를 얻을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끝까지 루이 16세를 지켰다고 하는 말이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 루이 16세에 이어 마리 앙트아네트는 “인간은 불행에 처해서야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게 된다”는 명언을 남기고 길로틴의 이슬로 사라졌다는데…. 


그 많은 용병들은 죽어 가면서 자신의 목숨을 내 놓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을까?


마리 앙트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크로산(일설에는 고기)을 먹으면 되지!”라고 말 하였다는 것은 혁명군들이 지어낸 말이라는 것이 요즈음에 와서는 거의 정설에 가까운 것 같다. 실은 착하고 사치도 안 부린 왕비였으며, 처형 받으려고 단두대로 올라가다 망나니의 발을 실수로 밟았는데 그 와중에 “실수로 발 밟아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단 말들도 전해오고 있으니까…. 그 자리에 없었던 내가 어찌 알리요.


결국 역사란 기록하는 권력에 의해서 바뀌어지는, 기록에 의한 지식인 것 같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스위스 용명의 전통과 명성이 아직까지도 이어져 지금도 로마의 바티칸을 지키는 병사들은 모두가 스위스 용병들이다.


주로 독일인•프랑스인•이탈리아인으로 구성된 국민들이 700여년간 민주주의를 지키며 영세중립국을 견지해 올 만큼 국민 단합이 잘 되어 오던 스위스도 요즈음에는 좌우로 나누어져, 소수인 좌경향 정당들의 포퓰리즘의 공세로 시끄럽다가 정부가 생활비를 월 300만원씩 주겠다는 것을 국민투표에 부쳐보니 스위스 국민들이 78%의 반대로 부결한 것을 보면 아직도 스위스 시민들은 깨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언제까지일까? 누룩은 보이지 않게 반죽을 부풀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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