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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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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생애(7)-사라를 떠나보내는 아브라함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사라가 누린 햇수라. 사라가 가나안 헤브론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시오.’.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마므레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밭과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문에 들어온 모든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후에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가나안 마므레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헤브론이라.) 이와 같이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23: 1-20)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여 “믿음의 조상”의 위치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별보다 많아질 그의 자손들이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고 복의 근원이 될 것이란 축복을 받는다.

 

위대한 믿음의 승리를 거둔 후 브엘세바로 돌아온 아브라함은 고향에 살고 있는 동생 소식을 듣게 된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에게는 아브라함, 하란, 나홀 세 아들이 있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아버지 데라는 물론 하란도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때문에 하란의 아들 롯만이 아브라함을 따랐고, 나흘은 그대로 고향에 남았었다. 그러니까 헤어진 지 사십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에 아브라함은 동생의 아내 밀가가 자녀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나홀의 이야기가 이 시점에서 등장하는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나홀은 아내 밀가를 통해 여덟 명의 아들과 첩인 두루마에게서 네 명의 아들을 얻어 도합 열두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들 모두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창 22:21-24)

 

이는 나홀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인류구원 계획에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홀의 본처 소생 부두엘의 딸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고, 리브가의 오빠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은 야곱의 아내가 되어 그들이 낳은 열두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창 35:23-26)

 

나홀은 아브라함과 함께 고향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고향에 남아 낳은 열두 아들들이 야곱의 아들들과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처럼 열두 지파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나홀은 가나안에 발을 디디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았음은 물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언약의 계승자인 이삭의 아내가 된 리브가의 아버지와 이삭의 아들 야곱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이룰 수 있게 한 레아와 라헬의 할아버지로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생 나홀의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브라함에게는 참으로 슬픈 일이 일어난다. 사라가 백이십칠 세로 헤브론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때 브엘세바에 머물고 있던 아브라함은 아내의 부음을 듣고 헤브론으로 달려가 애통하며 슬피 운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와 형제 나홀과 하란과 함께 갈대아 우르에 살 때 부부가 되었을 것이다.

 

자식은 없었지만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했다고 여겨진다. 아내가 흠이 있거나 못마땅하면 언제든지 다른 여자를 취할 수 있었고, 특별히 여자가 아이를 갖지 못하면 마음대로 후실을 드릴 수 있었던 시대였는데도 아브라함은 사라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에게 충실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사라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미묘한 사태가 벌어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라는 아브라함의 뜻에 순종하여 미지의 세계로 들어섰다. 남편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확고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결단이었다.  

 

아브라함의 사라에 대한 믿음과 사랑도 확고부동했기에 그들 부부는 상호 이해와 관용과 인내로 엮인 동아줄로 서로를 동여매고 힘들고 위험한 광야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모르는 애굽 땅에서 사라를 동생이라 속여 왕실로 들여보낸 것은 진정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사라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고 믿어진다.

 

실제로 사라는 애굽 왕실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아브라함에게도 돌아갈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며 바로가 사라의 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자 그녀의 신분에 관해 물었고, 사라는 과감하게 자기는 아브라함의 동생이 아니고 아내라고 밝힌 것으로 되어있다.

 

20여 년 후 그랄 에서도 아브라함은 사라를 그의 동생으로 행세하게 하며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보낸다. 만일 그때 아비멜렉이 사라와 동침했다면 그녀는 아비멜렉의 아이를 잉태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자손의 축복은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아브라함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도 아브라함에겐 사라는 결코 그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음이 확실하다.

 

사라가 그녀의 종 하갈을 아브라함과 동침시켜 자식을 얻고자 한 것도 인간의 계획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려 한 엄청난 잘못이었다. 그러나 사라에게도 아브라함은 어떤 경우에도 그녀를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많은 인간적인 실수와 과오를 범했고, 믿음의 실족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서로 이해하고 용납하며, 신뢰하고 순종하는 마음의 바탕 위에 맺어진 그들의 사랑은 흔들리지도, 변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그들을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걸으면서 사랑의 허리띠로 결속되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드리며 많은 민족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사라와 더불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광야의 순례자가 된 것은 그가 75세, 사라가 65세 되던 때였다. 그 후 62년 동안 그들이 크레비스(Crevies: 등산객들을 삼키는 죽음의 함정) 보다 무서운 수많은 인생의 지뢰밭이 숨겨져 있는 광야 길을 걷는 동안 그들을 붙들어 맨 애정과 신뢰와 이해의 “사랑의 삼겹줄”은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줄의 한쪽에 묶여 있던 사라가 먼저 가버린 것이다. 온갖 고통과 슬픔에 시달리다 구십 세가 되어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이삭을 낳은 후 그녀의 인생에도 기쁨과 소망의 웃음꽃이 피기는 했지만, 그 외아들 이삭이 결혼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그녀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것이다.

 

사라의 싸늘한 시신을 내려다보며 아브라함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분신을 먼저 보낸 슬픔과 충격을 떨쳐 버리고 일어선다. 그녀를 안장할 땅을 찾기 위해서였다. 아브라함은 그 곳에 정착해 살고 있는 헷 족속에게 “나는 당신들 중의 나그네입니다. 죽은 내 아내의 매장지를 마련하고자 합니다.”(창 23:4)라 말한다.

 

이 말을 들으며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하늘나라로 향하는 순례자들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히브리서에는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모두 영원한 하늘나라를 동경하며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히 11:13-16)

 

헷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당신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입니다. 우리 묘실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아내를 장사 지내십시오.”(창 23:6)라 호의를 베푼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호의는 고맙게 받겠지만 묘지 값은 시세대로 쳐서 지불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로 원하는 막벨라 굴이 있는 토지의 소유자 에브론은 토지와 굴의 가격은 사백 세겔이라 답한다.

 

사백 세겔을 오늘 날의 가치로 환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당시 거래되던 땅 값 시세도 모르고 그 토지의 크기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이 미디안 상인들에게 이십 세겔에 팔리어 갔고(창 37:28), 그 후 예레미야와 다윗이 땅을 구입하면서 지불했던 금액과 비교해 보면(렘 32:9; 삼하 24:24) 에브론이 막벨라 굴 값으로 부른 사백 세겔은 엄청나게 비싼 것이었다.

 

이런 점들을 지적하면서 에브론은 아브라함이 부자이며, 장지가 꼭 필요한 사람임을 알았기에 땅 값을 많이 받기 위한 거래 수단으로 처음에 그냥 가지라며 흥정을 시작했을 것이라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 추측이 옳든 그르든 간에 아브라함은 에브론이 요구하는 전액을 그대로 지불했다.

 

아브라함의 막벨라 굴 매입은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부동산 거래였으며, 그 거래에서 아브라함은 상당한 손해를 보았다. 하지만 그와 같이 손해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였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된 우리들도 이 땅에 살면서 받는 여러 가지 불이익은 하나님께서 몇 배로 늘려 갚아 주신다는 믿음을 지니는 것이 마땅하리라 믿는다.

 

아브라함이 구입한 막벨라 굴은 그의 가족 묘지가 되었다. 후일 아브라함은 물론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가 이 굴에 묻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사백 세겔을 주고 막벨라 굴을 그의 가족 묘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일부를 그의 소유로 만들었기에 하나님의 언약이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비싼 가격을 주고 막벨라 굴을 사들인 목적이요 의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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