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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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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궁의 영혼의 산책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다는 뜻이며 알함브라궁은 붉은 성채를 의미한다. 이 성을 붉은 에머랄드성이라고도 하는데, 그곳에 가보면 알게 된다. 낮에는 올리브나무와 전나무, 아이비 덩굴로 덮인 에머랄드빛 성채가 밤이면 붉은 횃불같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게 되므로.



멀리 시에라 네바다산맥 위엔 흰 눈이 그대로 있는데, 사월의 훈풍에 라일락 향기가 멀리서 찾아온 우리 부부에게 다정하게 스며든다. 참 멀리도 찾아왔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가는 우리의 여정 치고는 많은 시간을 이곳에 나누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이며, ‘세계 7대 불가사의’ 후보에 든 스페인 땅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성. 그나마 호텔에서 예약해주지 않았다면 들어가지도 못할뻔했다. 아침부터 오후 2시까지는 3,300명, 오후엔 2,100명, 저녁엔400명만 입장시키기 때문이다.


1492년, 기독교국토회복운동의 기치를 든 스페인의 페르디난드왕과 이사벨라 여왕부부가 알함브라성에 무저항으로 입성했고, 성채입구엔 그들의 손자인 카를 5세가 지은 궁전이 문앞을 가로막고 서있다. 마치 비싸게 주고 산 불후의 명작 그림 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덧칠해 놓은 듯 어울리지 않았다.


기독교문화에 젖어 살아온 우리에게 이 알함브라궁은 완전히 이질적인 무슬림문화의 환타지에 빠지게 했다. 등나무꽃이 신부의 화관처럼 늘어진 무지개문을 들어서자 맑은 하늘에 슬프게 울려오는 타레가의 클래식 기타가 내 마음의 줄을 타고 들려온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버림받고 이곳에 와서 달밤에 작곡하여 부른 ‘알함브라궁의 추억’은 이 궁의 뜰을 거니는 동안 구석구석에 퍼져가고.



가슴이 떨리게 하는 타레가의 트레몰로조(비브라토)는 이 궁의 여름별장인 헤네랄리페에서 클라이막스에 이른다. 네바다 산꼭대기에서 지하수로를 따라 흘러온 물들이 양편에서 열두 줄기의 분수로 내뿜는 대리석 십자가길 위에 넘쳐흐르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가에 핀 온갖 꽃들과 새들의 교향악에 타레가의 기타 음률이 춤추는 듯 흐느적인다.

샘물의 트레몰로!


이 영원한 샘물은 또한 이 나라의 성녀 데레사가 일러준 ‘영혼의 성’의 제일궁실 같다. 그 궁실에서 올리는 묵상의 적극적인 기도의 고뇌가 마치 수원지의 물을 이 먼곳에 물통에까지 끌어드려야만 하는 힘겨움에 비길만 하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은 물가에 피고 지는 꽃 풀들에 지나지 않게 된다.

허무한 꽃들의 트레몰로!


 

그 고통을 이기고 수동적인 관상의 세계를 보이는 곳은 바로 ‘정의의 방’을 지나자 활짝 열린 긴 연못이다. 사막 시절에 그리던 오아시스를 인위적으로 물을 끌어드려 만든 것으로, 직사각형의 못 둘레에 심은 낮은 키의 관목에서 이름한 ‘관목 숲의 뜰’ 혹은 ‘연못 궁전’이라고도 부른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못 주위를 거닐어도, 궁전의 지붕과 야자수가 비취는데도, 이슬람 전통건축으로 대칭과 비례를 정확하게 측정해 지은 건물이 다 드려다 보여도 수면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오아시스에 물을 끌어들인 환희와 자만을 감추고 관상의 기도 속에 잠겨 있는 듯.

기도의 트레몰로!        

 

 

성녀 데레사가 겪은 ‘영혼의 어둔 밤’은 열두지파의 상징인 열두사자의 입에서 각 궁실로 이어진 수로에 물을 대주는 사자궁의 분수를 지나 방마다 분수가 설치된 방들을 돌아볼 때이다. 한 귀퉁이가 헐겁게 흘러내릴 듯 버티고 있는 아벤세라헤 궁실의 둥근 천장엔, 팔각형의 별을 두 개 겹쳐 놓은 벌집모양의 원형천장. 우주와 같은 둥근 천장에 박힌 보석들이 어둔 밤의 희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별들의 트레몰로!


성벽 종탑 위에 기마병조각을 풍향계로 만들어 놓고 적이 오면 그 기마병이 방향을 알려주었다는 곳, 그 외에도 한없이 많은 전설을 다음에 풀어보기로 하고 알함브라궁을 나섰다. 그러기엔 너무 아쉽고 그렇다고 저녁 티켓을 끊기엔 너무 비싸서, 우리는 밤의 어둠 속에 알함브라궁의 모습을 보려고 그 맞은편 알바이신 마을로 택시를 타고 다시 올라갔다.

 
붉은빛 에머랄드의 알함브라궁은 밤에 더 화려하고 처연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불타는듯한 알함브라궁을 바라보며, 이 신비에 쌓인 예술작품 같은 궁성을 떠나야 했던 나시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의 마지막 한숨’이 들려온다. 보압딜은 왜 불타는듯한 내 사진처럼 이 궁성을 불태워버리고 떠나지 않았을까?


하기야 불꽃 속에 사라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붉은 영혼의 성을 산책할 수 있었고, 너무나 맑아 달빛처럼 슬픈 타레가의 기타 소리도 들었겠지만.

영혼의 트레몰로!!

 

*필자 부부의 사진: 톨레도의 타호강가(Targus Riverside, Toledo)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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