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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는 불평등하다(상)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세 명 있다. 중간에 내가 이민을 오는 바람에 33세 이후 살아온 행적을 서로 잘 모른다. 마치 드라마 마지막 편에 '그로부터25년후. ' 라는 자막과 함께 훌쩍 뛰어넘을 때 싱겁게 결말을 보게 되는 놀람이 있다. 


내 절친들의 공통점은 부유한 집의 자제가 아니라는 것, 수재소리 들으면서 공부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과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의 25년이 지난 후의 경제적 삶은 어떨까? 사람의 행복을 경제적 지위로 판단하면 안되지만 그 내적 만족도에 대하여는 잘 모른다. 


한때 사업이 번창한 적이 있었다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잘나가던 시절 책에 소개된 적도 있는 부분을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아쉽게도 그는 여러 종류의 사업을 일으켰고, 한때 흥하다가 2, 3년이 채 못되어서 망해버리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재사업에 뛰어든 열정은 평균 이상이었다. 


그러던 그의 현재는 경제적으로 극도로 궁핍하다. 담뱃값 4500원을 아끼려고 연초를 300원에 사서 종이에 말아 피우면서 독거중년으로 지내고 있다. 달리기를 못할 정도로 거동도 불편해졌다. 


또 다른 친구가 있다. 대학 경영학과를 나온 후 기업에서 잠시 일하다가 독립해서 연구소를 차렸다. 기업타당성분석 보고서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30대초에 시작해서 25년을 운영하고 있다. 한번도 이사한 적이 없다. 본인 말로는 이 분야의 업계 일인자라고 한다. 직원도 7, 8명을 거느리고 있다. 


어른들 말로 자리를 잘 잡았다고 말하는 부류에 속한다. 캐나다 와서 만나는 주변 사람들은 모두들 사는 정도가 비슷하다. 집에 초대받아서 방문해도 나오는 음식이나 가구나 여유시간이 대동소이하다. 


비슷한 연배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이런 정도로 사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었다. 정비사, 자영업자, 직장인, 공무원이지만, 주거형태와 소비 등을 보면 직업을 추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의 지인들은 빈부격차가 심했다. 부자인 친구는 여전히 없고 중산층과 빈곤층만 있다. 


지금 빈곤하게 사는 친구를 결과적으로 바라보면, 한가지 일을 끈기 있게 지속하지 못했다. 시작은 좋았으나, 각종 이권과 명문, 자금운영의 미숙 등으로 빈털터리로 혹은 부채를 잔뜩 짊어진 채로 도망을 가야 했다. 공장을 만들어 팬티를 팔아도 지속적으로 했더라면, 말년에 빈곤은 면할 수 있었을 텐데.


장래성이 있는 일을 정하고, 한 우물을 10년 이상 파면, 어느 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안목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 나와서 자기와 가족들에게 의식주의 안정을 제공하는 것은 자기만의 생태계를 마련하는 새들의 행위와 비슷하다. 


당연하지만 여전히 이사를 다녀야 하고, 가족들에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할 수 없는 가장들이 있다. 거대담론으로 가자면, 국가의 복지제도가 잘 마련되어서 빈곤층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전히 자기 선택과 행동의 결과를 논할 수 있다. 


소박하지만, 일과 휴식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의식주를 마련하는 것은 모든 청년들의 기본적인 과제이다. 말년에 가난과 고독으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29세의 청년이 있었다. 고향을 떠나서 타지에서 초등, 중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수학을 가르쳐 주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런 저런 일로 휴학을 하느라 아직 졸업은 하지 못했다. 올해를 마치면 졸업장을 따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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