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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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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이 벗겨질 때-인간은 신비해야 아름답다

 


▲신부는 베일에 가려져 있을 때 더 아름답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해박한 지식은 물론 인터뷰하는 기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까지, 그를 접해본 사람은 그 진지함과 성실성에 감탄했다. 그에 대한 상반된 호불호(好不好)에도 불구,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대체로 수위(首位)에 오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DJ는 특히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와 함께 인간적 신비로움을 갖고 있었다. 그는 군사정권 시절 자신의 이름마져 잃어버렸다. 가택연금을 당해 신문에 이름도 못쓰던 시절, 지상(紙上)엔 ‘동교동 재야인사’란 말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 용어는 그의 신비로운 카리스마를 더욱 부각시켰다.  

 

 이처럼 유력인사들에게 신비주의(mysticism)는 아주 유용하게 작용할 때가 많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정치판과 국가 정세를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0…신비주의는 실제 능력이나 인품 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빛을 발한다. 막상 신비의 베일이 벗겨지고 한 인간의 실체가 드러나면 그 결과는 대개 실망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적당히 신비로울 때가 더 아름다운 것이다.        

 

 영어 속담에 "Everyone has a skeleton in the closet"(누구나 벽장에 해골을 가지고 있다)란 말이 있다. 즉, 인간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한 두가지의 약점은 갖고 있다는 뜻이다.   

 

 야누스의 얼굴(Janus face)이란 말도 있다. 두 얼굴을 가진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인격자(Janus faced)를 가리킨다. 로마신화에 나오는 야누스는 성(城)이나 집의 문을 지키는 신이었다. 그런데 야누스의 머리는 하나인데 얼굴 한쪽은 앞을, 다른 쪽은 뒤를 보고 있다. 앞뒤의  모습이 다르다는 데서 이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게 됐다.

 

 말 못할 약점이든 표리부동(表裏不同)이든 인간은 이중적인 면을 조금씩은 갖고 있다. 겉과 속이 완전히 같다면 좋겠지만 그런 무결점 인간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인간관계도 오래 유지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엔 상대방의 장점만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고 신비의 베일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결함이 더 크게 보이게 되고 결국은 파국을 맞는다.

 

0…인간은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을 때 아름답다. 면사포 쓴 신부는 누구나 아름답다. 따라서 상대방을 실망시키지 않고 처음의 좋은 인상을 오래 간직하려면 자신을 적당히 베일에 감싸두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는 특히 공인(公人)에게 불가피한 덕목이다.

 

 지금 한국 대선판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한때 참 멋지고 유능하게 보이던 사람들이 베일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추한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세인들을 실망시킨다. 신비주의가 퇴색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안철수(60) 씨를 참 좋아하고 존경했다. 나보다 연하(年下)이지만 본받을 점이 많다. 한국 최연소 의대 학과장,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석좌교수를 거쳐 이름도 생소한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지적(知的) 길을 걸어온 사람.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를 만든 8할은 치열한 고민이었다. 의대 교수를 계속할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야 할지 6개월 동안 고민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중에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고민 좀 그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시는 힘들었지만 진지하게 고민하니까 답이 보이더라. 고민은 인생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0…동안(童顔)에 이지적(理智的)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겸손한 성품으로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도 하면서 젊은층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청렴성과 도전정신 등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안철수는 세간의 인기를 업고 어느날 갑자기 정계진출을 선언했다. 이때부터 그의 이미지는 급전직하 추락하기 시작한다. ‘학자 안철수’가 진흙탕 정치판에 끼여들면서 소년처럼 맑고 깨끗한 순백(純白)의 이미지가 급격히 빛을 잃어갔다.

 

 안철수는 누가 봐도 대통령감이 아니다. 학자 아니면 동네 면장이나 이장 정도에 어울릴 사람이다. 아무리 그럴 듯한 말을 해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가 학자나 의사로 있으면서 가끔 소신있는 조언 정도나 했더라면 훨씬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0…윤석열이란 사람도 그렇다. 검찰총장으로서 상하권력 눈치 보지 않고 마구 칼을 휘두를 때 사람들은 속이 후련했고 환호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정의의 사도’로 비쳐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족해야 했다. 사람 잡아 족치는 일 외에는 아무 경력이 없는 그가 웬 난데없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만신창이 꼴이 돼버렸다.

 

 신비의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한 윤석열의 맨모습은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얄팍한 식견이 드러나면서 그를 대통령감으로 보는 국민은 점점 줄고 있다. 그를 감싸줄 신비주의는 더 이상 없다. 그가 ‘검찰총장 윤석열’로 남아 있었더라면 아내까지 공개 심판대에 세우는 불행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0…세상사 부질없고 야박한 것이 세인들 마음(人心)이다. 열렬한 환호를 보내다가도 언제 순식간에 돌변할지 모른다. 평소 존경받던 인사들이 어느날 갑자기 숨겨졌던 모습이 드러나면서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경우를 숱하게 본다.

 

 신비의 베일을 벗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존경받는 인물이 그 이미지를 간직한 채 본분을  지킨다면 오래토록 신비감에 싸여 명예를 유지할 터인데, 그 베일을 벗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 인간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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