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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선의 大佳里(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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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26)-가나의 혼인잔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였던 결혼식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가나의 혼인잔치”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화려하고 성대하였던 혼인잔치들이 수도 없이 많았었지만, 신랑과 신부가 누구인지도 알려지지 않았고, 그 위치마저 성경학자들과 고고학자들 사이에 분분하여 갈릴리 안의 작은 마을 몇 군데가 그 후보 지역들이라고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나사렛에서 약 7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동네 가나에 이 결혼식을 기념하는 두 개의 혼인잔치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는 1881세워진 교회를 1999에 보수한 프란체스코 소속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1566년에 지어진 그리스 정교회 소속 교회로, 두 교회는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교회는 프란체스코 소속 교회로 혼인잔치가 열렸다고 전해지는 곳의 터를 매입해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우리들이 도착한 시간이 너무 늦어 교회는 밖에서 담 너머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 지하에는 이전 유적지가 일부 발굴되어 전시되어 있고, 포도주 항아리를 떠올리게 하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는, 이곳에서 벌어진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이적의 전말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마도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을 받으신 후 다시 베다니 지역으로 오실 때였을 것 같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니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요 1:36-40)

 

세례 요한의 말을 들은 두 사람, 요한과 안드레는 세례 요한을 따르던 제자였을 것입니다. 그 둘이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자 예수님께서 “무엇을 구하느냐?”는 질문에 이 둘의 대답은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하니 완전 동문서답 같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함축된 대답은 “제자로 따를 터이니 계신 곳을 알려 주십시요”라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 아닐까요?

 

사해 북부, 요단강의 하류에 있는 베다니에서 이렇게 요한과 안드레가 제자가 된 후 갈릴리로 가던 도중에 벳세다에서 베드로와 빌립과 나다나엘이 제자로 합류되어 5명의 제자가 생겨났습니다.

 

베다니에서 약 160km 떨어진 갈릴리의 가나에서 결혼식이 있는 날은 예수님께서 베다니를 떠난 지 사흘 되던 날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아마도 혼주와의 관계가 깊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과 새로 생긴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겠지요.

 

그런데 결혼식 피로연 중에 그만 포도주가 다 떨어지게 되어 혼주와 하인들이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마리아가 예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며 예수는 완곡하게 거절을 하시었지요.

 

하지만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시니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 이적을 보여주시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놀란 제자들의 믿음이 더 커지며 예수님을 따라오기를 잘하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겠지요.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요 2:11)고 하신 것을 보면 이적을 나타내시며 사역의 시작을 위해서였던지, 아니면 그 지역에서의 소문으로 잘못 인식이 되는 것을 피하시기 위해서였던지 모르겠습니다.

 

이 포도주 이적을 두고 지금도 학자들 간에는 이견들이 분분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직접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숨겨진 은유와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학자는 먼저 나온 포도주는 유대교를 의미하며, 예수가 만든 새 포도주는 기독교를 상징한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가 먼저 나온 포도주보다 더 낫다고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은 것처럼 기독교가 유대교보다 더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한 비유로 보는 것입니다.

 

또 어떤 학자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 공경을 강조하는 천주교에서 의미를 찾으며, 주위의 도움을 반영해서 예수에게 알리고, 당초 예수가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음에도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해라"고 지시하여 결국 기적을 행하게끔 유도하는 나름 적극적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늘나라와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서 성모의 위상, 역할을 나타내는 대표적 사례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나타나는 여러 사례들은 학자들이 이적을 설명하려고, 기적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노력하다 보니 나온 오류의 결과들이 아닐까요?

 

요한복음 2장 11절에는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 케임브리지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일 때, 신학 과목 논술시험 주제로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에 담긴 종교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서술하라>라는 문제가 나온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네요.

“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

“물이 그 창조주를 뵙고 얼굴을 붉혔도다.”

이 짧은 서술이 과연 몇 점이나 받았었을까요? 아마도 학사 비밀인가 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높이 6.77m 너비 9.94m가 되는 엄청난 크기의 “가나의 결혼”이라는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 1528년 ~ 1588년 4월 19일)의 대작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려진 신랑의 모습은 마치 페르시아의 왕자 같은 복장을 하고 있으나 신랑처럼 기쁜 표정은 아니게 그려져 있고, 오히려 예수님이 주빈처럼 화폭 가운데 그려져 있으며 뒷배경이 베네치아인 것을 보면, 조그마한 촌락에서, 포도주마저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자그마한 결혼식을 이렇게 크고, 화려하게 그린 베로네세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가나의 결혼” 왼쪽 아래 앉아 있는 남자와 여자가 혼인 당사자들이라고 합니다.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 1528년~1588년 4월 19일)의 대작

 

“혼인잔치 기념교회” 1999에 보수한 프란체스코 소속 교회

 

기념품 가게의 벽 장식

 

기념품 가계에 걸려 있는 태극기

 

갈릴리 지역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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