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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둔감한 사람이 좋다

 
 
"그런 질문은 품질관리 담당직원에게 물어보면 안 되나요?" 


"당신은 왜 내가 그에게 물어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발끈한 세브리나가 받아 쳤다. 엇, 이게 뭐지. 나에게 물어보지 말고 저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한 것이 그렇게 기분이 상할 일인가? 그녀의 반응이 날카로웠다.


내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 나의 짜증이 외부에 너무 쉽게 드러난 것일까? 그가 과잉 반응한 것이라고 접어버리는데 자꾸 생각이 난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못하는 나도 그렇지만, 발끈한 세브리나도 꽤나 민감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까다롭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이나 말에 민감하다. 이런 민감성은 인간관계에서 에너지 소모를 늘린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이나, 배경을 생각해보면 헤아릴 수도 있는데 드러난 반응만 가지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해롭다. Autism을 가진 사람이 외부의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처럼,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기준치가 높은 사람은 하루를 살고 나면 기운이 쑥 빠져버린다. 


이럴 때 부러운 성격이 둔감한 사람이다. 외부의 자극을 별로 눈치채지 못하고 덤덤하게 살아간다. 


나와 다른 타인의 행동이나 말에 대하여 또는 악풀에 대하여 약간 바보가 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밥만 잘 먹고 잠도 잘 잔다는 말은 둔감한 사람이 누리는 행운이다. 


기대, 특히 타인에 대한 기대는 최대한으로 낮추는 것이 좋고, 때로는 나의 건강이나 무드에 대한 기대도 한참 내버려 두는 것도 좋은 일이다. 반드시 행복감에 머물러야 할 필요도 없고, 별 일없이 창밖에 비 내리고 날이 흐려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반드시 이 정도가 되야 한다는 모든 기대는 자기 자신에게 부작용을 남긴다. 


둔감하고 남이 나에게 어떻게 행동하든지 받아주는 폭을 늘리면 일상을 훨씬 수월하게 받아 넘길 수 있다. 둔감하던가 아니면 내면까지 이해해주던가. 


내가 조직에서 이 정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준이 높던가, 주변에서 나를 이렇게 대우해주어야 한다는 수준이 상세하면 어리석은 감방생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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