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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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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눈물-따스한 인류애로 보듬어야

 
 

▲도시 봉쇄령이 내려진 우한(武漢)시에서 한 어머니가 백혈병에 걸린 딸이 검문소를 통과해 병원으로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질병이 가져오는 비참함과 고통을 볼 때 페스트에 대해 체념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거나 눈먼 사람이거나 비겁한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장편소설 ‘페스트’(La Peste, 1947)에서는 중세에나 횡행했고 근대에는 사라진 줄 알았던 역병(疫病)이 20세기 한 도시를 덮친 상황과 그에 대응하는 인간 군상(群像)들의 처절한 모습을 세심하게 그려냈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한 도시에 치명적 전염병인 페스트가 발생하자 주인공인 의사(뤼)는 도시 곳곳을 돌며 환자들을 치유하는데 헌신의 노력을 다한다. 여기엔 친구(타르)의 협력이 큰힘이 됐다. 처음엔 비협조적이었던 (파느르) 신부와 (신문기자) 랑베르도 뤼의 인간적인 행동에 끌려 점차 구호활동에 참가하게 된다. 마침내 페스트가 종식하는 날도 가까운 듯했다.


 그러나 기민하게 구호활동의 기둥이 되어왔던 타르가 도시봉쇄 해제의 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역병에 걸린다. 뤼는 병마와 싸운 사람들의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한다. 페스트균은 멸망하지 않고 항상 어딘가에서 인간의 행복을 위협하고 있음을 감지하면서…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신의 도움 없이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가?”


0…소설은 페스트 창궐과 떼죽음이라는 극한상황에서 나타나는 ‘비인간성’에 대한 집단적 반항과 인간의 연대성을 역설한다. 병의 재앙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은 각양각색이다. 의사인 뤼는 묵묵히 직업상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전직 정치활동가 타루는 민간구호단을 조직해 뤼를 돕는다. 취재하러 왔다 도시에 갇힌 신문기자 랑베르는 연인을 보고 싶다는 일념에 도시탈출에 골몰한다.


 의료진과 구호단의 사투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인간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할 장례절차가 점점 간단해지더니 급기야는 크게 판 구덩이에 ‘벌거벗고 약간씩 뒤틀린 시신들’을 쏟아붓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에 뤼는 타루에게 페스트와의 전쟁은 끊임없는 패배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같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역병 종식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 카뮈는 소설에서 신문기자 랑베르를 통해 사랑에 대한 신뢰를 피력한다. 탈출을 모색하는 랑베르는 뤼와 타루가 아무 비난도 하지 않는데 그들을 계속 의식한다. 그는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아요. 내 관심은 오로지 사랑을 위해 살고 죽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침내 탈출할 수 있게 된 날 랑베르는 도시에 남아 구호단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영웅주의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 의료진과 시민들에 대한 애정에서였다. 


0…지금 카뮈의 ‘페스트’가 새삼 회자(膾炙)되고 있다. 작품의 전개 내용이 오늘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상황과 아주 흡사한 탓이다. 그러나 카뮈의 페스트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소설 속에서 페스트라는 역병을 극복한 힘은 바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돈독해진 공동체의 연대였던 것이다. 


 예로부터 역병이 돌면 민심은 흉흉해지고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이 나타난다. 누가 어찌됐든 나만은 꼭 살아남겠다는 생각으로 남의 고통이나 절박한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역사상 수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이 무수히 있었지만, 그에 비하면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의 코로나는 사람들끼리 서로 협력만 잘 하면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그럼에도 전 세계가 패닉상태다. 과거엔 질병 자체가 무서웠지만 지금은 한술 더 떠 인간세계도 두려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중국인, 나아가 아시아인 전반에 대한 인종차별이라는 반인륜적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지저분한 중국인’, ‘박쥐같은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야만인’, ‘우리 모두를 감염시키려 드는 너희들은 우리가 환영하지 않는다’ 등 혐오와 경멸로 가득찬 말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아시아인이 운영하는 가게들은 손님이 뚝 끊겨 텅텅 비고 아시아 학생들은 학교에서 기침만 해도 친구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상황까지 왔다.


 서구인들 눈에는 중국인이나 한국인, 일본인, 동남아시아 사람이 다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에 우리 한국인도 이같은 혐오대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화살은 한국인에게도 날아오고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한 지역신문엔 ‘황색 경계령’(Yellow Alert)이라는 제목까지 내걸렸다. 이민자 천국으로 통하는 캐나다도 예외가 아니다. 


0…현재 확산 중인 전염병이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병하고 사망자와 감염자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온 건 맞다. 중국에서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원인은 신종 코로나 라는  바이러스이지 중국인이나 아시아인 같은 인종이 아니다. 


 중국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로 현재 가장 치열하게 이 병원체와 싸우고 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으려면 그런 중국을 돕는 게 맞다. 


 전염병은 인류의 재해다. 전염병 대응에는 국가나 민족 간의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런 것은 다함께 힘을 합쳐 전염병을 물리친 다음에나 따질 일이다. 


 우리는 가까이는 2003년 사스 사태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한 바 있다. 이번 코로나 또한 머지 않아 잡힐 것이다. 지금 가장 무서운 적은 바이러스보다도 어쩌면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 차별이 아닐까. 바이러스는 정복하면 곧바로 치유될 수 있지만 인간에 대한 불신은 쉽사리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함부로 퍼뜨리는 헛소문 한마디가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하다. 행여 우리부터라도 말조심해야겠다.(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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