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HNCHO

    조준상 (로열르페이지 한인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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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칼럼(116)-우리들의 미래와 계획(Our future and Plan)(13)

 

(지난 호에 이어)

 어찌 보면 "당신의 삶은 행복하세요?" 물어보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그럼요"라는 대답은 막연하고도 또 위선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원래 행복이란 일시적으로 그렇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결코 그 행복이 누구에게나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원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행복이란 내가 원하는 것 모두를 충족했을 때 오는 것이고, 우리 인간에겐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어도 완벽한 충족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의 의견을 반대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고,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렸다는 분들도 있겠지만 행복의 기준을 두는 것은 일종의 포기일 뿐 절대 충족에서 오는 행복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수많은 철학자나 종교인들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행복한 삶의 방법을 볼 때 결국 하나같이 포기를 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의 의견은 그 방법이 잘못되거나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사는 옳은 방법이긴 하지만 사실은 포기를 하라는 말이며, 포기하는 삶을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모두 나이가 들어가며 포기를 할 수밖엔 없고 그 포기는 우리들이 원하던 모든 것들을 하나의 꿈으로 만들어버려 함께 사라져 갈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인생을 사는 동안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또 육체가 건강하다 해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우리는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결국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무엇을 소유했다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의식주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 가정할 때 우리의 삶을 안락하게 만들어줄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볼 때, 그것은 바로 내가 무료하고 외로울 때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아닐까 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아내와 가족보다는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젊었을 때 또는 학창시절엔 이리저리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한가을 낙엽이 떨어져 바람에 날리는 것만 봐도 서로 바라보며 킥킥거리던 그때 그 시절이야 매일이 즐겁고 우린 절대로 늙을 것 같지 않던 기분으로 살았지만, 그랬던 우리 모두가 배우자를 만나 자식을 낳고 서로 다투며 늙어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많이도 변해버려 그 옛날 없으면 안될 것 같았던 친구들은 이젠 그냥 아는 사람들로 변해버린 것이다.

 

 당시엔 계산을 할 줄도, 또 내가 책임져야 할 일마저 잘 몰랐던 우리들은 친구가 잘못되면 나를 희생해서라도 구하려던 의리와 우정은 그동안 들어가는 나이가, 또 변해버린 환경이, 우리 모두를 친구에서 그저 그냥 아는 사람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랬던 우리가 이제는 서로 만나면 우선 계산을 하게 되고, 또한 아내를 포함한 식구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그 옛날엔 느끼지 못했던 성격과 취향이 다른 옛 친구들이 지금은 낯설게 느껴지니 말이다.

 

 아직도 동화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인지는 몰라도 필자의 의견에는 아직 한 명이라도 나와 진정으로 대화할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해주는 그런 친구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날 외롭지 않게 만들고 또 부족한 속에서도 나에게 행복감을 준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아내와 아들도 친구가 될 수 있으며, 그런 친구들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행복해진다는 말이다.

 

 연애 시절이나 신혼생활을 지나 이제 아이들을 모두 키우고 또 출가시키고 나면 우리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허탈감과 외로움인데, 만약 내가 사랑했던 아내라도 지금 나와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면, 또 자식이 출가를 했어도 나와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된다면, 옛 학창시절에 알던 친구가 아직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로 있다면 그 사람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 주위를 돌아볼 때 많은 사람들이 친구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외롭고 힘들 때 서로 마주 앉자 마른 안주에 소주 한잔 할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내가 가진 것이 많아도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 인류가 몇 천년, 아니 몇 만년인지 그 누구도 정확히 추측할 수 없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만큼의 인류역사를 더듬어 볼 때 그 어느 시대도 생존경쟁을 위해, 아니면 남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전쟁과 싸움으로 서로 죽이고 죽는 비극의 연속일 뿐 한순간도 진정한 평화는 없는 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다.

 

 이해하기 어렵고 많이도 슬픈 우리 인류의 역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형이고 또 미래 역시 똑같음을 반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극과 고통과 아픔의 연속인 삶을 끝내주는 것은 바로 죽음인데, 그 죽음의 권세를 소유했다는 사탄은 오히려 우리 인류에게 선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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