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역습

 

#1. K는 똑똑하고 야심 만만한 젊은이였다. 70년대 말 대입학력고사에서 전국 1천~1,500등 사이에 오를 만큼 공부도 잘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그는 보수여당에 몸을 담았다. ‘창’이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를 때쯤 그는 측근으로 분류됐다. 당 사무국에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 공천을 90%쯤 손에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계파싸움에 희생돼 막판에 공천권을 놓쳤고, 이후 ‘창’이 잇따라 대권도전에 실패하면서 그의 정치인생도 내리막을 걸었다. 이른 바 비주류로 밀려난 것이다.

 2000년대 초 선배기자의 소개로 저녁식사 자리에서 만난 K는 자신의 지난 날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늘어놓았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력 정치인들과의 숨은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K는 친구가 경영하는 회사의 명함을 한 장 들고 다니면서, 여전히 정치권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금배지에 대한 집념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청춘을 오롯이 정치에 바친 그의 인생이 지금쯤 어떤 결실을 거뒀는지 궁금하다.

#2.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 캐나다의 대응은 한심했다. 광역토론토에서 감염자가 잇따라 보고되자, 마스크 착용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요크교육청은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며 교내 마스크 착용을 막았다.

 사태 초기 온타리오주 보건부는 매일 브리핑을 하면서 “캐나다에서 코로나19가 대규모로 유행할 확률은 매우 낮다(extremely low)”고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측은 어이없이 틀렸고, 캐나다는 2020년 초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온타리오를 비롯한 각급 정부의 책임론이 불거졌지만 보건부 고위 관계자들은 코로나19 대응 사령탑에서 물러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경제적 타격이 확산되자 연방과 주정부는 시민들에 대한 즉각 지원책을 쏟아냈다. 실직자들과 자영업자들에게 여러 명목으로 지원금이 나왔다.

 반면 한국은 방역에서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지만 경제적 피해 방어에서는 허둥지둥 갈피를 못 잡았다. 수십만 원에 불과한 지원금을 놓고도 여야가 팽팽히 맞섰고, 정부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국가의 빚이 늘어난다며 지원예산 배정에 협조하지 않았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캐나다는 국가가 대규모 적자에 직면했고, 한국은 자영업자들이 1년 사이 110조 원에 이르는 빚을 냈다.

#3. 여기서 코로나19 대응정책을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일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치의 영역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적 이슈가 된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정치가 주요 배경이다. 외교 군사적 결정도 정치판에서 크게 좌우된다.

 그렇지만 정치 영역이 개인의 삶에 크게 파고드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기는 힘들다. 어찌됐던 사생활은 정치와 무관하게 지속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골치 아픈 정치를 멀리하고 싶어한다.

 지난 온타리오주 총선에서 한인 2명이 당선된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노스욕에서 한인들의 투표율이 평균을 밑돈 것은 아쉽다.

 정치에 관심을 끊는 것은 각자의 자유다. 투표는 권리일 뿐 의무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러나 기권한 유권자들의 삶에도 여전히 정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엉터리 정치인들의 정책적 결정도 고스란히 주민들의 삶으로 파고든다. 정치는 ‘개무시’ 당하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 유권자의 삶에 간섭한다. 그것이 정치의 역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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