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미합중국 대통령-제임스 뷰캐넌(3)

 

 

라저 브룩 태니의 흉상 철거(2022)

미 헌정상 최악의 판결을 낸지 165년이 지난 2022년 12월 15일 미 의회는 1857년 드레드 스캇 판결(지난주 칼럼 참조)의 주인공 라저 브룩 태니 전 대법원장의 흉상을 의사당 전시실에서 45일 내에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태니의 흉상자리에는 1967년부터 1991년까지 최초로 흑인 미연방 대법관을 지낸 써굿 마샬(1908-1993)의 흉상을 2년 안에 세우기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2020년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관들이 흑인 조오지 플로이드를 무릎으로 숨막혀 죽게 한 끔찍한 사건 이후 흑인들의 항의(Black Lives Matter)로 여론을 받은 미국 각처에서는 노예제도를 고수하고 미 남북전쟁을 일으킨 남부연합의 인종차별 주의자 100여명의 동상이나 기념비를 철거했다.

아직까지 인종차별 대통령들은 철거대상에서 제외되었지만 트럼프가 그의 범죄로 형사판결을 받게 된다면 미래에 거의 신성시되다시피 하는 전직 대통령 대우가 바뀔 수도 있다고 본다.

 

1858년 중간선거(1858)

뷰캐넌은 캔서스 지역을 노예허가 지역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여러가지 편법을 썼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또한 캔서스 지역의 노예제도를 주민들의 결정에 맡기자는 스티븐 더글라스 상원의 북부 민주당파와 의회의 승인을 받고 노예주로 승격시키자는 뷰캐넌의 남부민주당 파로 민주당이 분열되었다

이 분열로 득을 본 공화당은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하게 되어 뷰캐넌의 법안 청원을 계속 기각시킬 수 있었고, 1860년 대선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16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국제정책(1857-1860)

뷰캐넌은 취임 후 멕시코와 쿠바를 영입하려 했으나 미 하원에 의해 저지당하였다. 그는 알라스카 지역을 구입하여 몰몬교단을 이주시키려 했으나 가격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뷰캐넌은 1850년에 영국과 서명한 클레턴-불워 조약을 1859년부터 1860년까지 수정하여 영국이 혼듀라스와 니카라구아를 미국의 보호지역으로 넘기게 하고 미국의 동의 없이 영국이 중남미 지역을 통제하거나 간섭을 못하게 했다. 뷰캐넌은 대서양 연안을 통제하는 막강한 미 해군력의 과시로 영국의 동의를 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연방탈퇴(1860-1861)

1860년 11월 6일 링컨이 미합중국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남부 노예주들은 연방탈퇴 준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에 압력을 받은 뷰캐넌은 12월 10일 의회에서 연방정부는 남부주들의 연방탈퇴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연설을 하며 북부가 남부의 노예제도를 간섭하기 때문에 연방탈퇴를 야기한다고 북을 비난하여 남과 북의 양쪽 모두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연방탈퇴보다 노예주와 반노예주가 평화적인 협상타협으로 도망자 노예법을 강화해야 된다고 비현실적인 연설을 하여 12월 20일 사우스 캐럴리나주가 연방탈퇴를 감행했다.

뷰캐넌은 제퍼슨 데이비스와 사우스 캐럴리나 대표들을 만나고 도망자 노예법을 강화하는 헌법수정을 상정하겠다고 연방탈퇴 방지에 노력을 가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1861년 1월 초에 6개의 노예제도주가 연방탈퇴에 가담했다.

당황한 뷰캐넌은 사우스 캐럴리나주 섬터 연방요새에 250명의 연방보급군을 보냈으나 연방 해군의 지원사격을 보내지 않아 연방보급군은 사우스 캐럴리나주 의용군의 공격을 받고 후퇴하였다.

3월 3일 뷰캐넌은 섬터 요새를 수비하는 앤더슨으로부터 보급이 떨어졌다는 전보를 받고 3월 4일 링컨 신임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후 대통령직을 마감했다.

 

은퇴생활(1861-1867)

1861년 4월 12일 남북전쟁이 유발하자 뷰캐넌은 링컨의 연방정책을 지원했고 전쟁을 도발한 남부연합을 처벌해야 된다고 정치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펜실바니아 주민들에게 의용군에 가입하여 연방정부를 위해 참전하라고 동기를 부여했다.

그는 남북양쪽의 신랄한 공격대상이 되어 생명위협도 받고 이로 인한 우울증으로 괴로운 독신 은퇴생활을 영위했다.

 

사망(1868)

1866년에 뷰캐넌은 자서전을 출판하고 끊임없는 정치적 변명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다가 1868년 5월 감기에 걸려 고생했고 1868년 6월 1일 기관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77세의 나이로 사망한 뷰캐넌은 랭카스터 우드워드 힐 묘지에 안장되었다.

 

Doughface

역사학자들은 뷰캐넌과 피어스를 미 남북전쟁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들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들은 북부 민주당에 본적을 두고 남부 노예주에 굽실거리는 정책으로 남부가 연방 탈퇴할 시간과 힘을 키워주었다. 역사학자들은 그들이 카리스마 부족으로 줏대가 없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및 결정을 못하고 비겁한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여 밀가루 반죽 같은 얼굴을 가졌다고 비유한다.

They have doughfaces. 뷰캐넌은 연방의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고도 가난하고 군사력이 거의 없는 남부의 반란을 무력으로 제압하지 못했다. 그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주어야만 연방탈퇴를 방지할 수 있고 평화적인 통합으로 연방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로 인해 약 120만명의 희생자를 낸 미 남북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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