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해군에 있을 때 <추자도 레이다 사이트>에서 복무했었다. 추자도는 진도와 제주도 사이에 있는 섬이다. 섬은 고립의 이미지가 있어 예로부터 유배나 귀양 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추자도는 그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한 오지였다. 육지에서 제주도를 건너가기 위해서는 그곳을 들려야 했다.

고려 공민왕 때, 제주 목사가 살해를 당하는 등 반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최영 장군을 보내는데 제주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추자도에 대피했다.

그때 어민들에게 그물 짜는 법과 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어 섬주민들의 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최영의 고마운 마음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최영 장군 사당>은 추자도 관광 코스의 하나이다. 나도 섬에 가자마자 사당을 보러 간 적이 있었지만, 막상 가보면 육지의 작은 절보다도 그 규모나 경관이 한참 못 미쳐 실망하게 된다. 그나마도 1970년대 초에 두 번에 걸쳐 나라에서 지원하여 사당을 보수하고 정비한 것이다.

당시 사당에서 만난 안내인은 “건물이야 나라에서 보수해 주었지만, 주위를 가꾸고 관리하는 일은 섬사람들 몫이었지요. 당시만 해도 섬에 조경을 할 만한 잔디나 나무, 꽃들조차 없었기 때문에 궁리하다가, 산에 있는 떼를 가져와 깔고, 해변에 있는 해당화를 뽑아다가 사당 올라가는 길에 심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 계단 옆에 해당화는 내가 심은 거다”라며 우쭐해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해당화(海棠花)는 이름에서 풍기듯이 바닷가 모래땅에서 꽃 피운다. 영어로는 Rosa rugosa가 본명이지만, 해변 장미(beach rose)라고도 한다. 1~1.5m 높이로 자라며 습기와 소금기에 강해 바닷가나 산기슭에 군락을 형성한다. 꽃은 홍자색으로 5~7월에 피고, 7~9장의 깃털 같은 잔 잎이 어긋나 있다. 향기가 강하고 꽃자루에는 자모가 있고 줄기에는 가시가 많다.

또 다른 기억이다. 1988년, 독일에 연수 갔을 때, 아우토반이라는 고속도로에서 관광가이드가 “이 도로를 <자유의 공간>이라고 합니다. 130km라는 권장 속도가 있지만, 법적으로 어떤 구속력도 가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속도가 무제한이라고 대부분의 운전자는 110km 이상을 달리지 않고 2차선 만을 이용합니다. 추월할 때만 1차선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고가 거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이 아우토반의 다른 자랑은 도로 중앙 분리대와 양 옆에 심어져 있는 아름다운 해당화입니다. 겨울이 되면 고속도로에 엄청난 양의 소금을 뿌리기 때문에 나무들이 오래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 바닷가에서도 많이 자생하는 소금기에 잘 견디는 해당화를 한번 심어 보자고 했는데 임상에 성공했어요. 그 후, 아우토반뿐만 아니라, 옆 나라인 덴마크에서도 해당화를 심죠”라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겨울에 염화칼슘을 많이 뿌리는 이곳 토론토에도 대형 쇼핑몰이나 도로, 주차장 등에서 해당화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한국 불후의 자장가, 동요 ‘섬집 아기’다. 다시 들어봐도 어떻게 이런 노래가 만들어졌을까 싶을 정도로 잠이 스르르 오는 듯한 명곡이다. 이흥렬이 곡을 붙이고 한인현이 노랫말을 썼다. ‘섬집 아기’의 무대는 함경남도 원산 명사십리 백사장이다.

한인현은 마식령산맥의 끝자락 갈마반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여름만 되면 해당화가 만발한 명사십리 해변에서 뛰어 놀았다. 함흥 사범을 졸업한 그는 6.25 전쟁을 맞아 부산으로 피난 오게 된다. 당시 그는 고향인 명사십리와 비슷한 송정 바닷가를 즐겨 찾았고 고향을 떠올리며 노랫말을 쓰게 된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서러워 마라/ 명년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련마는/ 한번 간 우리 인생 낙엽처럼 가이없네/ 어~허아 어허야 어~허아 어허야 아”

 

장사익이 부른 <하늘 가는 길>의 가사다. 이 노래는 장사익의 고향인 광천 지역 상여소리를 엮어 만든 것이다. 죽은 사람을 상여에 메고 나가며 ‘너는 봄에 다시 피잖아’하며 길가에 핀 해당화를 부러워한다.

해당화는 우리 민요와 글에 자주 등장한다. <정선 아리랑>에도 등장하고, <춘향전>에는 “십리명사 아니어든 해당화 있기 만무하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리고 고전소설 <장끼전>에도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한탄 마라. 너야 내년 봄이면 다시 피려니와 우리 님 이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라는 내용이 있다. 또한 “이별한 지 몇 해냐 두고 온 원산만아/ 해당화 곱게 피는 내 고향은 명사십리”라는 백설화의 노래 <명사십리>에도 해당화는 그리움의 꽃이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뭐니뭐니 해도 ‘해당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이미자가 부른 ‘섬마을 선생님’이다. 이 노래의 가사를 쓴 이경재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후, 1954년에 방송 작가로 데뷔한다. 기독교방송국과 KBS에서 프리랜스 라이터로 작품 활동을 했다.

1960년대 초에 KBS의 김재형 드라마 피디와 함께 대부도에 놀러 갔다가, 어떤 총각 선생의 사연을 듣고 ‘섬마을 선생님’이라는 노래를 만든다. 그리고 같은 제목의 라디오 드라마도 둘이서 함께 제작한다.

노래의 배경이 된, 대난초등학교 주변 바닷가 모래 언덕에는 해당화 군락이 있었고, 철새들이 많았다. 연락선조차 없었던 섬에 외지인이라고는 초등학교 선생뿐이었다. 섬 아가씨들에게 총각 선생님은 당연히 인기가 좋고 흠모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1941년생인 이미자는 문성여상 3학년 때, KBS <노래의 꽃다발>에 출연해 1등을 한 뒤 19세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다. ‘동백아가씨’에 이어 ‘기러기 아빠’를 히트시킨다. 감칠맛 넘치는 꺾기와 애간장 녹이는 가락으로 부른 ‘섬마을 선생님‘은 1965년에 첫 돌이 지난 딸을 안고 다니며 노래를 불러 이미자가 유난히 애착을 가지는 곡이라고 한다.

 슬픈 이미지를 지닌 해당화는 어떤 이는 장미라 하고 혹은 찔레라 한다. 꽃 이름에 익숙지 못한 것은 흠이 아니지만, 같고 다름을 구별 못하면서 꽃 이름을 우기는 것은 비단 해당화뿐 아니다. 참과 거짓이 서로 뒤섞여 ‘해당’과 ‘찔레’를 구분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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