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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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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아름다운 콘스탄티노폴, 이스탄불의 소피아성당

 

 

터키의 옛 수도인 이곳을 이스탄불이라 부르기보다는 콘스탄티노폴이라 부르는 것이 더 마음에 든다. 초기 기독교의 박해를 마감하고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그리고 기독교의 자유를 세계에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313년)을 선포한 위대한 콘스탄티누스의 이름을 따서 지은 콘스탄티노폴이 오스만 터키제국의 수도가 되어 이스탄불이라 부르게 된 이름보다 더 아름답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갑바도기아에서 10시간 이상 버스로 달려온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은 옛날엔 하기야 소피아, 현대엔 아야 소피아라 부른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이 정교회 성당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전까지 가장 큰 성당이었고, 지금도 비잔틴 건축의 최고봉으로 여긴다.

 

 

그러나 325년에 콘스탄티누스 2세가 건립한 후에 두 번의 화재로 소실되자,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명에 따라 532~537년 다시 크게 개축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메나스 총대주교가 헌당식을 올렸다. 이때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솔로몬왕의 신전을 능가하는 큰 교회를 세웠다고 감격하면서 외쳤다고 한다.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에게 승리했도다!”

이 도시는 보스포루스(Bosphrus) 해협의 동쪽에 있는 아시아와 서쪽의 유럽 대륙이 맞붙어 있는 지형인데 1km 길이의 보스포러스 대교가 1973년부터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고 있다. 이 고대도시의 큰 광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교회 건축의 예술품이 바로 성 소피아 성당이다. 하늘을 상징하는 큰 둥근 원형 돔을 이고 말마라 바다 끝에 앉아있는 이 성당은 지금도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에의 봉헌과 예술성을 드러내주는 듯 했다.

소피아 성당은 구조부터 특이하다. 사방으로 난 통로 어디서나 들어서면 성당의 중앙 제단에 이르게 된다. 중앙 제단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높이 50m 위로 천체가 보일 듯이 높은데, 그 돔 둘레의 80개의 작은 창문에서 은총의 햇볕이 평화의 빛처럼 쏟아져 내린다.

성당 내부는 천장까지 벽면이 온통 성화로 메운 듯하다.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 2세가 성화마저 파괴하진 않았으나 모자이크로 조각한 그림들을 회칠로 덮어버렸다. 지금도 관광객들은 보수반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게 사다리 사이를 이리저리 돌며 성화를 구경해야 한다.

나도 보수반과 관광 인파 사이를 헤엄치다가 그 원형의 천장을 향해 사다리를 올랐다. 그때 길목에서 누군가 내게 잠깐 서보라고 한 듯 우뚝 서버렸다.

뭔가 소근거리는 듯 오른쪽 두 손가락을 펴서 가슴에 대고 있는 예수님의 특이한 자세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어머니 마리아와 세례요한이 예수님 양편에서 황금빛 후광을 입은 예수님을 향해 무언가 기원하는 모자이크 그림 앞이었다. 예수님의 어깨 너머와 상반신 아래 부분은 아직도 모자이크를 덮었던 회칠이 남아있는데 마치 회색 구름 위에 세 분이 서 있는 듯 신비스러웠다.

 

 

이 모자이크 벽화는 최후의 심판에 관한 내용으로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서서 인간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고 있고, 이에 용서와 축복을 기원하는 예수님의 모습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도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회칠한 천장에 구름 위에 앉아 우리를 축복해주시는 듯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자이크를 내 사진기에 모셔왔다. 그리고, 감사와 축복의 엽서로 만들어 쓰고 있다.

 

 

1453년 5월29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가 이 성당을 모스크로 사용할 것을 선언하며 돔 위의 십자가를 떼어 내리고, 메카의 방향을 가리키는 네 개의 미나렛 첨탑을 올린다. 그러나 이 장엄미가 흐르는 대성당을 차마 모두 헐어버리진 못하고, 신비스런 비잔틴 모자이크 성화들을 석회칠로 덮어버린 것이다.

1923년 오스만제국이 무너지고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터키 정부는 소피아 성당을 모든 인류의 공동유산인 박물관으로 지정하고 재건축하면서 회칠한 성화들을 벗겨내는 작업을 하여 비잔틴 예술의 빛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

지금은 아야 소피아 박물관이 된 성 소피아 성당의 정문 양쪽 길에 피니키아산 분홍장미와 종려수들이 여리고의 장미처럼 눈부시게 빛나며 서있다. 그리스도에게 봉헌했던 교회답게 이스라엘 성지에서 축복받은 식물로 알려진 종려수,올리브나무, 편백,전나무 등이 마치 우리도 예배에 참여하겠다는 듯 성당을 에워싸고 있다.

종려수는 성지 이스라엘처럼 이곳에도 흔한데, 큰 길가에서도 잘 자라는 이 나무를 보면 구약시대부터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일곱 가지 나무 중의 하나였음을 알게 한다. 이 나무는 풍요롭고 강인하며 실용적인 가치를 지닌 성서식물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보우트같이 벌어진 그 열매에서 나는 종려나무 꿀은 고가의 상품이며, 그 열매는 강장제나 음료수로도 활용한다. 목재와 줄기는 바구니로부터 뗏목까지 만들 만큼 강인한 성지의 산물이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다음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터키 성지를 함께 순례한 아현감리교회 일행은 먼저 떠나고, 나는 이스라엘 성지로 가기 위해 이곳에서 하루를 더 기다렸다. 혼자서 비를 흠뻑 맞으며 성 소피아 성당이 마주 보이는 카페에 앉아 터키산 커피를 양껏 마셨다. 오후에는 고대 이스탄불과 근대 이스탄불 사이에 뿔처럼 좁고 길게 펼쳐진 아름다운 항구 골든혼을 찾아가 다리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도 구경하고, 옛날 로마 성채 옆에 바짝 붙어서 키를 늘리는 돌소나무들도 바라보았다. 해질 무렵이면 수면이 마치 황금빛으로 변한다고 Golden Horn(황금빛 뿔)이라고 부른다.

아야 소피아의 우아한 모습에 반한 내가 소피아의 야경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멋진 식당도 찾아냈다. 아야 소피아 박물관에서 아주 가까운 고전적인 터키풍 식당이었다. 문 앞에 두 명의 소녀가 앉아 손님들을 위해 피리와 만돌린을 연주하고 있다. 그 멜로디는 뜻밖에도 한국전쟁 후 50년대에 터키 유엔군사들이 불러 유행하던 곡이었다. “위스크다르 갈 때마다 비가 내렸네/ 내 님의 외투 자락이 땅에 끌리네/ 둥~둥 두두둥~둥 캬팁 내 사랑…”

 

 

 

이스탄불 건너편 아시아의 끝에 위치한 민요의 마을, 위스크다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에 반사되는 햇빛이 도시를 황금으로 물들이는 ‘황금의 도시’라고도 한다. 그 옛날 위스크다르의 처녀가 해협 건너 이스탄불을 바라보면서 캬팁(관리)를 사모하는 노래를 불렀나 보다.

그 노래를 따라 허밍하면서 터키 케밥을 와인과 함께 맛있게 들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식당 지배인에게 양해를 얻어 옥상에 올라갔다. 밤의 소피아 성당은 모든 잡념을 접어두고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신실함만을 보여주는 지혜로운 성녀, 하기야 소피아 같이 사랑과 평화와 거룩한 힘을 주시는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진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좀 더 잘 찍기 위해 나는 발코니의 제일 높은 창가로 기어 올라가 창문을 열고 밤 풍경을 맘껏 찍었다. 이스라엘에 들어가는 비행기 편이 하루 늦어져 울적해진 내 마음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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