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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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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사랑은 결심이다

 

우리 외할머님은 서울에서 강원도 두메산골로 시집을 가셨다. 집은 넓어서 하루 종일 종종걸음 해야하고, 대문 밖엔 비원의 춘당지 같은 큰 연못가에 지은 활래정이 돌아갈 줄 모르는 손님인양 차지하고 앉아있다. 여름이면 아기우산 같이 넓은 녹색 이파리 사이로 얼굴을 내민 진분홍 연꽃들이 황혼녘에 불타는듯 하다. 그런데 그 멋진 정자엔 여름내내 외할아버님의 손님으로 들끓는다.

할머니는 찌는듯한 복날에도 화롯불을 끼고 손님 대접할 음식을 지지고 볶으며 땀을 흘리신다. ‘아이구 이 웬수야!’를 연발하시면서.

‘할머니, 웬수가 누구에요?’

‘너희 할아버지 말고 누가있냐?’

‘그 웬수를 위해 이 복날 두텁떡까지 만드셔요?’

‘아이고 이 웬수.’

‘속으론 아이구 내 사랑! 하시면서…’

얼마 전까지도 나는 사랑은 운명이라 생각했다. 우연한 만남이 있기에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결혼하는 이 과정에서 그 만남은 운명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운명이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십 여년 봉사하던 샬롬노인문화원이 세계부부일치운동 프로그램(World Wide Marriage Encounter)을 계획하고 있을 때였다. 이 운동을 옆에서 도와주신 서강대학교의 신성룡 신부님이 졸업반 학생들을 위한 <결혼준비교육> 특강에 우리 부부를 경험부부 강사로 실습하게 해주셨다.

 3 커플이 1주일에 22시간, 한 학기에 300시간을 준비해서 3학점 짜리 수업을 공동 강의하는 힘든 수업을 아주 진지하게 그리고 참여한 강사들이 더 열기에 휩싸여 인생의 신비를 새삼 체험했다.

 우리가 맡은 14개의 주제 가운데 가장 마음을 찌른 주제는 “사랑은 결심이다”였다. 사랑은 우연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만들어 내고 다양한 과정을 통해 완성하는 필연의 결과란 것. 진정한 사랑은 내 배우자에게 모든 것을 주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임을 늦게나마 깨닫게 했다.

 나의 배우자를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실천할 일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 한 번만 ‘당신이 좋아, 당신을 사랑해.’란 말을 하게 되면 그 수업은 우등급이다. 부부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을수록 사랑이 깊어짐을 알게 된다. 우리도 새롭게 나눈 대화로 34년 동안 앙심을 품어 온 오해가 풀렸으므로.

부부대화 실천의 지름길로 우리는 아침마다 성경읽기를 시작했다. 한 사람이 기쁘게 읽는 동안 한 사람은 깊이 묵상하며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그리스도의 역사에 동참하는 감동마저 맛보게 되었다.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마음이 피곤하고 어지럽던 어느 날 아침에 전도서 3장을 읽었다.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참으로 하느님은 모든 일이 제 때에 알맞게 일어남을 보여주신다.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과 함께.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내가 하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께 맡겨야 함을 새삼 느끼면서 울적한 마음이 사라지자, 그 일은 자연스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이번 주 나의 사랑의 실천계획은, 남편이 출근 할 때 한 번만 해주던 키스를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도 비록 먼지 묻은 얼굴이지만 반가운 입맞춤을 한번 더 해주기이다.

이렇게 배우자 사랑을 결심하며 사는 것은, 예수님이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첫번째 원수는 먼데 사는 이웃이 아니라, 옆에 붙어 사는 내 배우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외할머니의 웬수가 사랑하는 외할아버지였듯이. 우리처럼 서로 ‘사랑해’란 말을 할 줄만 아셨어도 그 웬수와 앙앙불락으로 일생을 보내진 않으셨을텐데,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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