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수기-뿌리 뽑힌 나무(46)

 

(지난 호에 이어)

훗날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도 새 이빨이 나오지 않아 겁이 나서 병원까지 찾았다. 또래 애들은 다 새 이빨이 나왔는데 우리 애는 아직도 앞니가 하나도 없으니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넘어지면서 충격을 받은 잇몸 때문에 영향을 받아 이빨이 늦게 날 거라고 했다. 그는 같은 또래 애들보다 거의 2년 늦게 앞니들이 나왔다.

그렇다고 집에서 아이만 키우고 살아갈 형편이 안 되는 건 뻔한 현실이다. 어린 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넘어지고 여기저기 부딪쳐서 멍이 들고 상처 나고 피가 흐르고 해도 다음날엔 밭에 나가야 했고 가끔은 밭에까지 데리고 가야 했다.

고구마 수확하는 가을에는 마을은 비상상태에 돌입한다. 모든 식구들은 아침, 점심 도시락을 싸고 밭에서 거의 14시간 정도 고구마나 땅콩을 캐야 한다. 한 포기 한 포기 손으로 캐는데 보름 정도면 끝난다. 보온병과 먹을 것, 심지어 나는 아이 잠자는 이불까지 챙겨가면서 밭에서 먹고 재우고 날이 어두울 때까지 고구마 수확을 해야 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고구마가 금방 썩거나 얼어버린다. 지금도 고구마와 땅콩만 보면 어김없이 한 포기씩 심고, 김매주고, 수확하던 모습들이 눈앞을 스쳐가고 힘들게 농사를 짓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화창한 가을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처럼 아침에 아이를 맡기러 시부모 집에 들어갔는데 집 안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시아버지 얼굴이 시퍼렇게 화가 나 있었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평소에도 자주 화난 표정을 하고 다니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그가 나를 향해 아주 무섭게 소리를 질렀다.

“돈이 필요하면 달라고 하지 왜 훔쳐가느냐? 그렇다고 내가 모를 줄 알아?”

나는 내가 말을 잘못 알아들었나 싶어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뭐…뭐 라고요? 돈? 무슨 돈? 언제 어디에 두었는데 돈을 내가 훔치다니요?”

나는 말문이 막혀 몹시 더듬거렸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너무 떨려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또 웬 아닌 밤중에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그는 나한테 돈을 넣었던 비닐 봉투를 홱 던져주며 여기에 250위안을 넣었는데 오늘 아침에 장보러 가려고 열어보니 돈이 없어졌다고 한다.

당시 돼지 한 마리 1년 키워서 팔면 800위안을 받는데 250위안은 정말 큰 돈이었다. 아니, 새끼돼지도 한 마리가 200위안이다. 그런데 그동안 찾아온 사람은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정말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돈을 구들장 밑에 숨기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는데 정말 나 말고 그동안 찾아온 사람이 없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훔쳤다고 하는 시아버지와 아니라고 항변하는 나와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싸움으로 번졌다. 유창하지 못한 중국어지만 나는 내가 훔친 것 아니라고 거세게 반항했다. 시아버지는 내가 훔친 것 아니면 누가 훔친 거냐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지 말고 어서 훔쳐간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알지도 못하는 돈을 내가 훔쳤고 그 돈을 내놓으라니?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가 커지자 이웃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앞뒤 전말을 다 듣고 나서 시아버지에게 재차 확인했다.

“분명 250위안을 여기에 넣어둔 것 맞아요?”

“당연하지. 내가 어제도 확인했는데 250위안이 봉투 안에 있었다고!”

확고한 그의 대답에 나는 정말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이었다. 이젠 끝장이다. 어떻게 나의 무고함을 증명하겠는가?

“그럼 마지막으로 돈 봉투를 넣어둔 곳이 어디요?”

“난 돈을 오른쪽 구들장 밑에 항상 보관한다고! 이것 봐. 바로 그 자리에 빈 봉투만 있잖아! 누가 훔쳐간 거라니까”

“그럼 왼쪽과 위 창문 쪽에도 다 뒤져봤어요?”

“왼쪽과 창문 쪽을 왜 뒤져봐? 난 항상 아래쪽 바로 여기에 돈 봉투를 둔다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웃집 아줌마들은 구들장 전체를 다 뒤졌다. 아니나 다를까 창문 쪽 구들장 밑에 새 봉투가 나타났다.

“이건 뭐요? 이게 바로 그 돈봉투 아닌가요?”

기세 등등하던 시아버지는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얼굴이 굳어졌다. 새 봉투 안에는 정말 250위안이 들어 있었다.

“여기 있네요. 정말 250위안이 있구먼. 왜 엄한 사람 누명을 씌우기는?”

“으흠! 흠…! 250위안이 아니라 300위안이 있었네. 50위안이 없어졌구먼. 며느리가 50위안을 훔쳤어!”

“참 내~ 쯧쯧. 노망이 나도 단단히 났구먼. 돈 찾았으니 됐네요. 돈 1전도 잃은 게 없으니 이젠 미안하다고 며느리한테 사과하세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 사건의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아래쪽 구들장 밑에 돈을 보관하던 봉투는 하도 오래 사용해서 거의 너덜너덜해졌고(우유 봉투) 시아버지는 똑같은 새 봉투에 돈을 옮겨 놓고 창문 쪽 구들장 밑에 넣었다. 그리고 낡은 봉투는 버리는 걸 깜박하고 평소 습관대로 아래쪽 구들장 밑에 다시 넣어 두었다.

다음날 아침에 습관처럼 항상 있던 그 자리에서 낡은 봉투를 열어보니 돈이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전날에 새 봉투에 돈을 옮겼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돈을 누가 훔쳐간 거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날 다녀간 사람은 나, 그리고 남편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훔쳤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우리 집은 동네방네 사람들이 좋은 구경거리를 만나 한 가득 모여들어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마침 새벽 밭일을 마치고 아침 먹을 시간이라 대부분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자신의 커다란 실책을 깨달은 시아버지는 그때부터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함께 지켜보던 동네 아줌마들은 피식 웃으며 혀를 찼다.

“84세 노인이 기억을 못할 수도 있으니 너무 신경쓰지 마. 모든 게 밝혀졌으니까.”

나는 억울하게 당하기만 할 수가 없어 이때부터 반격을 시작했다. 아무리 84세 노인이고 뭐고 돈 없이 거지처럼 살아도 도적 누명을 함부로 쓰면서도 조용히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젠 대놓고 울분을 쏟아내며 반항했다.

“아무리 돈을 잃었다고 생각해도 어떻게 사람을 함부로 의심을 할 수가 있는가요? 내가 못사는 나라에서 도망쳐 왔다고 항상 무시하고, 난 돈도 없고 친정도 없고 도적으로 몰아도 아무도 내편 들어줄 사람도 없고 날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더니 이젠 도적으로 몰다니요? 난 이젠 여길 떠날 것이니 당신 그 빚만 가득한 빈털터리 아들과 손자를 알아서 키우세요.”

나는 대문 열쇠를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나는 옆에서 무서워서 울고 있는 아들을 매정하게 떼어놓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단호하게 옮겼다. 가슴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억울함과 분노를 안고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저기서 시아버지를 비난하는 목소리와 가지 말고 참으라는 목소리들이 들려오는데 나는 못 떠나게 잡으려는 사람들을 뿌리치며 길이 없는 밭을 가로질러 무작정 걸었다.

마을을 거의 벗어날 무렵에 뒤에서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선봉언니가 크게 외쳤다.

“아이는 내가 봐 줄게, 걱정하지 마.”

그 언니 때문에 아이 걱정은 덜 했지만 갈 곳도 없으면서 뛰쳐나오기는 했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나도 모르게 내 발길은 시이모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 말고 내가 갈 곳이 없었고 나이가 젊은 시이모님은 고리타분한 시부모님들보다는 나와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었다.

 15km 정도 떨어진 이웃마을에 살고 있는 시이모 집에 뜬금없이 도착한 나는 깜짝 놀래는 그들에게 사연을 설명했다.

막 아침을 먹을 시간이 되어 아침 준비를 하던 그들은 일단 나에게 아침을 챙겨주었다. 시이모 부부는 평소 나의 시아버지의 불 같은 성격을 잘 아는 터라 대수롭지도 않게 말했다.

“아침 먹고 좀 쉬다가 내가 데려다 줄게. 너무 큰 상처를 받지 마. 그 영감은 평생 그런 성격이라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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