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타운의 천사

 

몇 해 전 아들의 병역관계 일을 보기 위해 St. Clair and Avenue Rd.에 있는 토론토총영사관을 찾게 되었다. 영사관 가까이 이르러 시간을 확인하니 퇴근시간이 임박한 듯하여 늦지 않으려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도착하여 보니 거의 마감시간이 다되어가는 시각이었다. 행여 멀리 달려온 길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혹 시간이 늦었다고 다시 오라 하면 어쩔까? 조금은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담당창구 근무자에게 용건을 이야기하고 일 처리를 부탁하였다.

유리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있는 담당자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여성이었다. 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 고국에선 가끔 동사무소나 관공서 등에서 일을 볼 때엔 대체로 딱딱하게 굳어있거나 아니면 지극히 사무적으로, 또한 약간의 위압적인 모습으로 비쳐지던 담당자들의 표정에 적잖이 당황하였던 기억과, 그럴 땐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들어 그들의 눈치를 살피던 이전의 씁쓸했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순간의 상념 끝에 마주 대한 그녀의 밝은 표정에 일단은 안도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 다음 바로 나의 용건을 설명하니 그녀는 상냥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아들과 나의 여권을 제시할 것과 신청서류(아들의 병역에 관한)를 작성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준비해온 ID들을 찾아보았으나 아들 것만 발견될 뿐 나의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아들과 관계된 일을 보기에 나의 여권은 없어도 되는 줄 알고 그냥 온 것 같았다.

아~이걸 어찌해야 하나! 신청자의 여권도 같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주도면밀 하지 못했던 실수를 후회하며 갑자기 맥이 풀리고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듯 허탈감에 잠겨 들어야만 했었다.

집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상당하기에 다시 올 생각을 하니 괜히 억울하기도

할 것 같고 끔찍하게 여겨지기도 하였으며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전적인 나의 실책이었기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안될 때 안되더라도 한번 사정을 해보고 어떻게 다른 방법은 없는지 조심스럽고 정중한 자세로 부탁해 보기로 하였다.

그러자 나에게 집이 어디냐고 묻기에 Aurora에서 왔다고 답하니 좀 안쓰러웠는지 동정하는 듯 그녀의 안색도 살짝 바뀌는 듯 느껴졌다. 잠시 후 그녀는 예의 그 공손함과 환한 미소로 한가지 나를 도울 수 있는 방도를 제안 하였다. 혹 집에 Fax가 있으면 나의 여권을 Copy 해서 Fax로 보내줄 수 있느냐고?

본래는 신청서류에 신청자의 여권 copy가 첨부 되어야만 결재가 되는 것이지만 오늘 저녁이라도 fax해 주시면 잘 처리해 주겠다는 실로 고맙고 반갑기 그지없는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기쁜 마음에 조금 전까지 가졌던 실망감과 피로, 아쉬움과 후회 등

온갖 어두운 걱정이 순식간 다 사라져버리고 이내 속이 후련해지며 갑자기 기운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며 미비 된 나의 여권을 제외한 모든 준비서류를 제출하고 서류에 빠진 나의 여권 copy를 fax 하기로 약속을 하고 그분께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표한 채 발걸음도 사뿐하게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뿌듯한 감격 속에 집을 향해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 중에서 나는 좀 전의 그 흐뭇했던 정경들을 다시 떠올리며 잠시 철렁 내려앉았던 놀란가슴에 새롭게 치밀어 오르는 진한감동과 뜨겁게 데워진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행복을 찬찬히 음미하며 방금 전의 그 장면을 몇 번이고 replay 하고 있었다. 그 행복감은 한동안 고달팠던 이민생활에 지친 나의 심령을 마치 메마른 대지에 내리는 단비처럼 촉촉히 적셔주는 은혜의 이슬비와도 같았다.

대개의 경우라면 담당자가 시계를 보며 오늘은 마감시간이 다되었으니 내일

오라며 차갑게 서류정리를 하여도 할 수 없고, 준비물이 미비하여 절대 안 된다고 하여도 어찌할 수 없는 게 보통의 민원실 풍경이었으리라. 나 역시 그런 상황에 익히 길들여져 스스로도 그러한 일에 순순히 순종하던 터였다.

그간 내가 살아오며 체험했던 삶이 그러할진대 오늘 나의 민원을 처리해준 그분께서는 시종 온유하고 민원인을 편하게 하는 언행과 따스한 자세로 어려움에 처한 나에게 조금도 실망을 주지 않으려는 듯 여간 애쓰지 않는 모습이었으며 성실한 배려와 도움을 끝까지 베풀어 주었던 참으로 귀감이 될만한 아름다운 인격과 선행을 베푼 분이었다.

나는 생각해보길, 그분이 만일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녀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곱고 착한 행실에 감격하여 주님의 품으로 나왔을까? 상상도 해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녀처럼 자신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돕고 성실함으로 섬긴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 될까 유쾌한 생각을 펼쳐보기도 하였었다. 아울러 그분의 모습이 내 마음속 인생사진첩에 한 떨기 백합화처럼 순결하고 아름답게 고이 새겨지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주위를 봄날의 향기로운 꽃 내음처럼 상큼하고 은은한

향기로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부드럽고 섬세한 손길로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는 하늘의 사자, Downtown의 천사를 뛰어넘어 이 시대 우리의 천사로 우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소망을 하면서.

 

<P.S. 이 글은 2001년경에 있었던 일을 2005년에 기록한 것이며, 지금 다시 발표하는 것은 그때로부터 십 수년이 지난 시점에 그 천사 분을 다시 극적으로 상봉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 저의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저와 처를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장로님과 권사님 부부가 계시는데, 그 두 분께서 이 글의 주인공 천사의 시부모님이 되시기 때문이지요.

수년 전부터 두 분의 생신이 되면 자녀들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여 두 분의 생신을 부모님 교회 식구들과 함께 즐기시도록 연례행사처럼 하셨기에 그 자리에서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천사의 효심과 부덕(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훌륭하게 하며, 또한 부모님 섬김의 도를 다하는)은 누구나 칭송하는 참으로 이 시대의 가인(얼굴이 곱고 심성이 아름다우며 재기가 뛰어난 여성)이라 할 만큼 본이 되시는 분이랍니다.

지금은 캐나다 외교부에서 중책을 훌륭하게 감당하시며 그녀에 대한 미담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소리소문 없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2022년 9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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