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배경 영화(VI)-‘슬픔은 그대 가슴에’(Imitation of Life)(3)

 

(지난 호에 이어)

 로라가 유럽에서 돌아오자 애니는 더 이상 딸의 삶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하지만 어떻게든 버릇없는 딸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 회사 부사장이 된 스티브의 도움으로 끈질긴 추적 끝에 얼마 후 사라 제인이 가명을 쓰고 백인 행세를 하며 LA의 어느 나이트클럽에서 코러스 걸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애니는 자기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마지막으로 딸을 한 번 보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날아간다. 옛 유모가 찾아왔다고 속이고 만난 딸 사라는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래. 난 백인이야.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면 다시는 찾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며 "엄마 때문에 일자리마저 잃겠다."고 역정을 내며 짐을 싼다.

 

 그러나 애니는 사라에게 "언제든 힘들 땐 꼭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딸이 바라는 대로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기로 약속하고 떠난다. 그때 사라가 엄마를 부둥켜 안고 눈물의 작별을 나눈다. 하지만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이야….

 

 뉴욕으로 돌아오자마자 몸져 눕는 애니. 로라와 수지가 그녀를 정성스럽게 돌본다. 한편 엄마와 스티브가 결혼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모녀간에 삼각관계로 얽히는 실연을 겪는 수지. 이를 비관한 수지는 스티브를 잊기 위해 일부러 멀리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의 길을 택한다.

 

 이제 두 어머니만 집에 달랑 남게 된다. 수지가 떠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애니가 마님이자 오래된 친구인 로라에게 자기 장례식에 모든 친구들을 초대해 달라는 등 유언을 남기고, 백인을 '모방'하면서 그토록 발버둥치는 딸 앞에서 늘 거추장스런 짐만 되어온 애니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드디어 한많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애니가 생전에 계획했던 대로 큰 교회에서 엄숙한 장례식이 치러진다. 애니는 딸 사라에게 모든 유산을 남기고, 목사님 부인에게 스카프를, 옛 우유 배달부에게 50달러를 전해 달라는 부탁 등과 함께, 세상에 태어나 자기로선 죽는 날의 장례식이 가장 큰 행사라며 꽃으로 곱게 장식하고 네 마리의 백마가 끄는 운구차로 고적대와 함께 행진하되 슬프지 않은 음악을 연주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엄숙한 장례식 광경에 벌써 콧등이 시큰해지는데, 이어 '가스펠의 여왕'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 1911~1972)이 흑인영가 "험한 세상(Trouble of the World)"을 솔로로 부르는 장면에서 끝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 영화의 압권이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다. <Trouble of the World - Mahalia Jackson, www.youtube.com/watch?v=8eiI52WluF0>

 

 이윽고 장례 행렬이 시작될 무렵, 애도객 사이를 비집고 뒤늦게 나타난 사라 제인. 운구차에 매달려 꽃으로 수놓은 어머니의 관을 부여잡고 "저희 엄마예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내가 엄마를 죽였어요. 집에 오고 싶었어요."라고 소리치며 때늦은 후회와 용서를 빌며 오열한다.

 

 로라와 수지가 사라를 리무진에 태운 후, 사라가 엄마를 죽인 건 아니라고 확신시키며 세 여자가 위로와 사랑의 표시로 손을 꼬옥 붙잡는 장면을 스티브가 바라보는 동안 장례 행렬이 천천히 정든 거리를 떠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註: 2015년 4월에 1934년 판과 1959년 영화 두 편을 담은 블루레이 DVD가 출시되었다.]

 

 ‘한방울의 법칙’이 백인과 동양인, 또는 백인과 히스패닉과의 결합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한편, '사라져 주면 좋겠다' 싶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백인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원주민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적용했으니 제멋대로식 인종규칙의 아이러니다.

 

 2009년에 흑인대통령도 나오고 외관상 백인들의 차별적 태도는 많이 나아졌으나 아직도 흑인의 유전자를 더럽고 오염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공학적 인종차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혼혈인의 가슴에 맺힌 슬픔은 언제 사라질 것인지….

 

 사라 제인은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백인으로 행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외모 때문에 백인으로 살고 싶은 욕망과 흑인 엄마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방황 속에 살아간다.

 

 이 정체성에 대한 이중 의식은 사라 자신의 관점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마치 도깨비집의 요술 거울같은 당시의 인종차별이라는 문화에 비친, 희망도 없이 격리되어 조롱받는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라가 선택한 백인으로서의 삶 역시 그녀에게 행복을 안겨다 주지는 않는다.

 

 '삶의 모방'은 1950년대의 인종차별주의의 산물로 흑인 캐릭터가 겪는 정체성의 이중 의식과 그 내면에 담긴 아픔과 슬픔을 그린 멜로 드라마이지만, 원작과 1934년 영화와는 달리 더글라스 셔크 감독만의 색깔과 테마로 인간의 삶과 인종 차별 및 사회 계급 문제 등 정치·사회적 상황을 절묘하게 연계시킨 작품으로, "그의 왕관에 박힌 보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이 작품은 유니버설사에 전무후무한 노다지를 안겨주는 흥행기록을 세우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크 감독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고향인 독일로 돌아간 후 영화에서 손을 떼고 스위스의 루가노에서 30년 가까이 여생을 보내다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더글라스 셔크(Douglas Sirk, 1897~1987) 감독은 독일 함부르크 태생으로 1937년 나치 정권 때 정치적 성향이 다르고 두 번째 부인이 유대인이라 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름을 더글라스 셔크로 바꾼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에 유니버설 인터내셔널사에서 주옥같은 멜로드라마를 제작함으로써 당시 유행하던 가족 멜로드라마 제작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삶의 모방' 이전에 걸작으로 평가되는 그의 4편의 영화는 '위대한 망령(Magnificent Obsession·1954)', '천국이 허용한 모든 것(All That Heaven Allows·1955)', '바람에 쓴 편지(Written on the Wind·1956)', 그리고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1958)' 등이다. (다음 호에 계속)

 

▲ 19세가 된 사라(수전 코너·왼쪽)는 두 살 아래 수지(샌드라 디)에게 백인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다고 비밀스럽게 털어놓으며, 흑인으로 차별 대우 받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얘기한다.
 

▲ 백인 남자친구 프랭키(트로이 도나휴)는 애걸하는 사라를 개 패듯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리고 발길로 마구 짓밟고 유유히 떠나버린다.
 


▲ 수지(샌드라 디)가 쓴 엄마의 연인 스티브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읽자 호기심을 갖고 이를 조심스럽게 경청하는 애니 존슨(주아니타 무어).
 

▲ 애니가 나이트클럽으로 찾아가 딸을 찾으러 왔다고 얘기하자 사라(수전 코너)는 즉각 해고돼 버린다. 그리고 사라는 다시 어디론가 도망치듯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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