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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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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들의 생애(4)-소몰이 사사 삼갈과 여사사 드보라(4)

 

(지난 호에 이어)

 

야엘이 시스라를 살해한 것은 신뢰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그녀를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야빈 왕과 헤벨 집안의 우호관계를 믿고 찾아온 시스라에게 은신처를 마련해 주는 척 하면서 그를 죽인 것은 야비한 배반이며, 신뢰하는 사이에는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당시의 불문율을 어긴 행위라는 것이 그런 사람들의 생각인 것이다.

야엘이 시스라를 살해한 방법도 너무 잔인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녀를 믿고 곤히 잠든 시스라의 몸에 말뚝을 박은 것은 정숙한 여인이 해서는 안 될 끔찍하고 야만적인 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생 라합의 “기만작전”이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관문인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데 기여한 사실을 상기하면 야엘은 신의를 저버린 의리 없는 여인이라고 낙인찍을 수만은 없게 만든다.

야엘이 잔인한 성품의 여자였다는 비난도 “심는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대로 시스라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한 죄의 대가를 치렀다는 관점에서 보면 야엘은 시스라의 군대를 물리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야엘이 시스라를 죽일 때 그녀의 장막 안에는 말뚝과 망치 외에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없었다는 점도 그녀의 잔인성에 대한 변호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승전 후 드보라가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면서 야엘을 “복 받을 여인”(삿 5:24)이라 한 사실을 보아도 그녀는 잔인하거나 배은망덕한 것이 아니라 기지와 용기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방인을 처벌한 여인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가나안 군을 완파한 드보라는 바락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을 부른다. 드보라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를 받으며 신음하게 된 까닭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야빈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압제토록 한 것은 그를 떠나 범죄 하는 그의 백성들의 죄악을 응징하기 위한 것임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녀는 때가 이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실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일어나 다볼 산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바락과 함께 다볼 산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것은 쉬운 결단은 아니었다. 훈련도 안 되고 무장도 빈약한 만 명 군사로 열 배나 되는 가나안 군을 대결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보라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볼 산 위에 진영을 세웠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이 성취할 수 없는 일을 맡기지 않으시며, 인간의 힘으로 하기 힘든 일을 주실 때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방도를 알려주시는 분이심을 그녀는 믿고 있었던 것이다.

드보라는 명석한 두뇌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할 때까지 적진의 동태를 살피기만 했다. 그러다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하자 적군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삿 5:4). 이스라엘 군이 비바람을 등에 업고 적진으로 돌진할 수 있으며 기손 강이 넘쳐흘러 가나안 전차들이 수렁에 빠져 기동력을 발휘할 수 없는 때가 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삿 4:15)

그 어떤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도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서는 한 점 먼지만도 못한 것이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가나안과의 전쟁에 임했으며, 전능의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싸워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것이다.

전투가 끝난 후 그녀는 “드보라와 바락의 찬송”에서 다불 산의 승리는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한다. 다볼 산 전투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이 참여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군은 야빈에게 가장 많은 핍박을 당하는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지만(삿 5:18) 에브라임, 베냐민, 마길, 잇사갈 지파들도 참여하였다.(삿 5:14-15)

그러나 르우벤, 길르앗, 단, 아셀 지파는 방관자의 입장을 취했다(삿 5:15-16). 드보라는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민족을 위해 싸워야 할 때 주저하거나 물러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취할 자세가 아니라고 말한다.

달란트 비유에서(마 25:14-30)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범한 죄는 그 돈을 활용하여 두 배로 늘리지 않고 땅을 파고 묻어둔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눅 10:25-37) 등장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범한 죄도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하는 마땅한 일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 것이다.

마땅히 일어서야 할 때 주저앉거나 당연히 해야 할 일 앞에서 등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죄악이다. 고대 희랍시대 아테네의 지배자였던 페리클레스(Pericles)는 반란을 일으킨 자는 처형하고, 그것을 지압한 자에게 상을 줄 것이며, 반란이 일어났는데도 방관만 하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여 처단하라는 포고령을 내린 바 있다.

오늘 날에도 중립지대에 서서 안전을 꾀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비겁하고, 부끄러운 처신은 없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다볼 산 전투는 가나안 정복전쟁 이후 규모가 크고 중대한 싸움이었다. 이 전쟁에서 드보라는 하나님의 권능에 의지하여 막강한 가나안 군을 물리침으로 이스라엘을 구해낸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드보라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조용히 사사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 이스라엘의 구원자이며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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