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황로사 수필

Hwangrosa
6125A735-97C3-41C0-9993-0E5E4929923D
Y
메뉴 닫기
오늘 방문자 수: 9
,
전체: 6,952
문협회원
rosahwang61@gmail.com
  • 게시판
메뉴 열기
Hwangrosa
황로사
118307
18426
2024-08-28
야자수 뿌리처럼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야자수가 인상적이었다. LA에 여행을 갔을 때였다. 가느다란 나무의 몸통에 비해서 키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것이 위태로워 보였다. 강한 바람이 부는 날에 자칫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 사고가 날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을 여행 안내원이 눈치챘던 모양이다. 나무를 만져보면 이해할 거라고 했다. 로데오 거리에 다다라서 차에서 내리자 나무부터 만져보았다. 줄기가 쇳덩어리처럼 단단해서 어떤 경우에도 꺾어질 것 같지 않았다. 뿌리는 길기도 하지만, 일년에 오천 개나 되는 잔 뿌리를 옆으로 넓게 내린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LA에서 나무가 쓰러져서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줄기의 단단함보다도  뿌리가 지탱해주는 힘이 더 큰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땅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감행한 것이 캐나다 이민이었다. 아무 연고자도 없는 낯선 땅에 사는 것이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낭만적인 모험 정도로 생각하고 무모하게 도전했었다. 갈 도시를 정하지 못해 토론토냐, 벤쿠버냐를 놓고 두 다리를 뻗어 '어느 곳이 좋을까요' 하면서 점을 치기도 했다. 아무래도 사계절이 있는 곳이 나을 것 같아 토론토로 짐을 부쳤다. 태평양 한 가운데 화물선이 갔을 즈음 누군가 캘거리가 직업 얻기에 유리하다고 했다. 나의 팔랑귀는 해운회사에 전화를 하게 했고, 그 짐을 캘거리로 보내주면 안되겠냐고 부탁하게 했다. 그러나 배가 일단 떠나면 행선지를 변경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민들레 홀씨가 날아다니다가 어딘가에 내려 삶을 시작하듯이 운명처럼 접한 토론토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민을 떠나는 나에게 가까운 지인들이 들려준 조언은 '사람을 조심하라'는 거였다. 그 말은 꿈을 가지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는 사람에게 섬뜩한 느낌까지 주었다. 어딜 가든 한국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할 텐데 누구든 사리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처음 사귀게 된 부부에게 상처를 많이 받는 일이 생겼다. 믿고 마음을 다 주었는데 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인들이 들려준 충고가 그제서야 귀에 들어왔다. 인간 관계에 실망한 나는 캐나다에서는 사람을 사귀지 말고 자연을 친구 삼아 살자고 작정하기도 했었다. 

 

  저녁 어스름에 올려다 본 캐나다의 하늘은 환상적이었다. 엽서에서 보았던 이국의 하늘이 물감으로 칠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선명한 블루가 별들을 품고 눈 앞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한국에 살 때 볼 수 없었던 쪽빛하늘과 화려한 노을,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찾아갔던 Bluffer's Park 호수는 실망하고 방황하는 이민자를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자연과 궁합이 맞는다고 생각하며 꽃집에서 1년 동안 일을 했다. 꽃이 가득 담긴 통을 나르는 것은 막노동에 가까웠지만 꽃과 호흡하면서 일하는 시간이 즐거워서 피곤하지 않았다. 꽃 이름도 그때 많이 외워두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글 쓰는 것에 마음을 붙이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며든 쓴 물도 희석되어갔고 세상 밖으로 몸을 내밀게 되었다. 

 

  몇 년 전 얼음비가 토론토를 꽁꽁 얼려놓았을 때, 많은 나무의 가지와 줄기가 그 얼음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꺾여버렸다. 근처 학교 뒷마당의 큼지막한 나무도 꺾이는 바람에 학교측에서 밑동만 남기고 잘라냈다. 얼마 후 봄이 왔을 때 뿌리에서 물관을 통해 올라온 생명수가 원판모양의 잘린 부분에 흥건하게 고였다가 쭈루루 밑으로 흘렀다. 안타까웠다. 뿌리가 끌어올려 주어도 갈 곳 잃은 수액은 방황의 길목에서 흘리는 눈물 같아 보였다. 

 

  뿌리는 보이지 않아도 살아가게 하고 지탱하도록 하는 존재의 근원이다. 얼마 전에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드리고 돌아오면서 캐나다에 마음을 붙이고 살기로 결심했었다. 가끔씩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태평양은 나의 이정표였다. 어디에 사는 것이 좋을까. 그러나 부모님이 안 계신 고국은 이제 나를 고민하게 하지 않았다. 
  올해로 이민 온 지 이십 년이다. 이제서야 마음을 잡고 캐나다에 정착하는 느낌이 든다. 이민 일 세대는 뿌리다. 사막의 야자수가 물이 절실하므로 수많은 잔뿌리를 내리는 것이 그 모습과 닮았다. 살아내기 위해 절절했던 경험들이 이십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숙성되어 내 이민 역사의 뿌리에 들어있다. 이제는 생명수를 끌어올릴 시점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rosa
황로사
115952
18426
2024-07-03
멈춰진 시간

지금은 한국 시간 새벽 4시. 스마트폰에서 CCTV 앱을 찾아 누른다. 모래시계가 잠시 돌다가 흑백 화면이 떠오른다. 벽면에 붙어있는 꼬마전구가 어두운 방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고, 그 옆에서 어머니가 주무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침이 밝아오면 어머니는 네발 워커를 잡고 침대에서 힘들게 내려와 화장대 낮은 의자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얼마 남아있지 않은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길 것이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한다. 거울 속에서 어머니가 보는 얼굴은 어느 때의 모습일까.

 

한 걸음씩 내디디며 긴 세월을 살아오다가 치매라는 복병을 만나면, 시계의 방향은 뒤로 돌아선다. 손님을 태운 시간 열차는 출발하면서 가까운 기억부터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소복하게 쌓아온 기억의 눈길은 어디까지 지워져 있는 건가. 기차는 서서히 속도를 늦추며 40년 전, 어머니 50대 시절의 정거장에 서있는 모양이다. 거기엔 대학생 외동딸, 군대간 아들들, 출장간 남편이 있다.

육십이 넘은 시누이가 "엄마하고 부르면, 어머니는 '언니가 왜 자꾸 나한테 엄마라고 해요? 우리 딸이 얼마나 이쁜데. " 하신단다. 20대 여대생이어야 하는데, 60대 얼굴인 딸을 자신의 언니라고 여기고 있다. 25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이건만, "이 양반이 출장 가서 왜 이리 늦게 오냐?". "막내는 언제 휴가 나온대?". 그 때가 어머니에게 가장 행복한 때였을까. 작년 가을부터 기차는 그 시절에 멈춰있다.

 

나를 며느리로 들였던 때, 어머니는 지금의 내 나이였다. 일제 시대, 육이오를 겪는 험한 세대를 지냈어도,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 덕분인지 어머니는 항상 밝았다. 고국을 방문했던 몇 년 전, 가끔씩 찾아오는 건망증 외에 어머니에게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왠지 마지막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시댁에서 지내며 틈만 나면 카메라 속에 이 모습, 저 모습을 담았다. 어머니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캐나다로 돌아오던 날, 짐 가방을 굴리며 집을 나서다가 구부러진 복도 끝에서 뒤돌아보니, 열린 문고리를 잡고 서서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에 들려오는 것은 불길한 소식뿐이었다. 욕실에서 한번 넘어지고 나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을까. 뇌 손상이 따라 왔고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는 바람에 병과 사투를 벌이는 시간을 보냈다. 치매가 가장 두려운 병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같이 지내는 사람들과 소통이 단절되므로 외로운 섬에 고립되기 때문이 아닐까. 점점 자기만의 세계 속에 갇혀버리고, 가족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애달픈 병이라서.

"언니를 아무리 설명해도 누군지 모르겠대요" 전화선을 타고 흘러온 시누이의 목소리에 서운한 감정 한 웅큼이 올라와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그래도 30년 넘게 가족으로 묶였던 인연인데. 잊혀진 사람이 되어버린 나에 대한 연민인지,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었다.

 

어머니는 요양 보호사와 둘이 살고 있다. 서울에 사는 자식들이 같이 모실 수도, 매일 들를 수도 없는 상황이라 CCTV를 설치했다. 5남매가 공유하면서 낮에는 서울에 있는 3남매가, 밤에는 지구 반대쪽에 사는 두 아들네가 화면으로 지키기로 했다. 걸음이 성치 않은 노구인데 또 다시 치명적인 낙상을 하게 될까 우려해서 내린 결정이다.

지나온 세월의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냐는 비현실적인 질문을 가지고 지인들과 농담처럼 가볍게 대화를 나눌 때가 있었다. 누구는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이라 하고, 누구는 나이든 현재가 편해서 좋다고 했다. 비현실을 현실에서 누리게 하니 치매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합리화하는 비약일까.

 

인생 속엔 간직하고 싶은 장면이 있고,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도 있을 터. 어머니는 징검다리를 건너건너 50대에 머물러 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도 검은 파마 머리에 살집이 적당하게 있는 뽀얀 피부, 눈썹 끝을 약간 치켜 올려 그린 그 때의 모습일 것만 같다.

슬며시 다가와서 문이 열리면 탈 수 밖에 없는 시간 열차. 원치 않는다고 누군들 거부할 수 있을까. 열차는 어머니를 다시 태우고 어쩌면 더 오래 전의 시간을 향해 움직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현실로 되돌아올 수 없다면 차라리 더 젊고 행복했던 때를 찾아가 그 시간을 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멀어지는 시간의 거리에 마음이 서늘해도.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rosa
황로사
114198
18426
2024-05-02
책과 같이 나선 여행

 

'하고 싶은 것은 실천하며 산다’라는 모토는 머리 속에서만 뱅뱅 돌다가 다시 제 자리에 가서 멈추기를 수없이 하는 이론일 뿐이었다.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인 ‘혼자만의 여행’이라는 항목은 잠시 설렘만을 주다가 용기 부족으로 인해서 다시 그 안에 갇혀 버리곤 했다. 

결정을 쉽게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안 해본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스스로 고독을 찾아나서는 여행이지만 그 고독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두려웠다. 말 할 대상은 없는데 저녁 어스름과 같이 몰려올 것 같은 스산한 마음이 두려웠다. 여자 혼자 왔다는 시선이 두려웠고 낯선 남자가 쫓아올까 봐 두려웠다.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생활은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지난 겨울,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나를 흔들었다. 집안 일과 직장에서 벗어나 오직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돌아보고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 두려움을 앞선 시점이었다. 여행전문 사이트를 뒤지다가 눈 여겨 두었던 캐리비언의 한 리조트에 선택 단추를 누르고 나니 망설임과 두려움이 차지했던 자리를 설렘이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가는 나 혼자만의 여행이다.

 

가방에 읽고 싶었던 책 몇 권을 넣고 세찬 겨울을 겪는 토론토를 떠나 여름의 한 가운데 있는 쿠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내 안에 눌려있던 두려움이 또다시 스멀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호텔로 데려다 줄 버스가 안 오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옆자리의 할머니가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같은 호텔임을 알고는 과장된 액션으로 나를 끌어안는다. 조금 어색했지만 여행의 청신호처럼 여겨졌다.

바다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감을 채워주었다. 옥색 물감을 물에 풀어놓은 듯한 빛깔과 우유처럼 하얗고 고운 모래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바닷가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서 혼자 팔 일 동안 마음껏 자유를 누릴 것을 생각하니 기쁨이 벅차올라 이틀 동안은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흘째가 되어서야 가져온 책 중에서 ‘리스본행 야간 열차’를 꺼냈다. 책 표지에 부제처럼 써있는 ‘당신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면’ 그리고 ‘단 한번의 기적 같은 여행’이라는 글귀가 자석처럼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이 소설의 작가는 '파스칼 메르시에'라는 언어 철학자이다. 철학자가 쓴 소설이라 그런지 철학적인 관념을 적절히 제시 함으로서 깊이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내용은 주인공 그레고리우스의 일탈로 시작된다. 고리타분한 고전문헌학자이면서 학교 교사인 그는 책방에서 우연히 손에 쥐게 된 책 ‘언어의 연금술사’에 매료된다. 모든 일상을 그대로 놔둔 채, 홀린 듯이 그 책 속의 인물을 찾아 스위스를 떠나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 열차에 몸을 싣는다. 학교 교장에게 남긴 편지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번, 단 한번 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그 속에 그레고리우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한 가운데서 살던 그레고리우스는 그 책을 접한 순간부터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굴레에서 벗어 나게 된다. 그를 매혹시킨 책 속의 인물 '프라두'의 삶을 추적하던 중에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알고 이해하게 된다. 나는 어느덧 그레고리우스의 여행에 동행하고 있었다.

 

작가 메르시에는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을 만나게 되고 결정하고 나면 선택 받지 못한 나머지는 손가락 틈새로 빠져 나가는 모래 알과 같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선택하고 결정한 길에서 좋은 사람과 공유하고 좋은 책과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수록 삶은 깊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레고리우스의 삶이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만나기 전과 후로 양분되었다면 나의 삶도 이번 여행을 계기로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작가는 '내 안에서 경험하지 못한 부분들은 환타지라는 공간에 머문다'라고 했다. 그 안에 있던 목록 중 하나를 현실에 옮겼다.

여행은 잠시 나를 들어올려 쿠바에 데려갔다가 다시 토론토에 내려놓았다. 그 시간과 공간은 마법처럼 나의 영혼과 마음을 충전시켰다. 좋은 책과 더불어 혼자서 하는 여행은 충분히 사유하며 깊이 나를 들여다보게 함으로서 채울 것만 있는 환경이 되기도 한다. 캐리비안의 리조트 안에서만 지내는 것은 위험한 것이 전혀 없이 안전했고 모든 환경이 나를 편안하게 지켜주었다. 하고 싶은 것은 하나하나 이루며 살자고 가슴을 도닥이며 다짐했다. 수첩 안에서 질식상태에 놓여 있었던 버킷 리스트가 이제서야 기지개를 켠다.

 

선택을 앞에 놓고 분별만 확실하게 한다면 망설임은 이제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남은 시간은 한정적이고, 누구나 삶의 주인공인 동시에 또한 제작자이기 때문이다.

공감하고 마음이 끌리는 글 귀마다 붙인 스티커들로 책이 무지개 빛이 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혼자 나섰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 마음과 똑같은 색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rosa
황로사
111916
18426
2024-02-01
얼음 밭에서 보낸 반 나절

다락방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붕에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길 건너 공원에는 산책 나온 개 발자국들이 무늬처럼 찍혀있고, 넓게 펼쳐있는 얼음 밭에는 강태공들이 겨울 낚시 하는 오두막들이 즐비하다. 저 멀리 호수 끝자락, 수평선 위에 길게 그어진 한 줄기 뭍이 보인다. 이니스필(Innisfil)이다.  여기서 운전해서 가려면 구불구불한 국도를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내가 사는 케스윅(Keswick)과 이니스필은 심코 호수를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를 직선으로 걸어서 가면 얼마나 걸릴까. 물끄러미 하얀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공연히 호기심이 올라온다. 

눈이 쌓인 얼음 위를 걷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깊이 쌓인 곳에서는 발자국을 쿡쿡 찍으며 가다가, 얇게 덮인 데에서는 운동화로 눈을 밀어내며 걷는다.  얼음이 녹아 물에 빠지는 건 아닐까. 가끔 발로 얼음을 두드려 본다. 여자 하나쯤은 든든하게 받쳐줄 수 있으니 안심하라는 두꺼운 공명이 응답처럼 되돌아온다. 

반쯤 왔으려나,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뒤돌아보니 우리 동네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렇게 먼 줄 알았으면 아이젠이라도 부착하고 올걸. 후회해도 돌아갔다가 다시 오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렸다. 이왕 나선 길, 멀리 바라만 보았던 땅을 터치하고 오기로 마음먹고 계속 걷기로 한다. 저 앞에서 스노우 모빌 두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경쟁하듯 질주한다. 얼음이 단단하게 얼었다는 두 번째 신호로 받아들인다.

광활한 얼음 밭을 혼자 하염없이 걷노라니, 생각이 친구가 된다. 누군가 물었었다.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냐고. 가족인 듯 아끼며 같이 살고 있는 하얀 말티즈 강아지가 아니라, '새'라고 덥석 말하는 나 자신을 보고 스스로 놀랐다. 두 발 달린 동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닭도, 새도, 병아리조차도 만지려면 징그럽고, 발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는 왜 '새'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을까. 단 한가지 이유다. 날 수 있다는 것. 나이 들어가면서 나는 자유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속한 단체나 관계에서 나를 묶으려 하면 슬며시 빠져 나오는 바람에 미움을 사기도 했다. 베스트 프렌드라는 달콤한 이름으로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지키고 싶은 거리가 무너지고 묶이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나는 나무 위로 올라가 이파리 사이에 몸을 숨겼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묶여있는 우리'보다 외롭더라도 '자유로운 혼자'가 더 좋았다. 외로움을 티백처럼 우려내니 맛은 씁쓸한데, 한 켠에는 속을 환하게 해주는 박하맛이 났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를 자주 돌이켜 생각한다. 마음을 지배하는 평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원하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만 느끼는 팍스(Pax)이고, 다른 하나는 상황에 상관없이 내면에 깊이 흐르는 샬롬(Shalom) 이다. 그가 생전에 바랐던 것도 결국 자아의 경계를 넘어선 내면의 자유, 샬롬의 경지가 아니었을까.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연한 미소를 짓게 하는 파스텔톤 추억만 있으면 좋으련만. 부정적인 경험 속에서도 때로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웃을 수 있는 기억이 남기도 한다. 그러나 해야만 했던 말을 할 기회를 놓치거나, 다른 이유로 매듭짓지 못하고 내면에 가라앉은 것은, 가끔 수면 위에 삐죽이 튀어올라 조용했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때마다 마무리 짓고 살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 어디 호락호락하게만 흘러가던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신본주의로 산다면 그런 것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겠지만, 인본주의 성향이 짙은 나로서는 백일몽이다. 

똑바로 온 줄 알았는데 뒤돌아보니 걸어온 길이 술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시간 조각들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고, 실한 열매 하나 없이 '할머니'라는 물컹한 명찰만 오롯이 남았을 때, 삶은 너무 열심히도, 곧게도 살 필요없이 느슨하게 사는 게 좋다고 생각했었다. 흔들거리는 발자국을 보니 괜히 흐뭇해서 웃음이 나온다.

어느덧 이니스필 호숫가 울창한 수초 숲이 내 앞에 있다. '아. 너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 반가워 손을 내민다. 수초들은 바짝 마르고 얼은 채로 함박눈꽃을 소담스레 피우고 있다. 이제 곧 봄바람이 불면 너희들도 찰랑 거리는 물 속에서 춤을 추며 마른 줄기 사이에서 새 순을 올리겠지.

어둡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면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내가 왔던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겠구나, 했는데 딴 생각하는 사이에 어디에 있는지 찾지를 못하겠다. 나는 다시 흔들거리는 선을 남기며 걷기 시작한다. 집을 떠날 때 중천에 있던 해가 기울어 이니스필 서녘 하늘을 노을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한참을 오다 보니 케스윜 동쪽 하늘에서는 검은 세상을 밝혀줄 달이 서서히 금빛으로 달궈지고 있다.

집에 오자마자 얼음 위에서 균형 잡느라 애썼던 몸을 눕힌다. 나를 품어주는 이불 속이 유난히 따듯하다. 노곤함이 온기에 녹는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rosa
황로사
75736
18426
2019-10-16
문학과 음악이 흐르는 북콘서트

 
 

며칠 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늘 웃던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요즘 사는 재미도, 의미도 없고 외롭다고 했습니다. 토론토에서 두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살다 보니 마땅히 삶을 나눌 사람도 없고 감성적인 자신을 가족도 이해해주지 못한다며 속을 끓이고 사는 듯 보였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글을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말을 건넸습니다.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안난다고 했습니다. '백지를 친구 삼아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풀어놓고, 일단 계속 써내려 가보라'는 것 밖에는 해 줄 말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단지 그녀만의 고민일까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 이민자들은 책 한 권을 쓸만큼의 사연과 외로움을 가슴에 안고 있을 것입니다. 친구와 헤어지면서 자기 같은 사람들을 위해 베푸는 행사가 있으니 꼭 참석해보라는 조언을 덧붙였습니다.


북 콘서트. 문학이 있고 음악이 있고, 무르익어가는 가을의 향취까지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책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사모하는 분들, 그리고 그리움과 추억을 공감하고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영수 수필가는 캐나다로 이민을 온 후, 한국에서 같이 교편을 잡았던 친구들과 편지를 나누게 되었고, 편지 글에 감동을 받은 친구들의 권유로 글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길은 신춘문예 입상으로, 한국 수필계의 등단으로 이어졌고, 수필가로서는 제일 큰 상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수필문학상을 받음으로써 중견수필가로 자리잡게 되었지요. 


'물구나무 서는 나무들', '먼 길 돌아 돌아온 바람', '시간의 기차여행'에 이어 이번에 발간된 네 번째 수필집 '어느 물고기의 독백'으로 내일 북 콘서트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녀 자신의 모놀로그이면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출판기념회 형식을 벗고, 이민생활 속에서 문학이 어떻게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을지를 김영수 작가와 진솔하고 깊이있게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참가비는 없으며 추억을 맛볼 수 있는 다과도 나누게 됩니다. 단지 문학과 음악으로 촉촉하게 적셔갈 빈 마음만 가져오시면 됩니다. 


 10월 12일(토) 오후 3시에 노스욕 Edithvale Community Center(131 Finch Ave. West)로 관심 있으신 여러분 모두를 초청합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