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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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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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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7
'마가렛을 위한 여행' (Journey for Margaret) (중)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XI)
전쟁 고아의 파란만장한 여정…
더 이상 도시의 불이 꺼지지 않는 곳으로
 

 

   
(지난 호에 이어)
의사의 허가로 노라의 입원실을 찾은 존. 노라는 피하주사 기운 때문에 "나치가 우리 아이를, 아니 모든 아이들을 죽였다"고 횡설수설한다. 존이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는… 우리 고향 코네티컷을 생각해 봐!"라며 달랜다. "아니야, 그게 내 인생이 아냐! 나도 당신도 유령이며 온 세상이 모두 유령!"이라며 울부짖다가 잠이 드는 노라.
   몇 달 후, 차 안에서 존과 노라, 허버트 등 일행이 불콰한 상태에서 스코틀랜드의 유명 민요인 "로몬드 호수의 아름다운 강 언덕(The Bonnie Banks of Loch Lomond)"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You'll take the high road and I'll take the low road (그대는 고갯길로 올라가고 나는 아랫길로 가게되리라)
   And I'll be in Scotland before ye (그대보다 먼저 고향 스코틀랜드로 돌아가리니)
   For me and my true love will never meet again (사랑하는 그대, 이제 우리 다시 만나지 못하리라)
   On the bonnie bonnie banks of Loch Lomond (그 아름답던 로몬드 호숫가의 강 언덕이여)

 

[註: 이 노래는 1745년 잉글랜드군과의 전쟁 중에 포로가 된 스코틀랜드의 한 병사가 처형되기 직전에 쓴, 고향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의 로몬드 호수와 두고온 연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전하는 편지로부터 유래한 민요라고 한다.]

 

 

 6개월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노라가 리스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어 모두 술에 취해 흥겨운 분위기다. 노라가 "다만 우리가 윗길로 가야 하는지 아랫길로 가야 하는지 헷갈린다"고 말하자 별명이 '못난이(rugged)'인 동료기자(G.P. 헌틀리)가 공항 가기 전 딱 3분 동안 한 잔만 더 걸치자고 제안한다.
   팝에서 허버트가 노라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여기 계속 남아서 그녀에게 닥친 운명을 극복하라고…. 아마도 그녀가 나중에 불임 사실을 알았을 때 겪을 정신적 충격을 미리 다독거리고, 홀로 남는 친구 존을 염려하는 진정한 우정에서 그랬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리스본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다들 술에 취해 '로몬드 호수' 노래를 흥얼대며 기쁜 마음으로 노라를 배웅하는데,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하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현실에 거부하듯 노라를 부르며 몹시 허탈해 하는 존의 모습이 애처롭다.
   장면은 리스윅 고아원(Riswick Children's House). 트루디 스트라우스 원장(페이 베인터)을 방문하는 존. 보모인 틸리 웨버 양(리사 곰)과 함께 어린이 방을 둘러보는데 한 여자애가 비명을 지른다. 자기 옆에 있던 엄마가 폭격으로 죽은 기억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트루디 원장.
   이때 천장 위를 쳐다보고 두리번거리며 걸어오는 남자애를 발견하는 존. 원장은 일주일 전에 엄마를 잃고 들어왔다며 그의 이름이 피터 험프리스(월리엄 세번)라고 알려준다. 존 데이비스는 런던 폭격 때 취재하면서 목격했던 바로 그 애임을 알아차린다. 선반에 보관하고 있던 양털인형을 피터에게 주면서 원장은 "이것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그의 기억을 연결해 주는 소중한 통로"라고 말한다.

 

 

   고아원에 도착한 이후로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 벙어리가 된 피터는 양털 인형을 보고는 "수프를 쏟고 숟가락도 집어던지고 옷이 다 젖어 도망갔었는데 이제 함께 있자"라고 말하며 인형을 계속 쓰다듬는다. 존에게 다시 보러 올 것을 약속 받고서야 돌아가는 피터!
   이때 해리스 부인(헤더 대처)이 여자애를 데리고 원장을 찾아온다. 3명의 아이를 입양했는데 다른 애들과는 달리 리틀 마가렛 화이트(마가렛 오브라이언)는 삐지고 변덕스러워 '실쭉이(sulky)'라고 부르는데, 어젯밤 가족회의 끝에 고아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며 계속 눈물을 훔치고 있는 마가렛을 내팽개치듯 버리고 떠나는 해리스 부인. 
   트루디가 울고 싶으면 실컷 울라고 하자 정말 크게 우는 마가렛을 원장은 어머니가 그리워 우는 거라며 그녀를 포근히 감싸준다. 이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는 존에게 트루디 원장은 "어린애가 운다고 때리는 일을 상상해 보라"며 "애들은 우는 일 외에 달리 세상을 바꿀 게 없다."고 말한다. 
   무엇이 원인인지 캐내기는커녕 울 때마다 때리기만 하던 그 전쟁고아의 기억은 어떻게 치유되어야 하나… 옷을 갈아입으라는데 목에 걸고 있는 폭탄 케이스는 한사코 벗지 않으려는 마가렛. 
   떠나는 존 데이비스에게 스트라우스 원장은 아이들과의 약속은 절대 깨서는 안 된다며 피터와의 약속을 상기시키는데….

 


   티타임(tea time, 영국의 전통문화로 늦은 오후와 이른 저녁 사이에 먹는 차를 이용한 식사)에 고아원을 방문한 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피터. 그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수단으로 양털 인형을 사용한다고 말하는 원장. 예컨대 피터가 인형에게 빵을 먹으라고 말하니까 마가렛이 순순히 식사하는 것을 보라고….
   온 김에 애들 목욕도 시키는 존 데이비스. 마가렛과 피터 사이에 서로 "내 아저씨"라며 말다툼이 일어나는데…. 밤에 폭격기가 고아원 위를 날아갈 때 존은 숫자를 세며 아이들을 진정시킨다. LP레코드판을 틀어주며 마가렛과 피터를 재울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존!
   런던 시내에 공습으로 화재가 일어나자 이를 취재하기 위해 허버트와 함께 가는 존. 죽은 아이를 안고 "잠 들었다"며 실성하여 울지도 않는 여인을 보고, "오 하느님, 저는 이 포연과 역겨운 냄새와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나치 폭격에 분노가 치솟습니다. 저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세요."라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존!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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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229256
9208
2025-01-09
'마가렛을 위한 여행'(Journey for Margaret)(상)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XI)
전쟁 고아의 파란만장한 여정
더 이상 도시의 불이 꺼지지 않는 곳으로
 

 

[필자 주: 이번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대표적인 작품 3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가렛을 위한 여행', '백만 인의 음악' 그리고 '금지된 장난'이다.]

 

   먼저 '마가렛을 위한 여행(Journey for Margaret)'이다. 1942년 MGM사 배급. 감독 W.S. 판 다이크(Woodbridge Strong Van Dyke, 1889~1943)로 그가 자살하기 직전의 마지막 영화였다. 출연 로버트 영(Robert Young, 1907~1998), 라레인 데이, 마가렛 오브라이언. 러닝타임 81분. 
   이 영화는 제작비의 약 5배에 달하는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런던에서 고아를 입양한 경험을 묘사한 윌리엄 화이트(William Lindsay White, 1900~1973) 부부의 동명의 원작을 각색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미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라이프 잡지에 실렸던 내용이다. 
   오픈 크레디트가 끝나면 다음과 같은 타이틀이 뜬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마가렛은 실제 인물입니다. 그녀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이 (제2차 세계대전)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구적 평화가 오기를 갈망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녀에게 바치는 작은 헌정입니다. 그러나 광범위한 전선에서 세계의 '마가렛 같은 아이들'을 위해 싸운 수백만 사람들에게 큰 헌정이 되길 바랍니다." 

 

 

   장면은 프랑스가 나치에게 점령 당한 후의 런던 기차역. 허버트 V. 앨리슨(나이젤 브루스)이 마중을 나와 있다. 기차에 붙어있는 표지판으로 미루어 보아 마르세유 보트 트레인을 타고 7시35분 플랫폼 6에 도착할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를 떠나 런던에 도착한 존 데이비스(로버트 영), 노라 데이비스(라레인 데이) 부부가 내린다. 임신 중인 노라에게 "전란 중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용감한 일"이라고 치켜세우는 허버트. 데이비스 부부는 지난 해 거주했던 아파트를 전세 내 몇 달간 지낼 계획이라고 말하는데, 그 집이 지난 주에 폭격을 받았다고 말하는 허버트. 
   할 수 없어 노팅엄 호텔에 여장을 푼 미국 전쟁특파원인 존에게 사무실로 갈 때는 꼭 방독면을 갖고 가야한다고 말하는 허버트. 존이 노라에게 방독면을 써보게 하면서 "다음 세대 아이들은 이 모양을 닮을 것"이라고 말하자 화를 내는 노라. 
   나치가 로테르담, 프랑스에서 저지른 만행을 여기라고 왜 안하겠냐며 차라리 뉴욕에 가서 애를 낳자고 말하는 존. 그러나 애는 어느 곳이든 못 낳겠냐며 당신과 함께 있는 곳이 우리 집이라며 같이 남겠다고 말하는 노라. 그리고 존에게 첫 번 런던 공습에 대한 모험담을 뉴욕에 케이블을 보내라고 격려하는 노라. 
   존은 노라에게 침대에서 12시간 휴식을 취하라고 당부하고 사무실로 간다.

 

 

   장면은 런던 사무실. 그동안의 여러 기사들을 읽어 내려가던 존은 "신문기사는 나온 지 1시간이 지나면 소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료기자 허버트는 존에게 내일부터 일하라며 자기는 케이블을 체크하기 위해 남을 테니 술이나 한 잔 하라며 그를 밖으로 내몬다.
   런던 시내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거리는 아수라장이 된다. 데이비스 부부는 방공호로 대피하지만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한 소녀가 기도를 한다. "제가 기도하는 동안 죽는다면 제 영혼을 거두어 주소서." 
   할 수 없어 방공호 3층 복도에 메트리스를 깔고 거처를 마련하는 데이비스 부부. 임신한 몸으로 남편이 곁에 있어주길 바라지만 존은 기사거리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기사 검열관(레일랜드 호지슨)이 불만스러워 이죽거리는 존에게 말한다. "당신은 퓰리처상을 탈 기회를 잃겠지만 우리는 전쟁에 이길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거요." 복도에 이런 구호가 쓰여 있다. "적을 돕는 행위를 삼가시오.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적에게 결정적인 기밀을 주게 됩니다."

 

 

   어느 날 밤, 존은 런던 시내에서 '블리츠' 공격으로 가옥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죽은 현장에서 아이가 구출되는 광경을 목격한다. 구조대가 죽은 어머니의 이름은 험프리스, 나이는 41세. 살아있는 아들이 4살이라고 신원을 확인하고 그가 갖고 있던 헝겊인형을 챙기는데…. [註: '전격전(The Blitz)'은 '번개(Blitz)와 같이 빠른 진격의 전쟁(Krieg)'이라는 뜻의 독일어. 
'블리츠크리크(Blitzkrieg)'가 그대로 하나의 고유명사화 된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와 루프트바페(Luftwaffe, 2차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의 공군) 최고사령관 헤르만 괴링은 1940년 9월15일 영국 런던을 대규모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0월 이후부터는 영국 공군(RAF)의 공격을 피해 야간 공격인 '블리츠'를 감행하여, 4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죽었는데 그 절반이 수도 런던에서 일어났고, 약 1백만의 가옥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 이때 사용된 항공기가 에른스트 하인켈 박사(Dr. Ernst Heinkel, 1888~1958)가 발명한 '하인켈 폭격기'였는데, 성공적인 액체 연료 및 터보제트 엔진을 이용한 로켓 항공기로 항공기 역사에 중대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독일 '블리츠' 공격은 결국 실패했다. 왜냐 하면 영국의 군수산업을 파괴할 조직적 전략을 더 이상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보해제 후 아내가 폭격으로 다쳐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사실을 안 존은 급히 병원으로 달려간다. 의사는 위험한 순간은 넘겼지만 피하주사(주로 수술 전 처치 약물을 팔뚝의 진피와 근육 사이인 피하에 주사하는 방법)를 놓은 상태이고 폭격 충격으로 장애를 받았기 때문에 수술 후 회복에 2, 3개월이 걸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의사는 앞으로 임신할 수 없다며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도록 절대 본인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는데….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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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213096
9208
2025-01-02
'말레나' (Malena) (하)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X)


눈빛과 몸짓만으로 숨막히는 관능미를 뿜어내는 모니카 벨루치 주연
 

 

   시칠리아 전통에 따라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년은 짧은 바지를 입고 다녀야 하며 이발소에서도 거울 앞 큰 의자에서 이발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멀쩡한 아버지 바지를 줄여 입으려고 수선집에 거짓으로 맡겼다가 들통나 부모에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는 레나토도 이제 성년이 되었다.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니노에게 익명의 편지를 써서 보내는 레나토.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에서 당신은 전장에서 죽은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말레나를 잘 아는 남자로서 내가 확신하건대, 말레나가 사랑한 남자는 오직 당신뿐이다. 그녀에 대한 모든 소문은 다 헛소문이고 거짓말이다. 내가 말레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메시나로 향하는 열차에서였다…." 
   '사랑의 메신저' 레나토의 바로 이 편지 내용이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니노가 말레나를 찾으러 메시나로 떠난지 1년 후, 니노가 아름다운 아내 말레나와 팔장을 끼고 보란 듯이 마을광장에 나타난다. 또 다시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거리는 그녀에 대한 존경심으로 정적에 휩싸인다. 

 

 

   이 군중 속에 말레나를 닮은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난 레나토. 이때 마을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말레나의 용기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스코르디아 부인"이라고 부르며 존경심을 표시한다. 
   말레나는 집단에 동화되지 않는 치명적 아름다움 때문에 누구의 시선에서도 벗어날 수 없었고, 절대주의적 관습과 파시즘에 의한 파괴적 집단의식이 지배하는 폐쇄된 사회에서 주민들의 질투와 분노의 대상이 되어 희생 당해야 했다. 그로 인해 한 여성으로서의 인격과 사생활이 철저히 유린되고 파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 남자의 소유로 귀속됨에 따라 이러한 갈등은 해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해변가 시장에 장을 보러 온 말레나. 예전과는 달리 수수한 옷차림에 이제 눈가에 주름도 잡히고 몸집도 좀 불은 듯 하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수줍음을 잘 타는 말레나는 그 치욕의 경험 후 자기에 대한 관심에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긴장의 순간! 

 

 

   그러나 시장의 여자들은 그녀에게 서로 앞다퉈 먼저 인사를 건네고 돈을 받지 않고 그녀에게 물건을 건넨다. 아무튼 말레나에게 가해지던 폭력이 절대적이었던만큼 돌변한 사람들의 태도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남자들에게는 뒤틀린 욕망의 표출구가 되었고, 또 여자들에게는 자기 남편을 지키고자 하는 보호본능에 위협이 되었던 그 뇌쇄적인 아름다움이 이제 더 이상 마을여자들에게 '화제'가 아닌 인격체로서의 '존재'가 된 것이다.
   해변가에서의 마지막 장면.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든 말레나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멀찌감치서 오랫동안 지켜보는 레나토. 그때 그녀의 무거운 시장바구니에서 오렌지가 쏟아지자 이를 본 레나토가 잽싸게 자전거를 몰고 가서 주워담는 것을 도와준다. 그리고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말레나와 직접 대면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사말을 건넨다. "행운을 빌어요. 말레나 부인!" 
   곧 헤어져 자전거를 타고가면서 영원한 이별을 아쉬워 하듯 말레나가 사라질 때까지 자꾸 뒤를 돌아보는 레나토…. 

 

 

   영화는 중년이 된 레나토가 어릴 때 자신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말레나를 회상하는 독백으로 막을 내린다. "세월은 흘러 나는 여러 여인을 사랑했다. 그들은 내 품에 안겨 자신을 기억할 것인가 물었고,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나의 가슴엔 내게 결코 물어본 일이 없던 말레나만이 남아 있다.” 
   모든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이자, 모든 여자들의 질투의 대상이었던 말레나. '말레나'는 아련하고 풋풋한 첫사랑 영화가 아닌, 집단의 파시즘과 폭력에 대한 처절한 영화였다. '말레나'는 거의 대사도 없이 눈빛과 몸짓만으로 숨막히는 관능미를 뿜어내는 모니카 벨루치에 의해 현실감 있는 인물로 태어났다. 
   초콜릿 빛깔의 아름다운 눈빛과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몸매와 모델 워킹만으로도 어떤 영화의 어떤 여주인공보다 눈부신 모습인 그녀는 이 영화에서 농익은 누드 장면뿐만 아니라 마을 광장에서 벌거벗겨진 채 집단 린치를 당하는 힘든 연기를 소화해냈다. 토르나토레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는 "'비너스의 화신' 모니카 벨루치의 영화"다.

 

 

   또한 쥬세페 감독은 말레나를 늘 지켜보는 십대 소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함으로써 극의 흐름에 따라 인간에 내재된 광폭함과 위선, 우매한 군중 심리에 대하여 보다 철저하고 설득력있게 고발하고, 동시에 인간의 추악함과 순수함, 개인의 심리와 본능까지 분석하는 날카로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서와도 닮은 서민들의 삶까지도….
   쥬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 1956년생) 감독은 앞에서 언급한 '시네마 천국'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였고, 그 후 '피아니스트의 전설(The Legend of 1900, 1998)'에 이어 'The Unknown Woman(La Sconosciuta•2006)'으로 2007년 29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실버 조지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음악감독 엔니오 모리코네는 '시네마 천국'으로 토르나토레 감독과 인연을 맺은 후 그가 만든 모든 작품의 음악을 도맡았다. 그는 우리에게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이른바 "무법자 3부작"인 스파게티 웨스턴과 특히 '미션(The Mission•1986)'에 나오는 '가브리엘의 오보에'(새라 브라이트만이 부른 '넬라 판타지아' 노래로 더 많이 알려짐)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거장 작곡가로 2020년 7월6일 향년 91세로 작고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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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180896
9208
2024-12-19
'말레나' (Malena) (중)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X)


눈빛과 몸짓만으로 숨막히는 관능미를 뿜어내는 모니카 벨루치 주연
 

   

 


(지난 호에 이어)
그러던 중 말레나는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탄에 빠진다. 마을사람들은 위로는커녕 여자들은 계속 험담만 하고, 남자들의 그녀에 대한 음흉한 망상은 더욱 짙어지고, 이로 인해 아버지로부터도 버림받는다. 말레나는 스스로를 변호할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 그냥 혼자인 채로 참고 당할 수밖에.
   이윽고 마을의 치과의사와 불륜관계이며 젊은 장교와도 내연의 관계란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돌자 견디지 못한 그녀가 자신을 변화하기 위해 재판을 의뢰한다. 치과의사와는 한번 인사 했을 뿐인데 치과의사 스스로가 소문을 냈음을, 젊은 장교와는 좋은 감정으로 두 번 만났을 뿐임을 사람들 앞에 증명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녀의 결백은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고, 이 마을에서 그녀가 사랑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는 심사가 뒤틀린 주장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변호사비를 대신해 몸을 요구하는 변호사 첸토르비(길베르토 이도네아)에게 겁탈을 당한다. 이때 레나토가 말레나 집 창문을 통해 이 광경을 훔쳐보다 충격으로 나무에서 떨어져 깁스를 하게 된다. 
   이미 관계를 맺게 된 현실을 받아들여 그와 결혼하고자 하나 마을에서 이미 창녀처럼 취급되는 그녀였기에 이 역시 마마보이 변호사의 모친으로부터 단박에 거절된다.
   레나토는 점점 스스로 말레나의 보호자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하는 행동이 마을사람들의 행동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지는 못한다. 말레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복수할 말이나 행동도 못하면서 그저 하느님께 보호해 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인격체가 아닌 '화제로서 존재'하는 그녀이기에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말레나의 현실적 고통에 대해서는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년과 관객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이다.
   얼마 후 전쟁의 여파가 시칠리아 섬에도 밀어닥쳐 마을이 폭격을 맞는다. 이로 인해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마저 잃고 그녀는 완전히 홀로 남게 된다. 자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녀에 대한 모욕과 망상은 멈추지 않는 현실. 그녀는 빵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긴 검은 머리를 자르고 짙은 화장을 하고 관능적인 옷을 입고서 그녀는 아름다움을 판다. 이때 말레나가 마을 광장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욕정에 사로잡힌 남정네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저마다 라이터, 성냥불을 들이미는 장면이 유명하다. 이탈리아에서는 매춘부가 담뱃불을 받아 피우는 것은 남자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여긴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는 말레나의 표정이 착잡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미 자신을 지탱해 오던 자존심을 버린 그녀이기에 오로지 돈을 보고 움직이는 그녀는 나치도 마다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처절함을 알아줄 리 없는 주민들은 이제 정숙한 젊은 아내였을 때보다 만족하는 모습들이었지만 아예 노골적으로 그녀를 창녀라 비난한다. 
   그 와중에 나치 장교를 맞아들이는 말레나를 훔쳐 본 소년 레나토는 충격을 받고 시름시름 앓게 된다. 이에 무지한 그의 모친은 무당을 불러 주술로 치료하려 한다. 그때까지 꼴통자식을 매일 몰아붙이던 그의 부친은 동네 쪽팔린다며 매우 난색을 표하지만 아들의 마음의 병을 알아차리고 파격적인 방법으로 레나토를 치료하는데… 글쎄 자식을 사창가로 데려가는 게 아닌가. [註: 이는 로마 시대부터 내려온 시칠리아의 전통이라고 한다.] 
   한 여자를 선택해야 된다는 말에 가장 말레나를 닮은 여성을 고른 레나토는, 상상 속에서 그녀와 정사를 벌이고 나서야 거짓말같이 낫는다.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다!
   드디어 독일이 패망하여 전쟁이 끝나고 미군 병사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환호하기 위해 광장에 모여든 마을 여자들은 애국심(?)을 내세운 배타적 집단주의의 광기에 의해 말레나를 끌어내 공개적으로 구타하고 강제적으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옷을 찢어버리는 등 잔혹한 폭행을 가한다. [註: 영화 도입부에서 아이들이 볼록렌즈로 '아무 죄도 없는' 개미 한 마리를 태워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이 뒷장면에 대한 은유였지 싶다. 또 이 장면은 데이비드 린 감독의 '라이언의 딸(1970)'에서 린치를 당하는 로지(새라 마일즈)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말레나는 아무에게도 동정 받지 못하는 사마리아의 여인처럼 처절한 분노와 공포 속에 무언의 비명을 지르지만, 남자들은 처참하게 얻어맞고 피흘리는 말레나를 그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쳐다만 볼 뿐이다. 어린 레나토도 마찬가지다. 
   말레나는 자신에게 상처와 치욕만을 안겨준 팔레르모를 몰래 도망쳐 메시나로 떠난다. 기차역에서 이를 지켜보는 레나토! 그리고 해변가 절벽 위에서 애지중지하던 레코드판을 바다로 날려버린다.
   그런데 여기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전사했다던 말레나의 남편 니노 스코르디아(가에타노 아로니카)가 한쪽 팔을 잃은 채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다. 
   집으로 갔으나 주인 없는 집은 피난민 수용소로 변해버렸고, 그녀를 찾기 위해 수소문했으나 아무도 그의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 마을사람들. 그러다 그의 아내가 창녀라는 말을 내뱉는 공산당원에게 "당신 같은 사람들을 위해 싸운 내가 한심하다!"며 대들자 오히려 걷어차이는 니노….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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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3
'말레나' (Malena) (상)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X)


눈빛과 몸짓만으로 숨막히는 관능미를 뿜어내는 모니카 벨루치 주연
 

 

   2015년 11월6일 개봉했던 007시리즈 24탄 '스펙터(Spectre)'는 역대 본드 걸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당시 50세의 이탈리아 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에 대적하는 루치아 샤라 역으로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註: 그 전까지 데보라 커(Deborah Kerr, 1921~2007)가 47세 때 '카지노 로열'에서 본드걸로 출연한 기록을 깨뜨렸다.] 
   그녀가 15년 전에 주연했던 '말레나(2000)'라는 작품을 한 번 보면 그게 가능한 얘기인지 가늠이 될 것 같다. 
   13살 때부터 패션 모델을 시작하여 유럽 패션 중심지인 밀라노에서 활동하다 파리로 건너가 1996년 '라빠르망(L'Appartement)'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4년 후 이탈리아 영화계로 돌아와 찍은 작품이 '말레나'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관능의 화신'으로 극찬을 받는 이탈리아 배우로 등극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1992)'에서 단역이었지만 드라큘라 백작의 세 신부 중 하나로 나와 속이 비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풍만한 가슴과 뇌쇄적인 눈빛으로 공포스런 성적 팬터지를 보여줬던 모니카 벨루치는, 멜 깁슨 감독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에서 마리아 막달레나 역으로도 우리와 안면을 튼 배우이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2000년 미라맥스사 배급.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모니카 벨루치, 쥬세페 술파로. 음악감독 엔니오 모리코네. 러닝타임 109분(미국은 커트된 92분).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1988)'에서 순진무구한 소년의 맑은 눈으로 상처 입은 이탈리아 현대사를 바라봤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다시 햇빛 찬란한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로 돌아와 역시 13세 소년의 추억 어린 시선을 통해 전쟁과 파시즘의 폭력을 반추하며,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가슴 시린 노스탤지어와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아름다운 영상에 담은 영화 '말레나'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작품성보다도 모니카 벨루치의 전라(全裸) 노출장면이 많아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17분이나 커트된 것도 사춘기 소년의 상상 속에서 모니카 벨루치가 대부분 전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야하다는 느낌에 앞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과 따뜻한 영상, '시네마 천국'에서 느꼈던 사춘기 소년의 풋풋한 감정과 애교(?) 등이 있기 때문이리라.

 

 

   영화의 배경은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이탈리아 파시즘이 지배하고 있는 지중해의 작은 섬 시칠리아. 거기서 13살짜리 소년 레나토(쥬세페 술파로)는 어느 날, 하루에 세 가지의 주요 사건을 경험한다. 첫째는 이탈리아가 전쟁에 참가한다는 사실이었고, 두 번째는 중고품이지만 자기 자전거를 장만했고, 세 번째는 난생 처음으로 범접할 수 없이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인 말레나(모니카 벨루치)를 보고 짧은 바지 속이 들썩거렸다는 것이다. 
   영화는 첫눈에 그녀를 흠모하게 된 소년 레나토의 끊임없는 그녀를 향한 눈길을 통해 1인칭 내러티브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말레나는 남편 니노 스코르디아를 아프리카 전장에 보내고 홀로 남아 늙은 선생이며 귀까지 먹은 아버지(피에트로 노타리안니)를 모시고 산다. 
   여성, 그것도 아름다운 여성이 혼자 살면 필연적으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말레나는 시칠리아 최고의 얼짱에 몸짱이었던 까닭에 그 '존재'만으로 소년 레나토를 포함하여 나이를 초월한 모든 마을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과 질시를 한 몸에 받는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말레나가 거리를 거닐 때마다 모든 동작을 멈춘 채 그녀만 바라보는 사람들. 그러나 그녀의 앞에서 아름다움을 찬양하던 남자들은 돌아서서는 그녀를 희롱하는 언사를 늘어놓기 바쁘고, 여자들은 남자들을 빼앗긴 데 대한 질투와 분노로 그녀를 험담하고 모욕한다. 
   이렇게 말레나에 의해 지배된 주민들은 그녀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과 망상으로써 말레나의 인생을 유린하고 억압한다.
   그러나 그런 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레나는 밤마다 남편만을 그리워한다. 레나토는 여느 날처럼 밤중에 나무 위로 올라가 창을 통해 말레나를 엿보던 중, 그녀가 전쟁에 참가 중인 남편 사진 액자를 끌어안고 음악에 맞춰 혼자서 춤추는 광경을 목격한다. 

 

 

   소년은 그때 들었던 음악이 맘에 들었는지, 다음날 레코드 가게에 가서 힘들게 음반을 구입하여 밤엔 그 음악을 들으며 마스터베이션을 즐긴다. 어쩌면 남성들만의 보편적인 심리 내지 정서일지 모르지만 영화의 본질이 '훔쳐보기(peeping)' 내지 '관음(voyeur)'이 아니겠는가….
   그러다 어느 날, 레나토는 빨래터에서 훔친 말레나의 속곳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레코드판을 틀어놓고 춘화(春畵)를 보며 그 만의 팬터지 세계로 빠져들어 늦잠을 자다가 아버지(루치아노 페데리코)와 어머니(마틸데 피아나)에게 들켜 흠씬 두들겨 맞고 혼쭐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나토는 사춘기의 여느 소년과 마찬가지로 끓어오르는 음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애교짓을 일삼는데, 부모는 그의 행위를 막을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만 헛수고다. 그러나 레나토는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건강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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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5
'베를린의 여인 (A Woman in Berlin)' (5, 끝)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X)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 
강간과 약탈은 국가 전체를 흔드는 전략
 

 

(지난 호에 이어)

   자전거로 집으로 돌아온 여인. 안드레이를 부르며 들어오지만 대신 기다리고 있던 안드로포프가 '그는 전근됐다'는 말을 전하고 떠난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약혼자 게르트가 돌아왔다. 초라하고 꾀죄죄한 모습이다.
   "새들은 침묵하고 종들은 고요하다. 어떻게 된 거야?"라며 "작업실은 없앴어?"라고 말을 끄집어내는 게르트. "혼자 살 수 없었어." "알아. 우크라이나인 같으니…" 
   감자볶음 요리를 하던 여인이 잠깐 손을 놓고 버리려던 일기장을 게르트에게 건넨다. 이를 읽던 약혼자 게르트는 "수치심도 없어? 그걸 몰라? 당신 보니 역겨워!"하고 역정을 낸다. 
   여인은 자전거를 타고 안드레이를 찾아 길거리로 나선다. 마침 병사들이 집결한 곳에 다다른 여인. 그의 전근식이 거행되고 있다.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건물을 나서는 안드레이와 마주치는 여인. 이 모습을 그의 충직한 몽골병이 조심스럽게 지켜본다. 
   여인이 고맙다고 말하자 "뭐가?"라고 되묻는 안드레이. "당신을 알게 된 거요. 잘 지내세요." 그러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몸으로 가려 그의 손을 꼭 잡는 여인. "우리 어떻게 살죠?" 이때 안드로포프의 미안한 듯한 모습과 몽골병의 슬픈 표정이 교차된다.

 

 

   드디어 지프차를 타고 떠나는 안드레이. 일제히 경례를 한다. 모두들 애틋한 표정이다. 마샤의 안타까운 표정이 잡힌다. 안드레이 소령은 한 여인의 보호막이 되어 잘못을 무리하게 덮어주려다 안드로포프의 상부 보고로 시베리아로 '전근'을 하게 된 것이다.
   집에 돌아오니 게르트가 모든 가구를 닥치는대로 박살내고 있다. 
   내레이션: 게르트, 내 사랑 게르트. 우리 이제 어떡하지?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까? 당신이 내게 처음 말한 때로 돌아가자. 당신은 말했다. '30분만 줘. 절대 날 떠나지마!'
   제 풀에 지쳐 약혼녀를 빤히 쳐다보는 게르트에게 "그래서 뭐?"라고 두 번이나 묻지만 대답이 없다.
   A의 마지막 내레이션: 이틀 후 그는 사라졌다. 돌아올 지는 모르겠다. 더 이상 상심하지 않는 자신이 놀라웠다. 할 일이 많다. 부싯돌을 찾아야 한다. 작업실의 구덩이를 청소해야 한다. 어제는 라일락을 발견했다. 게르트는 날 생각할까? 누가 알겠어? 그의 마음이 움직이면 다시 볼 수 있겠지. 언젠가는….

 

 

 서두에서 이미 얘기한대로 엔딩 크레디트에 수기집 '익명: 베를린의 몰락'과 작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이어지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마르타 힐러스의 수기집은 1945년 4월 20일부터 6월 22일까지 소련군이 진주한 동베를린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겪은 독일인들, 특히 독일 여성들의 아픔과 고통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일기는 4월 20일부터 4월 26일까지는 베를린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방공호 피신생활의 배고픔과 힘겨움을 기록했고, 4월 27일부터 5월 9일까지는 동베를린 지역에 진주한 소련군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독일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주로 이 기간을 다루고 있다.

   5월 10일부터 6월 22일까지는 복구를 위한 노역에 동원되어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는 패전국 국민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으며, 6월 22일 동부전선에 참전했던 약혼자 게르트가 돌아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소비에트 군인이 베를린을 점령한 4개월 동안 강간 당한 여성은 9만5천~13만 명으로 추산한다. 소비에트 종군기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8세에서 80세의 독일 여성들을 닥치는대로 강간했다고 한다. 
   전쟁에 있어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수치스러운 성적 유린은 상대편 남자들에게조차 큰 굴욕감과 좌절감을 주기 위한 조치이다. 또한 인종적 혼혈을 유도하여 상대 인종을 말살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강간과 약탈은 국가 전체를 흔드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수기집의 작가 마르타 힐러스는 당시 34살인 인텔리 여성이었으나, 패전에는 신분 고하가 없다. 패전국에는 더 이상 존귀한 귀부인은 없으며 더 이상 품위 있는 신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을 통해 모두는 만신창이의 오물덩어리가 된다. 따라서 전쟁은 반드시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도덕적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패전은 한 나라의 모든 보수적 가치를 박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자는 악으로만 그려질 수 있는 소련군에 대해 그럴 수 있는 이유를 부여하기도 하고, 소련군 장교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A가 "소령은 날 강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의 뜻으로 그에게 맡기고 그의 처분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과 "러시아인은 독일인과는 달리 배운 여자를 알아줬다"는 표현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고 안드레이 소령이 A에게 "포옹하고 싶소. 남은 여생을 위해!"라는 말과, 나아가 A의 안드레이에 대한 솔직한 묘사인 "빌어먹을 러시안 이상주의자!… 하지만 그가 좋다. 그보다 많이 그가 좋다. 아주 많이" 등에서도 나타난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벌이고 전쟁 피해를 당하는 모두는 '인간'이다. 전쟁은 인간과 세계를 바꾸는 구체적인 사건이다. 수기집이 출간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작가는 자기 연민은 결여돼 있고. 건조하고 간결한 어조로 너무 성찰적이고 솔직하며 세속적"이라고 평했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그녀는 관계를 통해 (음식물, 안전보호 등) 이득을 보았다. 또 소령도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환상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익명의) 여자와 남자(안드레이)가 직면한 현실에 적응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평했다.
   이 영화는 독일과 폴란드에서 촬영됐다. 특히 주인공 '익명의 여인' 역의 니나 호스(Nina Hoss•49)는 솔직히 미인은 아니지만 이지적(理智的)인 모습으로, 지옥같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복잡하게 변화하는 환경이지만 마음은 친밀하면서도 허리부분의 아픔과 슬픔을 삼키는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 출신의 막스 페르베르뵈크(Max Faerberboeck•74) 감독은 1999년 첫 장편영화 '아이메와 야구아(Aimee & Jaguar)'로 두 주연 여배우 율리아네 쾰러와 마리아 슈라더에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안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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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1
'베를린의 여인 (A Woman in Berlin)' (4)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X)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 
강간과 약탈은 국가 전체를 흔드는 전략

 

 

   어두운 밤 창밖 거리에는 스탈린의 초상화가 내걸린다. 안드레이가 "들어봐요. 그들은 남자처럼 피우고 마시죠. 러시아 군대엔 백만 여군이 있소. 사방에서 모였지. 우리는 군복도 없고 군화는 너무 크고 셔츠와 재킷도… 재난이었지. '루바'란 소녀가 내게 왔소. 그녀가 말했소. '소령님, 전 오늘 죽을거라 믿어요. 새옷을 원해요.' …그래서 말했지. '그래! 새 옷을 갖게 됐소. 여기 눈처럼 하얀 리본과 함께 말이요. 피로 가득 뒤덮였소.' 모든 여군들은 두려워하오. 죽을 때 추해 보이는 것을."
   그러면서 안드레이가 A에게 묻는다. "당신 파시스트요?" 허나 대답이 없는 여인.

 

 

   장면이 바뀐다. 페트카(알렉산드르 사모이렌코)가 대대장과 여인이 있는 방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몽골병에게 또 찾아온다. "1,678일(4년6개월)을 전쟁터에 있었다"며 문쪽을 바라보며 "그녀는 창녀야 그렇잖아? 전부 다 사창가야!"라며 못 참겠다는 듯 고함을 지른다. 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잠자고 있는 독일패잔병의 애인인 피난민 여자를 덮치는 페트카. 
   비명소리에 놀라 숨어있던 독일패잔병이 권총을 쏘지만 헛탕이라 둘 사이에 격투가 벌어지고 이윽고 패잔병은 층계 난간으로 떨어져 죽는다. 
   총소리에 모두 일어나고 안드레이 소령이 취조를 한다. 누구의 집이었냐고 묻자 A가 "자기집"이라고 대답한다. 다락방에서 총과 수류탄이 발견된다. 이는 붉은 군대의 군법 위반이라고 말하자 죽은 패잔병의 애인이 "총통 만세! 모두 죽어!"라고 외치면서 끌려나간다.

 

 

   안드레이가 여자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자 안드로포프(사무엘 무지키안)가 그에게 "그 여자는 나치입니다. 먼저 조사를 해야 합니다. 무장병사를 숨겼으므로 처형시킬 이유입니다"라고 말한다. 다시 모두 집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자 안드로포프는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말한다.
   프리드리히 호흐가 방으로 들어오는 A를 "그런 위험한 짓을 해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질책한다. 모두 위선자들이다.
   한편 러시아군은 "나치 괴물을 그의 동굴에서 잡았다. 독일 수도의 수비대는 항복했다!"고 외치며 안드레이 소령을 일제히 비난한다.
   한편 아나톨이 A의 집으로 찾아온다. 자기는 카이저담(황제거리) 등을 거치며 사방이 붉은 깃발임을 확인했다며 그동안 받았던 편지들을 여인 앞에 쏟아놓으며 모든 여자들이 자기를 사랑했다고 횡설수설한다. 이때 안드레이가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방으로 들어와 아나톨과 그녀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 자전거? 그 놈의 거시기? 어느 게 더 좋아?"라며 "불알 날리기 전에 썩 꺼지라"고 명령하고는 축하연이 열리니 모두 나오라고 명령하는 안드레이.

 

 

   겁에 질린 여자들. 안드레이는 A에게 말한다. "러시아인들, 짐승들! 아니면 동물들! 당신 말처럼. 우리 중 누구라도 잠시도 주저않고 독일인을 쏠 수 있소. 당신들 피가 우리 군복에 묻는 게 좋소. 그들 중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소. 대부분은 독일을 알지도 못했었소"라며 밖으로 나가자고 말하는 안드레이.
   노소를 불문하고 여자들과 어울려 강제로 술을 먹이고 춤을 추는 러시아군인들. 아나톨이 베르벨 말트하우스(외르디스 트리에벨)에게 딴지를 건다. 한편 아래층에서 뜨게질을 하고 있는 부인 일제에게 프리드리히는 위층에 가서 같이 놀아라고 말한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합류하는데….
 

 

 한편 안드레이는 A에게 "포옹하고 싶소. 남은 여생을 위해!"라고 말한다. "전 여기, 당신은 모스크바! 누구도 그런 긴 팔은 없어요."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에게 "해보겠소."라고 화답하는 안드레이.
   내레이션: 소령은 안드레이로 불러달라고 했다. 난 말했다. '전쟁은 끝났어요.' 오랫동안 그는 나를 응시하다 말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전쟁을 위해 울어대요.' 아무것도 없다고, 개인이든 국가든 순환을 멈출 수 없다고, 죽음 외에는!
   모두들 오랜만에 춤을 추면서 흥이 무르익어 갈 무렵, 한 병사가 음악을 바꾼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난 너와 사랑에 빠졌어"라는 곡에 맞춰 안드레이는 여인과 같이 춤을 춘다. 
   프리드리히가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이라는 책을 얼른 난롯불 속에 집어 던진다. 
   "소련 연방은 개발을 시작했소. 미래가 말해 줄 거요." 안드레이가 말한다. "조국을 사랑하시는군요. 꼭 자신을 사랑하듯. 어머니가 한번은 말했죠. 내가 피아노 치는 남자와 결혼했으면 하고요." "오늘이 어땠을까 모두 궁금해 했소. 난 아니오. 결코. 이런 경험을 원치 않았소." "왜죠?… 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제가 말씀드리죠, 안드레이." 

 

 

   "전쟁은 단어를 변화시키죠. 사랑 본래의 의미는 더이상 없어요. 그리고 아직도 제가 원하는 건 남편이 남기고 떠난 여자를 찾아주는 거예요." 갑자기 자리를 뜨는 안드레이를 포옹하고 뜨거운 키쓰를 하는 여인!
   내레이션: 우리 여자들은 성공해야 했다. 하지만 당분간이다. 지금 잠시만 괜찮을 뿐이다.
   침대에 누워있는 안드레이에게 차를 끓여주기 위해 일제의 방으로 온 여인. 일제 호흐의 딸 렌첸(스텔라 쿤카트)만 퍼즐게임을 하고 있다. 반야는 일하러 가고 없다는데 일제는 음독자살한 남편 프리드리히를 부둥켜 안고 통곡하고 있지 않은가. 
   내레이션: 게르트, 기억 나? 화요일이었다. 우린 송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나비는 구름처럼 에워쌌고 당신은 각각의 이름을 알았다. 푸른부전나비, 멧노랑나비, 불새나비, 호랑나비 그리고 훨씬 더 많이. 하나는 길에서 빛났다. 노랑 파랑으로 장식했지. 당신은 '신부나비'라 했다.
   이때 장면은 여인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계속되는 내레이션: 난 너무 많은 걸 겪었다. 지나칠 정도로, 소령은 모든 걸 잃었다. 빌어먹을 러시안 이상주의자!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보고싶겠지. 소련 신봉자! 하지만 그가 좋다. 그보다 많이 그가 좋다. 아주 많이."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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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여인 (A Woman in Berlin)' (3)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X)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

강간과 약탈은 국가 전체를 흔드는 전략

 

 

 

(지난 호에 이어)

   미망인이 이 집이 마치 들락날락 하는 기차역 같다고 투덜거린다. 이때 무솔리니가 교수형을 당한 소식이 들린다. [註: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는 1945년 4월 28일 게릴라에게 사로잡혀 다른 측근들 그리고 그의 정부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총살당해 죽었다.]

   A 내레이션: 안드레이 소령은 기뻐서 떠났고 그때 아나톨 대위가 나타났다. 우두머리 수컷 둘을 중간에서 만날 때는 죽을 것같이 두려웠다. 소령은 날 강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의 뜻으로 그에게 맡기고 그의 처분을 따랐을 뿐… 창녀? 아마도 인생에서 한 번 만났을 뿐이다. 사람들은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냐구? 나쁘다는 뜻이다." [註: 아마도 매춘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대가 없지만 평화로운 상황에서는 절대 이런 상황에 있지 않을 것임을 인정하고, 합의된 성 관계는 매춘과 비슷하지만, 전쟁 상황에서는 도덕적으로 용인된다는 그런 뜻이 아닐까…]

   어느 날 물을 길러 길거리를 걸어가는 A를 부르는 여인이 있다. 바로 친구 엘케(율리아네 쾰러)다. A 내레이션: 엘케의 방문으로 우리는 환호했다. 소령의 당번병이 보초를 서는 동안 평화롭게 그의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좋은 세계다. 여자들이 오랜만에 남편 얘기, 매독에 대한 얘기, 그리고 성생활에 대한 얘기 등을 나누며 가장 중요한 것이 뱃속이라며 파안대소를 하고 떠든다.

   장면은 안드레이 소령이 새 임무에 관한 서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A가 어디로 갈 거냐며 계속 보호해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어디든 나를 필요로 한다고 대답하는 안드레이.

 

 

   내레이션: 특별한 저녁을 같이 보냈다. 즐거운 대화… 그는 감탄했다고 했다. 다른 아무것도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독일인과는 달리 러시아인은 배운 여자를 알아줬다. 그러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미망인이 A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찾아온다. 러시아군이 통역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내 마을에서 독일군이 모든 아이를 죽였다. 간단히 칼로 찔렀다. 아이 다리를 잡고 벽에 던져서 머리를 박살냈다." 여인이 묻는다. "들었나요? 아니면 봤나요?" 직접 봤다고 말하는 병사. 그의 눈에는 독기가 서려있어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이에 서둘러 도망치는 여인. 뒤에 대고 '속옷을 벗어놓고 왔냐?'며 희롱하는 러시아군.

   거리로 뛰쳐나온 A는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광경을 목격한다. 노파가 굶주림에 허덕이며 음식 쓰레기통을 뒤지고, 또 한 여자는 러시아군에게 끌려가면서 가족이 있다고 말해달라고 애걸하고…

   가다가 안드레이를 만나지만 부하가 부르는 바람에 "구 독일은 끝났다"는 말을 남기고 가자, 홀로 남은 A에게 옆에 있던 마샤가 "그에게 손 벌리지마!"라고 말한다. A는 "그가 내게 왔지, 내가 가지 않았어"라고 말하자 꺼지라고 욕을 하는 마샤. "왜?"라고 묻자 "아내 자격이 안 돼."라고 대꾸하는 마샤. 질투심에 가득 차 금방 죽일 듯한 태도다.

 

 

   이때 방송이 나온다. "베를린 시민 여러분. 1945년 4월 30일 총통(아돌프 히틀러)이 자살했습니다. 그에게 맹세한 여러분의 충성심은 버림받았습니다. 여러분! 총통의 마지막 명령은 베를린 방어이지만 전체 상황이 무기와 탄약의 부족으로 더 이상의 싸움은 절대적으로 무의미합니다. 싸우는 매 시간마다 베를린 시민과 부상자의 고통이 연장될 뿐입니다. 이제부터 '베를린 전투'로 인한 죽음이나 희생은 없습니다. 소련군대의 최고 명령에 합의하여 모든 전투 작전을 즉각 중단합니다. 저는 '헬무트 바이틀링' 포병장군이며 베를린 방어사령관입니다."

   [: 베를린 방어사령관 헬무트 바이틀링(Helmuth Weidling, 1891~1955) 장군은 430 아돌프 히틀러의 자살 51 요제프 괴벨스의 자살 사실을 52 소련군 바실리 이바노비치 추이코프(Vasily Ivanovich Chuikov, 1900~1982) 중장에게 알리고 협상을 했다. 추이코프 장군은 '무조건 항복' 문서로 작성하게 했으며 내용이 당일 아침에 그대로 발표되었다.

   바이틀링 장군은 소비에트 연방 대법원의 군법 판결에 의해 25 형을 선고 받고 블라디미르 KGB감옥에서 복역 1955 1117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한편 추이코프 장군은 1940 12월에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1887~1975) 국민당 총수의 항일전쟁을 돕기 위한 군사자문으로 파견되었던 인물이다. 추이코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바그라티온 작전 등에서 대승을 거두어 1944, 1945 번에 걸쳐 소련 최고의 영웅 타이틀을 수상하였으며, 1955 소련군 원수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 영화가 올리버 히르슈비겔 감독의 '다운폴(Downfall, 2004)'이다. 영화에 율리아네 쾰러(Juliane Kohler·59) 히틀러의 정부인 에바 브라운 역으로 출연했다.]

 

 

   이때 장면은 여인들의 절망에 가득 찬 모습을 천천히 살피고 지나간다. 반대로 "8군단 붉은 군대 병사 장교 동지들! 오늘 아침 베를린 수비대가 항복했소. 베를린은 패했소." 이에 거리는 온통 승리를 축하하는 환호 속에 러시아 국가를 부르며 춤추는 러시아군 일색이다. 안드레이, 몽골병, 마샤 등도 마찬가지다. 마샤는 승리를 축하하는 거리에서 냅다 안드레이에게 달려가 진한 키스를 퍼붓는다.

   장면은 생선 넙치 두 마리를 갖고 여자들 아파트로 간 러시아병들이 "한 마리는 히틀러, 다른 한 마리는 괴벨스"라고 말한다. 이 파티 자리에서 안드레이가 피아노를 연주한다.

   내레이션: 항복이다. 오랜 시간 끝에 전쟁은 끝났다. 우리 여자들이 얼마나 기다렸나… 하지만 지금 아주 쓰라린 패배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처참함을 얘기했다. 어떤 섬뜩하고 사악하고 위협적인 기운이 감도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하기 싫다.

   안드레이가 일기를 쓰고 있는 A에게 와서 다 끝났냐고 묻는다. 여인은 "불행이 키운 상상력이 두렵다"고 대답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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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120973
9208
2024-11-07
'베를린의 여인 (A Woman in Berlin)' (2)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X)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

강간과 약탈은 국가 전체를 흔드는 전략

 

 

   (지난 호에 이어)

드디어 지휘관인 안드레이 리브킨 소령(유제니 시디킨)을 찾아간 A는 "어제 당신 군인들이 아파트를 급습해 강간을 당했다"고 하자 "들은 바 없다"고 말하는 안드레이. "도우는 게 당신의 의무"라고 말하는 여인. "누구를 도우는 거냐?"고 묻는 소령에게 "그 여인은 바로 자기!"라고 말하는 A.[註: 치오치아라의 '마로크키나테(Marocchinate)' 사건과 같이 지휘관으로서 성폭력을 묵인했지 싶다. 여인은 더 이상의 강간을 당하지 않기 위해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것을 제안한 것이다.]

   어느 날 아나톨 대위(로만 그리브코프)에게 아파트 난간에 있는 폭발물을 치워줄 수 있느냐고 묻는 여인. 그는 독일어로 "당신과 나, 오늘 밤!"이라고 말하자 이에 응하는 여인 ― "당신과 나. 그것 간단하지. 그 순간 맹세했다. 그들 외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뭐든 상관없다."

   어느 날 안드레이 소령이 A가 머물고 있는 일제 호흐(울리케 크룸비겔), 프리드리히 호흐(롤프 카니에스) 부부가 사는 아파트를 방문한다. 수소문해서 찾았단다. 사령관은 없고 안드레이 소령이 대대장을 맡고 있단다.

   대대장의 당번병으로 몽골인이라고 조롱받는 병사(빅토르 잘사노프, 부랴티아 Buryatia 공화국 출신 배우. 부랴티아는 남쪽으로 몽골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동쪽에 위치한 러시아 연방국)는 여군인 마샤(알렉산드라 쿠릴코바)까지 업수이 여긴다. 마샤는 안드레이 소령을 자기가 책임진다고 말한다. 아마 짝사랑을 하는 모양이다.

   느닷없이 아파트에 있는 안드레이를 찾아온 마샤는 A를 보고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질투심이 났는지 그에게 주려고 갖고 온 비누를 목욕탕에 냅다 내던지고 "베를린은 우리 꺼야!"라고 내뱉곤 뛰쳐 나간다.

   욕실을 나온 A가 침대에 가서 옷을 벗지만 안드레이는 그냥 밖으로 나간다.

 

 

내레이션: "강간은 계속됐다. 그들은 모든 곳 모든 집에 있었다. 우리는 러시아다. 그들에게 봉사하는… 그리고 여성들은 침묵해야 한다. 아니면 우리를 원하는 남자는 다신 없을 것이다. 불쌍한 독일…"

   러시아군이 고함을 지른다. "베를린은 거대한 창녀촌이야! 이것 봐! 전부 갖고 있어! 보석, 돈, 집! 그런데 전쟁을 일으켜? 나쁜놈들!" [註: 여기서 '창녀촌'이라는 말 속에는 '전리품'으로서 '강간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창녀를 강간하면 무죄'라는 남성우월적 의식이 깔려있다.]

   내레이션: 그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가끔 무엇이든 버텨야 했다. 몸은 굴복하지만 마음은 굴복하지 않는다. 난 잘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러시안은 좋아지고 있다.

   밤에 아나톨이 아파트로 찾아온다. 아나톨은 집시출신이다. 자기 좋을 대로 왔다가 가버린다. 분명 보호자는 아니다. 잘못된 선택이지만 그를 웃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A.

   한편 다락방에 숨어있는 독일패잔병(제바스티안 우르젠도브스키)이 묻는다. "총통이 우리를 포기했다고 생각해?" 피난민 애인(안네 카니스)이 "아니 절대로!"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그 독일병은 권총을 차고 음식을 구해오겠다며 어디론가 나서는데….

 

 

   이즈음 한 미망인(아이알엠 헤르만)이 강간 당한 얘기를 한다. 우크라이나 여자 것은 이만큼 큰데 내 것은 쬐끄만 하다고 칭찬했다고 말해 일행이 박장대소를 한다. 하지만 입냄새가 나더라고 말하는데 문노크 소리가 들린다. 안드레이 소령이 찾아온 것이다. 몽골인이 베이컨, 소시지, 설탕 등 음식물을 잔뜩 갖고 왔다.

   내레이션: 다음날 아침, 근처의 전투는 격렬했고 소령은 부하들과 함께 왔다. 미망인은 고기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꿀벌처럼 활기찼다. 우리의 국민돌격대는 투항 준비를 했다. 정말 기쁘다. 하지만 모두는 아니다.

   호흐 부부집에서 안드레이를 비롯한 러시아군들이 전투에서 독일군을 무찌른 이야기를 하며 병사, 장교 모두들 겁먹고 도망쳤다고 하자 그 중 한 젊은 장교가 이건 주인에게 모욕을 주는 무례한 언사라고 나무란다.

   다른 한 명이 코카서스 산맥에 대해 얘기하며 "태양, 산, 푸른 하늘, 아름다운 춤과 여성! 포도같이 달콤하죠!"라고 자랑하자 A는 "푸쉬킨이 그곳으로 망명했죠."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 러시아군은 푸쉬킨 스타일이라며 노래를 부르고 자기는 아내와 아이들을 원한단다.

 

 

   안드레이가 여인에게 파시즘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파쇼에서 유래, 고대 로마의 막대기 묶음 결속을 뜻한다"고 대답하자 "우리 안주인은 현명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군인들. 미망인이 독일인과 러시아인의 우정을 위해 잔을 들고 건배를 제의하는데….

   이때 바깥에서 무장한 독일군이 음식물을 훔쳐갔다며 무고한 시민을 폭행하는 부하를 안드레이가 흠씬 두들겨팬다. 몽골인 당번병이 달려가 상관을 말리지만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A가 일행에게 살짝 말한다. 저들이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그때 안드레이가 갑자기 여인에게 키스를 하며 으스러지게 포옹하는데…

   A가 독일패잔병이 숨어있는 다락에 올라가 얼른 자리를 피하라고 말하자 독일패잔병은 시베리아로 가긴 싫다고 말하는데…. 안드레이 소령이 누구든 숨겨준 자는 총살형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몽골병이 몽골 특유의 창법으로 노래한다. [註: '흐미 또는 회메이(Khoomei)', 일명 '쓰로트 싱잉(throat-singing)'이라는 창법이다. 숨을 길게 내쉬면서 성대를 울려 입술 모양을 통해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몽골인의 독특한 기교의 전통 창법으로 마치 'Jew's Harp' 연주처럼 들린다.]

   내레이션: 며칠 동안 소령이 왔다 갔다. 모두의 보호를 의미하는 것이다. 양초, 담배 그리고 많은 선물을 주었다. 어떤 미망인은 얼른 찬장에 숨겨두었다.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많은 러시아 남자들은 산타 클로스를 좋아한다. 왜 우리 여자들은 막을까? 소령은 유창하게 러시아어로 말했다. 내가 알고 싶은 것보다 많이 말해주었다. 그의 은행 계좌, 부모, 형제의 이름도. 전쟁은 격렬했다. 우리 남자들이 시베리아로 추방되는 동안에도 많은 여성들은 보호자를 찾았으나 남겨진 여인들을 위해 침묵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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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손영호
120649
9208
2024-10-25
‘베를린의 여인 (A Woman in Berlin)’ (1)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X)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 
강간과 약탈은 국가 전체를 흔드는 전략

 



   ‘베를린의 여인(A Woman in Berlin)’은 2003년에 독일에서 익명으로 출간된 수기집을 바탕으로 2008년 독일의 막스 페르베르뵈크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원제는 “익명: 베를린의 한 여인(Anonyma - Eine Frau in Berlin)”인데, 영국에서는 “익명: 베를린의 함락(The Downfall of Berlin - Anonyma)”으로 소개되었고 2009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첫 상영되었다. 
   콘스탄틴 영화사 배급. 출연 니나 호스, 유제니 시디킨. 율리아네 쾰러. 음악감독은 폴란드 출신 쯔비크녜프 프라이스네르(Zbigniew Preisner•69). 러닝타임 126분.
   얘기 시작 전에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도 간략히 나오지만 전체적인 이해를 위해 앞에서 설명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영화를 안 보신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양해를 바란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였던 익명의 주인공은 ‘베를린 전투(The Battle of Berlin)’ 중간부터 연합군이 승리할 때까지인 1945년 4월 20일 ~ 6월 22일까지 2개월여 동안 노트에 쓴 일기를 바탕으로 1954년에 미국에서 영어로 첫 출간을 하고 5년 후인 1959년에 독일에서도 출간했다. 

 

 

   그러나 익명의 수기집은 독일 여성들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출판 금지 당하여 익명의 저자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발간하지 말도록 조치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수치심을 자극하는 ‘불편한 진실’을 들춰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녀가 2001년에 스위스 바젤에서 90세로 사망한 후 2003년에 독일에서, 2005년에 미국에서 또 익명으로 새로이 출판되었는데, 세상이 달라져서 단박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7개 국어로 번역되기에 이르렀다. 기자들의 끈질기고 집요한 추적 끝에 저자는 나치시대에 독일 신문, 잡지 기자였던 마르타 힐러스(Marta Hillers, 1911~2001)로 밝혀졌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인 ‘익명의 여성’이 일기를 읽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1945년 4월 26일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러시아 군대는 베를린을 포위했고 독일 의회당까지 거리 곳곳에 있었다. 구름에 가린 태양을 당신이 봤을 그 날, 버려진 정원에서는 라일락 꽃향기가 퍼졌으리라. 어디부터 시작할까? 적절한 단어는 뭘까? 난 기자이고 12개국을 여행했다. 모스크바, 파리와 런던에서 살았었고, 파리와 런던이 즐거웠다. 그러나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이곳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註: 그녀는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수학했다.]

 


   폐허가 된 거리를 보여주던 화면이 타이프라이터를 치고있는 주인공으로 디졸브된다. 그리고 ‘익명의 여인’의 내레이션이 계속된다.
   “내 이름은 중요치 않다. 난 조국의 운명을 믿었던 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 의심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의 약혼자인 게르트(아우구스트 딜)가 말한다. “바르샤바, 브뤼셀, 파리… 끝없는 승리야. 러시아는 지도력이 없어. 재정비될 때까지 모스크바에 있을 거야. 전쟁이잖아.… 방해해서 미안해.”
   내레이션은 계속된다. “게르트는 떠났고 구두소리는 집안을 울렸다. 옳다는 걸 확신했고 모두 같은 공기를 숨쉬며 우리는 취해갔다.”
   장면은 파티장. 독일 기자인 ‘익명의 여인’(니나 호스)이 모두에게 묵념을 제안한다. [註: 이후 편의상 A라고 칭하기로 한다.]

 


   그리고 장면은 퇴각하는 독일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포격 속에 도망치는 사람들이 무수히 죽는다. 그 현장을 지켜보던 A가 다른 사람들을 선도하여 지하대피소로 피신한다. 약사, 음악가 등 중산층의 애달픈 삶을 모두 기록하여 약혼자 게르트에게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는 A!
   폐허가 된 거리에 러시아 홍색군의 탱크가 진입한다. 확성기로 모든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고 방송하는 러시아군. 지하에 숨어있는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이 소리를 다 듣고 있다. 이윽고 독일군과 러시아군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마지막 저항을 하는 독일군을 무찌르고 드디어 해방군으로 도시를 장악하는 러시아군.
   지하대피소로 들어온 러시아군이 민간인들을 일일이 조사하면서 여자들에게 “전쟁 끝! 여자!”라고 독일어로 몇 단어를 말하며 나이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강간을 하자, A가 러시아어로 “뭘 원하느냐? 당신들은 왜 원하지 않는 여자들을 데려가느냐?”고 묻는다. 

 


   배고픔에 지친 여자들이 여기 지하에 묻히기 싫다며 밖으로 나간다. 손수레에 감자가 수북히 쌓여있는 것을 보고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여인들.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주인공은 어린 여자를 겁탈하려는 러시아군을 유인하여 다른 곳으로 데려가 그를 철창에 가두고 밖으로 나와 상급지휘관을 찾는데, A도 결국 두 명으로부터 윤간 당한다. 


   A의 내레이션: 어느 미망인이 머물 곳을 제공했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놀랍게도 멀쩡했다. 난 받아들였다. 몇 발자국이면 작업실이고 옷, 책, 노트 등을 얻었다. … 좀 더 주변을 살펴야 했었다. 그러나 결코 모든 걸 볼 순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흘러간다. [註: 모든 걸 볼 수 없었다는 말은 사실 그 집의 다락방에 독일패잔병이 숨어 있었고, 이로 인해 나중에 파국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군인들은 점령자로서 승리를 만끽하고 밤낮으로 아파트를 뒤지는데, 베를린 시민들은 특히 여자들은 목매 자살하거나 총으로 살해되는 등 누구도 모면하지 못했다. 이제 모든 감정이 죽었다. 
   내레이션: 그들은 어디에 있지? 우리의 구세주? 최고의 군대? 전쟁과 죽음은 남자들의 일이었다. 그 시절은 끝났다. 젠장할 러시아인! 장교, 장군, 사령관 등 상위로 가야 한다. 그리고 나를 선택할 사람을 정해야 한다. [註: 전장에 나가는 남성은 차라리 죽임을 당할지언정, 강간처럼 정신을 말살하는 류(類)의 범죄를 당하진 않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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