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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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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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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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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독일총리 앙겔라 메르켈을 보면서

 

며칠전 미국에 있는 친구가 보내준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속에는 하늘과 땅 그리고 밤과 낮같이 너무나 다른 세계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된지 7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변함없이 부정 부패 비리 의혹들이 국가와 사회를 온통 지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에 대하여 진절머리가 날 것이다.

한국의 유명한 기업인이 죽기 전에 남긴 말이 생각난다. 한국의 예술인은 대한민국을 가장 빛내고 있으며, 다음은 기업인, 그 다음은 공무원이며 그리고 제일 꼴찌는 정치인이라고 했다.

특히 한국 정치인들은 정권과 권력이 바뀌면 우선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것보다 정치보복과 부정과 비리가 최우선이 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크고 작은 부정과 비리 그리고 의혹까지 정권임기 5년 동안 끊임없이 터진다.

대한민국에는 결코 깨끗하고 청렴한 정부와 권력자는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해볼 때가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도 나라를 제일 먼저 사랑하고 국민을 생각했던 정권과 권력자는 없었다. 그들은 입만 열면 정의 양심 진실 그리고 청렴을 국민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한 권력자는 결코 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이 끝나면 열광의 박수보다는 오히려 증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감옥으로 가는 한국 대통령들도 있었다. 또 한국의 대통령들은 임기를 마치면 국민의 혈세로 궁전 같은 집을 짓고 수백 억원의 기념관까지 짓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퇴임 후에도 수명의 보좌관을 거느리는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권력자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런 모습은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 아닌가? 그리고 정권과 권력을 잡으면 그들의 친인척들이 제일먼저 곳곳마다 파고들어 부정과 비리의 온상을 만들기도 한다. 독일은 인구 8천만을 갖고 있는 동서로 분단되었던 나라였다. 이제는 통일된 국가이며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자랑하는 국가이다. 국민의식 수준도 높다.

한국은 남북으로 분단된 지 76년이 되었지만 통일은 아직도 요원하다. 다행히도 고 박정희 대통령의 덕택으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독일보다 고등교육을 받은 국민이 훨씬 많은 교육강국이며 IQ 역시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국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국민 의식수준은 아직도 교육과 IQ에 비하면 탐욕과 이기심만 강해진 것 외에는 변화된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100년 전에도 도산 안창호 선생은 정직하고 정의로운 한국 국민성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결코 희망과 비전이 없다고 했다. 오늘의 한국을 바라보면 여야 정치인들은 먼저 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 정권과 권력유지가 최우선이 되고 있다.

 한국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부채는 곧 1750조원 될 것이며, OECD 37개 국가 중에 국가부채증가 속도가 남미의 칠레(Chile) 다음으로 빠르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재정악화 속도가 방치된다면 IMF보다 훨씬 큰 재정위기에 당면하여 결국 빚 더미에 파묻혀 버리는 대한민국이 된다고 통탄하는 경제학자들의 한숨소리와 이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수천만 국민과 수백만 해외동포들도 있다.

그러나 한국 국민성이 정직하고 정의롭고 청렴한 국민이 된다면 독일총리 앙겔라 메르켈 같은 대통령, 장관, 정치인 그리고 학자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과 국민이 될 수 있겠다고 기대하면서 아래 글을 여기에 함께 올리는 바이다.

 

‘독일은 6분간의 따뜻한 박수로 메르켈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독일은 그녀를 선택하였고, 그녀는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다. 그들의 나라에서 18년 동안을 통치하는 동안 부정과 비리 그리고 의혹도 전연 없었다. 그녀는 어떤 친척도 정부에 임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하지 않았고 자신의 앞선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 찍히려고 베를린 골목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인물이 "세계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성(Angelika Merkel)이며, 6백만 명의 남성에 해당하는 여인으로 묘사된다. 2015년 타임지는 메르켈 총리를 자유세계의 총리로 선정했으며,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 1위로 선정했다.

메르켈은 독일 보수정당 기독교민주당의 지도부를 떠나 후임자들에게 뒷일을 넘겼고, 독일과 독일 국민은 더 나아진 삶을 살고 있다.

독일의 반응은 국가 역사상 전례가 없었다. 도시에 살고 있는 국민 전체가 집 발코니로 나갔고, 인기 시인, 연주자들 및 기타 시민단체들도 없는 가운데, 6분 동안 따뜻한 열광의 박수를 보냈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달리, 찬사, 위선, 공연, 북소리는 없었고 아무도 "글로리 메르켈(Glory Merkel)"을 외치지도 안았다.

독일은 그녀가 전 동독 출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로 뭉쳤고, 패션이나 빛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부동산, 자동차, 요트 및 개인 제트기를 사지도 않은 물리학자인 독일 지도자에게 오직 작별을 고하였다.

그녀는 독일총리를 위임한 후, 그녀의 총리직를 떠났다. 그녀의 친척들은 그들이 자기 나라에서 엘리트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18년 동안 한결같이 그녀는 화려한 옷을 갈아 입지 않았다.

 

‘하나님은 조용한 지도자와 함께 계셨습니다. 독일의 위대함이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메르켈에게 물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을 주목 했는데, 다른 옷이 없는지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모델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공무원입니다.”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 도우미가 있는지?”

그녀의 대답이었다.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는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남편과 저는 매일 이 일들을 우리끼리 합니다.”

그러자 다른 기자가 물었습니다. 누가 옷을 세탁합니까? 당신이나 당신의 남편?

그녀의 대답이었습니다. “나는 옷을 손 보고, 남편이 세탁기를 돌립니다. 대부분 이 일은 무료 전기가 있는 밤에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파트와 이웃 사이에는 방음벽이 있어, 이렇게 함으로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그녀는 "나는 당신들이 우리 정부 일의 성과와 실패에 대해 질문하여 주기를 기대합니다."고 말했다.

메르켈은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녀는 독일 총리로 선출되기 전에도 이 아파트에 살았고, 그 후에도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며,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도 없다.

‘이 여인이 바로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총리 앙겔라 메르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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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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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1
음악이 있었던 지난날

 

63년 전 일이다. 나는 충주성공회(Anglican Church) 마가(Mark) 신부님의 도움으로 서울 정동에 있는 대한성공회에 속한 니콜라 호스텔에서 기숙할 수 있었다.

남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는 니콜라 호스텔이며, 여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는 성모관(St. Mary's Hall)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기숙을 하게되면 큰 재정적 부담없이 적은 생활비로 공부하고 기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정형편이 좋은 친구들은 학교 근처에서 하숙하며 편하게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니콜라관에 기숙할 수 있는 조건은 성공회 교인이 되고, 주일 미사 때에는 주교나 신부님을 돕는 복사(Altar Server) 일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성공회의 교리를 열심히 공부하고 영세(Baptism)와 견진(Confirmation)까지 받은 성공회 신자가 되었다.

주일 미사 때는 복사를 주로 맡았다. 특히 미사 때 Bach /Gounod 그리고 Schubert's Ave Maria 를 Pipe Organist가 항상 연주하기 때문에 주교나 신부님의 강론보다도 어쩌면 음악을 듣는 미사 시간이 오히려 기다려지기도 했다.

 50여 명의 기숙사생들은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대전, 인천, 춘천 등에서 온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었다. 마침 나는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과 Roommate가 되어 클래식 음악에 대하여 듣고 배우는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1959년 봄 군입대 후 나는 xx사단 최전방에서 1년 6개월을 보냈다.

 그곳에서 동료로 만난 친구 역시 성악을 공부하였던 학생이었는데, 저녁근무를 마치면 그가 종종 들려주었던 오페라 아리아의 당시 대학생들에게 유명했던 푸치니, 토스카 중에서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과 라보엠(La Boheme) 중에서 "그대의 찬손(Che Gelida Mannia)"을 불러주었으며 때로는 우리 가곡 보리밭과 선구자 등도 들려주곤 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Opera aria를 들을 때면 그때 그가 열정적으로 불러주었던 음악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리고 졸업 후 1964년 10월4일 서독파견 제2차 루르탄광 광부로 떠났다.

그곳에서 한달 쯤 지난 후 내가 살고 있는 작은 광산촌은 온통 크리스마스 준비에 분주한 듯 거리마다 가로등들이 크리스마스장식으로 반짝이며 때로는 Bach/ Gounod의 Ave Maria 와 Pietro Mascagni의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 그리고 Handel's Messiah 와 Largo(Ombra mai Fu)등이 들려오곤 했다.

그리고 작은 맥주집까지도 동전을 집어넣으면 자기가 듣고 싶은 음악들을 선택하여 듣곤 했다. 내가 주점에서 자주 듣던 클래식 음악은 타이스의 명상곡 (Massenet's Meditation from Thais)과 슈만의 트로이메라이(Schumann's Traumerei), 생상스의 백조(The Swan / Saint -Saens), 사라사데의 지고이네르바이젠(Sarasate's Zigeunerweisen), 쇼팽의 녹턴(Chopin's Nocturne) 그리고 베르디의 나부코(Nabucco) 히브리노예들의 합창(Verdi's Chorus of The Hebrew Slaves )등이었다.

하루는 술집주인이 너는 왜 이곳에 오면 항상 클래식 음악만 듣느냐고 묻는다. 너의 나라에도 클래식 음악이 있느냐? 이런 질문까지 받았지만 나는 클래식 음악이 무척 좋아서 듣는다고만 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광산촌 너희 맥주집에서 언제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유럽의 각 나라에서 온 탄광 노동자들만이 함께 살고 있는 광산촌이라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무척 당연하였다.

그러나 때로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든 질문은 너희 나라에도 ‘자전거’가 있는가? 이곳 탄광 노동자들이 누구나 매일 타고 다니는 것이 자전거였기 때문에 한국에도 자전거가 있는지 그들에게는 퍽 궁금했을 거라고. 더욱이 한국이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그런 질문을 할 때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이들에게 그처럼 보잘것 없는 나라로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 놀라게 했고 슬프게 했었다.

만약 그들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오래 전부터 그들의 나라를 질주하고 있는 한국 차들을 수없이 보고 있을 터인데… 그리고 지금은 한국을 어떤 나라로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에 대하여 일본의 식민지였었으며, 1945년 해방은 되었지만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작은 나라,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한국인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나를 너무나 슬프게 했었다.

언젠가는 한국인들도 잘사는 국민이 되어 절대로 무시나 외면받아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마음속으로 외치며, 통일된 한국 국민 모두가 잘살고 행복한 국민이 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했다.

내가 루르탄광에 도착하던 해, 1964년 12월10일 박정희 대통령이 루르탄광 함본광산을 방문하고 여러분! 우리의 먼 후손을 위해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반드시 만들어 놓읍시다. 그리고 간호사들과 광부들을 위해 준비된 연설문을 끝마치지 못한 채 그들과 함께 울어버렸던 그 장면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오늘날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은 20세기에 기적처럼 번영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인류역사에서 보듯이 훌륭한 국가지도자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망과 비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위대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진실을 보았고 경험할 수 있었다.

 2001년 10월에 독일 광산촌을 다시 방문했다. 수많은 한국청년들이 흘린 눈물과 땀방울이 맺힌 석탄광산은 폐광되었고, 나의 기억 속에 있었던 광산촌의 모습은 사라졌다. 지난 57년 전에 경험했던 힘들고 어려웠던 삶의 한 장면을 다시 회상하면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났었다.

이제 2020년은 인류에게 재앙으로 닥쳐온 "코로나19"로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음악들,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 제 9번 합창.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 그리고 비발디 사계 등을 감상하면서 지나간 63년을 회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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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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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8
한국인이 존경하는 스코필드 박사

 

2021년은 스코필드박사(Dr. Frank Schofield 1889-1970)가 한국땅에서 서거하고 서울 동작동국립현충원에 안장된지 51 주년이 되는 해이다. 다행하게도 캐나다한인동포사회에는 그를 기념하기 위한 스코필드박사기념장학회(회장 이창복)가 1999년 Toronto에서 발족하여 스코필드박사의 모교, 구엘프대학교 수의과대학(Ontario Veterinary College, University of Guelph )에 설립된지 22년이 된다.

또한 애국지사기념사업회(회장 김대억)가 2010년 3월15일에 창립되어 매년 스코필드박사와 애국지사들을 추모하는 뜻깊은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애국지사들의 초상화와 책자를 제작 발간하여 토론토 한인회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후세들을 위한 모국역사와 애국지사들에 대한 교육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캐나다 동포들의 활동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1889년 3월15일 영국 워릭서주(Warwickshire) 럭비(Rugby)에서 태어났고, 1907년 18세가 되던 해에 캐나다로 이민 왔다. 1907년에 온타리오 수의과대학(Ontario Veterinary College)에 입학하고, 1911년에는 토론토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 그리고 온타리오 수의과대학에서 수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1964년에 온타리오 수의과대학은 온타리오주 구엘프(Ontario, Guelph)로 이전하고 구엘프대학교 수의과대학으로 병합하였다.

1916년 스코필드박사는 캐나다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of Canada)의 선교사로 병리학교수로 한국에 도착한 후 세브란스 의과대학(Severance Medical School)에서 병리학(Pathology)과 세균학(Bacteriology), 그리고 위생학(Hygiene)과 기생충학(Parasitology)을 가르치고 있었다.

1919년 3.1운동은 민족대표 33인이 주축이 되어 한일합병조약과 일제의 식민정책에 항거하고 한국의 자주독립을 세계만방에 선언하기 위한 한국민족의 비폭력 독립운동이었다.

당시 스코필드 박사는 충청남도 천안 아우네장터에서 3.1운동과 3.5만세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 열사(1902-1920)를 직접 방문하고, 기독교의 믿음과 사랑을 전달하면서 놀라운 신앙심과 용기를 심어주었다고 한다. 그 후 유관순 열사는 1920년 9월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가혹한 일제의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이처럼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국민에게 일본 제국주의의 잔악한 식민정책에 대하여 꾸준한 항의와 국제사회에 한국의 참상을 전달했기 때문에 1920년에는 결국 캐나다로 추방되었다.

1920년에 캐나다로 돌아온 후 스코필드박사는 그의 모교, 구엘프대학교 수의과대학의 병리학교수로 복직하고 후학양성에 매진하였으며, 1924년에 스코필드 박사가 발견한 가축병치료 연구결과는 캐나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크게 인정받아 가장 유명한 수의병리학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스코필드 박사를 기념하며 그의 수의병리학에 대한 연구를 위해 세계수의학자들은 구엘프대학교 수의과대학 주최로 매년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1955년 스코필드 박사는 구엘프대학교에서 은퇴한 후, 195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기독교 선교사로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국민의 어려운 상황을 세계에 알리며, 기금을 모아 주로 전쟁고아들과 가난한 학생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이처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스코필드 박사라고 부르며, 한국국민은 그가 베푼 위대한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며 항상 감사하고 존경한다. 1958년에 스코필드 박사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외래교수로 복직하고 1970년 4월 12일 서거할 때까지 후학을 양성하는데 그의 남은 생애를 모두 바쳤다.

 한국과 한국국민을 위해 바친 그의 공헌과 공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들을 받았다. 1960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1968에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한국을 자기 조국으로 삼고 내가 죽으면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한다(I wish to be buried in Korea)는 말을 남겨놓았으며, 그가 1970년 4월 12일 서거 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Seoul National Cemetery)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이다.

또한 캐나다에서도 스코필드 박사에 대하여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그가 실천한 기독교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헌신에 특별히 감사함을 갖고 있는 Toronto 한인들이 주축이 되어 1999년 7월2일에 스코필드박사기념장학회(Dr.Schofield Memorial Scholarship association of Korean-Canadians)를 발족하고 스코필드 박사의 모교인 구엘프대학교 수의과대학에 설립하였다.

2009년 11월에는 스코필드 박사의 흉상을 서울 유미안에서 제작하여 수의과대학의 신축건물 내에 "스코필드박사와 한국"의 특별관을 개관하여 스코필드 박사와 한국에 관련된 사진들과 유품, 그리고 장학생들의 명단들이 잘 전시되어있다.

이처럼 대한민국 자주독립을 위해 온 생애를 바친 그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위대한 공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스코필드박사기념장학회를 발족하게 된 목적과 의의가 되는 것이며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큰 뜻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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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1
정직한 국민에게는 희망이 있다

 

100년 전 도산 안창호(1879-1938) 선생은 민족개조론을 주장하며 교육으로 훌륭한 인재를 많이 기르고 또 인성교육을 통해 정직하고 정의로운 국민성으로 변화시키는 길만이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고 잃어버린 조국을 다시 찾는 길이라고 외쳤다.

 

이제 100년이 지난 후 대한민국은 OECD 34개 국가 중에서 문맹률이 최저이며 대학교육진학률도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교육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장했던 민족개조론으로 정직하고 정의롭고 의로운 국민성으로 변해야 한다고 애타게 외쳤던 한국 국민성은 100년이 지났지만 변화된 것이 없는 것 같다.

 

해방 후 75년 동안 끊임없이 듣고 외쳤던 부정부패비리 청산은 오늘날까지도 국민의 분노와 통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직도 부정직하고 정의롭지 못한 한국 국민성 때문이 아닌가? 반세기전 한국 국민 1인당 소득은 겨우 $70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였을 때에도 부정부패 비리에 대한 분노와 분통의 소리는 들려왔지만, 2020년 현재 한국 국민소득이 약 $34000로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되어 풍요롭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부정 부패 비리에 대한 한국국민의 원성은 진절머리 나도록 들려온다.

 

그래서 한국은 OECD 34개 국가 중에서 부패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가 아닌가? 2018년에는 26만 2815건의 사기사건 등이 발생하였고, 2019년에는 30만3348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매년 25만건 이상의 각종 사기사건이 발생하고 하루 평균668건이 발생하는 세계 제일의 "사기꾼 나라"가 한국이 아닌가 싶어 무척 부끄럽게 생각된다. 만약 도산 안창호 선생이 오늘의 부정부패 비리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분노하고 통탄할 것인가?

 

건국 후 역대정부에서 현 정부까지 모든 대통령후보들이 국민에게 선거공약으로 약속했던 것처럼,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도 대선에서 만약 대통령에 당선되면 인사5대 원칙인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에 관련된 인사는 공직에서 절대적으로 배제하며 어떤 경우든 이5대원칙은 반드시 지키며 실천하겠다고 국민에게 공약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부 고위인사 후보로 지명된 이들 대부분 선거공약 5대 원칙에서 자유로운 공직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부동산투기로 다주택을 소유한 자들 그리고 세금탈루와 위장전입 그리고 석, 박사 논문의 표절 등에서 깨끗한 사람은 결코 볼 수 없는 대한민국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박사논문을 쓰려면 적어도 4-5년 동안 관련된 서적들을 150권-200권 이상 읽어야 쓸 수 있는 것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고 남이 수년 동안 연구하고 쓴 논문을 표절해 학위를 받은 경우는 너무나 뻔뻔한 사기행위가 아닌가?

 

이런 부정직하고 비양심적인 행위는 역대정부에서도 항상 있었던 현상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취득한 화려한 학력 덕분으로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 또는 정부 고위공직자가 되는 한국정치인들이 너무나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보인다.

 

국민에게 절대적으로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까지도 이처럼 도덕과 윤리가 퇴폐되어 오직 사리사욕으로 병든 이기주의자가 되고 기회주의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100년 전에 안창호 선생이 정직성과 진실성 그리고 정의감이 부족한 한국 국민성은 반드시 새롭게 개조되고 변화되지 않으면 절대로 한국 민족에게는 희망과 비전을 볼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내가 54년 동안 살고 있는 캐나다 한인동포사회 역시 이민초기부터 불거졌던 크고 작은 사기사건으로 한인동포사회에 큰 상처를 주기도 했으며, 동포들을 부끄럽게 만든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이처럼 빈번히 일어나는 각종 사기사건으로 인하여 상처받고 상실된 한국인의 정직성과 신뢰성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동포들도 도산 안창호 선생이 100년 전에 애타게 외쳤던 것처럼 정직성과 신뢰성 그리고 정의롭고 의로운 국민성으로 개혁하고 변화하지 못하면 100년 200년 300년이 지나도 큰 희망과 비전을 볼 수 없을 것으로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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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7
내가 본 특별음악회

 

 지난 11월16일 저녁 Meridian Arts Centre에서 공연하였던 특별기념음악회는 스코필드박사기념장학회 창립20주년(1999-2019)과 토론토한인합창단 창단 40주년(1979-2019) 그리고 3.1운동 100주년(1919-2019)을 기념하기 위한 합창공연이었다. 


금번 음악회공연에 참석했던 1000명이 넘는 관중 누구에게나 특별한 감회와 감명을 주었던 공연이었다는 말을 금번처럼 많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미리 준비된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와 O! Canada 그리고 삼일절노래를 다 함께 우렁차게 불렀으며 George Frideric Handel의 "나의 조국 영원히 빛나리라" 그리고 안병원 작곡 최영섭 편곡 "우리의 소원"을 부르면서 75년 동안 분단된 우리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우리동포들에게는 특별한 감명과 감회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캐나다 주류사회에서 잘 알려진 동포 Pianist "Jeanie Chung"의 Beethoven's Fantasia for Piano 연주는 많은 갈채를 받았으며 또한 안익태 작곡 "한국 환상곡" (Korea Fantasy for Chorus and Orchestra)과 최성환의 아리랑(Arirang), 그리고 김기영의 고향의 봄과 산촌 합창 환상곡 역시 동포들에게 많은 감명과 감동을 주었다.


이처럼 성공적이며 감명적인 합창연주회를 우리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는 항상 합창단원들과 지휘자, 단장 그리고 이사장의 피나는 노력과 헌신적인 희생이 없이는 결코 이룩할 수 없는 결과라고 믿는다. 


특히 열악한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난 40년 동안 끊임없이 정기공연을 통해 캐나다 주류사회와 동포사회를 위해 Korean-Canadian의 훌륭한 합창공연을 들려 준 토론토한인합창단(Toronto Korean-Canadian Choir)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1979년에 어렵고 힘든 이민생활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한인동포들은 캐나다의 수많은 어느 소수민족들 중에서 처음으로 토론토한인합창단을 창단하여 하이든(Joseph Haydn)의 천지창조(The Creation) 와 헨델의 메시아(Messiah )와 출애굽기(Israel in Egypt) 그리고 Mozart의 Requiem과 Brahams의 Requiem 그리고 Mendelssohn의 Elijah와 Beethoven Symphony No 9 합창교향곡 등 다양한 곡들을 지난40년 동안 성공적으로 연주하여왔다. 예술에 탁월한 한국민족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제 토론토한인합창단은 점차적으로 세대교체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젊은 지휘자와 합창단원들이 앞으로 40년 그리고 100년이 될 때까지 발전하며 이끌어 가기를 기대하여본다.


특히 캐나다한인동포사회에는 많은 교회가 있다. 그리고 대형교회들도 많이 있다. 교회마다 성가대 대원들 중에는 합창에 재능을 가진 분들은 성가대나 교회합창단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이제 교회 문을 활짝 열고 그들도 교회뿐만 아니라 한인동포사회와 캐나다 주류사회를 위해 토론토한인합창단과같은 예술단체들에서 합창단원으로 봉사하도록 권하고 격려해야 할 때이다. 그래야만 캐나다한인사회도 발전할 수 있으며 토론토한인합창단 역시 훌륭한 예술단체로 성장하여 캐나다뿐만 아니라 북미에서 제일 유명한 합창단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교회성가대나 교회합창단만을 위해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탁월한 예술재능으로 주류사회나 동포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합창에 재능을 가진 교인들이 있으면 교회목사님들과 담당자들은 캐나다주류사회나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격려하여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특히 캐나다에서 성장하여 교육받고 다양한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한인동포 1.5세, 2세, 3세들도 점차 동포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50년, 60년 전에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민 1세들이 세워놓고 닦아 놓은 예술단체나 봉사단체 그리고 자선단체들을 그들이 더 발전시키며 이끌어가야 할 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캐나다 땅에 정착한 한인들은 오래오래 이 땅에서 다른 민족들보다 더 자랑스럽게 긍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재정적으로 성공한 동포들은 어렵고 힘든 한인예술단체, 봉사단체 그리고 자선단체들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많이 후원하고 지원하여 캐나다에서 가장 훌륭한 한인동포사회를 만드는데 큰 역할과 기여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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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kim
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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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2
또 부정부패, 비리인가?

 16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태광실업 박연차의 돈맛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만큼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부정부패 비리에 대해서는 아주 진절머리가 났었다. 그리고 18대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학력비리와 특혜 논란으로 마치 박근혜 정부를 비리공화국처럼 온갖 욕설과 독설을 퍼붓고 언론과 국민을 선동하여 촛불군중까지 동원하였던 오늘의 문재인 정부를 국민들은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느덧 문재인 정부의 가장 핵심이며 측근인 전 민정수석이며 법무부장관이었던 ‘조국’은 1991년에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의 조직요원이었으며, 열렬한 사회주의 운동가였고 형법학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문재인 정권의 ‘최순실’로 화려하게 등장하여 각종 "부정과 비리의 종합세트"라고 불리어지는 중심에 우뚝 서있는 모습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또한 정부에 신고된 재산만 56억원을 축적한 부르죠아(Bourgeois) 계급에 속하면서도 그가 누려왔던 호화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수저는 꽁꽁 숨겨둔 채 가짜 무산계급(proletarian)으로 둔갑하고, 낡고 녹슨 흙수저만 열렬히 흔들면서 사회정의와 공정 그리고 평등을 입버릇처럼 외쳤던 악성 위선자란 사실에 대하여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온통 분노하며 실망과 좌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는 2017년에 박근혜 대통령을 즉시 구속 수감하라고 검찰을 가장 압박했던 장본인이 아니었던가?

이와 같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온갖 특권과 영광을 누리면서 어떻게 소외된 사회약자들을 위해 평등과 정의 그리고 공평을 그처럼 뻔뻔스럽게 외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부정과 비리로 대한민국을 온통 상처로 얼룩지게 만들어 놓고 도덕성과 진실성 그리고 윤리가 땅에 떨어진 ‘조국’을 대한민국 법무장관까지 임명한 것은 정의와 공정 그리고 평등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의 올바른 선택이었던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런 회의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였다.

만약 미국이나 캐나다였다면 엄중한 준법정신과 국민의 매서운 심판 때문에 본인 스스로 장관임명을 강력히 거절했거나 또는 그런 사람을 장관에 임명한다는 것 역시 원칙적으로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결과로 좌우이념으로 양분된 국민감정은 아직도 시위와 성토로 매일같이 서울광장과 거리를 누비고 있지 않는가?

그뿐만 아니라 자식들까지 장학금 불법수령, 부정입학, 의학학술논문집 제1저자 등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허위 인턴증명서 발급, 그리고 대학총장상과 표창장 위조의혹과 사모펀드 등 14개 혐의로 검찰은 이미 조국 부인과 관련된 친인척들을 전격 구속 기소하였는데, 이런 비리와 부정들이 모두 조국가족과 친인척들이 누려온 특권층 권력형 비리로 진실이 밝혀진다면, 사회적 약자들과 어렵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수백만 한국 청년들은 얼마나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겠는가?

대한민국은 정권이 아무리 좌우편으로 바뀌어도, 특권층과 권력형 부정부패 비리 때문에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에게는 항상 불행과 고통 그리고 좌절감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지만 매년 세계투명성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아직도 세계180국가들 중에서 국가청렴도는 45위 수준이며 OECD 35개국 중에서 29위에 속한 부정부패 비리가 가장 난무하게 지배하는 국가수준에 속해있다.

특히 도덕성과 청렴성 그리고 정직성이 결핍된 이런 특권층과 권력형 비리 때문에 세계인들에게 비쳐진 대한민국은 아직도 자랑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부끄럽게만 보일 때가 많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당면한 최대의 불행이 아닌가?

 2007년에 가짜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박사학위로 한국 교육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신정아 사건 그리고 2019년 최근에는 한인신화로 등장한 미나 장(Mina Chang)의 하바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 가짜 학력과 경력, 그리고 Time 잡지표지까지 조작과 위조로 미국언론들은 물론 미 국무부 부차관보(a Deputy assistant Secretary in the state Department)의 임명까지 취소된 사건으로 미주에서 자라나는 우리 한인 2세, 3세들에게까지 남겨주는 정직성에 대한 불행한 사건이다.

이처럼 캐나다와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인동포들 중에서도 오직 나만의 벼락출세와 탐욕 때문에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많은 미주동포들에게 부끄러움과 상처를 입혀주는 일들은 미주한인동포들이 당면한 또 다른 불행한 일이 아닌가?

이와 같은 이기적인 탐욕과 부정부패 비리의 고질병에서 하루속히 치유되어 해방될 때에 우리는 훌륭한 미주 한인동포사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과 한국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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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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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7
A Special Concert

 


 The Toronto Korean-Canadian Choir(TKCC) and the Dr. Schofield Memorial Scholarship Association of Korean-Canadians(DSMS) jointly going to present a very special concert in order to celebrate the 40th anniversary of the TKCC and the 20th anniversary of DSMS. 


 On this special occasion, I would like to express my deep appreciation to the members of  TKCCand to Mr. Yoon Sang Lee(chairman), Mr. Hae Ung Chang(president) and to Dr. Hoon Mo Kim(conductor) for giving us the opportunity to have this meaningful concert on November 16, 2019. At the same time, we are going to celebrate the 100th anniversary March 1st Movement in 1919 which proclaimed the independence of Korea and the Liberty of the Korean People from Japan.


 On March 1st Movement in 1919, the Korean people demanded their Independence from Japanese colonial rule at mass demonstrations, but the Japanese policemen and military forces brutally tortured and imprisoned approximately 46,000 Korean demonstrators. At that time, the Korean people were suffering under Japanese severe oppression. 


 As a result, Dr. Schofield tried to bring the International pressure on Japan in order to end the Japanese colonial rule in Korea. The March 1st movement in 1919 was an uprising of the Korean people against the Japanese occupation, which was started by 33 Korean cultural and religious leaders. However, Dr. Schofield was hailed as the 34th representative along with these 33 representatives of the Korean people.


 During his stay in Korea, Dr. Schofield not only resisted against the Japanese imperialism and militarism, but also reported and informed the outside world about the Japanese brutal repression and colonial policy against the Korean people. He was also a missionary and an eminent Canadian scholar. 


 Hence, Dr. Schofield has emerged as one of the greatest men in our history. He passed away on April 12, 1970 and was buried at Seoul National Cemetery, "Korea is my eternal home, please bury me in the Korean soil." He was the first foreigner to be interred at Seoul National Cemetery.


 The Dr. Schofield Memorial Scholarship Association of Korean-Canadians was founded in 1999 in Toronto, in memory of Dr. Schofield's great contribution and dedication to the Korean peopl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1919. 


 With our main objective, which is to honor and show our appreciation to his devotion and sacrifice, we instituted DSMS in order to support his alma mater, the Ontario Veterinary College, of The University of Guelph. The Scholarship honours Dr. Schofield's active role in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s well as his academic and medical contributions in the early 20th century.


 Our association is comprised of dedicated board members whose annual contributions have been the backbone of our scholarship fund. To date, we have awarded Dr. Schofield Scholarships to 45 students from the Veterinary College, The University of Guelph. In 2009, The Pan Asia Food Company, and The Sam Jin Global Net Company, both established new scholarship awards for DSMS.


 All past recipients are currently working at many prominent universities and research institutes throughout Canada and the United States. The award is $2500 per student, and $7500 awarded annually to three deserving students who have been recommended by the Veterinary College, of The University of Guelph.


 A new wonderful building for the Veterinary College was completed in 2011, with the addition of the Dr. Schofield -Korea Seminar Room. Under the agreement between the University and Dr. Schofield Memorial Scholarship association of Korean-Canadians, we have displayed a bronze bust of Dr. Schofield, which was sculptured by the Umian Co, of Seoul, South Korea.


 We would like to extend our special thanks to Dr. Prescott and Dr. Jeffrey Wichtel, who have both supported us so much, and have made our endeavors successful. We believe that by encouraging promising students from The University of Guelph, we not only honor and bestow our heritage to our future generation of Korean-Canadians, but also continue to honor and express our gratitude to Dr. Schofield, who devoted his life and sacrificed so much for Korean Independence.


The Board of Directors of the Dr. Schofield Memorial Scholarship Association


 Chang Bok Lee, Young Hee Lee, Hak Sung Kim, Donald Choi, Yoon Sang Lee, Young Ba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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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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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7
토론토한인합창단과 스코필드박사기념장학회 공동 창립축하 공연

 


 3.1독립운동 100주년인 2019년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 특별히 스코필드 박사(Dr. F. Schofield, 1889-1970)가 1916년 캐나다 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of Canada) 선교사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던 해이다. 


이번 공연은, 특히 1919년 3.1 독립운동 때 일제의 포악하고 잔악한 식민정책으로 핍박 받는 한민족의 참상을 세계 방방곳곳에 전달하고 한국의 자주독립을 국제사회를 향해 강력하게 외치며 요구했던 스코필드 박사의 헌신적이며 희생적인 도움에 대하여, 한국 국민의 존경과 감사함으로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모교 The Ontario Veterinary College, University of Guelph에 1999년 7월에 설립한 캐나다스코필드 박사 기념장학회(회장 이창복), 그리고 1979년 9월에 창단해 40주년이 되는 토론토한인합창단(이사장 이윤상)과 뜻 깊은 합동기념공연이다. 진심으로 축하하며 감사하게 생각한다. 


토론토한인합창단(Toronto Korean-Canadian Choir)은 1979년 9월 토론토한인연합교회의 지휘자 박재훈 박사와 성가대원들이 주축이 되어 창단했다. 그리고 1999년까지 박재훈 박사의 지휘로 20년간 매년 정기 공연을 통해 Haydn의 The Creation와 Handel의 Messiah, 그리고 Beethoven Symphony No.9 합창교향곡 등을 캐나다 동포들에게 들려주었다. 


박재훈 박사 은퇴 후, 2000년부터 현재까지 지휘자 김훈모 박사는 봄, 가을 매년 2회의 정기공연을 하고 있다. Handel의 Messiah와 Israel in Egypt, 그리고 Mozart의 Requiem과 Vesperae Solonnes de Confessore, 그리고 Haydn의 Lord Nelson Mass과 Mendelssohn의 Elijah, Vivaldi의 Gloria 와 Gounod의 Messe Solennelle, Brahms의 German Requiem과 Beethoven의 Hallelujah, Pietro Mascagni 의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 등 다양한 합창 명곡들과 한국의 아름다운 가곡 등을 동포들에게 선사했다. 


2019년 봄 정기공연은 Giullo Caccini의 Ave Maria와 Charles Gounod 의 Ave Verum Corpus 그리고 Gabriel Faure 의 Requiem 과 다수의 한국가곡을 공연하였다.


 특히 합창단은 조국광복 60주년과 70주년 기념음악회는, 한국이 낳은 작곡가 안익태의 Korea Fantasy 공연으로 조국광복에 대한 깊은 감회를 캐나다 동포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금년 가을 정기공연은 11월16일(토) Meridian Arts Centre (5040 Yonge Street, Toronto )에서 조국광복에 대한 감격과 환희에 넘치는 아름다운 합창곡을 캐나다 동포들에게 들려 주리라고 기대한다.


이처럼 합창단은 지난 40년 동안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단원들과 지휘자 김훈모 박사, 장해웅 단장, 그리고 이윤상 이사장의 헌신적이며 봉사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을 끝으로, 지난 20년 동안 헌신을 다해준 지휘자 김훈모 박사의 은퇴는 캐나다 동포사회에 남겨놓은 합창단의 아름다운 공연으로 항상 기억될 것이다. 


지난 1960년대에는 대부분의 한국 음악애호가들이 세계적인 Von Karajan이 지휘하는 Beethoven symphony no.9 합창교향곡과 Symphony no.5 운명교향곡, 그리고 Tchaikovsky symphony no.6 비창(pathetique), Sarasate의 지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 ) 등 많은 아름다운 곡을 서울에 있던 몇몇 유명 음악감상실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캐나다 한인동포들은 다른 어느 소수민족들보다 토론토한인합창단의 정기 공연으로 고전음악과 한국가곡 등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인합창단 단원들과 지휘자, 단장, 이사장은 봄-가을 공연 때마다 약 7만 불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기공연을 위한 주요 경비로는 공연장소 사용료, 오케스트라 출연료, 솔로이스트 출연료 및 항공료와 숙박료, 신문광고료, Tickets와 Program 인쇄비 등 다양하다. 


이런 경비를 충당할 수 있는 재원은 오직 Tickets 판매와 빈약한 Program 광고수입뿐이며, Ontario Trillium Foundation과 TD bank 등의 일부 후원금과 정부보조금이 전부다. 


대부분은 합창단원과 이사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 충당하지만, 늘 부족하게 된다. 이에 많은 재정적 부담을 가지고 공연을 하는 것이 당면한 현실이다. 지난 40년간 캐나다 한인동포사회를 위해 대표적인 한인예술단체로 많은 활동을 한 한인합창단을 위해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후원 및 가족들과 함께 관람하여 주면 합창단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인합창단은 지난 40여 년 공연 수익금을 전쟁과 자연재난으로 고통 받는 여러 나라 국민들을 돕고, 또한 도움이 필요한 동포사회와 주류사회를 돕는 일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람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한인동포들의 끊임없는 격려와 후원을 부탁하고 싶다. 


모든 후원금은 세금공제영수증을 발부하며 정기공연 때마다 2매의 Tickets를 무료로 우송하고 있다. 특히 $500 이상 후원자에게는 전 가족이 관람할 수 있는 Tickets을 우송한다. 


이번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2019년 가을 정기공연을 위해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후원을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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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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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사상과 이념에서 자유로운 사람들

무어족(Moor)이 800년 동안 지배하였던 스페인의 남부도시 "그라나다(Granada)"에서 알 함브라(Alhambra)성을 구경한 후, 나는 스페인 남서부도시 세빌(Seville)로 가는 BUS을 탔다.

그곳에서 루마니아(Romania) 부쿠레슈티(Bucharest)에서 온 청년을 우연히 만나 한국과 루마니아의 아픈 역사에 대하여 나누었던 대화를 종종 기억하게 된다.

그는 부쿠레슈티(Bucharest)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찾기 위해 스페인 남부도시 그라나다(Granada)까지 왔다가 다시 세빌(Seville)로 떠나는 30대 청년이었다.

마치 내가 55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서독 루르탄광으로 떠났던 당시의 나를 상기하게 했다. 부쿠레스티(Bucharest )에서 온 루마니아 청년의 얼굴에 비쳐진 분노와 한탄은 주로 루마니아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무자비하게 탄압 억압하며 24년(1965-1989) 동안을 폭정으로 지배했던 공산독재자 차우셰스쿠( Nicolae Ceausescu )대한 분노와 한탄으로 가득한 마음이며 표현으로 보였다.

만약 1989년 12월 17일 루마니아 민주혁명으로 공개 처형된 공산독재자 차우셰스쿠가 그처럼 오래도록 공포정치로 지배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루마니아 청년들은 북미나 유럽국가의 청년들처럼 자유로운 생활로 해외여행도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터인데.

불행하게도 1944년 소련군의 점령과 함께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고 소련 위성국가가 되면서 공산독재정권하에서 자유도 인권도 누리지 못한 채 독재자의 공포 속에서 억압된 삶을 살았던 역사에 대한 분노와 통탄이라고 말했다.

물론 루마니아 국민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정권하에 있었던 많은 국가들의 사정은 똑 같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결국 멸망했고 인류역사에서 사라진 유물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36년 동안 혹독한 일본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불행하게도 남북으로 분단되어 73여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사상과 이념 때문에 살상의 총부리를 부모 형제들에게 서로 겨누며 살아야 하는 유일한 나라다.

유럽 역사 속에서 본 100년 전쟁(1337-1453년)은 영국과 프랑스 왕조간의 전쟁이었지만, 21세기 세계근세사에서는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은 통일을 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100년 전쟁으로 인류역사에 기록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했다. 이것은 한국민족에게는 가장 불행한 모습이라고 했다.

그리고 20세기에는 세계 많은 국가들 중에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전쟁에서 실패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공산주의 이념과 사상의 굴레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특히 남미의 베네수엘라, 쿠바 그리고 볼리비아 등이 그렇다. 어느덧 BUS가 목적지 세빌(Seville)에 도착할 무렵 루마니아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루마니안 언어(Romanian language)는 라틴어 계통에 속하기 때문에 빠른 언어소통을 습득하기 위해 불란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고 했다.

그래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거쳐 스페인까지 왔다고 한다.

그리고 혜어질 때 나에게 전해준 쪽지에는 루마니아가 가장 자랑하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Angela Gheorghui)가 1994년 체코공화국의 프라하(Czech Republic, Prague )에서 공연한 Mozart의 피가로의 결혼(The Marriage of Figaro)에 나오는 Porgi Amor(신이여 사랑을 주오)를 감상하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종종 그녀의 노래를 감상하고 있으며 또한 20세기 Greece가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Maria Callas가 부른 Mozart의 Porgi Amor도 감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이며 천재적인 음악인들 중에는 Soprano, Pianist, Cellist 그리고 Violinist 도 있는데.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 21세기는 모든 국가와 국민은 정치적 이념과 사상에서 완전히 해방되기를 원하며 오직 경제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난 60여년 동안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며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 발전과 번영을 이룩하였다. 그래서 세계인들은 한국인을 위대한 국민이라고 했고 또 세계가 가장 부러워하는 국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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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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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
정직성과 신뢰성은 단체의 생명이다

 

 

캐나다 한인 이민역사는 이제 반세기가 넘어 60여년이 되어진다. 우리의 이민역사와 함께 캐나다동포사회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60여년 전 이민 1세들이 캐나다 땅에 정착하여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캐나다한인동포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였던 여러 자선단체와 봉사단체 중에는 어느덧 1.5세와 2세들이 주역이 되어 활동하는 단체로 변화되고 있다. 


우리의 1.5세와 2세들이 1세들보다도 더 낳은 여건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한인동포사회를 이끌어 갈 주역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캐나다한인동포사회발전을 위해 퍽 자랑스러운 일이다.


특히 매년 열리는 "한인장학의 밤" 같은 행사에서는 이미 1.5세와 2세들이 장학사업의 주역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한인단체라고 말할 수 있다. 한인동포사회에 있는 많은 다른 봉사단체와 자선단체 역시 점차적으로 세대교체를 하게 되면 동포사회는 더욱 새롭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잘 인식할 수 있었던 일은 우리 이민사에서 가장 큰 사업으로 1세들이 오래 전부터 추진하고 성공적으로 완성하였던 한인무궁화요양원이 돌연 파산위기에 직면하여 경영권과 소유권을 상실하게 되었을 때 1.5세와 2세들이 주축이 되어 무궁화요양원 인수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상실된 무궁화요양원의 경영권과 소유권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단기간에 목표기금(약 350만불) 모금운동을 펼쳤던 일은 모든 한인동포들에게 특별한 감명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캐나다한인동포사회가 열망하였던 무궁화한인요양원 건립사업은 마침내 성공적으로 완성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어떤 이유와 원인인지? 돌연 파산에 직면하여 경영권과 소유권을 상실하였다는 소식은 캐나다동포에게 가장 큰 충격적인 실망감과 회의감을 주었다. 


우리모두가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문제다. 그러나 최근 1.5세, 2세들이 주축이 된 무궁화한인요양원 인수추진위원회는 지난2년 동안 모든 열정과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영권과 소유권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인지 결과적으로 모금된 기금을 후원자들에게 다시 반환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특히 무궁화한인요양원의 경영권과 소유권 회복을 간절히 열망하던 동포들에게는 큰 실망감을 주고 있겠지만, 한편 이처럼 성공적으로 완성된 한인무궁화요양원을 법정관리로 만든 책임론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도 들리곤 한다.


 1세들이 열심히 추진하였던 다른 사업도 있다. 몇 년 전 토론토동물원내에 거창한 설계로 계획되었던 한국정원사업은 모국정부와 캐나다정부의 특별한 관심사로 양국 정부로부터 수십만 불의 보조금까지 받았던 사실을 캐나다동포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사업이 어떻게 진전되고 있다는 소식은 수년 동안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처럼 큰 동포사회사업들에 대하여 늘 환상적으로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었던 동포들은 좌절감과 실망감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캐나다한인이민역사 60여년 동안 가장 크게 계획되었던 사업들이 모두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는 기쁜 소식보다는 오히려 파산과 법정관리 그리고 미완성 상태로 종결하게 된다면 한인동포들에게 나쁜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게 될 것이다.


 많은 한인단체들이 동포들의 후원이나 모국 및 캐나다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년 투명한 결산보고를 동포사회나 해당 정부기관에 하는 것은 퍽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 국가나 사회 그리고 단체나 개인도 투명해야만 존경받고 성장할 수 있다.  국제사회도 투명해야만 우대받는 시대로 변화되고 있다. 동포사회의 모든 단체들은 반드시 후원자들로부터 정직성과 신뢰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 투명한 재정보고를 했다면 무궁화요양원의 불행한 결과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산보고를 전연 하지 않는 단체가 있다면 조속히 정리돼야 한다. 


우리가 캐나다 땅에 정착한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다. 이제 한인 2세, 3세가 동포사회의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때다. 건전한 봉사 및 자선단체, 문화예술단체를 만들어 후세들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남겨주어야 한다.


최근 한인 문화예술단체들도 젊은 1.5세나 2세들이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준다는 소식이다. 수십 개로 분산된 열악한 문화예술단체보다 통합하면 재정적 어려움이 덜한 단체로 성장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교육받은 1.5세나 2세 중에는 재정적 능력을 갖춘 전문인들도 많다. 그들이 주역이 되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러면 동포사회는 오래도록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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