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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의 캐나다의 이야기

홍성자의 캐나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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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 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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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수필집 출간

helensj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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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j
홍성자
429686
9199
2026-09-15
빨간 신호등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빨간 신호등

간도 크지 어쩌자고 빨간 신호등에 시작하여 번연히 운전을 하고 가는가?

빨간 불이 켜져 있는데 무슨 생각에 빠져 교통신호를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왔는가?

 

어느새 뒤에서는 경찰 페트롤 카가 왱왱거려서 차안의 백미러로 보니, 빨강 파랑불이 빠르게 돌아가며 내 차를 세우라고 난리다. 언뜻 보니 또 한 대의 같은 차가 왱왱거리더니 내 차 운전석 쪽에 즉시 달라붙는다. 나를 꼼짝 못하게 완전 포위한다.

오 마이 갓! 완벽한 신호위반 임이 분명하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주 예수! 주 예수! 만을 빠른 말로 거듭 불렀다. 오른 쪽 길가로 서서히 차를 세우고 앞의 양쪽 차 유리문을 내렸다. 고개를 앞으로 끄덕끄덕하며 살며시 웃었다. 빨간불에 갔다고 인정하는 뜻이다.

 

두 명의 백인 젊은 무장경찰관이 내 얼굴에 바짝 다가오니 혼이 빠질 것 같이 으스스했다. 내가 먼저

“아이 메이크 미스테이크, 아이 메이크 미스테이크, 암 쏘리, 암 쏘리” 하면서 두 손을 앞으로 순간 모았다가, 지갑을 꺼내어 운전면허증을 주려고 하니, 경찰관은 손바닥을 흔들며 노 노 노 노 하면서 조심해서 운전하라 한다.

 

“아 유 오케이? 아 유 오케이?” 묻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내 차안을 순간 훑어보는 것 같았다.

“아이 앰 오케이, 아이 앰 오케이” 하면서 밝게 웃었다.

핸드폰은 핸드백 속에 있었으니 그 또한 하나님의 가호하심이었다.

어텐션! 어텐션! 주의를 주며 친절하게 잘 가시라고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경찰관의 두 손이 앞을 향한다, 그것도 두 명이 약속이나 한 듯이.

 

오마이 갓! 땡큐! 쏘 마치! 할렐루야 아멘! 지저스! 를 경찰관들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내가 먼저 악세레다를 밟고 유유히 앞으로 간다. 약간 무서움을 느꼈지만 백미러로 뒤를 보니 경찰관 두 명은 내 차의 뒷모습을 보고 서있었다. 나는 차 안에서 오른손을 흔들었다.

 

순간을 지나고 보니, 때 묻지 않은 젊은 백인 미남경찰관들의 그 선한 얼굴들이 클로즈업된다. 언젠가 어느 레스토랑에서 만나게 되면 식사비를 내어줄 것이다. 그 뿐인가 커피도 사주고 그들이 하는 일에 감사하며 위로하고 용기도 줄 것이다. 다시 만나기를 고대한다.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내 잘못을 즉시 인정하고 처벌을 내려라, 달게 받겠다 하는 식으로 나오니까 오히려 경찰관들이 감동을 받았나? 아니면 그들은 하나님의 천사들이었나?

 

운전한지 40여년이 넘었고, 눈만 뜨면 운전하고 살아야 하는 캐나다에서 30년을 넘게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차들이 앞뒤 양 옆에서 속력을 내어 들이치면 얼마나 큰 사고가 났을 것인가? 아찔하다.

 

나중에 아는 분한테 이야기를 하니 빨간불에 갔다면 벌점 4-5점에 벌금 4-5백 불 정도는 나왔을 것이라고 한다. 벌점이나 벌금보다도 일단 골치 아픈 일이 아닌가. 너그러움과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캐나다의 경찰관들이 얼마나 멋지고 신사적인가?

 

오래전부터 좌우명으로 삼고 사는 말이 있다.

잘못을 했으면 즉시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무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도 대부분 문제가 없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안전벨트가 내 생명을 구하고, 정직하지 않아도 많은 경우 별 탈이 없는 것 같지만, 정직은 결정적일 때 나의 운명을 바꾼다. 또한 정직은 최상의 재산이라는 말도 있다.

 

정직? 나는 과연 정직한가? 정말로 정직하게 살아왔나? 정직이란 말이 나를 또 무겁게 한다. 양심은 정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언제가 되어야 정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무슨 일을 당했을 때, 순간 나오는 말과 행동에서 어떠함을 볼 수 있겠다. 오늘의 이 일은 정말 정직했음으로 복을 받은 것 같다. 정직이 축복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순간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천국과 지옥을 단 몇 분 만에 맛본 셈이다. 나이 들면서 정신 줄을 단단히 틀어쥐어야 한다는 경고다.

 

빨간 신호등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가지 말라! 일단 정지하라! 빨간 신호를 무시하면 끔찍한 피를 흘릴 것임을 다시 한 번 나를 일깨워준다.

hongsj
홍성자
429462
9199
2026-09-06
사소한 '걸치는 것' 하나의 중요함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8월의 끝자락이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서면 문득 지난 계절의 호된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 7월, 감기라는 작은 그림자가 내 몸에 드리운 지 두 주가 넘었을 때의 일이다. 처음엔 그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여름 감기는 내 몸 한편에 조용히 눌러앉아,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쉽게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나간 초여름, 여름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던 날이었다. 반팔과 흰 바지를 단정히 입고 카페에 앉아 시원한 공기를 마시던 그때, 나는 산산한 바람이 얼마나 달콤했던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그날 가장 중요한 ‘걸치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얇은 스웨터 하나, 앞이 터진 가벼운 긴팔 윗옷 하나. 그 작은 옷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찬 공기와 따뜻한 몸 사이를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경계였다. 차에 몇 개씩이나 넣어 다니면서도 그날따라 그 한 개를 걸치지 않았다는 것이, 결국 내 몸의 경계를 스스로 허문 셈이 되었다.

 

열도 없고 몸살도 없었지만 팔과 종아리의 피부가 싸늘하게 시렸다. 체온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작은 불안이 고요히 내려앉았다. 홍삼 엑기스, 꿀, 생강차, 쌍화차, 대추차, 계피차 등 따뜻하다 하는 것은 모조리 들이켰다. 찜질방의 뜨거운 공기 속에서도 온기를 되찾기 위해 애를 썼다. 아픈 몸을 달래는 일은 늘 소란스럽고, 그 소란은 마음을 먼저 흔들었다. 기침이 폐렴으로 번질까 걱정되어 약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그제야 ‘내 고뿔이 남의 염병보다 더하다’는 말이 뼈에 와닿았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황소처럼 일하며 살아온 나였는데,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속담 앞에서 그 강단이 무색해졌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고, 자만은 누구에게나 조용히 틈을 탄다.

 

체온이 1도만 내려가도 면역력이 30%나 떨어진다고 한다. 정상 체온 36.5도를 지키는 일은 삶을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니어가 되고서야 새삼 깨닫는다. 나는 늘 몸에 열이 많다 여겨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도 싫어하고 뜨거운 음식은 식혀 먹었다. 그 사소한 습관들이 내 몸의 문을 조금씩 열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밖에서는 초록 바람이 불고 꽃들이 저마다 색을 펼치고 있었을 텐데, 가장 좋은 계절에 종일 누워만 있으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찔레꽃과 해당화가 한창일 때 그 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면 마음만 동동 굴렀다. 아프다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갇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았다.

 

늙는다는 것은 머리가 희어지고 주름이 생기는 일만이 아니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며칠씩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몸이 예전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 그 모든 것이 늙음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한 달여가 지나면서 체중은 3kg이나 줄고 얼굴은 작아졌지만 서서히 회복되었다. 아플 때는 아프지 않은 사람이 가장 부럽다. 그날, 그저 ‘걸치는 것’ 하나만 챙겼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삶은 늘 사소한 것 하나를 놓친 자리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건네준다. 작은 옷 하나가 몸을 지키듯, 작은 주의 하나가 삶을 지킨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야 비로소 배웠다. 후회는 언제나 늦게 찾아오지만, 그 늦음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건강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hongsj
홍성자
429144
9199
2026-08-24
아버지의 비장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똑바로 살아라! 똑바로!

사군자와 아버지

요즘은 흔히 쓰지 않지만, 군자란? 학식이 높고 행실이 어진 사람을 일컫는데, 완전한 인격을 가졌다는 뜻이다.

‘사군자(四君子)’란? ‘네 가지 군자’라는 뜻으로, 네 가지 식물이 지닌 고귀한 품성을 군자에 비유한 말이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가리켜 사군자라 칭했으며, 사군자는 동양화의 소재로 동양화가들은 묵화를 치며 군자의 도를 닦았다. 사군자를 이르는 말로서 매난국죽(梅蘭菊竹)을, 우리말 규범표기로는 ‘매란국죽’이다.

 

 

사군자를 간단히 설명하면,

매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릎 쓰고 제일 먼저 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으로, 봄을 상징, 꽃말은 희망, 고결, 인내라고 하며, 또한 선비의 품격과 절개를 대변하는 꽃이라 한다.

난초- 산중에서 비와 이슬을 받아 살면서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은은한 향기를 멀리멀리 퍼트리는 강인한 성품의 꽃, 여름을 상징, 꽃말은 겸손, 우아함, 고결함이라고 한다.

국화- 늦가을 매서운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으로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표현했으며, 다른 꽃들이 피었다가 다 졌어도 홀로 꼿꼿하고 우아하게 피어나는 국화는 가을을 상징, 꽃말은 고귀함, 절개, 장수라고 한다.

대나무- 곧게 뻗은 줄기에 속은 비었으나 꺾일 줄 모르고, 사계절 푸름을 잃지 않으며, 추위 속에서도 굳은 절개를 지키는 대나무는 겨울을 상징, 드물게 꽃이 핀다. 꽃말은 지조, 강인함, 유연성이라고 한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사군자를 좋아하셨다. 강하다는 의미가 중심이 되는 식물들이기 때문일까?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사군자를 치셨고, 평생에 한문과 한글, 해서, 행서, 초서체를 막론하고 붓글씨를 참 많이도 쓰셨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사남매에게 호를 지어 주셨는데, 사군자로부터 힌트를 얻으신 것 같다.

오빠는 큰 아들이라고 강하며 품격을 잃지 말라, 또한 엄동설한을 이겨내는 매화처럼 소리 없이 인내하라는 뜻의 호로 ‘매은(梅隱)’이라고 지어주셨다.

나에게는 난초의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며, 고고하고 강하게 살라는 ‘난은(蘭隱)’ 이라는 호를 지어주셨다.

내 바로 밑의 남동생은 ‘국은(菊隱)’ 이라고 호를 칭하였으니, 매서운 서리 발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절개를 지키라고 하셨다.

막내남동생은 ‘죽은(竹隱)’이라고, 대나무처럼 강하면서도 유연하게 푸름의 절개를 지키라고 하셨다.

 

우리 사남매는 과연 아버지가 지어주신 호처럼 살았는가? 또 살고 있는가? 나의 양심은 무겁기만 하다.

아버지께서는 예전에 우리 사남매를 밥상머리에 앉혀놓고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를 말라고, 꽁보리밥을 소금물에 찍어먹더라도, 굶어죽게 생겼어도, 아니 굶어 죽을지언정 거짓말은 하지마라, 도둑질은 하지마라, 차라리 굶어죽어라 하시며, 정직하게 살아야 하늘과 사람 앞에 떳떳하고 당당하다고 수없이 하시던 말씀이, 평생 가슴 깊숙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나도 나의 세 자녀들에게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씀대로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

내 비록 한국에서 먼 캐나다 땅에 살고 있지만, 하루의 삶속에서 항상 아버지와 엄마의 눈동자가 나를 떠나지 않고 있음은, 나의 수호신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사군자의 하나로 난초처럼 살지는 못할망정, 칠십 중반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

아버지의 비장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똑바로 살아라! 똑바로!

 

정직, 성실, 검소, 절약이 가훈이었던 우리 집안이었다.

hongsj
홍성자
428996
9199
2026-08-21
드디어 만났다. 꼭 만나고 싶었는데. 어느 날 새벽

인간 승리

 

드디어 만났다. 꼭 만나고 싶었는데.

 

 지난 이른 봄 이었나? 어느 날 새벽, 

 내가 가고자하는 그 가게는 오전 7시에 오픈한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하며 잠을 잤는데 눈을 뜨고 보니 6시, 좀 이른 감이 있지만 더 누워 있다 간 다시 깊은 잠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눈을 뜬 김에 아주 일어났다. 

 

 운전석에 앉아 차창으로 보이는 밖은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여명 속에 나뭇잎 사이로 설핏 보이는 무엇이 있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사람이 다리 한쪽은 없는데 목발도 없이 한쪽 다리로 콩, 콩, 콩, 콩. 점프하면서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 어둑새벽에 한쪽 다리로 점프하면서 뛰어가다니 . 도대체 한 쪽 다리로 저렇게 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순식간에 그 사람이 없어졌다. 

 나는 출발하려던 차에서 내려와 두 손으로 나뭇가지와 잎을 헤치고 그 사람이 또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그 쪽 공원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아도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허깨비를 보았나? 무엇에 홀렸나? 어떤 것을 잘못 보았나? 이게 웬일인가? 고개만 갸우뚱해질 뿐. 하루 종일 그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 나는 그 근방에 가면 그곳을 바라보며 그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혹시라도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해서다. 확인하고 싶었다. 다시는 안 나타날까? 그 일이 사실 이었나? 

 

 9월 어느 토요일 오전 9시경, 나는 운동 삼아 좀 걸어야 하겠기에 늘 눈여겨보던 그 작은 공원에서 왔다 갔다 걷다가 벤치에 잠깐 앉아 있는데, 한쪽 다리의 그 사람이 나타났다, 세상에. 정말로. 

 토끼눈을 뜨고 보니, 양쪽 겨드랑이에 끼었던 두 목발을 빼서 큰 나무둥치에 비스듬히 기대어 세워놓고, 한쪽 다리가 없으니 오른쪽 한쪽 다리로 콩, 콩, 콩, 콩 점프하면서 앞으로 뛰어가는 게 아닌가! 오 마이 갓! 

 즉시 나는 핸드폰으로 비디오를 찍으며 벌떡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 사람은 저만큼 갔다가 돌아서 다시 목발 있는 쪽으로 콩, 콩, 콩, 콩 점프하면서 한 발로 헐떡거리며 웃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와우 너 참 대단하다, 진짜 용감하다, 정말 최고다” 등 아낌없는 찬사와 응원의 말을 했더니, 심장이 벌떡대며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채 땡큐! 땡큐! 를 연발한다.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오래전부터 너 만나기를 원했어.” 

 나무둥치에 몸을 기대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땡큐! 땡큐! 를 잊지 않았다. 

“너 언젠가 새벽 미명에 여기를 뛰었지? 그때 나는 한 발로 점프하는 너를 보았고, 내 생각에 테리 확스(Terry Fox)가 살아서 왔나? 하며 너무 놀랐어.”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는 새벽 어둑할 때 가끔 여기 와서 테리 확스처럼 점프하며 달리는 운동을 한다고 했다. 

 속으로 반갑기도 하고 얼마나 놀랬던지. 이 일이 사실이라니. 감동의 순간이었다.

 

 그의 키는 185cm 정도가 넘어 보이는 건장한 흑인이었고, 이름은 제임스, 32세며 자메이카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온 지 14년이 되었고, 7년 전에 노동하다가 다쳐서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 손으로 가리키는 저쪽 아파트에서 산다고 하며, 걸 후렌드는 백인 케네디언 동갑내기라고 했다. 걸 후렌드가 있다는 것에 힘주어 말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활짝 웃으며 두 엄지 척을 해주었다. 컴퓨터를 공부한다며 정부에서 얼마간의 돈도 받는다고 하고, 심호흡을 멈추지 못하는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테리 폭스 알아요? 너처럼 한쪽 다리가 없지만, 한쪽은 의족을 끼고 희망의 마라톤을 한 이곳 캐나다의 젊은 운동선수, 암 연구 활동가?” 그는 안다 고를 반복했다. 

“닉 부이치치(Nick Vujicic) 알아요?” 안다고 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몸으로 늘 웃고 감사하며 불가능은 없다고 하는 닉 부이치치, 결혼하여 4명의 자녀들도 두었어요. 유튜브에 비디오 많이 나와 있어요.” 그는 다 알고 있다며, 나보고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이름과 몇 살이냐고 묻는다. 

“한국, 남쪽 한국, 72세, 헬렌”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도 테리 확스처럼, 닉 부이치치처럼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고 했다. 

 숨이 차서 헐떡거리면서도 웃고 있는 그의 눈동자에서 나는 분명히 희망을 보았고, 위대한 도전을 하는 그에게서 인간승리를 보았다.

  

 제임스는 공원 주위를 뛰면서 내면의 어떤 세계를 꿈꾸며 뛸까? 그가 원하는 세계를 향하여 저토록 점프하는 그의 희망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다음에 만나면 물어볼 것이다, 그렇지, 비록 다리 한쪽은 없더라도 운동부터 해 놔야 하는 것이 건강의 기본일 것이다. 최선을 다 할 때 기적은 일어난다. 

 

 가슴 아픈 동정이 앞섰다. 그런데 말이다, 정작 동정 받아야할 사람은 나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두 다리 멀쩡해가지고 오늘도 걸을까? 말까? 망설이며 주저하고 머릿속에서는 걷지 말아야 하는 핑계를 계속 찾는다. 게으름을 피우는 나는 참으로 한심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제임스가 이 공원에 오는 날과 시간을 알았으니 그를 만나면 그의 옆에서 함께 점프하며 달릴 것이다. 

hongsj
홍성자
428995
9199
2026-08-20
엄마, 색소폰 부는 것은 좋지만 유행가는 불지 마”

“엄마, 색소폰 부는 것은 좋지만 유행가는 불지 마”

아들 녀석이 말한다. 

 

 제 생각과 안 맞는가 보다. 우리들은 만나면 가곡이 어떻고 가요가 어떻다며 입방아 언쟁을 벌인다. 나의 큰 사위는 이태리에서 10여년이상 성악을 공부하고, 이태리 로마 한인 동포사회에서 활동하는 바리톤 성악가이다. 또한 둘째딸은 한국에서 활약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너희들은 너희들 좋은 대로 해라, 물론 나도 찬송가나 가곡, 동요 등을 좋아 하지만, 색소폰으로 연주할 때면 가슴속에 젖어있는 흘러간 가요가 더 맛이 난다.”고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 주장은 가곡이든 가요든 때와 장소 그리고 분위기와 취향에 따라 쓰임이 다르다는 것이다. 

 흔히들 클래식이라 부르는 가곡을 노래하거나 악기로 연주하면 인격이나 음악수준이 올라가고, 뽕짝이라 부르는 대중가요를 하면 낮춰보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마음을 터놓고 어우러질 자리에서 갑자기 엄숙한 클래식 곡을 연주하는 것은 흥겨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요즘 한국에선 애창하는 가요들을‘흘러간 유행가’라고 하지 않고, ‘가요명곡’이라고 부른다. ‘흘러간 유행가’가 흘러가버리지 않고 언제 다시 불러도 싫증이 나지 않기 때문에‘명곡’과 뭐가 다르겠느냐는 주장인 것 같다.    

 

 나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한 일이 예전에 있었다. 

몹시 추운 2011년 1월 어느 토요일. 캐나다 문협 신년회와 신춘문예 시상식이 토론토 한국일보 도산 홀에서 있었다. 문협 회장이 이메일로 보낸 순서지를 보니 나의 색소폰 연주는 2부 순서로서 여흥 순서였다. 모두를 흥겹게 하는 가요명곡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첫 곡으로‘얼굴’을 택했다. ‘얼굴’은 우리나라 가곡도 되고, 가요도 되지만 노래자체가 좀 은은한 편이어서 중간 중간 테크닉을 넣으며 1절을 불고 나니 반응이 좋았다. 2절까지 부르니 실내의 체감온도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두 번째 곡으로는‘꿈에 본 내 고향’으로 나이 드신 분들을 겨냥했다. 그러자 L교수 내외분이 앞으로 나와 춤을 추고, 다른 분들도 합세를 하니 분위기가 무르녹았다. 이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소폰 연주곡, 고음으로 부는 Sil Austin 의‘적과 흑의 부르스’를 정열을 다해 연주했다.

 이 곡의 끝부분에 가서는 내가 좋아하는 대목으로 롱 턴을 한없이 길게 뺐더니 참지 못하겠다는 반응들이 끓어올랐다. 

 

 거기서 끝을 내려니까 회장이 와서 팔을 붙잡으며 악기를 넣지 말라고 한다. 3부 순서에도 또 해달라는 것이다. 3부 순서에선 이미자의‘동백아가씨’를, 그 다음 곡으로‘선창’에 이어‘나그네 설움’을 불었다. 모두들 눌려 있던 감정들이 일시에 분출하는 모양이었다. 

 

감정 표현들을 자제하지 못하겠는지 박수를 치며 고성까지 지르고 난리였다. 내가 클래식 가곡을 불었다면 이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모두들 나를 둘러싸고 한 마디씩 던지니 '스타 탄생'의 기분이었다.

 

 많은 분들의 칭찬을 들으니 우선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서서히 마음은 무거워졌다. 내가 연주를 잘했다는 말 때문이었다. 실은 기대 보다 좀 나았다는 표현이 옳은 게 아닐까.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해야만 그들의 기대치에 미칠 텐데 어떡한다? 부담감이 왔다. 그러나 그 부담감은 나를 더 키울 수 있는 기회이고 자극제이다. 부담감은 스타트를 어렵게 하지만 일단 가속이 붙으면 더 빨리 달릴 수 있게도 하리라.

 뿐만 아니라 연습하는 시간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는 절박한 이유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삶은 도전이다. 

 

 이 나이에 색소폰은 아무나 부나, 

 미쳐야 불고, 용감해야 분다. 

 

hongsj
홍성자
428920
62613
2026-08-19
캐나다 홍판사

캐나다 홍판사

북미주의 한인 이민1세로 판사로 역임한 분은 오직 한분

홍중표판사의 저서 : 상상의 세계를 넓혀라

 

hongsj
홍성자
428919
9199
2026-08-19
윤달? 이 무엇이길 래, 이런 소름 돋는 일을 해도 탈이 없다는 말인가?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윤달? 이 무엇이길 래, 이런 소름 돋는 일을 해도 탈이 없다는 말인가?

 

윤달(閏月)의 윤자를 한문으로 보면, 남을 윤, 정통이 아닌 임금의 자리 윤자다. 문안에 임금이 있는 모양새다. 윤달에는 왕이 문밖출입을 하지 않았던 고대의 풍습에서 “윤달”의 뜻이 되었다고 한문풀이에 나온다.

정통은 아니지만 나도 한 달 동안 임금일 수 있다는 말인가?

 

 

윤달은 음력으로 평년의 12개월보다 1개월이 더하여진 달이다.

올해 2025년에는 윤달이 들어있다. 양력 7월 25일부터 8월 22일까지 이고, 음력으로 6월 한 달 29일이며, 덤으로 얻은 달이라고 한다.

 

음력이란 주로 동아시아(한국, 중국, 일본, 대만, 몽골 등)문화권에서 사용하며, 서양에서는 음력을 사용하지 않고 보통 약력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달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에서 한 달은 29일과 30일을 번갈이 사용하는데, 1년 12달을 합한 수는 총 354일이 된다. 그러나 365일을 기준으로 하는 태양력과는 11일의 차이가 생긴다. 양력과 음력 차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윤달을 추가하여 음력과 계절의 차이를 줄이게 된다는 것이다. 윤달은 보통 2-3년에 한 번씩 오는데, 19년에 7번의 윤달을 둔다.

 

역법(歷法)에 의하여서이다.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고 체계화하여 달력을 만드는 방법이다. 참으로 신비로운 주기이다.

 

윤달(閏月)이란? 즉 음력에서 한 해의 계절과 날짜를 맞추기 위해서 추가되는 달인데, 음력에서 1년이 12개월 보다 1개월이 더 많아지는 달이다. 이 윤달을 흔히 ‘공달’ ‘덤달’ ‘여벌 달’ ‘남은 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새해 새 달력을 보면, 양력으로 2월에 29일이 들어있는 해가 있다. 그 해를 윤년(閏年)이라고 하고, 2월 29일 단 이 하루의 이름을 윤일(閏日)이라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은 윤일에 태어난 사람은 4년에 한번 생일이 돌아오니 어쩌란 말인가? 4년에 한 살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음력으로 생일을 지낸다 하고, 평년에는 2월 28일을 생일로, 또는 3월 첫째 날을 생일로 지낸다고 하니, 달력 때문에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현대 양력달력의 시작은 1년의 길이를 365.2425일로 정하는 역법(歷法)체계로서 윤년을 포함한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을 쓰고 있다. 그레고리력이란 명칭은 달력을 제정하고 반포한 교황인 그레고리오 13세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성경 창세기부터 나오는 누구는 몇 살에 죽고, 또 누구는 몇 살에 죽고가 나오는데 창세기 때는 어떤 달력을 썼나? 참으로 궁금하다.

 

옛 조상들은 이 공짜로 생긴 윤달에는 무슨 일을 해도 손을 타거나 부정을 타지 않는 달, 무탈한 달로 여겨, 평소에 꺼리거나 미루던 일들을 했다고 한다. 집안에 노인들이 계시면 수의를 만들고, 조상의 묘를 이장한다거나 단장하기도 하고, 집수리 혹은 이사도 하고, 특히 혼례를 올리는 날도 윤달에 잡았다고 한다.

 

하늘과 땅의 신들이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쉬는 기간으로 생각하여, “귀신도 피해 가는 달”이라며, 오죽하면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는 속담도 여기에서 유래했을까.

 

예전 어릴 적 스치는 생각이, 어른들이 윤달이라고 누구 네는 수의 감을 사다 놓았다느니, 어느 포목점의 삼베가 좋다느니, 남자 분 수의와 여자분 수의를 구경하러 가자는 말을 언뜻 들은 적이 있다.

 

내 친정 충남 보령 선산에는 대대로 조상님들의 묘가 있었다. 고향을 지키시던 숙부님께서는 연로하시고, 일가친척 자녀들은 다 도시로 갔으니 선산은 누가 지키고 풀 깎으며, 때때로 묘를 누가 보수하며 돌보겠나? 숙부님께서는 어느 해인가 윤달에 이 묘들을 다 파서 화장하여 조상님들의 유골을 모신 납골당을 만드신 큰일을 하셨다.

 

윤달 이야기는 천체우주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과학적이면서도 전설 같은 이야기여서 더 흥미진진하다.

 

오늘은 윤달 6월 6일이다. 삼계탕 잘하는 집에서 지인들이 모여 이열치열 하잔다.

 

(양력 2025. 7. 30. 음력 2025. 6월 6일, 중복에)

 

hongsj
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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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9
‘아이오딘’이라는 단어를 보면

아이오딘 (IODIZED)

 

‘아이오딘’이라는 단어를 보면 먼저 바다가 떠오른다. 색 때문인지, 이름 때문인지,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그저 오래전부터 인간이 바다를 통해 얻어온 영양소라는 사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원자번호 53번. 요오드, 한국어로는 '옥소 ' 라고 불렀으나, 2005년 과학용어 표준화 과정에서 '아이오딘'으로 변경되었다.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해 외부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 타지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토론토에 와 처음 팀호튼에서 소금을 달라고 했던 날이 생각난다. 작은 종이봉지에 적힌 글씨—IODIZED SALT.

그 단어 하나가 이상하게 오래 머리에 남았다. 소금에 왜 아이오딘을 넣을까. 별생각 없이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그날은 유독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커피에 소금을 아주 조금 넣어 먹는 습관이 있기에.

알고 보니 그 배경은 단순했다.

1920년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아이오딘이 부족했다. 갑상선종이 흔했고, 아이들의 성장도 더뎠다. 그래서 정부는 모든 사람이 쉽게 먹는 소금에 아이오딘을 더하기로 했다. 그 선택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건강을 바꿔놓았다. 바다소금 한 꼬집이 삶의 균형을 잡아준 셈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한국에서 자란 내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바다의 영양을 누려왔는지 새삼 느껴졌다.

한국에서의 식탁은 늘 해조류로 풍성했다. 김, 미역, 다시마, 파래, 톳 같은 것들이 특별할 것도 없는 먹거리였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살아가면서도 나는 김을 굽고 미역을 불린다. 바다와 멀어진 곳에서 그런 음식을 먹고 있으면, 마음 한쪽이 조금 안정되는 느낌이 든다.

생각해보면 한국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산후에 미역국을 먹었다. 이유를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어른들은 늘 “몸에 좋다”고만 말했다. 그 말 안에는 꽤 많은 진실이 담겨 있었다.

임신 초기에는 엄마와 태아가 갑상선호르몬을 나누어 쓴다. 아이의 뇌 생성 시기이다. 그러니 아이오딘이 필요하고, 김과 미역국은 그 역할을 해냈다. 과학이 나중에서야 증명한 사실을 삶은 먼저 알고 있었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곰피라는 해조류를 먹었다. 누군가 아이 뇌 발달에 좋다며 알려준 덕분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건어물 가게에서 곰피를 구해 집으로 돌아오던 길을 아직도 기억한다. 먹는 것 하나라도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 자체가 부모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아이들이 밥을 잘 먹지 않을 때는 참기름, 소금, 깨소금을 넣어 비빈 밥을, 작게 자른 김에 싸서 뒤로 감추고, 아이들을 막 웃기다가 입에 쏙 넣어주고, 또 막 웃기다가 입에 쏙 넣어주기를 그 얼마였나! 김 덕이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여전히 따뜻한 기분이 든다. 아이에게 건넨 건 밥뿐만이 아니라, 내가 자라온 방식과 익숙한 맛, 작은 위로 같은 것들이 아스라이 스친다.

 

이민자의 삶은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계속 균형을 잡는 일이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바다에서 온 음식들을 먹으며 살아간다. 내 삶의 한 부분은 여전히 그쪽에 닿아 있다. 작은 소금 봉지 하나가 그 사실을 가끔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아이오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바다 생각으로 돌아가게 된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음식을 먹고 자랐는지, 무엇을 통해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는지. 그 모든 길 끝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안도감을 준다.

 

나는 아이오딘이 고맙다.

그보다 더 오래된, 우리 조상들의 조용한 지혜가 참으로 고맙다.

 

 

hongsj
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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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9
토론토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캐나다 한인 이민자들의 삶과 정서를 진솔하게 담아

 1991년 캐나다로 이민한 후, 토론토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캐나다 한인 이민자들의 삶과 정서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여류 수필가입니다.

주요 수필집

캐나다 현지에서 이민 생활의 경험과 깊이 있는 인생 성찰을 담은 수필집들을 꾸준히 발간해 왔습니다. 

  • 제1집 《따뜻했던 화면》: 캐나다 한인 문학계에 첫 발을 내딛으며 출간한 첫 수필집입니다.
  • 제2집 《내가 찾던 인연》: 한층 더 성숙해진 문학 세계와 다방면의 삶의 깊이를 담아낸 두 번째 책입니다.
  • 제3집 《우리가 오르는 산》: 코로나19 대유행 등 전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집필을 이어가 발간한 책으로, 62편의 수필을 통해 인생의 이정표와 용기를 전합니다. 

나의 문학적 특징과 활동 ( 구글의 검색의 내용)

  • 정열적이고 넓은 문학적 폭: 잔잔하고 조용한 일반적인 서정 수필의 틀을 깨고, 70대 이후의 나이에도 뜨거운 정열과 도전정신, 구도자적인 넓은 시선을 보여줍니다.
  • 활발한 언론 연재: 토론토 중앙일보의 주간지 연재를 비롯해 캐나다코리안뉴스 오피니언에 ‘홍성자 수필향기’라는 칼럼을 통해 〈청바지 예찬〉, 〈윤달 소고〉 등 대중적이고 친근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1, 2, 3]
  • 문학 단체 활동: 국제펜(PEN) 한국본부와 한국문인협회, 캐나다한인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한국과 캐나다 문학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 2]
  • 가족 관계: 캐나다 한인 사회 최초이자 유일한 판사인 홍중표 씨의 배우자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수필집에 부부의 인연에 관한 진솔한 고백을 담기도 했습니다

 

북미주의 한인 이민1세로 판사로 역임한 분은 오직 한분 ~

캐나다 홍판사. 홍중표판사의 저서 : 상상의 세계를 넓혀라

 

hongsj
홍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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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오르막길


일기예보가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질 수가 있나?
4-5일 전부터 2월15일 목요일 오후 눈 폭풍이 온다고 어지간히 예보를 해대더니, 드디어 15일이 되었다.
이곳은 토론토의 노스욕 지역이다. 낮 12시가 되어도 눈이 올 것 같지 않은 맑고 푸른 하늘이었다. 오후 1시까지도 그랬다. 저런 하늘에서 무슨 눈이 온다고 그러나? 일기예보가 맞을까?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후 1시 넘어서는 밖에 안 나가려고 했으나 부득이한 일로 가까운 곳이길래, 미심쩍었지만 눈이 와 봐야 얼마나 오겠나? 하며 길을 나섰다. 일을 보고 돌아오려고 하니 3시 반이었다. 실내에 있어서 몰랐는데 밖에 나오니 이게 웬일인가? 자동차 위에 눈은 바람에 흩어지면서도 소복이 쌓였고, 폭풍은 몰아치는데 앞이 안 보였다. 어떻게 집에 가야 하나? 왜냐하면 길이 약간 오르막이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도 눈이 많이 왔지만, 눈이 더 오기 전에 아무튼 서둘러 가자는 것이 내 심산이었다. 길에는 차들이 기어서 가다시피 줄을 이었는데, 제설차량은 아직 눈을 치우지 못한 상태였고, 계속 퍼붓는 눈의 양은 엄청났다. 하늘의 눈 창고가 터졌나?

 

아 역시 캐나다구나! 실감하면서 설경 사진 찍을 궁리를 하고 살살 운전을 하며, 나도 좀 들어가자, 틈 좀 주라, 신호를 깜박깜박 주면서 차선 속에 끼어 들었다.

그런데 차들이 도무지 앞으로 가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앞에서 사고가 났나? 기다리면서 조금씩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는 멈추면서 겨우 50m 쯤 왔을까, 눈 폭풍은 몰아치고 오르막길에서 차 한 대가 앞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뒤로 밀렸다가 스톱했다가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가만히 보니 타이어는 많이 닳은 것 같지는 않은데.

 

내 차는 그 차의 두 번째 뒤에 서 있었다. 그 뿐인가? 그 차 옆은 도로에 딱 붙어가는 가오리같이 생긴 납작한 스포츠카 한 대가, 도로를 가로 질러 눈을 쓰고 누워 있는 것이다. 도통 차들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로질러 누운 차는 그렇다 치고, 뒤의 차들은 빵빵대며 소리를 지르니 어쩌란 말인가?

못 올라가는 문제의 차는 오래된 미니밴으로, 오르는 길에서 힘이 없어 못 올라가는 경차로 보였다. 계속 오른쪽으로 올라가 보려고 하다가 또 왼쪽으로 올라가 보려고, 바퀴만 이쪽으로 저쪽으로 움직여 액셀러레이터만 밟아대니 전선 타는 냄새에, 그 차 운전자의 가슴 타는 냄새인 듯 연쇄적인 큰 사고로 이어질까 내 가슴까지 타 들어갔다.

 

앗 차! 밀리면 앞차가 뒤로 내 차를 받기는 순간이고, 뒤차들도 내리막길이니 줄줄이 밀리면 도미노 현상으로 해외토픽 감일 것이다.

나는 눈 폭풍 속이지만 차에서 내려 도로 가운데로 와서, 뒤차들 운전하는 분들을 향하여 두 팔을 쭉 뻗어 올려 손짓과 팔짓으로 “다 나와라, 나와서 저 차를 밀어 주자, 저 차를 길가로 밀어놓자, 그래야 우리도 갈 것 아니겠느냐?” 신호를 보냈다. 두 팔을 휘저으며 계속 내 가슴도 쳤다. 눈 폭풍 속에서 내가 하는 짓이 희미했겠지만, 차들은 빵빵대지 않았고 소리도 안 질렀다. 그러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럴 수가 있나?

나 혼자 말이지만, 한국 같았으면 아무리 눈보라 속이라도 운전자들이 차 세워놓고, 벌떼처럼 달라붙어 못 올라가는 저 차를 번쩍 들어서 옆으로 옮겨놓고 말았을 것이다. 암 하고도 남았지. 
한국을 보아라, 한국전쟁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눈부신 발전을 했나? 도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 하면 벌떼같이 달려들어 팔 걷어붙이고 물불 안 가리고 돕는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로, 맥주를 싣고 가던 차가 커브를 돌다 옆으로 쓰러져 맥주가 도로에 다 엎어지고 깨져 난리가 났지만, 지나가던 차들이 길가에 차들을 모두 세워놓고, 벌떼같이 왕왕대며 깨어진 맥주병들을 말끔히 치워놓고 가는 것을 캐나다 뉴스에서 보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한국이란 나라가 목하 수직 상승하고 있지 않느냐?

캐나다가 발전하지 못하고 이 모양인 것은 캐나다에 사는 우리들이 너무 소극적이고 용기도 없고 이기적이라서 그렇지 않으냐?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가슴만 두 방망이질에 열불 나는 중, 마지 못한 듯 이차 저차 속에서 남자 다섯 명이 나왔는데 한국인은 안 보였다. 나도 힘을 보태려고 나서니 저쪽으로 가라고 너는 소용 없다며 눈을 부라리고 소리를 지른다. 참나!

 

한 사람이 그 차 앞에서 무엇으로 눈을 치우는지 바퀴가 구를 수 있도록 눈을 치우고, 차를 오른쪽으로 운전해 보라고 손짓을 한다. 뒤에서 네 명과 또 한 명이 와서 차를 미니 천천히 오른쪽으로 붙어 가까스로 비켜서게 되었다.

드디어 눈 속에 갇혀있던 차들이 눈보라 길에 서서히 움직이며 오르막길을 오른다. 현대 쏘나타 내 차도.

많은 운전자들이 차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도 애가 타고 갈등은 오죽했으랴.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들이라고 마음이 편했겠나? 총 2-3시간 동안 눈과의 전쟁을 겪으면서 캐나다와 한국이 엇갈리며 비교가 되었다.

오르막길에서 눈길을 올라가지 못한 그 차, 그 운전자의 가슴은 새까맣게 탔겠지. 이번 기회에 힘 좋은 차로 꼭 바꾸기를 바란다.

힘! 힘이 없으면 못 올라간다. 힘 만이 살길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힘은 무엇인가? 극성을 떨어야 무엇이 되어도 된다는 것이 내 인생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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