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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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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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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슬픈 사연의 슬픈 가락!(자크린의 눈물: les Larmes de Jacquline)

 

 

 

독서삼여(讀書三餘)란 말이 있습니다.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여가로 겨울, 밤, 비올 때의 세가지를 말하는데, 여기에 청악삼여(聽樂三餘)란 말로 바꾸어, 음악을 들을 때 좋은 삼여로 삼아도 별 하자가 없을 듯합니다.


한 겨울 스산하고 고적한 긴긴밤에 마음을 달래줄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스산한 마음에 위안이 될 듯싶습니다. <자크린의 눈물>을 생각해 봅니다. 프랑스의 작곡가 겸 첼리스트(cellist)인 자크 오펜바흐( Jacque Offenbach - 1819~1880 ),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작곡한 소품이지만, cello의 은은하고 중후하면서도 깊은 애조를 띈 슬픈 선율은 우리의 감정을 울리는데, 좋은 곡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크 오펜바흐는 본래 유태계 독일 태생으로 그의 부모, 조부가 Offenbach am Maine (마인 강변에 연한 도시)에서 (세계적으로 가죽 제품의 명산지) 태어나 대를 이어 살아서, 그 고장 이름을 따서(Offenbach)란 성을 갖게 됐답니다.


어릴 때 자크는 야콥 레비 에베스트 오펜바흐란 이름으로 불리어졌으나, 그가 13살 되던 해에 가족이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살면서,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작곡과 첼로를 공부하고, 음악활동을 하면서 이름도 자크 오펜바흐(Jacque Offenbach)로 바꾸고, 프랑스인으로 귀화하여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간 것이지요.


수많은 오페레타(경가극: 오늘날의 뮤지컬 전신)를 작곡하여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무려 100곡이 넘는 작품 중에 특히 <천국과 지옥; 지옥의 올페우스)는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파리 시민을 열광케 했답니다.


동시대의 음악가 베르리오즈는 '샹 제리제의 모차르트'라고 칭송했고, 이태리 오페라계의 거장 롯시니도 그의 <지옥의 올페우스> 감상 뒤 "오펜바흐는 파리의 모차르트"라고, 그의 천재성을 격찬했다 합니다.


평생에 경가극이 아닌 진정한 오페라(正歌劇)를 쓰기 염원했는데, 드디어 그의 최대의 걸작 <호프만의 이야기>를 남기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cello를 너무 사랑하여 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첼로 곡들도 썼으리라 짐작 됩니다.


여기 소개하는 <자크린의 눈물>도 오펜바흐가 남긴 소품 중에 하나로 어째서인지 미 발표곡으로 남아있던 것을 그가 타계한지 100년이 지난 금세에 현존하는 독일의 첼리스트인 토마스 베르너(Thomas Werner)가 우연한 기회에 이 곡을 발견하여 자신이 스스로 연주하여 그의 음반에 올려 오늘날 세상에 알려지게 됐답니다.


왜 곡명을 <자크린의 눈물>이라 했는지는, 당시 영국의 불세출의 여류 첼리스트 자크린느 듀 프레(Jacquline du Pre)가 불과 26세의 젊은 나이에 난치병인 '다발성 경화증' (몸의 모든 세포조직이 점차로 굳어지면서 마비현상이 오는 병)이 발병하여 28세에는 결국 14년간의 연주생활을 접고 힘든 투병생활을 하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같은 첼리스트로서 연민(憐憫)의 정을 느껴 이 곡에 담아 자크린에게 헌정하면서 <자크린의 눈물>이라 명명했다 합니다.


자크린은 14살에 데뷔하여 촉망 받는 첼리스트로 인정받았고, 17세에는 에드워드 엘가의 난해한 첼로협주곡을 연주하게 되었을 때 세상은 과연 어린 소녀가 그 곡을 감당할 수 있을까? 우려내지는 기대감으로 주시했는데, 그녀는 무난히, 아니 이전의 어느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완벽한 연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답니다. 


단적인 예로 당시 최고의 첼리스트였던 소련의 로스트로보비치도 그녀의 연주를 듣고, "이제부터는 내 레퍼트리에는 엘가의 협주곡을 빼야 할 것 같다”고 극찬하는 소감을 피력했다 합니다.


젊은 날의 자크린은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유태계 아르헨티나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사랑에 빠져 22살에 결혼을 하고 음악을 같이하는 부부로 살았으나, 자크린이 병든 후 투병 중에 바렌보임은 그녀를 떠나 소련의 여 피아니스트와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둘을 낳았습니다. 


누구보다도 곁에서 돌보고 지키고 위로해야 할 남편이 조강지처를, 그것도 병든 아내를 버리고 떠났다는 것은 후세인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휠체어에 의지하여 마지막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그의 친지나 지인에게 "나는 어떻게 이 삶을 견디어가야 할까요?" 자탄했다 합니다.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아까운 생을 마감합니다.


 <자크린의 눈물>이 슬프고, 애절한 첼로의 선율로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는 여운은, 비운의 삶은 살다간 자크린의 삶의 내용에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됩니다.


토마스 베르너는 현재 독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첼로주자로 활동 중이고, 1996년에는 내한하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바도 있습니다. 그의 앨범 1)에는 < 자크린의 눈물>, <하늘아래 두 영혼 >, <저녁의 선율> 등이 있고, 앨범 2)에는 우리나라 가요작곡가 박춘석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이 있습니다. 


자크린이 사용했던 악기 첼로는 171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다비도프'라 이름이 붙은 악기로 시가 수백만 불이 넘는 명기라 합니다. 그녀가 타계한 후 중국계 유명 첼리스트 요요마가 그 악기를 인수하여 사용 중이라 합니다.


 you tube에 <자크린의 눈물> 접속하시면 1)우리나라 최고의 첼리스트 장한나의 연주가 뜨고, 2)서울대학교 음대 교수인 김민지 님의 연주도 좋습니다. 모처럼의 좋은 음악을 만나 좋은 밤 지내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ongsungwon
홍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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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4
2018-11-09
캐나다의 현충일(Remembrance Day)

 

레이크쇼어(Lakeshore Blvd.) 거리를 서쪽으로 이어가다 보면, 33 그리고 34번가(34th St.)에 이르러 남쪽으로 향하는 길의 별칭이 '롱브랜치'(Long branch)다. 옛날에는 잡목으로 둘러 쌓인 숲이었으나, 택지로 개발된 뒤로는 양쪽으로 널리 주택가를 형성하고 있다.


남쪽 온타리오 호수와 인접한 부분에 아직도 수령(樹齡)이 오래된 참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백양나무 등으로 이룬 작은 숲 한가운데, 전쟁 중에 전사한 병사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위령탑이 하나 세워져 있다.


그 앞면에는 동판이 위아래로 3개 붙어 있는데, 맨 위에는 세계 1차 대전 때(1914~1918), 가운데에는 2차 대전 때(1939~1945) 전사한 장병들, 그리고 하단에는 한국전쟁(1950~1953) 때 UN군으로 참전했다가 희생된 캐나다 군인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언제나 이 위령탑 앞을 지나다니곤 한다. 11월 11일이 가까워 오면 캐나다 전역의 전몰 유가족, 상이용사회에서 조화로 만들어 파는 빨간 양귀비꽃 4송이를 사서 하나는 내 왼쪽 가슴에 꽂고, 나머지 3 송이는 3개의 동판 모퉁이에 붙여 놓는다.


내 조국의 안녕과 평화를 지키려다 고귀한 목숨을 바친 영령에 감사와 추모의 정이나마 보태고자 하는 뜻에서다.


매년 11월 11일 11시가 되면 캐나다 전역의 관공서, 학교, 회사, 공장, 직장 등에서 2분 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묵념을 하며 추모한다.


세계1차 대전 발발 그 다음해인 1915년 봄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지방에 걸쳐있는 '플랜더스' 격전지에 연합군으로 종군한 캐나다 군의관 죤 맥그레이 중령이 사랑하는 부하 알렉시스 헬머 중위와 다른 전사자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양귀비 꽃 벌판에서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시(詩) <플랑드르 벌판에서>를 지어 그들의 영전에 바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에 감동을 받은 미국의 Y.M.C.A의 전쟁구호 봉사교사 모이나 마이클이 답시를 발표하고 가슴에 붉은 양귀비꽃을 달고 다녔고, 프랑스 여성 게렝은 종이로 만든 양귀비꽃을 팔아서 전쟁고아들을 도왔는데,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종전 후 캐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등 국가에서 풍습으로 지켜오고 있다.


빨간 양귀비꽃(poppy)은 전쟁의 부상자와 전사자가 흘린 선홍의 피를 상징한다. 세상살이에 휘둘려 분망한 나날을 보낼지라도, 이날 Remembrance day 하루만이라도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영령 앞에 머리 숙여 추모의 정을 기리자.

 

 

 

 

 플랑드르 벌판에서
 - 죤 맥그레이 -

 

 


 
 플랑드르 벌판에 줄지어진 십자가 사이
 양귀비꽃이 피어나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알려주네
 하늘위로 종달새 노래하며 날고
 저 아래로 희미한 총소리

 

 이제 우리는 죽은 몸
 엊그제 까지는 우리 살아 있었네
 새벽을 느끼고, 석양을 맞았지
 사랑하고, 사랑을 받았건만
 지금 우리는 잠들어 있네
 이 플랑드르 벌판에

 

 그대여!
 우리대신 적을 무찔러 주오
 이 횃불을 그대에게 드리니
 높이 쳐들어 주오
 만일 그대가 죽은 이들을 저버린다면
 우리는 결코 잠들지 못하리
 이 플랑드르 벌판에
 양귀비꽃이 다시 핀다 해도…

 


 
* '플랑드르'는 플랜더스의 프랑스어 표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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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ungwon
홍성원
71164
14244
2018-10-06
마음을 담아준 아주머니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나는 한 주 걸러 영/스틸(Young  St./Steels Ave.) 근처로 첼로(cello)를 배우러 다닌다. 70살의 다 늦은 나이에 새삼 뒤늦게 무얼 배우러 다니냐? 고 묻는 사람도 있고, 달리 무엇인가 좋아하는 것을 택해 배우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잘하는 일이라고 격려해주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토비코(Etobicoke ) 지역 서남쪽에 살고 있으니, 꽤 먼 거리를 운전하고 다니는 셈이다. 어느 날인가도, 배움을 마치고 스틸 거리에서 더프린 가도 쪽으로 내려오는 시간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더니, 이내 폭우로 변하여 앞의 시야를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빗길에 고속도로(Hwy 401)로 들어서는 것이 안전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어디서라도 쉬었다 가려는데, 오른쪽 상가 쪽으로 K식당의 큰 한글간판이 보여 일단 그쪽에 주차를 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만두 국을 하나 주문해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밖에는 계속 굵은 비를 뿌려대고 있었다. 점심을 잘 먹고 비 멎기를 기다리면서 앉아있는데, 식탁 위에는 반찬과 후식으로 내놓은 파전도 그대로 남아있다.


식당에선 손님에게 한번 내놓았던 음식을 모두 버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 터여서 주인 아주머니인 듯한 분께 물어보았다. "남은 반찬이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드네요. 남은 것을 싸주실 수 있으면 집에 가져가서 잘 먹겠는데요"


"네, 싸드릴게요"


잠시 후에, 아무래도 너무 많아 보이는 양의 음식이 담긴 봉투를 건네주면서 그 아주머니는 말했다. "이후 어느 때라도, 식사를 꼭 안 하셔도 좋으니 찬(반찬)이 필요하시면 언제고 오셔서 말씀하세요. 조금씩 담아 드릴게요.”


이 착하고, 예쁜 말! 그리고 그 마음씨!


그분은 여자 특유의 직감으로, 내가 노년을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임을 알아차렸나 보다. 


비는 어느덧 멎어있고, 좋은 인정을 얻어 가슴에 품고, 깨끗이 닦인 길을 운전해 집으로 왔다.


저녁때가 되어 식사를 하려다가 또 한번 "어-" 하고 말았다. 다섯 개의 스티로폼 용기에는 먹다 남았던 반찬이 아니고, 가득가득 새 반찬이 담겨 있었다.


"아! 착한 사마리아 여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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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ungwon
홍성원
70525
14244
2018-09-13
청춘(靑春)을 돌려다오!

 

 

 

 

처연(凄然)했던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날인 6.25일을 대회 날짜로 잡아 온 것은, 어떤 특별한 연유가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매년 이날에 나의 성당 노년회(성심회, 聖心會)에서는 [노인(시니어) 골프대회]를 열어오고 있다. 상호간에 친목도 다지고, 하루 푸른 들판의 좋은 경관(景觀)에서 운동도 할 겸.


지난해에는 허리의 통증으로 불참했었고, 금년에는 대회를 주관하는 이형(李兄)의 권유도 있고 해서 등록을 했었다. (해밀턴에 있는 Carlisle 골프장)
좀 달뜬 마음으로 1시간여 드라이브를 해서 골프장에 도착해 보니, 성심회 봉사자를 위시해서 벌써 여러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예정된 시간이 되어 60여 명의 참가자들이 샷건(Shot-gun) 방식(각 홀을 나누어 Tee-off 하는 방식)으로 대회가 시작되었는데, 나는 의사이신 이 박사님과 그리고 금년 86세이신 이형과 한 조가 되어 south(남쪽) 코스 8번 홀부터 시작하였다.


"잘해야 할 텐데." 내가 80이 넘은 노구라 해도 골프 구력(球歷)이 40년(주말골퍼)이 넘는데, 젊어서 물이 올라 한창일 땐 70대도 기록하곤 했는데.


그때 쌓여진 기예(技藝)가 도움이 되려니? 괜찮은 play를 할 수 있겠지? 했는데. 웬걸! 부풀었던 기대는 첫 시작 홀부터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333yd, par 4에서 170yd 호수를 못 넘기고 공은 물속으로 잠수를 해버렸나 보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서 다음 샷을 잘해야지! 다짐하는데 문득 골프의 전설 Ben Hogan(벤 호건)의 말이 생각난다. 'The most important shot in golf.(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샷은?) 라 언급해 놓고는 is next shot!(그것은 다음 샷이다.) 이라고 했던 말.


그러나 그것도 어디 뜻대로 되어주어야 말이지. 꼬여가는 play는 갈수록 더하고. short game(그린 주변의 가까운 거리 플레이) 하나도 되는 것이 없고, 겨우 퍼딩(putting)만이 명맥을 이어주는 듯 하나, 동반 play 하는 파트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고 마음은 벌써 정심(正心)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하기야 일 년에 서너 번 라운딩 하는 게 고작인 형편에 너무 좋도록 바랬던 건 아니었을까 뒤집어 보게 되었다. 천방지축으로 전반 9홀을 끝내고 후반 9홀을 시작하는데 몸에 이상한 증후(症候)를 느끼게 됐다. 앞에 좌, 우에 보이는 물체가 겹쳐 보이는 착시현상(錯視現象)을 감지했던 것이다.


Tee에 공을 얹어 놓고 자세를 잡고 목표지점을 향해 정확히 공을 때려내야 되는데 양발 사이의 공이 하나였다, 둘이었다, 겹쳐 보이니 무슨 재주로 작은 백구(白球)를 정통으로 그것도 sweet spot(명중을 위한 클럽의 한가운데)에 맞추어 낼 수 있겠는가?


동반하는 이 박사님께, "박사님! 사물이 겹쳐 보입니다. 둘이였다 하나였다 이상합니다." 이미 이 정황을 짐작이라도 한 듯이 "형제님, 당뇨를 다스리고 계십니까?"


"네, 가정의가 처방해 준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하고 오셨습니까?"


'커피에 토스트를 구워 먹고 왔습니다."


"그리고 점심은 성당 봉사자들이 준비해온 김밥을 드셨고요?"


"아! 그러니 안됩니다. 아침 토스트 한쪽에 점심 김밥 반 줄로 그 열량을 가지고 6200yd 5시간 이상을 잘 버티리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그것도 80이 넘은 연세에 말입니다."


주머니에서 무슨 약을 꺼내주면서 "이 약 두 알을 입에 넣고 녹여 드세요."


"혈당을 조절해 주는 상비약입니다. 당뇨로 인한 어떤 합병증이 오면 몸에 이상이 생기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결국 후반 3홀을 접은 채 그냥 카트의 운전사로 대회를 마쳤다.


대회가 끝나고 저녁을 나누는 자리에서 이형과 이 박사님은 "번거롭고 귀찮아도 미루지 말고 균형 있는 식사를 하도록 하세요. 간단한 운동이라도 꾸준히 이어가도록 하시고요." 


그 동안 몸을 챙기는 데 소홀하였고, 적절한 섭생을 이어오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쉽고 불편했던 심기를 달래보려는 마음에서 속으로 한번 부질없이 외쳐보는 소리 ‘청춘을 돌려다오’


80대에 푸른 구장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인 것을. 좋은 날, 좋은 벗들과 멋진 초원(草原)에서 하루를 잘 즐겼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니겠나.


세월은 쉼 없이 흘러가고 그 흘러가는 세월 따라 더불어 인생도 도리없이 늙어가는 것. 마음을 비우고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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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ungwon
홍성원
66001
14244
2018-05-12
시집가는 효선에게

 

 오늘 시집가는 너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


 세상에선 흔히 모태(母胎)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때부터 네가 성인으로 성장하며 살아온 시기를 ‘제1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육신의 성장과 정신적인 성장이 아울러 병행되는 한 인간으로서 성인으로 성숙될 때까지의 과정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제 사랑하는 짝을 만나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양육하며 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또 다른 인생의 과정을 ‘제2의 인생’이라고 한다. 그것은 '제1의 인생'에 이어 살아가게 되는 참으로 가슴 설레고 중요한 삶의 길인 것이다. 이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한 인간의 역사가 여로모로 달라질 것이다.


 '제1의 인생'에선 부모님의 슬하에서 키워지고 교육되고 사람으로 자라왔지만 이제 '제2의 인생'에선 너와 너의 남편 둘이서 멀고 긴 삶의 여정(旅程)을 자의적(自意的)으로 헤쳐가야 할 것이다. 그 길은 순풍(順風)에 돛달고 떠나는 순탄하고 낭만적인 항해일 수도 있겠으나 때로는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를 넘어야 하는 힘들고 고단한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젊고 청춘의 빛나는 황금기에서 현명하게 주어진 길을 잘 헤쳐가리라고 나는 믿는다.


살아가면서 부족한 것은 서로 채워주고 힘들어 할 때는 밀어주고 격려해주고. 간혹 서운한 일이 있으면 이해하고 양해해 주고 잘못이 있으면 피차 너그러이 용서해야 한다. 기쁠 땐 얼싸안고 어르고 슬픈 일엔 상(傷)한 마음을 어루만지며 위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삶을 배우기 위해선 슬픔이 필요할 수 있다.
삶을 배우기 위해선 고통이 필요할 수 있다.
삶을 배우기 위해선 좌절이 필요할 수 있다.


 이 모두는 인생을 살아가는 길에 한 부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 한다마는 실상 어디 그럴 수야 있겠느냐. 그 뜻은 둘이서 합심(合心)하여 서로 돕고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최선의 인연합일(因緣合一) 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때론 다투는 때도 있을 것이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주는 곤란하다. 참고 인내하거라. 사랑의 끝은 없으리라고 본다. 마음껏 사랑하여라. 그리고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받아라.


 장차 네가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 그 어린것이 까닭 모르게 울고 보챌 때, 네 품에 안고 잠재울 때, 그 천사같은 잠든 얼굴에서 엄마로서의 행복을 느낄 것이다.


 너를 키워 떠나보내는 부모님은 많이 허전하고 쓸쓸해 하실 것이다. 네가 거처하던 방에서 접혀진 이부자리를 바로 잡고, 네가 늘 앉았던 책상의 의자에도 앉았다 일어났다 하실 것이다. 늘 연주하던 피아노 건반 위에 살며시 손가락으로 짚어도 보실 것이다.


 네 이름에는 첫 글자에 효도 효(孝)가 빛나고 있다. 효도하여라. 잘 자랐으니 보은(報恩)해야 하지 않겠느냐.


 너를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사랑받았듯이 네 시부모님께도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거라.


옛부터 고부간(姑婦間)의 갈등이 많았던 사회에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지금 이 시대에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는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


모든 것은 너 하기에 달려 있다. 너는 착하고 지혜로워서 꼭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리라고 믿는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세 마디만 더하고 맺기로 하자.


첫째, 건강하게 잘 살아라.
둘째, 아름답게 잘 살아라.
셋째. 행복하게 더욱 행복하게 잘 살아라.

 

 

2018년 5월 6일
너를 사랑하는 홍 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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