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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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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nam
임정남
111052
19294
2023-12-21
한해를 보내며


고마운 한해였습니다. 
이제 12월도 중순을 지나 하순에 접어 들고 있습니다. 2023 년이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지나간 한해를 돌이켜 봅니다.
되돌아 보니 고마운 한해였습니다.
보람이 가득한 한 해, 희망이 가득했던 한해, 그리고 행복이 가득했고, 가슴이 벅찼던 한해였습니다.
많은 일 때문에 정말 고마운 한해였습니다.

 

손자의 하키팀 우승
6살 막내 손자 준혁이가 하키를 시작할 때는 매번 넘어지고 일어서지도 못하더니 이제는 매 경기 마다 골을 넣고 그때 마다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지 모릅니다. 그리고 손자가 뛰는 팀이 지난 4월 27일 3대2로 최우수 팀으로 결정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미니 무궁화 동산
5월 10일 집에서 기르던 4년생 무궁화 23그루로 쏜힐 한국식품 코너에 미니 무궁화 동산을 만들었습니다.
8월에는 갖가지 색의 무궁화가 꽃을 피울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행복한 여름을 보냈습니다.

 

여름 휴가
늘 바쁘게 살다 보니 캐나다에 온 뒤로 제대로 된 휴가를 가본 적이 별로 없고, 온 가족이 함께
쉰 기억이 없는데 8월 2일 딸이 휴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이아가라 근처 강가에 커다란 별장을 통째로 얻어 4박 5일 온 가족이 모여 휴가를 즐겼습니다.
정말 잊지 못할 여름 휴가였습니다.

 

516 백중제     
매년 불교에서는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위한 백중이란 제사를 드리는데, 저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희생하신 516명에 대한 영가를 위해 매년 평화사 백중불공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금년은 9 번째입니다.
비록 합동제이지만 이 세상 제일 큰 보람이요, 행복입니다.

 

엿장수와 무궁화
작년에 한인회에서 엿장수 부탁을 받았으나 한인회에서 엿이 준비 안 되어 못 했는데 금년에는 엿 판에 가위 그리고 엿을 준비해 엿장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엿장수는 가위질이 가장 중요한데 매일 인터넷을 보면서 연습을 했는데도 생각처럼 잘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인회 행사에 참여했다는 의미는 컸습니다.
그리고 무궁화 화분 25개를 한인회에 기부하고 판매해 실내에서 키울 수 있다는 무궁화 홍보를 해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방문자 900만
2003년 인터넷을 시작한 지 20년 이곳 저곳 블로그에 글을 올렸고, 내 블로그도 만들어 글을 올리기 시작 그리고 20년 동안 한 사람 한 사람 방문 한 것이 지난 10월7일 기준으로 900만 명을 넘었습니다.  
미숙한 글에도 방문해 주시는 여러분이 고맙고 감격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11월 11일에는 하루 1만9,192명이 찾아 하루 방문자 최고기록을 세웠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격했습니다.

 

 

현충일 행사
매년 캐나다 현충일이 되면 무궁화 사랑 모임에서는 한국전쟁의 캐나다 참전 희생자 516분을 기리는 516개의 리본을 다는 현충일 행사를 하는데 금년은 13회로 제임스가든 이상온 무궁화 동산에서 있었습니다.
늘 행사 때 마다 큰 보람과 감동을 주었지만 금년에는 특히 미국에서 유병호씨가 참여해 또 다른 감동을 주었고 더욱 감격을 준 것은 기금을 회사, 무궁화 장학금을 만들 예정이라고 발표하셨을 때였습니다.  
참여 하신 모든 분들은 감격해 하시고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침의 향기 새 출발
12년 전 프로메네드 몰에서 아침 마다 걸으면서 한 사람 두 사람 만나기 시작 매일 10여 명이 모여 걷고 커피 마시고 때로는 근교로 야외 소풍도 다니며 아주 즐겁고 재미 있는 시간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팀명도 만들었습니다. ‘아침의 향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그만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모이기 시작한 것이 지난 6월29일. 팀원들은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그 동안 쌓인 얘기를 하느라 웃음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무궁화 국화지정 운동
우연히 인터넷에서 우리가 대한민국 국화로 알고 있는 무궁화가 아직 정식 국화로 지정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저는 너무나 놀라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주제 넘은 일이요, 무모한 일이지만 지난해 5월 4일 무궁화 국화 지정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국회에서 10여 차례나 추진해도 못한 무궁화 국가지정이지만 그래도 저의 무궁화 블로그에 80여만 명이 방문하고 무궁화 지정 운동 이후에도 40여 만명이 방문해 주심에 큰 용기와 희망을 느끼며 큰 보람으로 여깁니다.  

 

이 외에도 작은 손자의 야구팀 우승, 무궁화 동산 일주, 손자의 첫 운전, 무궁화 분양 등등 참으로 올해는 가슴 벅찬 시간이었습니다.
내년은 어떠한 해일까 기대에 부풀어 봅니다.
성원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ungnam
임정남
110250
19294
2023-11-16
현충일 행사를 마치고

 

2003년 4월 토론토 유지들이 모여 대한민국의 국화인 무궁화를 광역토론토 지역사회에 알리고 보급하기 위해 무궁화 사랑모임이란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초대회장엔 김병선 강신봉 씨가 선임됐고, 무궁화를 구입해 가정과 관공서 그리고 교회에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아가 2007년에는 김병선 회장의 노력으로 토론토대학 내에 이상철 무궁화동산과 크리스티공원 그리고 제임스가든에 무궁화동산을 조성했습니다.

이어서 에드워드가든 알렉산더무어 얼스코트 공원에도 무궁화동산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김병선 회장의 제안으로 제임스가든 이상온 무궁화 동산에서 제1회 무궁화 사랑모임 첫 현충일 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희생한 516명의 캐나다 군인들 영령을 기리는 516개의 리본을 만들어 무궁화나무에 매다는 행사입니다.

 

516개의 리본을 단 무궁화동산은 그렇게 흐뭇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공원을 방문 중인 분들은 처음에는 의아해 하다가 우리가 무궁화 동산을 조성하고, 리본을 매단 이유를 설명해 주니 놀라고 감격해 감사 인사를 연발하고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행사 때마다 토론토한인회, 총영사관, 노인회 등 그 외에도 많은 단체가 참여하여 늘 가슴이 벅찼고 감격에 젖었습니다.

올해 무궁화 사랑모임 행사는 13회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요번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많은 감격을 주었습니다.

 

그 동안 무궁화 사랑모임 현충일 행사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어려운 시기에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행사를 치르기는 했지만 늘 시작하기 전에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행사를 신고하는 절차도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인원이 적게 와도 걱정이지만 너무 많이 참여하면 정식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이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미 2주 전 행사를 진행하기로 결정을 했으나 저는 일에 쫓기어 별로 홍보를 못 하고 회장님에게 의존하는 도리 밖에 없었습니다.

행사가 있던 날 아침 행사 포스터를 찾으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작년 행사 때 회장님이 나중에 수거하신 줄 아는데 회장님은 저에게 물으시니 아무래도 잃어버린 것만 같아 아쉬웠습니다.

나는 우선 동산에 무궁화가 죽은 곳이 있기에 흙과 무궁화 세 그루를 차에 실었습니다.

 

무궁화 동산에 도착해 때마침 직원을 만나 행사 신고부터 했습니다.

매년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캐나다군 516명의 용사를 기리기 위해 516개의 리본을 다는 행사를 한다고 알렸습니다.

처음 보는 직원인 데도 내 짧은 영어도 이해해 주면서 기뻐하고 고마워 했습니다.

 

처음 행사장에는 쓸쓸했으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거의 예전과 같은 수준 이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리본 달기가 시작되자 참석자들은 저마다 리본을 들고 정성껏 리본을 무궁화에 매 달았습니다.

 

516 개의 리본을 단 무궁화 동산의 모습은 울긋불긋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끝으로 준비와 홍보 부족 때문에 단체 참여는 줄었으나 커피를 사오시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오신 분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과자 선물도 가지고 오셔서 푸짐한 다과회가 베풀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행사가 감격스러운 것은 미국 뉴저지에 계신 유병호 회장님께서 이 행사에 참석하시기 위해 직접 운전하시며 이틀 동안 고생하고 오셔서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또한 회장님께서 무궁화 장학금을 마련하신다고 하여 또 많은 갈채를 받았습니다.

 

저에게 특별한 것은 쏜힐 한국식품 사장님께서 처음으로 참여해 주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올해 현충일 행사도 아주 뜻깊고 감동을 준 행사였습니다. 참석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ungnam
임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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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4
2023-01-19
제 3의 고향 토론토

 

 오늘은 1월 14일, 이 날은 내 일생에 아주 커다란 변화가 시작된 날입니다. 바로 제가 캐나다에 이민 온 날입니다. 1977년 1월 14일 오후 10시 김포공항을 출발 일본에서 밴쿠버 가는 비행기로 갈아 타고 다시 토론토로 오는 비행기로 갈아 타고 마침내 긴 여정을 마치고 토론토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잊을 수 없는 것은 밴쿠버엔 비가 내리는데, 토론토에 도착하니 마이너스 23도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아주 험상궂은 날이었습니다. 우리 식구는 빅토리아팍에 있는 형 네 집에 여장을 풀고 캐나다의 이민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46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35살이었던 내 나이는 81살이 되었고, 13살이었던 딸은 59살이 되었고, 9살이었던 아들은 55살이 되었습니다. 나는 오자 마자 영어를 배우는 맨파워 스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6개월을 다니는 동안 영어를 배우며 주일마다 돈까지 받았습니다.

이 기간은 참으로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맨파워 스쿨이 끝나자 곧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호텔 정리원으로 6개월, 다음 접시 닦기로 6개월, 그리고 집사람이 마련한 돈과 이웃의 도움으로 영과 로렌스에 있는 허술한 가게를 매입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빈손으로 시작한 가게이다 보니 난관이 이만 저만 아니었으나, 차차 자리가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가게를 하다 보니 온타리오한인실업인협회를 알게 되었고 이사로 15년 열심히 뛰었고, 한인회도 20년 이사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나아가 시니어골프협회, 불교인회, 무궁화사랑모임 등에도 참여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했습니다. 또한 인터넷 활동도 열심히 하여 6개의 홈피를 운영 중에 있으며, 방문 수가 현재 700만을 넘어섰습니다.

캐나다에 이민 올 때 맨 몸으로 특별한 기술도 없이 가족을 이끌고 이민 생활을 시작, 어려움도 없지 않았으나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으며 늘 분에 넘치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또한 보람이 넘치고 벅찬 희망 속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46년 동안 정이 너무 들었습니다. 이제는 이곳이 나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3번째의 고향인 것입니다. 첫 번째의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곳 경기도 개성 입니다. 그러나 6 25 전쟁으로 9살 때 구사일생으로 피난 나온 나에게는 고향집도 희미하고 친구의 얼굴도 이름하나 기억에 없는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의 고향은 서울입니다. 이곳 저곳 떠돌던 피난살이, 헤어진 형과 만나 정착하게 된 곳은 서울 동대문구의 전농동 입니다. 12살의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공부 19살에 학교를 떠나 공사판에 떠돌다 시작한 구멍가게, 고달픈 생활이었지만 작은 봉사 속에 큰 보람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나의 봉사 생활이 언론에 나고, 수기가 당선되고, TV 단막극으로 라디오 연속으로 36회 방송되었을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23년을 살아온 서울은 저의 제2의 고향인 것입니다.

오늘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을 합니다. 내일의 아름다운 이민 생활을 위해서…. 멋진 이민 생활이 되도록 성원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ungnam
임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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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4
2022-12-22
가슴 뛰는 한 해였습니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12월도 하순에 접어들어 미풍에도 날아갈 듯한 조각만 남았습니다. 매년 이 때가 되면 나에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새로운 각오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올 해도 가슴 벅찬 한 해였습니다. 가슴은 늘 뛰었고 희망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눈 검사를 마치고… 가끔 야간 운전을 하다 보면 사물이 분명치 않아 운전 하기에 불편을 느껴 안경을 새로이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동안 코로나 관계로 안과를 몇 년째 못 가서 눈 상태가 궁금했는데 내 눈을 검사 하고 난 후 왼쪽은 1, 오른쪽은 0.75 라고 알려 줄 때 난 그만 와 하며 감격에 소리쳤습니다.

사실 컴퓨터를 하느라 눈이 나빠졌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번함이 없다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신기한 것은 혈압이 120에 70으로 수십 년 동안 변함없다는 것입니다.

80 나이에 이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궁화 공식 국화 지정 운동

무궁화 하면 누구나 국화로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무궁화에 관심을 갖고 살피다 보니 무궁화가 공식 국화로 지정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수없이 국가에서 추진했으나 이루지 못한 무궁화 국화 지정을 이루고자 무궁화 국화 지정 운동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캐나다에 이민자로서 무명인 내가 그런 큰일을 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기에도 가당치 않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꼭 돼야 한다는 것이요, 꼭 되도록 적은 목소리나마 내어보려 합니다. 다행이 많은 분들이 저의 글에 동참하고 있어 희망이 보입니다. 저의 무궁화에 대한 홈피 방문은 55만 명을 넘고 있습니다.

 

아슬아슬 접수

매년 해외동포넷에서는 해외 문학작품을 공모합니다. 저는 참가하고 싶어 신청하려 했으나 매년 이뤄지지 못했는데, 올해는 꼭 이루고 싶어 메일로 사정을 얘기하고 ‘한카 우정의 꽃 무궁화’란 수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접수 마감 1 시간 전에 한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새벽 3시였습니다.

“임정남씨인가요?” “네” “접수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물론 당선은 둘째로 참가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살다 보니

매주 수요일은 버거킹에서 버거를 세일하는데 맛도 있고 커서 배불리 먹을 수 있어 가끔 가서 먹기도 하고 픽업도 합니다. 7월 11일 버거킹에서 픽업하려고 갔습니다. 도착하여 지갑을 찾으니 아차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어찌 하나 난감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업는 돈 순간 생각이 났습니다. 청소하다 주운 5불짜리 2장, 나는 얼른 일복을 찾아 호주머니를 뒤지니 10불이 나왔습니다. 여기 저기 동전을 찾아 15불을 만들고 버거를 사서 집으로 달렸습니다. 정말 이것은 큰 행운이요,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고마웠던 순간

10.23 매주 일요일은 손자들의 하키가 있는 날입니다. 이 날은 하키가 끝나면 가끔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자장면 집입니다. 오늘도 들러 자장면과 탕수육 등을 시켰습니다. 거의 음식을 끝낼 무렵 계산대에 갔습니다.

그런데 지인이 우리 식구의 음식 값을 모두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식구의 음식 값이 적지도 않은데 갚아 주다니 놀랍고 기쁘고 고마워서 나와 우리 식구는 감동을 금치 못했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딸네 깨 밭과 무궁화심기

온타리오 런던에 사는 딸네 집 뒤뜰에 텃밭을 만들고 집에서 가지고 간 깨 모종을 심고 무궁화 나무와 국화를 심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딸이 깻잎 먹을 생각하니 너무 신이 났습니다.

 

한국전 참전 희생자 백중 제사

매년 불교에서는 조상을 그리는 백중 제사가 있습니다. 이 날이 되면 평화사에 516 한국전 희생자를 위한 백중제 신청을 하고 참여하고 있는데 금년은 8회째 입니다. 비록 공동 제사이지만 그 보람과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현충일 행사

올해로 13회를 맞는 무궁화 사랑모임 현충일 행사. 매년 주말에 하다가 목요일 주중 행사를 잡아 참여가 적을까 걱정했는데, 예년과 같은 분들이 참여하여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손자의 선물

저에게는 손자가 둘이 있는데 큰 손자는 워낙 공부를 잘해서 걱정이 없지만 작은 손자가 늘 걱정이었는데 선생님으로부터 공부도 잘하고 친구와 우애가 깊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나에게는 손자가 준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손자의 선물2

두 손자가 하키를 하는데 큰 손자는 팀에서도 제일 잘 하지만 작은 손자도 늘 3골씩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끌 때 얼마나 신나고 기쁜지 모릅니다.

 

맺는 글

이 밖에도 구글을 쳤을 때 저의 수필 무궁화 동산에 감동의 물결이 맨 앞에 보일 때를 잊을 수 없고, 하루 만 명이 넘는 분이 내 글을 방문할 때와 12월 5일 700만 명의 방문 기록을 이룰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올 한해도 보람과 행복이 가득한 해였습니다. 새해는 수필집을 만들고, 무궁화 화보도 만들고, 무궁화의 날 행사도 멋지게 꾸며 보고 싶습니다. 새해에는 어떠한 일들이 생길지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가슴은 벌써 희망이 부풀어 옵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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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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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4
2022-11-17
무궁화 동산에 파도처럼

 

 

“일년 중에 제일 큰 과제가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무궁화 사랑모임 현충일 행사입니다“라고 선뜻 대답할 것입니다. 그만치 나에게 있어 현충일 행사는 보람 있고 즐겁고 희망과 행복을 주는 아주 소중한 일인 것입니다.

올해는 12회로 젬스가든 이상온 무궁화동산에서 열렸습니다. 전에는 집에서 준비물을 챙기고 가다가 달라상과 수퍼마켙에서 꽃과 준비물을 챙겼는데, 올해는 한번도 현충일 행사에 참여하지 않던 집사람이 참여한다니 보여주고 싶긴 했지만 기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찍 서둘러 꽃과 철사를 사다 놓고 9시30분경 집을 출발했습니다. 공원에 도착하니 회장님이 먼저 와 계셨습니다. 매년 행사를 하기 전에 공원에서 집회 신고를 해야 하는데 만나기가 쉽지가 않아 미리 못해서 걱정 되어 공원 사무실을 찾으니 잠겨 있었습니다.

마침 공원을 살펴보니 공원 직원이 눈에 띄어 다가가 더듬거리는 말투로 “매년 무궁화 사랑모임에서 현충일 행사를 하는데 오늘 합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먼저 책임자 나딘은 승진해서 관리국으로 가고 저는 임시 관리를 맡고 있는 폴입니다” “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 것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분들의 덕분인데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내가 영어가 짧아 더듬거려도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고 얘기해 주는지 나는 너무나 기쁘고 신났습니다. 두 개의 동산에 한 개씩 행사 안내 입간판과 두 개의 꽃 다발 갖다 놓고 대형 태극기를 세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한국일보 김명규 사장님, 불교인회 전 회장 최종학씨, 한카노인회 이우훈 회장, 재향군인회 송승박 회장, 변의섭 작가님, 김근래 회장, 정진홍 장로님 등 모두가 반갑고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11시가 되자 리본 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두 개의 동산에 두 그룹으로 나뉘어 50개의 무궁화 나무에 한국전 참전 희생자 516명을 기리는 516개의 새빨간 리본이 무궁화 가지에 매달렸습니다. 참말로 리본 꽃이 피었습니다. 그 꽃은 아름다웠습니다.

이 세상에 단 한곳, 이 곳에만 있는 꽃, 516명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꽃, 보기만 해도 가슴이 띄고 벅차 오릅니다.

리본을 달고 나자 간단한 회장의 인사와 소개가 있은 다음 회장님이 준비한 음식들로 다과회가 베풀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랜 만에 만나 하지 못한 얘기들을 하느라 자리를 떠날 줄 몰랐습니다.

공원을 찾는 분들은 처음에는 이상한 눈으로 보다가 내용을 알고 나서는 “땡큐 땡큐“를 연상 하며 감동과 감격해 했습니다.

그동안 현충일 행사를 하면서 잊지 못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중년 캐네디언 여성이 무궁화동산 앞에 서더니 마구 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어깨를 들먹이며 엉엉 우는 것입니다. 영문을 몰라 “왜 그러세요?“하고 물으니 “우리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했었는데 얼마 전에 돌아 가셨어요. 고맙기도 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요“

그 소리를 듣자 반가움과 고마움이 넘치고 나도 따라 눈물을 흘렸습니다. 순간 나는 그녀를 포옹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해 어머니를 모시고 또 와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또 한번은 두 할머니가 행사장 앞에 오시더니 이상히 여기기에 “한국전에 희생하신 캐나다 516명의 영혼을 기리는 것입니다” 하니 “땡큐 땡큐“를 연발하며 감동에 넘쳐 나를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이 얼마나 기뻤는지 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한번은 현충일 행사 시설물을 정리하고 있는데 지나던 두 여인이 다가와

“무얼 하세요?“하고 묻기에 “한국전에 희생하신 캐나다 참전용사를 위하여 516개의 리본을 달았는데, 오늘 치우는 중입니다“하니 “땡큐 땡큐“를 연발하며 두 분이 거들어 주기 시작 했습니다.

나는 얼마나 그분들이 고마운지 고마움이 파도처럼 몰려 왔습니다. 사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답고 훌륭한 뜻 깊은 행사를 갖게 된 시작은 김병선 회장님 때였습니다. 2011년 7월경 김병선 회장이 나에 물었습니다. “임회장 캐나다 현충일에 516 개의 리본을 달고 현충일 행사를 하면 어떨까?“ “좋지요“ 순간 대답하고 나는 멋진 구상에 신이 났습니다.

“그럼 임회장이 행사 문구를 만들어요. 나는 리본을 만들 테니“

그렇게 하여 서둘러 516개의 리본을 만들었고, 2011년 11월 캐나다 현충일에 무궁화 사랑모임 첫 현충일 행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행사를 만들게 해준 김병선 회장을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김 회장님 고맙습니다“

11월 12일 카폰에 메시지가 떴습니다. 열어보니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하시고 돌아가셨다는 댈 이라는 분의 전화였습니다. 이번 행사에 초대를 못해서 미안했는데 “땡큐 쏘리 아이 미스 유“하고 메시지를 보내자 “쏘리 아이 미스 유“하고 대답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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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nam
임정남
99598
19294
2022-09-29
삼우스님 추모법회-캐네디언 불자들의 추모열기 성대

 

 

9월 24일 토론토 84 Vaughan Rd.에 있는 선련사에서는 지난 8월 6일 입적하신 주지스님 삼우스님에 대한 추모 법회가 있었다. 법당 안 중앙 테이블에는 평소 스님이 쓰시던 유품들이 영정사진과 함께 진열되어 있었고, 법당 안은 캐네디언 불자들로 북적였다.

북소리로 시작한 법회는 곧 스님을 추모하는 추모사로 이어졌는데, 얘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스님의 일화에 폭소도 끊이지 않았다.

여러 분의 추모사에 이어 추모 영상이 상영됐는데 모두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2시간 30분에 걸친 추모 법회를 끝내고 지하에서는 떡, 김밥, 과일, 커피 등 준비한 음식을 들며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법회는 아주 감동적이었다. 한국인 스님으로서 한국사찰인 선련사, 하지만 한국인은 겨우 5명 정도에 불과한데 법당을 가득 메운 캐네디언들을 보니 놀랍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선련사에 등록된 신도가 400명에 달하고 이 중에는 의사, 변호사, 정치인, 사업가 등 다양한 지도층 인사가 많다는 것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미국에 4개의 사찰을 세우셨다는 것이다. 앤아버, 시카고, 뉴욕시티, 멕시코 시티. 이중 멕시코 선련사는 등록 신자가 18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실로 스님의 업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68년부터 미주와 캐나다에 불교를 전파한 스님의 노고를 실감하며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은 68년 몬트리올에 잠시 계셨다가 1972년 토론토 마캄에 선련사를 개설하셨다. 조그마한 지하실 이었다. 비록 조그마한 지하실이었지만 캐나다불교의 씨앗을 심으신 첫 사찰인 것이다.

사찰이 없던 불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고, 한인 불자들은 모여들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많은 불자들은 이 사찰을 다녔다. 그래서 불자들에겐 고향 같은 사찰이다.

이후 불광사, 대각사, 한마음선원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선련사는 한인 불자 들에게 언제부터인지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다른 문제도 있겠지만 결혼한 적 있는 과거였다. 그런데 캐네디언들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홀로 계신 것을 안타까워했다.

얼마나 외로우셨냐고, 정말 우리는 스님은 결혼은 해서 안 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을 하게 한다. 오늘 삼우스님 법회를 통해서 스님의 높은 업적에 감사 드리며 불교 발전에 희망을 주신 것에도 감사를 드린다.

스님 고맙습니다.

 

jungnam
임정남
98542
19294
2022-08-25
한카노인회 한가위축제 아쉬운 점 하나

 

먼저 이 글은 개인이나 단체를 흠집내기 위함이 아니요, 앞으로 어느 단체에서나 있을 수 있어 사전 예방을 위함임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8월 20일 오늘은 한카노인회 여름 축제가 지로스 로드 공원에서 있는 날입니다. 대체로 주말에는 행사가 많아 붐비는 까닭에 주차장이 만원이라 공원 입구를 막는 일이 있어 서둘러 도착했는데도 이미 주차장은 다 차서 갓길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행사장에 다다르니 이미 만나기로 한 친구들이 와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한둘 모이면서 10명이나 되어 얘기꽃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11시에 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새 회장에 대한 설명과 인준에 대한 절차를 하는데 잠시 무거운 기운이 흘렀습니다. 가급적 축제 행사에서는 회의를 피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식순이 끝나고 2부에 들어가 점심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티켓을 주고 선물과 점심 백을 받았는데 물과 양갱, 두유, 쵸코파이 등이 들어 있고 점심으로 비빔밥이 제공돼 보기 좋고 맛도 있어 모두 즐거운 식사였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3부로 들어가 쇼가 진행됐습니다. 색소폰 연주에 난타공연, 고전무용, 스포츠댄스, 라인댄스, 고고장구 등 정말로 훌륭한 여름축제가 벌어졌습니다. 400명에 이르는 교민이 참여하고, 준비도 많이 하고, 행사는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쇼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중에 한 노인이 항의를 했습니다.

“3시간이나 헤매다가 찾아왔는데 왜 점심을 안주냐?”

“다 나갔습니다” 아마 이런 대답을 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자 언성이 높아지고 화를 내며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는 노인 분을 보니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들어 온 물건 중에서 하나를 드리면 어떨까요?”

“가져온 티켓 한 쪽이 없어요. 주운 것인지도 몰라요”

나는 그분을 도와 드리고 싶었으나 아무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그 분은 가버렸습니다.

곧 알게 된 사실은 오래 전에 우리와 알았던 분이고 나이는 81세. 차도 없고, 자전거도 없고, 건강도 좋지 않다는 소릴 듣고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30도의 무더운 날씨. 아마도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다시 버스 타고 그리고 공원으로 들어와 또 행사장을 얼마를 찾으셨을까. 몸은 지치고 허기에 고생은 얼마나 하셨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립니다. 우리 한인사회에는 많은 단체가 있고, 행사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연구하고 준비하여 아픈 사연이 다시는 없도록 마음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끝으로 오늘의 축제를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아무 도움도 드리지 못한 노인분께 사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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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nam
임정남
98074
19294
2022-08-11
무궁화의 날 유감

 

무궁화의 날을 아시나요.

8월 6일은 무궁화사랑모임 제4회 무궁화 축제가 제임가든 이상온무궁화동산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어떻게 해야 즐겁고 뜻 깊은 행사가 될까, 사람들은 얼마나 올까 이런 저런 걱정으로 가슴이 조여 왔습니다.

우선 걱정되는 것은 언론사에 늦게 알리고,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못한 것과 한인회 행사가 있어 어려움이 짐작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축제라 하니 무언가 즐거움이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상품 뽑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그 동안 상품으로 타온 선풍기 그리고 잔디 깎기 기계에다 몇 가지를 추가하기로 하였습니다. 추첨을 할 때는 추첨권이 있어야 하는데 티켓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토요일 일하는 날입니다. 다행인 것은 아침 6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라 시간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9시에 일을 끝내고 상품 몇 가지를 샀습니다.

쌀통 2개, 비타민 드링크 1박스, 마스크 1박스, 고추장 1통.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나눠줄 풍선과 추첨 티켓을 사러 달라 가게에 들렀습니다. 그러나 풍선은 있는데 추첨 티켓은 없었습니다. 다시 문방구에 들러 겨우 찾았습니다. 티켓이 문제였는데 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가기 위해 407로 달렸습니다. 달리면서 저는 7년 전의 제 1회 무궁화의 날 축제를 떠올렸습니다. 2015년 8월 7일 축제가 있는 전날입니다. 공교롭게도 온 가족이 3박 4일 알곤퀸공원 근처로 캠핑을 간다는 것입니다. 200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입니다.

우선 나는 가족 캠핑을 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 못하는 가슴은 타들어 갔습니다. 사실 무궁화 축제를 추진한 것도, 배너와 풍선, 음료수도 제가 맡아 하기로 했고, 그 물건들을 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아들 차에 다 탈수 있는 데도 내 차를 우겨 따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요번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8월 5일 며느리가 토요일 점심을 하자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나는 행사 얘기를 안했던 것입니다. 야단났습니다.

행사 얘기를 하면 야단맞을 게 뻔합니다. 그래도 어찌합니까 실토를 할 수밖에… “내일 나 행사 있어” “무슨 행사?” “무궁화 축제” “아이구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다른 일 있다고 하니, 가족이 중요해 행사가 중요해” 하며 집사람에게 잔소리를 들었으나 그래도 쉽게 넘어갔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캠프장에 가니 아들이 묵을 곳을 얻어 놓았습니다. 전기에 바비큐 등 시설이 잘 가꾸어 있었습니다. 갈비 바비큐에 저녁을 먹고 장작불 피워놓고 옥수수, 솜사탕 구워 먹고 모두 잠에 들었습니다.

밤 3시경 몰래 일어났습니다. 일찍 떠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집사람이 알고는 “왜 그래. ” “행사가 있어 가야 돼” “뭐라구? 아이들이 자서 음성을 높일 수가 없으니 아침 6시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행사장을 향했습니다. 좀 늦기는 했으나 다행히 회장님이 여러 준비를 하셔서 행사는 아주 잘 치렀습니다. 다시 407 입니다. 400을 타고 401을 거쳐 공원에 도착하니 9시 45분, 아침인데도 후끈한 열기에 땀이 흘렀습니다.

우선 풍선에 바람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공원에 부모님과 같이 온 어린이들에게 풍선을 하나씩 건네 주면 웃음이 가득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즐겁고 신이 났습니다.

얼마 있어 회장님이 오셨고 같이 배너를 달고 풍선을 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행사 시간인 11시가 돼도 한 사람도 오지 않았고, 12시가 넘어서도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있어도 후회는 없습니다. 그래도 무궁화를 알리고 무궁화의 날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하루에 500명 이상 무궁화 사랑모임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시고 누적 방문자가 45만 명이 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앞으로 내 힘이 닿는 한 무궁화와 8월 8일 무궁화의 날을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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