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안락사라는 이름의 자살’

여성복서 매기는 세계타이틀을 획득하게 되지만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큰 부상을 당한다. 재활병원에서 24시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다리마저 절단하게 된다. 살아있지만 살았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던 매기는 그녀를 딸처럼 생각했던 스승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환자가 겪는 고통을 그치게 하고 싶다는 생각과 윤리적 판단에서 오는 갈등 속에 프랭크는 자신이 다니는 성당으로 신부를 찾아가 의논을 한다.

 

 

프랭키: 저는 그 아이와 함께 하고 싶고, 그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아이를 살리는 일은 그 아이를 죽이는 일과 같아요. 그 아이는 이제 이 세상을 하직하기를 원하고 있고, 그녀는 그 일을 저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신부: 하느님도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합시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하게 되면, 당신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운명 결정은 오직 하느님만이 선택할 수 있는 신(神)의 몫입니다.

프랭키: 그런데 신부님, 그녀는 하느님이 아닌 나에게 도와달라고 합니다.

 

설사 이 일이 자신을 파괴할지라도, 그래서 영혼을 찾을 수 없는 깊은 어둠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는 신마저도 외면한 처절한 이 고통에서 그녀가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녀에게 안락사(존엄사)를 선사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 제작한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권투선수를 소재로 한 삶과 죽음에 대한 무거운 소재를 중압감 있게 다룬 작품으로서, 이 영화는 러닝타임 133분 중 단 1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은 명실공히 이스트우드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2005년, 제 77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96년 5월6일, 53세의 ‘어스틴 바스타불’ 씨는 이 세상의 마지막이 되는 길을 떠나고 있었다.

불치병으로 전신이 마비되어 고생하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하여 안락사가 허용되는 디트로이트로 가고 있었다. 다음 날인 5월7일 아침, 그의 시신은 국경을 넘어 '윈저' 근교인 집으로 돌아왔다. 스스로 죽을 권리를 찾던 바스타불 씨는 국경을 건너가서야 그의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 안락사를 허용치 않는 연방정부에 대항하여 스스로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찾아 투쟁하던 생전의 그의 모습을 토론토스타는 1996년 5월9일자 1면 톱에 "무덤으로부터의 항변"이라는 타이틀로 게재하였다.

 

캐나다국회가 2016년에 제정한 안락사법(Medical Assistance In Dying, Bill C-14)은 의료적 조력자살을 허용하되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왔었다. 그러나 2023년 3월부터는 그 범위를 확대하여 정신질환 환자에게도 그 법을 허용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그 범위는 우울증, 양극성장애, 거식증(拒食症), PTSD등 다양성을 띠고 있으며,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례까지 열거하며 의학적으로 더 이상의 치료 가능성이 없는데 안락사를 허용치 않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였다.

 

지난 3월 마지막 주, 알버타주 에드먼턴 고등법원에서는 ‘코린피스비’ 재판장이 주관하는 안락사(MAID)에 관한 재판이 있었다. 이 재판의 목적은 알버타주 캘거리에 거주하는 27세 여성으로서 안락사법에 의한 죽음의 권리를 요구하는 딸과, 딸의 선택을 저지해 달라는 아버지의 간청으로서, 부녀간의 절실한 생(生)과 사(死)에 관한 재판이었다.

 

아버지의 주장: 나의 딸은 자폐증과 주의력 결핍행동장애(Autism, ADHD)를 앓고 있으며, 한번도 부모와 떨어져 독립하여 살아본 적이 없다. 따라서 그녀의 문제점은 신체적이라기보다는 우울증 정신적인 문제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안락사를 요청할 권리가 딸에게는 없다는 논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스비' 재판장은 비록 아버지가 딸을 잃는 슬픔이 있다 할지라도 딸의 죽을 권리를 인정하여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30일 안에 상소할 수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근본적으로 안락사는,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는 말기환자의 마지막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어야 만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폄훼하여서는 아니되기 때문에 위의 결정은 넌센스이며 인도주의를 가장한 쇼킹한 프로세스였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시 되는 현대사회라 할지라도 정신질환자를 안락사 관례법에 연관시키는 것은 잘못된 관례를 낳게 할 뿐이다.

정부는, 정신질환만으로는 조력자살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반드시 채택하여야만 할 것이다. 

 

나는 1996년 토론토 소재 일간지의 '징검다리'라는 종교란을 통해 "안락사라는 이름의 자살"이라는 칼럼을 기재한 적이 있다. 당시 캐나다에선 안락사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많은 캐네디언들이 안락사의 허용을 요구하고 있던 시대였다. 그 해 1996년7월, "인간 생명은 하느님 사랑의 선물이기에 신성불가침의 권리를 가지며, 인간은 그 누구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의 글을 기고하였다. 28년이 지났고 1년반 후에는 80세가 된다. 이제 누가 내게 물어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나 혹은 내 자신이 처절한 고통 속에 MAID를 요구하게 되어 내가 결정을 해야만 한다면 나는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안락사(Medical assistance in dying, MAID)는 고통에 빠져 있는 회복 불가능한 말기환자에게 그 고통을 덜어서 마지막 가는 길의 죽음을 맞이 하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죽음은 반드시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로 한, 존엄사여야만 하며 정신질환만으로도 안락사가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2024년 4월6일.

참고: 마크 홀란드 연방보건부장관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조력존엄사 실행일을 2027년 3월17일로 연기하는 법안을 도입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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