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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budongsancanada
2021-11-26
전세계 변이공포 급속확산. 남아공발 외국인 입국금지

*< 속보>남아공발 외국인 캐나다 입국금지…연방정부, 최근 14일 이내에 남아공이나 인근국가 여행한 사람 캐나다 입국금지…이미 입국한 사람은 14일 자가격리에 코로나 테스트 받아야…WHO 전파성 상한 남아공 변이 이름 ‘오미크론(0micron)으로 명명…https://www.ctvnews.ca/health/coronavirus/canada-bans-travellers-from-southern-africa-as-concerns-mount-over-coronavirus-variant-1.5682764   *<속보>“코로나 변이 발생국가 항공기-승객 전면 입국금지” 덕 포드 온주총리, 연방정부에 즉각 시행 촉구…변이 발생국과 ‘감염우려’ 국가까지 포함해 사실상 재봉쇄 요구…공항 입국 즉시 코로나 검사도 재시행…https://www.cp24.com/news/ford-calling-on-ottawa-to-immediately-ban-flights-from-countries-linked-to-new-covid-19-variant-1.5682672   *<브래드포드 바이패스 공사 입찰>최근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는 브래드포드 바이패스(하이웨이 400~404 연결 도로) 착공 위해 덕 포드 온주정부 교량입찰 공고 발표…이 공사는 캐롤라인 멀루니 온주 교통부장관과 조성훈(Stan Cho) 부장관이 합심협력해 추진 중…https://www.thestar.com/politics/provincial/2021/11/26/ford-government-seeks-bids-to-build-bradford-bypass-bridge.html   *< 점점 더 거세지는 코로나>온주 금요일 신규확진자 927명(3개월여 만에 최대), 사망 6명(누적 9,991명), 양성률 3%. 미접종자 59%(549명), 접종완료자 41%(378명)…온주민 접종완료율 86%. 5~11세 어린이도 백신증명제 검토…https://www.cp24.com/news/ont-reports-927-new-covid-19-cases-and-6-more-deaths-highest-case-count-since-early-sept-1.5682518   *<전세계 다시 봉쇄 단계로>코로나 재확산에 남아공발 변이까지, 전세계 초긴장…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 등 여행객 입국금지·격리…남아공 외에도 새 변이 보고…국경 열었던 동남아 움직임도 주목…https://www.ctvnews.ca/health/coronavirus/world-takes-action-as-new-variant-emerges-in-southern-africa-1.5682305   *<전세계 변이공포 급속확산>뉴욕증시, 새 변이(오미크론-Omicron) 공포에 올들어 최대폭 급락…다우 905P↓ 71년만에 최악의 블랙프라이데이…유가도 11% 폭락…https://www.wsj.com/articles/global-stock-markets-dow-update-11-26-2021-11637901748?mod=hp_lead_pos1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ywlee
2021-11-25
군중 속의 고독-이민사회와 친구(2)

  -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빗 리스먼(David Riesman:1909~2002)의 저서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 1950)’에서 유래한 말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사회 속의 현대인은 자기 주위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 이유는 그들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다. 즉 겉으로 드러난 사교성과 다른 내면적인 고정감과의 충돌로 번민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고독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와 교류하며 가깝게 지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자기 내면의 외로움이 근본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자기 혼자라는 고독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인간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나 역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쌓고 있다. 하지만 나 또한 군중 속의 고독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외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의 속성으로 인해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나보고 아는 사람도 많고 발이 넓어서 외롭지 않겠다며 항상 분주하게 사는 줄 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언론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리저리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 마음 터놓고 얘기를 나눌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대부분이 피상적으로 알고 지내기 때문이다.            0…이민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현지인들과 교류하면서 속내까지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것일테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이민 1세는 언어 소통과 문화 차이로 인해 더욱 그렇다. 이래서 결국은 동족사회로 돌아와 끼리끼리 어울리게 된다.    나도 20여 년 전에 처음 이민 와선 전원도시에 살면서 현지 이웃가족과 어울리며 서로 정을 쌓아가곤 했다. 하지만 속 깊은 인간관계에까지 이르기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생계문제로 도시로 이사를  나오면서 그나마 현지인과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났다. 이내 동족끼리 어울리는 생활이 시작됐고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인생살이가 펼쳐졌다.    동족과 어울리며 주변에 나이가 비슷한 동년배(同年輩)끼리 친구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란 것이 그렇다. 친구란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진정으로 따스한 말 한마디라도 해줄 그런 사이인데 이민사회에서는 이런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사람마다 성장과정이나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특히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이해관계로 엮여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족끼리 어울리면 일단 말이 통하니 마음이 편하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간에 허물이 없어지고 그것이 더 진전되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예의가 사라지면서 사람을 막 대하게 된다. 나의 경우 꽤 많은 한인모임에 참여했었지만 이런 이유들로 인해 결국엔 다 해체되고 말았다. 남은 건 마음의 상처투성이 뿐.              많은 분들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처음엔 간이라도 빼줄 듯 가까이 지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존경심이 사라지고 흠결만 보이면서 이내 관계가 소원해지고 만다. 이래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는 서로에 대한 예의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다.            0…내가 평생 잊지 못할 친구가 셋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학교 동창도 아니고 같은 고향친구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내 일생에 너무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는 내 고교 친구의 중학교 동창인데 언젠가 모임에서 한번 만난 후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는 고졸의 대기업 말단직원이었다. 장차 직장에서 승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 그의 최강 무기는 인간성, 그것뿐이었다. 20대의 젊은 시절부터 친구는 한결같이 자신보다 나를 먼저 챙겼고, 궂은 일엔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섰다.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정석인지 몸으로 보여준 쾌남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딜 놀러가면 그 친구는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 밥을 짓고 상을 차려놓고 우릴 기다렸다. “넌 잠도 없니?” 하고 물으면 그저 싱긋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이런 것밖에 더 있나?” 라며 자신을 낮추었다.         친구는 결국 학력 장벽에 막혀 대기업을 퇴사해야 했고,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는 고교친구가 경영하는 주유소의 매니저로 일하게 됐다. 내가 수년 전 한국에 나가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이 그 친구였고 그는 여전히 활기차고 의연하게 일하고 있었다.         친구는 나의 데미안이었다. 새가 알에서 깨어나는 아픔과 충격을 안겨준 나의 우상… 나는 가끔 ‘이런 상황이라면 그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친구가 행동하는대로 하면 탈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인생을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0…그 친구가 갈수록 더 그리워지는 것은 이민사회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아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으로 뜻맞는 동년배 친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젠 인간관계가 무섭게만 느껴진다. 또 언제 어떻게 상처를 받을지 두렵다. 이래서 어떤 모임에 갔다가 오는 길은 더욱 쓸쓸한지 모르겠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갈수록 실감나는 요즘이다.  (사장)          

Hwanghyunsoo
JOHNCHO
2021-11-25
동업(Partnership)(9)

  (지난 호에 이어)  지금까지는 그저 대형건설사들이 짓는 콘도 한 채 사기 위해 줄을 서왔고 또 그것이 일반적인 하나의 부동산 투자 방법이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동포들이 주인인 그럴만한 건설사가 탄생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특히나 머리가 비상한 한국인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건설을 포함해 여러 건설사들이 세계를 주름잡는 것을 보면 비록 이곳 토론토에 10만 정도 밖에 안되는 우리 동포사회라 하지만 이민역사로 보나 재력, 기술면에서 충분히 해낼 수 있고 또 우리 후세들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 중에 하나인 것이다.  이런 일은 결코 혼자 감당키는 어려운 일이며 재력, 재능, 기술 등을 소유한 여러 명이 함께 할 수 있는 동업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더구나 정부의 향후 이민정책을 보면 이민자 수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캐나다에서는 주거용 집들의 부족현상이 계속될 것이며, 건설업은 성장을 지속할 수밖엔 없다.  얼마 전 자녀들이 주거용 집을 장만할 때 집 구입의 다운페이를 도와주는 부모들의 수가 많이 늘었다는 통계를 발표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역시 젊은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그들의 힘만으로는 집장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집값이 많이 올라 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더 심해질 수밖엔 없는 것이, 일시적인 변화는 몰라도 인구가 계속 유입되고 있는 이 나라의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기 때문이며, 계속 오르는 집값을 매달 받는 월급으로는 따라잡기 어렵다는 말이다.  워낙 나라가 크고 광대한데 비해 노동력이 현저히 부족한 캐나다의 각 주정부들은 매번 이맘때쯤에는 내년도 이민쿼터를 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며 연방정부에 호소하고 있는데, 각 주마다 그만큼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이고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오르는 인플레를 막기 위해 앞으로 은행이자는 올라가며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부동산 과열현상을 막을 수 있는 일시적인 방법일 뿐 밀려오는 이민자들의 필요한 주택난을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택문제의 해결 방법은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결국 차세대를 위해 우리가 아끼고 보호해야 하는 묶여있는 땅들을 풀 수 밖엔 없다는 말이 된다.  연방은 물론 온주 정부가 지난 수십 년간 땅을 보호키 위해 노력 또 실행에 왔던 Urban Intensive Growth Program을 만들며 Greenbelt, Whitebelt, Oakridge Moraine, Niagara Escarpment, Marsh Land, Conservation Easement 등 그 외에도 땅을 보호키 위해 여러 종류로 분류하며 노력을 해왔지만 결국 더 생산할 수 없는 땅은 인구 수가 많아질수록 침범이 될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내주면 올 2021년의 마지막 달 12월이 되다 보니 벌써 운전을 하며 듣는 라디오에선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는 크리스마스 캐롤송들이 흘러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 모두를 설레게 했던 젊은 시절로 안내하며 조용히 그 시절의 노래들을 따라 부르게 만든다.  이젠 골프장도 모두 닫았고 더운 곳으로 휴가를 떠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이 계절은 어떻게 또 하나의 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는 계절이다.  매일의 일과를 지내며 여러가지 좋지 않은 뉴스를 접하게 되는 날에는 어두움과 함께 찾아오는 우리들의 저녁시간을 많이도 불안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그것은 나만이 아닌 우리 모든 현대인의 공통적인 고민인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미래의 일이고 우리가 오늘 한가지 확실히 아는 것은 어제와 오늘뿐 내일은 언제나 불투명한 지구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아침마다 볼 수 있는 햇살이 새롭고 또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 수 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사람이 즐기면서 살면 삶이 되고 계산하고 따지면 생존이 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매일의 일과가 하나의 투쟁이긴 하지만 가끔씩 우리에겐 휴식과 여유도 필요하니 나이가 들었다 해서 무조건 할일 없이 노는 것도 아니고 또 죽을 때까지 일에만 몰두하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 우리 모두가 발랜스를 잘 맞추며 행복하고 여유있는 삶을 살 수 있음 하는 마음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youngho2017
2021-11-25
스페인 내전 배경 영화-‘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지난 호에 이어)  이때 로베르토와 함께 남겠다고 눈물로 울부짖으며 온몸으로 연기하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얼굴을 클로스업 한 이 마지막 장면은 마치 '카사블랑카(1942)'를 연상시키듯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명장면이다.    끝장면이다. 필라르와 파블로에 의해 강압적으로 끌려가며 절규하는 마리아가 사라지자 로베르토는 미국을 위해서도 스페인을 위해서도 아니며 오로지 사랑하는 마리아와 내 몸과 다름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적군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한다. 총열에서 나오는 흰 연기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로베르토 조던의 죽음으로, 마치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잃게 된 관객들을 위한 타종인 양 종이 울리며 막을 내린다.    '누구를 위하여…'는 흥행에도 성공하고, 작품상을 포함한 9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름으로써 작품성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지만, 정작 원작자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는 이 영화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치적 얘기를 배제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필라르가 파블로의 무용담을 들려주면서 잔인한 폭도로 변해버린 공화정부파 마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통해 (비록 설득력도 떨어지고 깊이도 없긴 하지만) 오히려 파시스트든 공화정부파든 모두 비인간화되어 가는 전쟁의 실상과 반전 및 인류애를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비친다.    하지만 3시간 가까이의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원작대로 모든 걸 다 얘기할 수 없는 한계와 흥행성의 고려 때문에, 무릇 헐리우드 영화가 대부분 그렇지만 로베르토와 마리아의 운명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다. 따라서 마지막 20분 가량을 제외하면 액션 드라마라기보다는 일반 로맨틱 드라마 같은 영화로 둔갑한 듯하다.    사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악당이며 적으로 묘사된 프랑코파가 실제로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했고,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시 중립국을 표방했던 스페인은 파라마운트사에 역사를 다시 쓰도록 엄청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그 결과 영화는 로베르토 조던이 지원하던 자유공화당파를 아군, 프랑코파를 적군으로 분명히 규정짓지 못한 채 러브 스토리에 치중하는 것으로 어정쩡하게 바뀌었던 것이다.    헤밍웨이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작품에는 헬렌 헤이스, 게리 쿠퍼 주연의 '무기여 잘 있거라(1932)', 그레고리 펙, 수전 헤이워드, 에바 가드너 주연의 '킬리만자로의 눈(1952)',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노인과 바다(1958)' 등이 있다. '무기여…'는 1957년 록 허드슨, 제니퍼 존스 주연으로 찰스 비더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으나 전작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註: 1957년판 '무기여…'는 본보 2020년 11월20일~12월4일 참조]    필라르 역의 그리스 배우 카티나 팍시누(Katina Paxinou, 1900~1973)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시상식에서 "3대가 게릴라 집안이었다"며, 제2차 세계대전 중인 당시 '자유와 인간 존엄성'을 위해 싸우는 연합군을 치하하고, 당시 그리스를 점령했던 나치에게 죽었을지도 모를 아테네 왕립극장의 동료들에게 이 상을 헌정한다고 비장한 수상소감을 밝혔다.    카티나 팍시누는 알랭 들롱과 공연한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 'Mr. Akadin(1955)'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배우이다.    파블로 역의 아킴 타미로프(Akim Tamiroff, 1899~1972)는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아르메니아계로 지금의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Tbilisi)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예술학교에서 드라마를 수학하고 1923년 동료배우들과 미국을 방문했을 때 눌러 앉게 되었다.    그 후 헐리우드에서 오손 웰스 감독과 오랜 협력관계를 맺어 'Mr. Akadin(1955)' '악의 손길(1958)' '카프카의 심판(1962)' 등에 출연하였고 '오션 일레븐(1960)' '톱카피(1964)' 등으로 우리와 안면을 튼 배우이다.    길잡이 안셀모 역의 블라디미르 소콜로프(Vladimir Sokoloff, 1889~1962)는 러시아 모스크바 출신 유대인으로 나치를 피해 1932년 파리를 거쳐 1937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마카오(1952)'에서 중국인 역으로 '황야의 7인(1960)'에서 늙은 현자 역으로 '대장 부리바(1962)'에서 노(老) 스테판 역 등의 조연, 성격배우이다.    스웨덴 스톡홀름 태생의 금발 벽안(碧眼),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큰 키의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1915~1982)은 17세 때인 1932년 장학금을 받고 스웨덴 왕립연극예술아카데미에 입학해 연기를 배웠고 스웨덴과 독일 영화계에서 활동하다, 1936년 '간주곡'에 출연한 것이 헐리우드 영화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의 눈에 띄어 1939년 미국으로 오게 된다. 그 해 '간주곡'의 리메이크작 '이별(Intermezzo: A Love Story)'에 출연하면서 헐리우드에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영어도 못했고 키가 너무 크고 높다란 코와 짙은 눈썹을 가진 외모에 독일식 이름을 가진 그녀였지만 결코 이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장끼 없는 자연미 그대로의 순수하고 신선한 미모와 개성 때문에 헐리우드의 성형미녀들을 제치고 성공하는 비결이 되었다.    1942년 '카사블랑카'에서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다음해 '누구를 위하여…'에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그 다음해 '가스등(Gaslight)'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1945년 '세인트 메리의 종'에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3년 연속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되는 기록을 세웠다. 지금까지 캐서린 헵번이 세운 4번 연속 기록이 최고이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과도 인연을 맺어 '백색의 공포(Spellbound·1945)', '오명(1946)' 그리고 컬러 작품인 '염소자리(1949)' 등 3편에 출연했다.    1972년 유방암 선고를 받았으나 연기에 매진, 1974년 단역으로 출연한 '오리엔트 특급살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78년 마지막 출연작인 잉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에서 명연을 펼쳐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고 4년 뒤 세상을 떠났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1906~1977)와 결혼해서 아들 하나와 쌍둥이 딸을 두었다.    덧붙이기: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 중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토지와 자유(Land and Freedom·1995)"를 권하고 싶다. (끝)   ▲ 다리 폭파 전야 푸른 달밤에 '72시간에 생을 바쳐 사랑하라'는 필라르의 말을 로베르토에게 전하며 마지막 사랑을 나누는 마리아.   ▲ 다리는 폭파 되었지만 로베르토를 살리기 위해 안셀모(블라디미르 소콜로프)가 죽는다.   ▲ 다리 폭파 후 한사람씩 말을 타고 협곡을 건너가는데 모두들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 다리는 폭파됐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로베르토와 함께 남겠다고 눈물로 울부짖는 마리아.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는 가슴 저미는 장면이다.   ▲ 마지막 장면 - 오로지 사랑하는 마리아와 내 몸과 다름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적군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로베르토 조던(게리 쿠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Hwanghyunsoo
2021-11-25
봉굴레산과 장군별장 사이의 ‘보리밭’

   어느 목회자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라는 글을 보며, 나의 지난 모습을 되돌아본다. 행복했던 순간이라… 언제였지? 잘 생각나질 않는다. 학교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지금까지 숨 바쁘게 살았다. 아내와 결혼한 후 자식들이 생기며 책임은 더 늘어났고 그만큼 은행대출금도 많아졌다. 간부 사원이 되고부터는 경제적으로 좀 여유로워졌지만, 미래에 대한 위기감은 더 느껴졌다. 과감하게 회사를 접고 캐나다로 이민을 왔지만, ‘아, 내가 무모했구나’ 하며 곧 후회를 했다.  이민생활은 즐거웠던 일도, 힘들었던 일도 제대로 느낄 여유가 없었다. 내가 쓰러지면 우리 가족들도 함께 불행해질 것같아, 그런 생각조차 사치였다. 은퇴한 후에는 무기력과 섭섭한 감정이 찾아왔지만,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하다 보니 나름 의욕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연금받아 생활하며 ‘지금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라고 말하기는 좀 부끄럽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하니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추자도의 해군생활이다. 나는 그곳에서 14개월을 복무했다. 요즘 추자도는 낚시와 올레길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1977년만 하더라도 관광객들이 왕래하기에는 무척 불편한 곳이었다. 이 섬은 완도와 제주 사이에 있는데, 당시는 주민 3천여 명이 살았다. 목포에서 5시간, 제주에서 3시간이나 걸렸고 파도가 심해지면 섬에서 3~4일은 나가지 못하고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곳에 근무하면서는 추자도가 그렇게 좋은 곳인지 못느꼈다. 내가 근무한 부대는 목포 3해역사 소속 <202 레이다 사이트> 기지였다. 부대 전 인원이 30여 명이었는데, 하사관과 장교가 15여 명이고 수병이 15여 명 정도였다. 내가 부임했을 때는 내 위로 선임수병 1명, 동기 1명, 그리고 후임들이었다. 그러다보니 내무반 생활도 편했고 과업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인원이 작은 곳이어서 가족같은 분위기였고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부식을 섬에서 자급자족해야 했다. 찬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과업이었는데 고등어가 한창일 때는 싱싱한 회부터 국, 조림, 구이, 튀김뿐만 아니라 김치에다 고등어를 넣어 담아먹기도 하였다.  추자 어선들이 일손이 부족할 때는 부대원들이 대민봉사로 작업을 도와주곤 했는데, 돌아올 때면 감사의 뜻으로 막걸리와 푸짐한 안주거리를 가지고 왔다. 요즘 최고의 안주거리인 쥐포를 심심풀이로 즐겼다. 마을에서 얻어온 생선을 말리기 위해 당번도 있었다. 발전실은 일년 내내 온도가 높아 생선건조에 최적인 장소였지만, 냄새 때문에 파리가 꼬여 우리들은 돌아가며 파리채를 들고 생선을 지켰다. 싱싱한 홍합, 미역과 다시마, 돌김을 직접 따서 먹는 것은 아무나 누리지 못할 호사였다.    내가 하는 주 업무는 부대입구를 지키는 위병업무와 산꼭대기에 있는 벙커에서 레이더를 보는 일이었다. 우리 기지는 상추자도 영흥면 ‘큰산’ 중턱에 있었는데, 위병을 서다 보면 추자항과 맞은편 봉굴레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추자항은 규모는 작지만, 해안을 따라 음푹 들어간 지형조건으로 항구가 발달해 추자도의 중심 노릇을 하고 있다. 각종 행정기관인 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이 있고 초등학교 그리고 여러 생활편의시설도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위병이라고는 하지만, 영외 거주자들이 퇴근하고 나면 사실상 부대로 왕래하는 사람들이 없기에 먼 산을 바라보거나 항구를 왕래하는 사람들을 망원경으로 구경하는 일이 일과였다. 그 좋은 풍광을 바라보며 그리운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곤 하였는데, 평생 편지의 7할은 이곳에서 썼지 싶다.  우리 부대의 주소는 ‘제주도 북제주군 영흥리 장군별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편지를 받아본 친구들은 ‘장군별장’에서 근무하니 얼마나 좋냐?’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군별장’은 통신보안을 위한 거짓 주소였다. 마주 보이는 봉굴레산은 높이가 60미터 밖에 안 되는 야산이었고 당시는 나무들이 없어서 산마루 전체가 훤히 들여다 보여, 몰래 집나온 강아지 조차도 보일 정도였다.  봉굴레산은 여인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북서쪽 머리 부분에 다무래미라는 섬이 있고, 산 정상은 젖가슴처럼 두 개의 봉우리로 나눠져 있다. 제주말로 ‘봉끄랑하다’는 ‘무언가 풍성하고 빵빵하다’는 뜻인데, 아마 그 말이 변해 ‘봉굴레’로 지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부대가 있는 ‘큰산’(산 이름이 큰산이다)과 ‘봉굴레산’ 사이에는 밭들이 펼쳐 있었다. 배추, 상추, 고추 등을 키웠고 여름에는 고구마를 심었다. 고구마가 제철일 때는 밤에 야간조를 짜서 고구마를 서리를 해서 삶아 먹기도 하였다. 한 번은 부대 앞 고구마 밭주인이 화가 치밀어 부대에 올라와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무리 군인이라고는 하지만, 밭 한 고랑을 다 뒤집어 파가는 건 너무 하는거 아니냐”며 핏대를 올렸다. 영외 거주자들은 대부분 추자 사람 집에 세들어 살거나 현지여성과 결혼을 한 선임하사도 있었기에 그 농부의 말을 무시할 수가 있나? 우리들은 일단 시치미를 뗐지만 그가 밭에서 찾아 가져온 숟가락이 결정적 단서가 됐다. 그 숟가락에는 별표 모양의 표시가 있었는데, 그것은 군에서 사용하는 숟가락이었다. 지난밤 서리 때 누군가 숟가락으로 땅을 파다가 잊어버리고 온 것이다. 그것을 본 기지장은 부식창고에서 쌀 한 가마니를 꺼내 농부의 집으로 보내 주었고, “다음 농사 때 대민봉사를 하겠다”고 약속해 말썽없이 마무리됐다.    고구마를 걷어낸 그 밭에는 11월 중순경부터 보리 파종을 한다. 다음해 4월경에는 푸른 청보리가 온 밭을 뒤덮는다. 항구로 밀려오는 흰 파도만 보아도 가슴이 벅찬데, 거친 바람이 청보리를 춤추게 하면 그 모습은 황홀하다. 바다와 바람의 위대한 조화가 시작되면 이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가곡 ‘보리밭’은 시인 박화목이 그렸고, 윤용하가 곡을 입혔다. 황해도 은율 출신인 둘은 1951년 부산에서 만나 “아무리 피난살이지만 보람있는 일을 하자”며 이 가곡을 만든다. 이 노래는 서정적인 멜로디이지만 낭만적이고 사람의 마음을 격정으로 몰아가는 힘이 있다. 윤용하는 외로운 작곡가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부모를 따라 만주 봉천에서 자란다. 어릴 때 프랑스 신부의 성당에서 노래하고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음악을 배운다. 용정과 함흥 영생여중 교사를 지냈다가 해방 후 남하하여 한양공고와 동북고교에서 음악 교사하며 “낮에 놀다 두고 온…”이라는 동요 ‘나뭇잎 배’를 작곡한다. 하지만, 외로움과 가난에 지친 그는 외로이 단칸방에서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박화목은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만주로 건너가 봉천신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후 남으로 내려와 서울에 정착한 그는 중앙방송국(KBS)의 프로듀서로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보리밭’은 고향을 그리며 지은 시였다. 같은 실향민들이 그의 노래를 듣고 감상에 젖는 것은 그런 마음이 통해서이다.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성품으로 아이들을 위한 동요를 여러 곡 만드는데 ‘과수원길’도 그의 작품이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나는 가곡 ‘보리밭’을 들으면 추자도 ‘봉굴레산’과 ‘장군별장’ 사이에 펼쳐진 보리밭이 생각난다. 그 보리밭은 관능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섬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삭이 팬 보릿대를 꺾어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가 서리했던 고구마 밭주인이 그 보리밭의 주인이기도 하겠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leed2017
2021-11-25
춘몽(春夢)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 늘 입버릇처럼 “인생은 일장춘몽(人生一場春夢)”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경상북도 칠곡 왜관읍 매원동 광주이씨 집성촌, 딸 둘 집에서 태어나서 16살 되던 해에 안동 예산 부포동 역동집으로 시집왔습니다. 모두 8남매를 두었으나 넷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자매는 넷, 그중 하나는 요양원에 있습니다.  어머니는 학교교육은 받아보지 못한 분. 이야기로는 할아버지가 서울, 그러니까 한양가는 길에 외가 매원에서 손님으로 하루 묵어가는데 아침에 세살된 딸 아이(어머니)가 마당에서 아장아장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외할아버지에게 “우리 며느리가 지금 태중인데 만약 아들이면 저 아이를 내 손부(孫婦)하세” 하여 그 자리에서 구두 “약혼”을 했답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3년 연상의 여인이지요.  어머니는 큰 집에 며느리로 들어와서 이 어른 눈치 보랴 저사람 어른으로 모시랴, 언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로 한국의 옛 시조, 가사, 춘향전(당시는 금서)은 물론 소동파의 적벽부, 향산의 장한몽 같은 시가도 외웁니다. 어릴 때 자기가 신동이어서 학교를 안보냈다 하나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어머니는 자라는 동안 트라우마(trauma)는 전혀 없없고 문학적인 감수성이 높아서 그런지 무척이나 감상적이었습니다. 기쁘기 보다는 슬픈 사연을 더 좋아하신 어머니, 다 큰 아들을 둘이나 잃어버리고 토지개혁, 6.25를 겪고 말년에 와서는 허무감의 절정에서 허덕이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말하는 일장춘몽이 무슨 말인지는 알았지만 이해는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안다는 것은 표면적인 것, 귀로 듣는 것이고 이해 한다는 것은 체험이 내재화(內在化) 되어 가슴으로 듣는 것입니다. 내가 은퇴를 하고 70, 80에 가까워 왜 이 말은 그 전에 듣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들려왔습니다.  한번은 우리 동네에 사는 H형, C형, 나 이렇게 세 집이서 우리가 죽으면 묻힐 묘지를 사러 함께 갔습니다. 묘석에 적어두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알려 달라는 직원에게 나는 “Life is but an empty dream”이라는 롱펠로(H. Longfellow)의 싯구를 묘비에 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하버드대학 교수를 지냈고 미국에서 유명하다는 시인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라 무슨 심오한 의미라도 담겨 있으려니 여기니까 그렇지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근처도 못 가본 사람도 이 글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양(洋)의 동서가 다른 것 같고, 나라마다도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인생은 허무한 꿈이라는 말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요새 와서 행복하게, 즐겁게, 내가 하고 싶은대로, 기운차게, 희망을 갖고 살자고 하도 외쳐대니까 그렇지 나처럼 황혼에 모든 것이 가물거리기 시작하는 사람이 “인생은 하나의 긴 봄 꿈”이라는 말에 가슴을 치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고등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당시 이름을 날리던 소설가 정비석의 ‘산정무한’이라는 수필이 있었습니다. ‘산정무한’은 천하명산 금강산에 유람을 가서 느낀 감회를 유려한 필치로 쓴 글입니다. 정비석, 이은상, 양주동은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무척 좋아하던 문장가들이지요. 길고 어려운 한문 투성이의 글이나 여기 인용한 것은 대학입학시험에 하도 자주 나오는 대목이라 달달 외워서 지금도 입에서 술술 흘러 나옵니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것은 이보다 더나은 문장이 없다 싶어서 여기에 인용을 해볼까 합니다. 금강산으로 숨어버린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장남 마의태자 무덤앞에 선 감회를 적은 것입니다.    천년사직이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 태자 가신지 또다시 천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永劫)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須臾)런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角逐)하다가 한웅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然)히 수수(愁愁)롭다.    대학입학 시험 때문에 이 명문을 어제 배운 것처럼 아직까지 쉽게 외우고 있습니다.  남가일몽, 영겁, 수유, 각축, 부토, 암연 같은 단어는 한문으로도 알아야했습니다. 아무리 고등학교 국어책에서 읽은 글이 명문이니 어쩌니 해도 인생이 유장한 변천과 행운유수(行雲流水)를 노래한 다음의 흔해빠진, 그러나 천하명구를 지나칠 수야 있겠습니까.   태어남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에 사라짐이라 (生也一片浮雲起 / 死也一片浮雲滅 )    백년인생도 이렇게 명료하게 처리할 수 있으니 인생의 태어남에도 기뻐할 것 없고 죽음 앞에서도 겁낼 것 없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통쾌하고 시원한 말입니까. (2020. 12)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chungheesoo
2021-11-25
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41)

  (지난 호에 이어)   제 8 장 St-lauren 강의 경제기적 8.1 퀘벡 경제의 낙후성 퀘벡인의 또 하나의 역사적 업적은 1960-1990 기간에 이루어진 경제 개혁이었다. 본 경제개혁은 규모, 깊이, 내용 및 파급효과를 볼 때 일종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당분간 퀘벡 경제 개혁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다음의 과제를 다루고자 한다. 퀘벡 경제기적의 본질 및 우리나라 한강의 기적과의 비교; 퀘벡 경제의 공업화 전략; 퀘벡 정부의 리더쉽 역할;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시민경제(Social Economy)의 역할; 퀘벡 경제 모델의 재검토 등을 다루고자 한다. 필자는 1954년에 퀘벡 시에 있는 Laval 대학에 유학 왔다. 당시 퀘벡주의 경제 상태는 비참할 정도로 빈곤했다. 1960년도의 퀘벡주 일인당 GDP는Ontario 주의 73% 수준이었다. 즉 퀘벡 주민의 소득 수준은 이웃 온타리오 주의 수준보다 27% 낮은 수준이었다. 당시 퀘벡 산업을 영어권 세력이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고 퀘벡 불어권 주민은 하위급 직책에 머물러 있었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보험, 금융, 유통업 등은 모두 영어권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불어권 퀘백 주민은 2등 시민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1960년에 Jean Lesage 수상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사회개혁과 동시에 총체적 경제개혁을 시행했다. 결과는 엄청났다. 30년 후인 1990년도의 퀘벡 주민의 소득은 온타리오 주민소득의 95%로 접근했다. 온타리오 주의 경제는 자동차산업에 기반을 둔 우수한 산업 구조와 연방정부의 편파적인 온타리오 우호적 지원 정책에 힘입어 눈부신 성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퀘벡 경제는 온타리오 경제와 동등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8.2 한강의 기적과의 비교 퀘벡 경제기적은 한강기적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데 주목된다. 첫째, 시기가 동일 하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1962년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 덕분에 경제가 이륙(Take Off) 했다. 퀘벡 경제기적은 앞에서 언급한바 1960년에 Jean Lesage 수상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시작되었다. 둘째 우리나라 경제기적이 정부 주도하에서 진행 되었듯이 퀘벡 경제기적도 정부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퀘벡 정부는 각 주요 산업분야에 정부 출자 공사를 세웠다. 산림사업을 위해서는 Rexford, 농업사업을 위해서는 SOQUIA 공사를 설립 하여 제 1차 산업발전을 촉진했다. 전기공사 Hydro- Quebec 를 국립화하여 저렴한 전기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공업화를 가속 시켰다. 본 공사 덕분에 북미에서 가장 저렴한 전기 에너지를 공급하는 곳이 바로 퀘벡 주이다. SIDEBEC 공사는 철광산업 개발의 선두에 나서서 퀘벡 주의 철광 수요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 퀘벡주는 연금기금(Caisse de depot et placement)을 설립하여 리스크가 비교적 적은 산업에 투자했다. 반면에 종합금융공사(Societe general de financement)는 주로 리스크가 비교적 높은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기적도 정부 출자 공사의 눈부신 활약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철광, 전기 에너지, 통신, 중공업(Heavy Industries) 등의 전략적 분야에 정부 출자 공사를 설립했다. 철광산업을 위한 포항제철, 통신 산업을 위한 KTC 등이 대표적 예다. 또한 공업화에 필요한 자금 조성을 위해 주요은행을 국유화하여 필요 자금조성을 했다 정부출자 공사의 역할은 해당산업의 육성뿐만 아니라 우수한 인재 양성, 경영 기술 개발, 기술 개발 등 중요한 소프트웨어 개발도 포함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budongsancanada
2021-11-25
광역토론토 집값 급등 주범은 돈세탁 자금. 페이퍼 컴퍼니 등 수백억 달러

  캐나다투명성기구(TIC)-돈세탁방지연맹 주장…정부 ‘실소유자 등록’ 서둘러야  광역토론토(GTA) 주택가격이 계속 치솟아 많은 사람들이 내집 마련의 꿈을 접고 있는 가운데 돈세탁 자금이 집값을 끌어올리는 주범으로 제기됐다.  캐나다국제투명성기구(TIC)와 돈세탁방지연맹(End Snow Washing Coalition)의 공동연구 ‘OPACITY: Why Criminals Love Canadian Real Estate(and what to do it)’에 따르면 GTA에서만 수백억 달러의 주택거래가 투기세력 등의 돈세탁에 관련됐다.  이 연구에 따르면 페이퍼 컴퍼니 등이 GTA에서 2008년부터 2018년 사이에 300억 달러에 달하는 주택을 취득했고, 대부분은 실소유자에 대한 정보가 없어 위험에 노출됐다.  또한 같은 기간 GTA의 주거용 모기지 중 최소 350억 달러(25%)가 자금세탁방지(AML) 보고 의무가 없는 대출 등에 의해 이뤄졌다. 게다가 현금 또는 비금융을 통해 주택을 구입한 규모가 98억 달러에 이르며 대부분 자금 출처 및 실소유자에 대한 확인을 회피한 것이다.  현재의 자금세탁방지법은 현금으로 주택을 구입하면 모지기 대출기관이나 은행을 배제시킬 수 있는 허점이 있어 범죄조직에 악용될 수 있다.  한편, 연방정부는 국가 차원으로 돈세탁 방지를 위해 지난 4월 예산안에서 실소유자에 대한 세부정보 새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오는 2025년까지 완료하기로 했다.  이미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는 돈세탁 방지 도구의 일환인 토지소유자투명등록(Land Owner Transparency Registry)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토지 실소유자에 대한 정보를 공개적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등록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페이퍼 컴퍼니, 파트너십 또는 트러스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토지를 소유하면 실소유자를 알 수 없었다.  온타리오주에서도 현재 주택 실소유자 등록을 통한 투명성 기반 개정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 신민당 의원은 온주 보수당 정부의 법안이 충분하지 않다면서 주택을 통한 돈세탁방지법안을 개인 발의했다.  이 법안은 페이퍼 컴퍼니 등이 다수의 주택을 매입하는 행위를 없애고, 투명한 거래로 집값을 낮추는 목적이다. 주택을 소유한 법인, 파트너십 또는 트러스트에 대해 실소유자를 공개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최대 1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안을 담았다.  현재 개인이 집을 구입하면 공개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페이퍼 컴퍼니, 트러스트, 파트너십을 통하면 익명으로 사고 팔 수 있다. 이를 이용한 투기가 집값을 급등시켜 내집 장만의 기회를 막는다는 주장이다.  또한 범죄조직 등이 캐나다를 돈세탁 및 사기의 중심지로 만들 수 있어, 정부차원에서 이의 방지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효태 부장 |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donyoo
2021-11-25
미국의 캐나다 침략(22)-1812년 전쟁 전후(12)

  (지난 호에 이어) 스캇 준장의 공로로 치프와 전투에서 승리한 브라운 소장의 미군은 온태리오 호수로 연결되는 나이애가라 강변에 차지한 조오지 요새로 후퇴한 라이알의 영군 측면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찬시 미 해군사령관의 병고로 미 해군이 필요한 전투함건축이 계속 지연되어 온태리오주는 영해군이 장악하게 되었고, 조오지 요새를 함포 사격할 수 없어 브라운의 미군은 조오지 요새로부터 남쪽으로 10KM 떨어진 온태리오주 쿠인스턴에 진을 치고 벌링턴 진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라이알 영군은 치프와에서 북서쪽으로 11KM 떨어진 온태리오주 나이애가라 폭포 런디스 래인고지로 진군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1814년 7월 25일 온태리오주 캐나다 부총독 고오든 드러먼드 중장은 조오지 요새에 도착하여 나이애가라 전투 총지휘를 맡았다. 드러먼드는 영군이 나이애가라 동쪽에서 미군을 공격하여 미군이 서쪽으로 퇴진하게 길을 열어놓았으나 라이알의 영군이 북쪽에 있는 런디스 래인고지에 진을 치고 있는 줄 몰랐던 브라운은 북쪽으로 진군하여 영군을 조오지 요새로 몰아내는 역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런디스 래인고지 전투(1814년 7월 25일) 미군이 런디스 래인으로 진격하는 것을 목격한 라이알은 조오지 요새로 후퇴하려고 했으나 증원군을 보내주는 드러먼드의 작전명령으로 런디스 래인고지를 고수하게 되어 저녁 6시에 증원군과 함께 고지에 집결하였다. 스캇은 영군의 포병대가 런디스 래인고지에 진을 친 것을 모르고 확 터진 전장을 통해 영군을 추격하다 영군의 포격을 받아 주춤하고 토마스 제섭 소령이 이끄는 미 연대를 영군의 좌측대열을 공격하게 하였다. 제섭은 숨겨진 숲길을 통해 영군에 발각되지 않고 캐나다민병과 원주민전사를 포함한 영군의 좌측대열을 기습 공격하였다. 놀란 영군은 반격을 가했으나 미군에게 쫓기게 되었고 부상당한 라이알 소장은 영 장교들과 포로가 되었다. 드러먼드는 영군의 좌측을 보강하기 위해 중앙대열을 후진으로 보내어 영 포병대는 미 보병대에 노출되었다. 어둠이 찾아올 때 용맹한 스캇 사단은 많은 희생자가 속출하였다. 브라운은 엘리저 리플리 준장 사단과 피터 포터 준장 사단을 스캇 사단과 교체하였다. 리플리와 포터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제임스 밀러 소령의 보병연대는 영 포병대의 대포를 포획하였다. 뒤늦게 영군이 역 공격을 했지만 미군에 의해 퇴치되었다. 목에 상처를 받은 드러먼드는 영군을 재정비하여 미군에게 뺏긴 포를 쟁취하려 했지만 미군의 역습을 받아 일단 후퇴를 하고 두 번째 공격을 시도 했으나 미군의 정돈된 수비력에 실패를 거듭했다. 집요한 드러먼드는 자정이 되기 전 영군을 총 집합하여 세 번째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캐나다민병과 원주민전사는 영 정규군과 호흡이 맞지 않아 어둠에 갈팡질팡하며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육박전을 벌이다 포 획득을 포기하고 끝내 후퇴하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6시간 각축전에서 양군은 많은 희생자를 냈고, 스캇과 브라운도 중상을 입었다. 명장 스캇은 증상이 심해 후방으로 옮겨졌다. 물과 보급품이 떨어져 브라운은 후퇴를 명령했다. 리플리와 포터는 진격을 원했지만 브라운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양군은 야간전투에서 서로 빼앗은 포를 갖고 후퇴를 했다. 26일 새벽에 1,200명의 미군을 통솔한 리플리는 드러먼드의 영군 2,200여명이 포티지 전투지역을 장악한 것을 보고받고 브라운의 미군과 함께 이이리 요새로 후퇴하였다. 후퇴하는 미군을 목격한 드러먼드는 쿠인스턴으로 집결하여 증원군을 대기하였다. 벌링턴으로 진격하려던 브라운의 작전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미군은 나이애가라 지역에서 영군과 대치상태로 전투를 마감했다. 2,500명의 미군은 174명의 전사자를 포함하여 855명의 희생자를 냈고, 3,500명의 영군은 84명의 전사자를 포함하여 867명의 희생자를 내어 1812년 전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기록했고, 야간에 피비린내 나고 무참한 전투를 승패 없이 마감했다. 그러나 미군은 치프와 전투에 이어 런디스 래인 전투를 통해 막강한 영 정규군에 대항할 수 있는 전투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1937년 캐나다는 나이애가라 런디스 래인 지역에 기념탑을 세우고 국립역사지역으로 지정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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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캐나다 건축업계, 글로벌 공급망 문제-자재비(철강, 구리 등) 급등 직격탄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회사 JLL “코로나 이후 수요급증 탓…내년에 정상 찾을 것” 3분기 전체 건축비용 작년 대비 주거용 20.3%, 비주거용 8.3% 상승  캐나다 부동산 업계가 코로나 팬데믹을 딛고 호황을 구가하고 있으나 글로벌 공급망 문제와 자재비 급등으로 전례 없는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올해 소비자들이 저금리 기회와 높은 저축률, 더 넓은 공간에 대한 열망으로 건축업계에 붐을 조성했으나 비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것.  연방통계청 건축비용지수(CCCI)에 따르면 전체 프로젝트 비용이 올해 3분기에 작년 동기대비 주거용은 20.3%, 비주거용은 8.3%나 뛰었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회사인 JLL(Jones Lang LaSalle)의 2021년 4분기 캐나다 건설업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신규 건축허가 규모는 주택, 산업 및 사무실 건축 활기에 힘입어 110억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주거용 건축은 모든 유형에서 붐을 이뤘다. 심지어 임대아파트 부문도 도심지의 인구증가를 수용하기 위해 공급이 늘어나는 등 전반적으로 신축이 어느 때보다 활기를 보였다.  그러나 주택착공 증가로 건축자재 수요가 급증한 시기에 글로벌 공급망 문제와 맞닥뜨린 것이다.    JLL은 “많은 해외 공급업체가 코로나 델타변이의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백신 접종이 아직 충분치 않은 나라에서 들여올 때 문제되고 있다. 공급망이 글로벌로 연결돼 있어 지구촌의 한곳에서 삐끗하면 다른 곳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JLL은 “선적 컨테이너가 태평양을 횡단하는데 팬데믹 이전에 20~30일 걸리던 것이 73일까지 소요되며, 이 기간의 대부분을 항구에 정박하기 위해 줄을 서서 낭비한다. 그 결과 중국/동아시아에서 출발해 북미 서해안까지의 40톤 컨테이너 평균비용이 1년 전 4,500달러에서 2만1,000달러로 뛰는 등 모든 부문의 비용이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처럼 자재비가 많은 영역에서 한꺼번에 급격히 상승한 적이 없었다. 건축업계는 점점 더 많은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경험이 부족한 노동력에 의존하게 된다. 이에 따른 비용상승은 보통 최종 사용자에게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택 수요가 높은 도시일수록 자재비 상승에 대한 압박을 더 많이 받고 있다. 토론토의 경우는 3년 평균비용이 18.4%, 오타와, 몬트리올은 각각 22.2%, 18.5% 상승했다.  반면, 밴쿠버는 임업과 광업 덕분에 비용을 많이 절감할 수 있었다. 이에 같은 기간 서부지역 도시의 건축비용은 평균 9.2% 상승에 그쳤다.  JLL에 따르면 주요 건축자재 9가지 중 철강, 목재, 구리가 국내 업계에 가장 영향을 줬다.  철강 가격은 전 세계 고철 및 자동차 수요로 인해 역대 최고 기록인 톤당 2,000달러에 근접했다. 이는 2020년 초에 비해 3배나 오른 것이다. 구리도 1년 전과 비교해 거의 40% 상승해 최고수준이다. 목재 가격은 올해 5월까지 급등했다가 다시 하락 안정세다.  가용 노동력도 건축업계에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3분기에 국내 건설업의 노동력 부재율은 5.8%로 경제부문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캐나다의 모든 직종 평균인 4.6%를 상회했다.  한편, JLL은 겨울철이 다가옴에 따라 건축업계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비용부담을 다소 벗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겨울은 에너지 비용을 상승시키는 시기이지만 캐나다는 목재, 구리, 석유 및 가스, 수력발전의 주요 수출국이기 때문에 경제 순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캐나다달러의 가치를 높여 수입상품의 구매력이 올라가고,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러올 것으로 봤다.  건축업계의 공급망 문제는 내년에 정상을 찾을 것으로 예상됐다.  JLL은 "소비자들이 지난 1년 동안 봉쇄 조치를 겪은 후 제품과 서비스 사용을 크게 늘린 때문이다. 공급자들이 짧은 기간에 낮은 수요에서 높은 수요 대응 전환이 어려웠던 결과다"고 설명했다. (김효태 부장 |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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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나에겐 든든한 ‘부모 은행’이 있다"

  부유한 부모들, 자녀 첫집 마련에 평균 14만5천불 도와줘 자산관리회사 IG "코로나 계기로 자선단체 지원 관심도 높아져"  부유한 부모들이 자녀의 첫 주택 마련 및 사업 자금, 대학 학비 등을 위해 많이 지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자녀뿐만 아니라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위한 자선단체 지원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자산관리회사 IG PWM(Private Wealth Management)의 ‘고액 자산가 가구에 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투자 가능한 자산이 100만 달러 이상인 캐나다인의 경우 자녀 1인당 첫집 마련에 평균 14만5,000달러를 도왔다.  IG는 “캐나다 부모 세대는 창출한 부를 자녀와 손주들이 보다 안정적인 재정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면서 “하지만 언제, 어떻게 재산을 남겨야 하는지에 대해 걱정도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캐나다 가정의 세대간 이동 자산은 약 1조2,0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에서 100만 달러 이상 투자 가능한 자산가는 2006년 47만1,000(1.6조 달러)에서 2020년말 91만3,000(4.2조 달러)로 늘어났다.  복수 응답자의 77%는 “자녀가 앞서 나아가도록 돕고 싶다”, 86%는 “대학에 다니는 자녀에게 평균 3만5,000달러 이상의 재정적 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부모의 지원 동기에는 ▶학비와 생활비에 대한 우려 ▶미래 직업을 위한 교육의 가치 ▶자녀 졸업 후 학자금 융자 부담을 피하도록 돕고자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IG의 설문결과에 따르면 부모는 자녀의 첫집 장만을 기꺼이 도와주지만, 다음 집(24%)이나 휴가용 카티지 등(10%)을 도울 생각은 별로 없었다. 또한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좀더 관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녀의 사업자금 지원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26%가 창업비용의 절반 이상을 지원할 생각였다. 다른 가족에의 선물에는 자동차(52%)와 생활비(51%)를 꼽았다.  한편, IG에 따르면 응답한 부유한 가정의 2/3가 자선단체에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있으며, 20%는 유산 계획에 자선기관을 포함했다.  IG는 "지난 2년간은 코로나가 많은 캐나다인의 삶을 뒤흔들면서, 자선 기부가 좋은 일뿐만 아니라 올바른 일로 여기게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재정적 삶에 자선활동을 포함하는 등 가족이 함께 더 넓은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게 했다"고 덧붙였다. (김효태 부장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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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시세차익 노린 투기가 집값 급등 부추겨

   온타리오주 주택 거래의 25%는 다주택자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가 집값 급등을 부추기고 있다.    국영방송 CBC에 따르면 최근 통계에서 온타리오주 전체 주택 구매자 중 2채 이상을 소유한 비율이 25%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 10년 새 높게 상승한 것이다.  특히 다주택자 상당수가 주택가격 상승세를 틈탄 투기자들로 밝혀졌다.  최근 부동산 정보업체 ‘Teranet’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온주의 주택거래 중 25% 이상이 다주택자 구매였다.  이와 관련, 부동산업체 ‘Realosophy Realty’는 “예상했지만 이들이 집값을 비정상적 수위로 끌어올려 시장불안을 조성한다. 앞으로 시장에 가라앉는 신호가 나오면 곧바로 팔고 나가 침체국면을 악화시킬 것이다”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기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해 첫 집 구매자들을 몰아내고 주택가격을 치솟게 한다. 연방과 주정부, 지자체가 투기를 막는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토부동산위원회(TRREB)에 따르면 지난 10월 광역토론토의 평균집값은 115만5,345달러로 작년 동기대비 19.3% 뛰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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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흔적을 찾아서(77)-소아시아 7교회를 떠나며

  우리들이 지금까지 소아시아의 7 교회 터에서 본 교회들의 폐허는 초대 교회들이 사용하였던 교회들이 아니라, 주로 교회가 지상으로 올라온 후인, AD 313년 이후에 지어진 교회들이었습니다. 교회사에서는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7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에 따라 초기 교회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세월을 7기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기. 에베소교회(AD34 ~AD100 사도교회 시대) 2기. 서머나교회(AD100 ~AD313 핍박과 순교의 시대, 후 사도 시대) 3기. 버가모교회(AD313 ~AD538 타협의 시대) 4기. 두아디라교회(AD538~16C말 종교 암흑시대) 5기. 사데교회(16C말~18C중 종교개혁과 분열의 교회) 6기. 빌라델비아교회(18C중~19C말 세계를 향하여 나간 선교교회) 7기. 라오디게아교회(19C말~예수재림 마지막 교회, 현대 기독교회) 이런 시대적 분류는 서양의 역사와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라는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H.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 ~ 1903)의 말처럼 인간 세상에는 교회가 생기기 이전에도 종교는 있었습니다. 아마도 에덴을 떠나온 우리의 몸 속에 있는 DNA에는 신을 경외하려는 마음과 또 그 신을 떠나려는 욕망이 공존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두려워 모여 살며 사회를 만들었지만, 그 사회 안팎에서부터 오는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정치 공동체를 만들며, 힘이 세고 용맹스러운 투사, 혹은 장수를 지도자로 뽑아 의지하며 살다 보니, 사는 동안의 부귀 영화를 위한 욕망과 동시에 생로병사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신령한 사람을 찾아 또 다른 지도자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영어로는 메디슨 맨(medicine man) 이라고도 하고 주술사(Shaman), 혹은 제사장, 무당이라고도 불렀지요. 이런 류의 사람들은 때론 마술적인 힘을 가지고 “신접 했다!”며 초자연을 오가며 부릴 수 있는 특이한 사람들로, 민족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렀지만 어느 민족에게나 다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추종하는 믿음에 우리는 원시종교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지요. 원시종교의 특징은 교주들이 보통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특이한 성물을 만들어 놓고 숭배를 강요하며 숭앙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또 하나님이 보내주실 메시야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애굽에서 장장 500년 동안 종살이를 하던 유대인들이었으나 오랜 노예생활 끝에 출애굽하며 모세가 받은 징표는 눈에 보이는 타지않는 가시나무와 “I am who I am” 즉 “스스로 있는 자”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가 전부였습니다. 후에 십계명이라는 돌 판을 받아오기는 하였지만 수많은 난민들을 이끌고 사막을 배회하는 동안, 틈만 나면 눈에 보이는 신상을 만들려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징표는 성막과 제단 그리고 성궤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 성물들을 만드는 설계도가 출애굽기 25장에서부터 28장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된 것을 보면, 보통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럽게 보이는 색색의 장막이요 특이한 구조물이었던 것입니다. 그 후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 그 안에 모셔졌지만 언제인가 그 성궤가 사라졌습니다. 일설에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어디에 숨어 있다고도 하는데…. 그네들이 기다리던, 구약에 예언된 구세주, 예수가 오셨지만 그네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 이후 성령으로 다시 오신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싹이 튼 초대교회가 유대인들의 핍박을 벗어나기 위하여 소아시아로 흩어지며 유대교와 결별을 하고, 로마의 박해를 피하여 지하로 스며들며 기독교 초기교회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AD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초대교회가 지상으로 나와 햇볕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후 약 200여 년간 로마제국의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여러 곳에 많은 기념 교회들이 지어지게 되었지요. 그 폐허를 지금까지 돌아보며 온 것이었습니다. 소위 “타협의 시대의 산물들”을 본 것이지요. 서양의 역사 흐름을 보노라면 Dark Age, 즉 암흑시대라는 특이한 시대가 나옵니다. 누가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 시기는 대략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라고들 합니다. 교회사에서 제 4기와 거의 같은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지상으로 나온 초대교회가 커지며 신권과 더불어 정치권력까지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려다 보니, 예수님과 하나님을 보기 원하던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와 하나님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신학이 생겨나며, 사람들이 눈으로 보며 경외할 수 있도록 교회는 점점 더 커지고 우상들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오히려 신앙을 신학의 부산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춤 추며 제사 지내던 사람들처럼…. 1517년 천주교를 벗어나려는 종교개혁 이후, 일단 봇물이 터진 것처럼 여러 신학자들이 저마다의 신념으로 교회를 이끌어가다 보니 개신교들의 분열 시대가 도래하며, 천주교와 더불어 수많은 종교전쟁이, 그리고 마녀 사냥의 열풍이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지요. 그러다가 19세기에 이르러 개신교에서 대 각성운동이 일어나며 선교사들을 파송하기 시작하였으나, 동시에 세상에는 무신론 세력이 급격하게 확산되며 과학이 발전된 21세기인 오늘에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조가 세상을 뒤덮은 것같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하나님과 가정을 부정하며 동성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나타내며 사용하는 깃발이 무지개인 것을 보면 이네들도 속으로는 하나님이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입니다. 굳이 하나님께서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시며 노아에게 주신 증표인 무지개를 앞에 내세우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는데, 시작이 있었으니 이제 끝이 올 때도 된 것 같은, 세균으로 시작된 3차 대전은 아직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선과 악, 빈과 부로 나누어 놓으며 인간을 통제하려 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증표 아래로 모여 있어야 할까요? 좀 더 깊숙이 소 아시아로 들어가 초대 교회의 선조들이 믿으며 남긴 자취들을 둘러보면 답이 나오려는지….?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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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kim
2021-11-25
노년의 건강 진단과 치료

  노인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백세 시대가 다가오면서 행복한 노년기를 보내기 위한 준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행복한 노년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무엇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현상이므로 이에 따르는 질병을 예상해 잘 치료하고 처방받는 것이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방법을 알아보자.   노인의 건강 유지에 필요한 예방적 의료는? 노년에는 신체적 노화와 각종 병리적 소견이 진행하면서 다양한 질병에 노출되기 쉽고 취약한 건강 상태에 놓이게 된다. 노인의 질병은 전반적인 기능 저하와 삶의 질 저하로 직결되기 쉽고, 누군가 돌보아야 하는 상태에 놓이게 되어 결국에는 비용이 증가하면서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동반할 수 있다. 따라서 노년에는 특히 건강 유지를 위한 예방 활동이 강조되며 이에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먼저 일차 예방은 질병이 발생하기 전 예방하는 것으로 금연, 절주, 체중 관리, 운동 및 생활습관교정, 예방접종 등이 포함된다. 일부에서는 아스피린 사용과 같은 약물치료가 포함될 수 있다. 예방은 질병의 조기 발견이나 무증상 질환을 발견하여 조기 치료를 하는 활동으로 다양한 건강검진 프로그램이 이에 해당한다. 사망률 대다수를 차지하는 암, 심혈관계질환에 대한 검진 및 노인에서 흔한 시력이나 청력 이상, 골다공증, 고혈압, 복부대동맥류와 같은 질환에 대한 검사를 포함한다.  예방은 질병이 확진된 이후 질병에 대한 적절한 치료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후유증, 신체 기능 저하 및 장애, 인지기능 저하, 보행과 균형 이상, 낙상, 요실금, 영양불량과 같은 문제를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하고자 하는 활동을 포함한다.   노인 건강검진에서 고려할 특수 사항과 기본 원칙은? 노인의 건강검진을 시행할 때는 사전에 검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과 검사에 동반되는 여러 위험성에 대해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젊은 성인에서 시행하는 많은 검사 항목이 노인에서는 불필요할 수 있고, 검사 자체에 따르는 위험도 있으므로 꼭 필요한 검사 종류를 선정하며 검사에 따르는 위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노인의 기대여명이 적어도 5년 이상 된다면 검사 시행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때 기대여명은 통계적으로 제시된 나이에 따른 수명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노인의 암 검진, 어떻게 시행해야 할까?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심혈관계질환이 사망 원인 1위이지만 한국에서는 악성질환에 의한 사망이 1위인 만큼 건강검진을 통한 암의 조기 발견이 매우 중요하다. 65세 이상 여자 노인에서는 서양과 달리 유방암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으므로 위험도에 따라 선별하여 검사해도 될 것으로 보인다. 남녀 모두 폐암, 대장암 발생이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검진이 필요하고 폐암은 저선량흉부 CT를 통해 조기 발견률을 높일 수 있다. 65세 이상 여성은 특별히 고위험군이 아니라면 자궁경부암 검진을 반드시 받을 필요는 없지만 80세 이상에서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고 이상이 있다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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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2021-11-25
모세의 생애(4)-민족을 구하려 애굽으로 향하는 모세(하)

  (지난 호에 이어) 그런데도 모세는 또다시 그가 언변이 부족하다는 구실을 내세운다. 애굽 왕실에서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을 다 배워 말과 행동에 뛰어난 모세가(행 7:22) 그런 핑계를 댄 것은 그때까지도 모세는 민족을 구원할 마음의 준비를 못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너를 도와 네가 할 말을 가르쳐 주겠다.”며 그를 안심시켜 주셨다. 후일 예수께서도 그의 제자들에게 말세가 가까워지면 믿는 자들은 심한 핍박을 받으며 옥에 갇혀서 심문을 받게 될 터인데 그때 “너희 대적들이 대항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말과 지혜를 주겠다.”(눅 21:14-15)고 약속해 주신 것과 같은 맥락의 격려였다. 그가 해야 할 말까지도 해주시겠다는 말씀을 듣고서도 모세가 제발 다른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자 하나님은 노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주셨던 사명을 거두지 않으시고 말 잘하는 그의 형 아론을 함께 가도록 하겠다고 하신다. 모세가 제시하는 그의 약점을 보강시키기 위해 아론으로 하여금 모세를 돕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선택하여 훈련시킨 모세를 통해 그의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셨기에 모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기를 거부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모세의 경우에는 그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론이 그의 동역자가 됨으로 그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었던 제사장의 특권이 아론에게로 넘어갔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의 명을 거역할 수 없게 된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아내와 아들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출발한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를 해하려던 사람들이 다 죽었으니 안심하고 가라시며, 바로 앞에서 손에 든 지팡이로 부여 받은 모든 권능을 행하라고 일러주신다. 바로는 곧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장자가 죽는 재앙을 당한 후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놓아줄 것이라 들려주신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향하는 모세를 죽이려 하시기 때문이다. 모세는 그의 동족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분부를 다섯 번이나 사양하며 받아드리지 않았다(출 3:11, 13; 4:1, 10, 13). 그런데도 그를 벌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이 그의 명을 받들어 애굽으로 들어가는 모세를 죽이려 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백성이 되는 표시로 그의 자손들은 물론 종들에게까지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다(창 17:9:14).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킬 지도자 모세가 할례 받지 않은 아들을 데리고 그 사명을 수행하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 자신도 하나님이 어째서 자기를 죽이려 하는지 알지 못하여 당황하는 모세의 생명과 사명이 위기에 처하자 그의 아내 십보라가 날카로운 돌로 아들의 양피를 잘라버렸다. 그녀의 기지가 남편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이 사건은 두 가지 면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수행하려면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모세는 그의 아들에게 조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할례를 행하지 않고 이스라엘 해방전선에 나가려 한 중대한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십보라의 정확한 상황판단과 지혜롭고 신속한 행동이 모세의 생명은 물론 이스라엘의 소망을 살렸다는 사실이다. 모세가 죽지 않고 살아났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위기를 벗어난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을 받아 광야로 나온 아론과 만나 애굽에 도착하여 이스라엘 장로들 앞에서 그들이 온 까닭을 말한 후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권능으로 기적들을 행해 보여주었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고,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려 하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모세는 아론과 함께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내보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기념하는 절기를 지키게 하라.”(출 5:1)하신 말씀을 전한다. 그때 애굽을 통치하던 아멘호뎁 2세는 여호와를 많은 이방신들 중의 하나 정도로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여호와가 누구시기에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야 한단 말이냐?”(출 5:2)며 모세의 요구를 거절해 버린다. 바로가 이처럼 단호한 입장을 취한 것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모르기도 했지만 60만 이스라엘 장정들의 노동력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음은 물론 그들에게 공급하던 짚을 주지 않고, 같은 양의 벽돌을 만들도록 한다. 이렇게 되자 모세는 바로에게 모욕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동족들에게서도 심한 원망을 받게 되었다. 모세가 그가 처한 어려운 형편을 아뢰자 하나님께서는 “나 여호와가 너희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땅으로 인도하겠다.”(출 6:1-8)고 말씀해 주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주었지만 그들은 모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Hwanghyunsoo
knyoon
2021-11-25
포토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발리의 목공예마을 MAS

  꿈 꾸는 발리 섬 사흘째 날.      마에스트로(巨匠)가 많이 나온다는 예술의 마을 MAS!  전시관이자 작업장에 들어서자, 맨발의 성인 간디 목각상이 곧 마무리 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듯, 안내의 여신이 멋적은 웃음을 짓고 서 있다. 발리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임을 보여 주는 듯, 각기 다른 신의 조각 상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다.  하느님의 아들로 세상에 왔으나 정치노선이 다른 위험분자로 빌라도의 판결을 받아 십자가의 죽음을 맞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고상, 그 옆엔 힌두교와 불교의 다르마Dharma를 설파하는 승려와 보살들의 목각상, 그리고 바롱 춤에 쓰는 탈과 토펭의 탈을 쓴 목각작품들이 각기 신념의 자유를 누리며 서 있었다. 쉴 새 없이 드려다 보는 구경꾼들에 아랑곳 없이 맨발의 젊은 예술가들이 수도하는 자세로 끌과 망치를 열심히 놀리고 있다. 이 젊은이들은 목공예로 평생을 바친 후, 노년이 되면 작업장 감독이 되어 그들의 후손들을 젊은 예술가로 키워낸다는 것. 그들은 주로 흑단과 티크, 수아르 등을 주재료로 쓰는데, 흑단 작품이 인기가 있고 값도 높아서 보통나무에 검은 색을 칠해 비싸게 파는 작품도 있다고 한다.     발리 섬은 어디를 가나 신화의 나무가 무성하고, 거리 모퉁이를 돌 때면 아침 제례에 받치는 갖가지 꽃 향기가 바람 결에 온 섬을 누빈다. 타고난 예술가인 발리 섬 사람들은 목각 외에도 유화, 목판화, 금속이나 흙, 돌덩이 위에 자신을 투사하며 영혼의 숨결을 불어 넣는 작업에 익숙하다. 그들의 애니미즘(영혼신앙)적 민족예술사의 한 페이지를 저마다 엮어가는 듯. 어제 바롱 춤판이 벌어진 바추블란의 민속촌에도 석상이 즐비하게 서 있었고, 온통 돌로 깎아 만든 조각작품들이 발끝에 채일 정도였다. 성자의 조각상, 마녀의 상, 귀여운 작은 토끼로부터 무서운 공룡의 모습까지 이끼로 푸르뎅뎅한 모습이, 유명한 장인의 예술 작품이 아니었다면 푸른 군대귀신으로 보였으리라. 펜 잉크화로 유명한 렘파드(Lempad)는 원래 건축설계가로 사원과 탑의 조형, 바롱의 탈을 만들던 사람이다. 어느 날 독일의 화가이며 음악가인 스피스(Spies)가 발리 섬의 마력에 빠져 온 식구가 발리로 이주한 후 친구 사이가 되었고, 그에게서 받은 펜화 한 장이 유럽에 펜 잉크화의 새 물결을 일으킨 원조가 되었단다. 그의 작품이 전시된 우부드(Ubud)미술관이 있는 체루크 마을에 못 가본 게 못내 아쉽다. 어떤 나그네는 밤하늘을 이불 삼고 누워 자다가, 개구리 울음소리가 만들어낸 신비한 자연의 교향곡에 빠져서(미쳐서) 우부드의 화가로 눌러앉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마저 이 보이지 않는 늪 속에 한 발 한 발 빠져들 위험을 느끼며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에 얼른 올라탔다. 멀리 킨타마니(Kintamani)산의 시원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가 첫 삼거리에 잠깐 멎었다. 창 밖엔 삼거리를 지켜주는 검은색과 흰색의 돌 신상이 서있다. ‘제발 이 뜨거운 토속 신들이 사는 마을에서 화상을 입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하고, 나의 하느님께 간절히 기원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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