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나

 

이미 5분의 4는 올라왔다. 눈앞의 깔딱 고갯길이 발목을 잡았다. 돌발 변수였다. 경사가 그리 심해 보이지 않기에 오르기 시작했지만, 80도는 족히 넘어 보이는 가파른 산비탈 막바지 구간에서 험난한 과정을 맞았다. 뒤돌아 보면 위험할 것 같아, 일부러 앞만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용하게 사용했던 두 자루의 스틱이 오히려 장애물로 전락했다. 먼저 스틱을 앞 공간 후미진 벼랑 구석에 밀어 넣었다. 등산객들이 마셨던 음료수 병이 한두 개 눈에 띄었다. “그래,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야. 나도 갈 수 있어!” 안심하면서도 손에는 땀이 배었다.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조용히 숨을 골랐다. 침착해야 했다. 나무 뿌리가 저 멀리 상단에 보였다. 죽으라는 법은 역시,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최대한 뻗어서 그 뿌리를 잡으니, 돌부리 하나를 밟고 올라설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었다. 이어서 나무 곁가지에 손이 닿았다.

 

그리고 고개 정상에 들어서며 내가 아는 전망대 난간에 다다를 수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감사기도가 우선 나왔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아까 그 음료수 병들은 사람이 여기서 내던져 버린 쓰레기였다. 공원 입구의 주차장으로 천천히 내려오면서 떠오르는 상념을 주섬주섬 챙겼다.
친구 같았던 스틱이 훼방꾼이 되고, 위안을 주었던 음료수 병이 쓰레기였다니, 뒤얽힌 연결고리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속세를 떠나온 듯한 숲속 한가운데에서 철저한 속세를 체험한 격이었다. 16마일즈 크릭이라고 불리는 이곳 등산 코스는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벌써 여러 차례 다녀본 경험이 있는 지형이라, 그 날은 평소에 잘 다니지 않는 코스로 등산로를 택했다.

 

새로운 길은 역시 흥미롭고 신선했다. 하지만 섣부른 도전은 만용일 수 있음을 간과했다. 숲길을 한참 걷다 보니 평소 다니던 길의 반대편 지점에 도달할 것 같다는 예측을 할 수 있었다. “계속 가다 보면 산비탈길이 나올 텐데, 거기엔 따로 등산로가 없을 거고…” 불길한 예감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 낭떠러지 같은 비탈길을 만났다. 왔던 길을 그냥 되돌아오면 되었을 텐데,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경사가 약해 보이는 왼쪽 부분을 타고 비탈면을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삶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선택의 연속이다. 등산길에서 또 다른 인생을 체감했다. 길 위의 그날 명상은 부처님 오신 날 특집 다큐 KBS1, ‘부처님과 함께 걷다’를 얼마 전에 시청하면서 자연스레 내게 점철되었다. 108인의 스님이 43일간 1,167킬로미터의 인도 순례 도정을 성공리에 마쳤다. 발톱이 빠지면서도, 넘어져 이마를 찧고, 지팡이를 짚고 걸을지언정, 포기는 없었다. 모두 무사히 귀국했다. 불교의 설법을 감히 이해할 수는 없을 지라도, 2,500년 전 석가모니의 고행을 몸소 체험하며 부처가 되려는 스님들의 노고에 절로 숙연해졌다. 감동스러운 수행의 길을 나도 함께 걸은 느낌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에 뜻이 펼쳐졌다. 번뇌의 숫자 108로 참가 인원수를 제한한 것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어느 새 46년의 세월이 흘렀다. 1977년 8월에, 나도 걷고 있었다. 9박10일 동안 하루 평균 5시간씩 16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한국유네스코학생회(KUSA)가 주관하는 ‘조국순례대행진’이었다. 경기도 이천에서 출발, 경북 문경새재를 넘어 장호원에 도착해서 광복절 기념식을 마친 후 해산했다. 대학 1학년 때 가입했던 KUSA 서클에서,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여할 것을 권장하기도 했지만, 내심 한번 동참하려던 생각도 갖고 있었다. ‘조국의 어제와 오늘을 직접 걸으며 체험하자’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의 취지 보다는 그저 여름 방학 동안 캠핑의 도보 대장정을 만끽해 보자는 개인 바람이 더 컸었다. 아스팔트 도로도 걸었지만, 산허리를 돌아 먼지 나는 흙길을 주로 걸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양말 바닥에 빨래 비누를 문질렀다. 지도 교사가 알려준 비법으로, 발에 물집이 잡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행진하다가 주위 동료 친구가 힘들어하면, 그 친구의 배낭을 대신 메어주기도 했다. 그 배낭은 가슴에 멘다. 그렇게 하면 가슴과 등, 앞뒤 균형이 잡혀 오히려 편해진다. 그 역시 지도 교사의 가르침, 아니 솔선수범으로 알게 되었다. 배려하면 나도 편안해진다는 걸 그러면서 조금 배웠는지 모르겠다. 뙤약볕이 내리쬐든 비가 쏟아지든 행진은 계속 이어졌다. 악조건에서도 걷는 방법을 그렇게 해서 체득했으리라. 순례 일정을 다 마친 날, 대장정의 길을 끝내 완주하였다는 정신적 포만감이, 그간의 고단함을 포용하고도 남았다. 그 후부터 걷기와 나는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오래된 앨범에서, 그 때 사진 몇 장을 발견하고는 추억에 잠긴다. 검게 타버린 내 얼굴과 조원들의 웃는 모습에서,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한 시절을 본다. 지금 그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나이 들어 점점 귀 안 들리고 눈 안 보이고 신체 약해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걷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걸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복 받은 일인가. 장 폴 사르트르의 BCD 명언(Life is Choices between Birth and Death)처럼, 인생길에서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바뀌어도 선택은 나의 몫이다. 그러나 선택만큼 소중한 것이 제대로 가기 아닐까. 오늘로 이어진 이 길 위를 자신 있게 걸어가자. 그래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새벽 안개가 걷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 발걸음을 옮긴다. 걷기와 나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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