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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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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 '바스의 제인 오스틴'

 

‘캔터베리이야기’에는 '바스에서 온 여인'이 나온다. ‘바스(Bath)’는 목욕탕이란 뜻이다. 즉 기원전 로마정복시대에 지은 온천장을 말한다. 런던 패딩턴 역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거리. 우리는 그 중간에 “대지의 기둥”인 솔즈베리 성당에 들른 후에 바스 스 역에 내렸다.

 


야트막한 푸른 언덕에 둘러싸인 인구 8만여 명의 아담한 도시. 그 한가운데에 바스의 어원인 로마식 목욕탕(Roman Bath) 건물이 보인다. 영국에서 유일한 자연온천장이며 로마 시대 이래로 파괴와 복구를 거듭했다. 지금은 역사교육장이 되었고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넓은 온천장 물은 여전히 푸르고 뜨거운데 물속에 ‘다이빙하지 마시오’라는 표시판이 보인다. 

 로마인의 망토를 두른 광신자 같은 사람이 못가에 서서 기도를 하는지 태권도 대련을 하는지 재미있는 모습으로 서 있다. 1층엔 로마시대의 풍습을 희미한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하실로 내려가면 아직도 섭씨46도로 샘솟는 온천의 반달형 수로에 노란 광천이 수증기 속에 작은 폭포로 흘러넘친다. 

이 광천수는 2층 펌프룸으로 연결된다. 그곳에서 밍밍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면 옆방에 큰 펌프룸 식당에 가서 멋진 식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나게 만든다. 멈추지 않고 흘러 에이번 강으로 유턴하는 이 생명의 물줄기를 왜 구경만 시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웅장한 로만 바스 문을 나서면, 광장에 고딕형 바스 사원이 높이 서 있다. 사원 앞엔 여러 개의 길 이름을 적은 팻말들이 귀여운 아네모네 꽃바구니가 매달린 가로등 위에 방향 따라 붙어있어 지도가 없어도 어디나 찾아갈 수 있다.

 이 웅장한 로만 바스보다 더 가보고 싶었던 곳은 18세기 영국의 여류문학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이 5년 동안 살던 이층집이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제인 오스틴 독서회와 2001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오스틴의 가을 축제를 준비하는 곳이다.

 


 

영국이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자랑하는 제인 오스틴의 집 앞엔 배우같이 생긴 문지기가 우리를 환영한다. 제인 오스틴 센터를 돋보이게 할 만큼 가장 조지아풍의 멋진 영국 문지기를 뽑는 데, 몇 백 명이 응모했다고 한다. 바스의 펌프룸에서 일하던 마샬 솔터씨가 뽑혀 하루 종일 문지기와 안내인 역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2층 거실에 들어서자 제인 오스틴의 언니 카산드라가 그린 제인의 초상화가 눈에 확 띈다. 나는 한참동안 그 앞에 서서 제인의 운명을 추적하듯 그의 초상화를 들여다보았다. 작가의 눈은 곧 영혼의 창이기에 눈 속에 온갖 사념과 감성이 깃들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곱슬한 머리 위에 얹은 실내용 모자로부터 풍만한 몸매. 오스틴의 작품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의 이야기와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듯 했다. 

 마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1811)’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의 패기만만하나 자신의 열정에 굴복하고 마는듯한 아름다운 이마,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 1817)’에 나오는 엘리노어의 강한 자존심과 풍자적인 빈정거림이 깃든 신비스럽고 날카로운 눈매, 18세기 바스를 배경으로 쓴 ‘노생거사원(Northanger Abbey, 1817년)’의 캐더린이 호기심에 사건을 추리하는 듯 야무지게 꼭 다문 입술 등, 오스틴의 작품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모습들이 제인 오스틴의 초상화에 조금씩 곁들여져 있었다. 

 


오스틴의 친필 원고와 평론가들의 글, 그 당시 생활풍경 사진 등을 구경하고, ‘I LOVE DARCY!'라고 쓴 책꽂이 하나만 사서 선물사기에 질색인 남편 몰래 가방에 집어넣었다. ‘오만과 편견’의 영화작품에 남자 주인공 다시 역을 맡았던 로렌스 올리비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최근작품의 키라와 매튜 사진만 보여주어 실망한 보상이기도 하다. 

 목사의 딸로 영국 햄프셔주 스티븐턴에 태어난 제인 오스틴은 바스 사원에서 세례를 받았다. 1801년에 아버지의 은퇴로 바스로 이사해서 5년 동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지만 가정형편으로 1809년 튜턴으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8년 후 병이 나자 치료와 요양 차 윈체스터로 갔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42세의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윈체스터 대성당에 있는 작가묘지에 안장된다. 

 오스틴은 그의 생전엔 평범한 여성작가로 알려졌다. 20세기에 들어와 더블린의 대주교가 된 훼이틀리의 새로운 평가와 월터 스콧 경이 “이 ‘이름 없는 작가’가 새로운 사실주의전통을 여는 현대소설의 대표자가 되었다(1816 쿼털리리뷰)”고 선언했다. 올바른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제인 오스틴의 ‘서술의 기법’에 있는 것 같다. 범상치 않은 오스틴이 인간생활의 희비극을 짜임새 있는 심리묘사를 전개한 그의 서술체 문학은 그 후 제임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기법에 영향을 주었을 법하다.

 


 

제인 오스틴을 ‘비문의 여왕’이라 칭한 사람은 누구였나? 얼마 전까지 오스틴을 영국문학 천년사에 셰익스피어 다음가는 작가로 칭송한 BBC방송국이다. 오스틴이 발표하지 않았던 원고를 들어서 연구한 학자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그렇게 정리가 안 되어서 출판을 포기한 건 아니었을까? 언제 또 학설이 뒤집힌다 해도 나는 오스틴의 꿈 속 같은 낭만적인 사랑과 끝없이 흐르는 강물 같은 말씨에 귀를 기울이리라.

 엇갈리는 작품 평가에 대한 생각을 잊게 해주는 듯 골목길에 ‘Sally Lunn’이라고 쓴 새빨간 깃발 아래 하얀 빵집 창문이 나타났다. 바스의 또 하나의 오래된 명소다. 마침 티타임이라 전통 영국 티와 유명한 샐린 런 번이라는 빵을 주문했다. 정식 메뉴보다 더 비쌌지만 우리의 피곤을 풀어주고 바스의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맛보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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