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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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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가 저무는데


2023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또다시 가버린 1년이란 세월을 뒤돌아보면 밀려드는 후회와 미련을 밀쳐버리기 힘들다. 마땅히 해야 할 일보다는 하지 못한 일들이 많고, 이룬 것 보다는 못 이룬 것이 많기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가버린 세월로 인해 번민하며 괴로워하고 싶지는 않다. “Give no importance to what has happened to you." 지나간 일들을 너무 중요시 하지 말라”는 헤밍웨이의 충고가 생각나서 만은 아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생전 처음 장기간 입원하게 되어 계획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이루지 못했음은 물론 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심한 고통을 당했다. 그 악몽을 속히 떨쳐버려야만 새로운 앞날을 설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겨있는 내게 아주 먼 옛날의 일 하나가 되살아난다.

 

대학 2학년 시절 어느 겨울날이었다. 친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던 친구 일곱 명이 의정부 교외에 있는 윤식군의 집에 갔었다. 우리가 갈 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돼지고기와 두부를 잔뜩 썰어 넣고 고추장찌개를 끊여주곤 했었다. 그 날도 그녀가 정성 들여 만들어준 그 찌개를 먹으며 막걸리까지 한 잔씩 마신 20대 초반의 젊은 가슴들은 온 세상이 우리 것인 양 즐거운 마음으로 10리 남짓한 시골들판을 내리는 눈을 맞으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의정부 시내가 가까워지면서 눈발은 더욱 심해졌고, 쌓이는 눈 속에 발목이 빠지기 시작할 때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단축되면서 그녀가 우리 또래의 젊은 여인임을 알게 된 우리들의 가슴은 설레기 시작했다. 우리들 모두 눈 내리는 밤에 들판을 홀로 걸어가는 그 같은 여자를 보고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으니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중 이성교제에 특별한 능력을 지녔던 춘배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머리와 어깨에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한 쌍의 다정한 연인들처럼 보였다. “함께 눈을 밟을까요?” 훤칠한 키의 춘배가 여자를 내려다 보며 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진정 감탄했다. 그때 상황에서 그 이상의 적절한 말은 찾아낼 수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마주친 친구들의 눈동자 속에서 그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우리들의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려 버렸다. 그녀가 소프라노 톤의 고음으로 “혼자 밞구려”라고 응수한 까닭이다. 춘배는 완전한 패배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되돌아 왔고, 겨울 밤 눈길을 혼자 걸어가는 여인으로 인해 가슴 설레던 우리들의 기대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저물어 가는 2023년의 일들을 회상하다 불현듯 반백 년도 더 된 대학시절의 한 추억이 뇌리에 떠오른 까닭은 금년 한 해 동안 내가 당한 고통과 시련이 너무 심하고 많았기에 학창시절의 추억에 잠기면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는 아픔과 슬픔을 잊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2월에 내시경으로 완전하게 제거되지 않는 용종을 도려내는 간단한 수술을 받았다. 위험하지도 않고 수술 후유증 같은 건 있을 수도 없다기에 받은 수술인데, 수술 받은 부분에 염증이 생겨 다시 한 번 수술을 받아야 했다. 1%의 가능성도 없다던 수술 후유증이 100%로 나타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때문에 25일을 입원해야 했는데 그 동안에 받은 고통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복부의 통증이 너무 심해 강한 항생제와 진통제를 계속하여 복용해야 했으며, 매일 혈압을 재고 혈액검사를 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며 검사를 받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피곤했다.  

 

가장 힘든 것들 중 하나는 음식을 입에 댈 수 없었던 점이었다. 나중에 과도한 항생제 복용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는 되었지만 먹을 것만 보면 구역질이 나서 입에 댈 수조차 없었다. 튜브를 통해 공급하는 영양제로 체력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었기에 체중이 급속도로 감소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삶의 의욕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약해졌으며, 그런 나의 생각이 아들의 눈에 비쳐졌든 것 같다. 어느 날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살 의지는 있는 겁니까?”라고 물어왔기 때문이다. 정신이 번쩍 든 난 “살아야지. 살아서 이곳을 나가야지”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먹을 생각도 없었고, 먹고 싶지도 않았고, 먹을 수도 없었다. “살아서 병원을 나가겠다”고 결심하고, 그렇게 아들에게 말했으면서도 그때 내겐 그렇게 되리란 자신과 확신이 전혀 없었다. 평생 처음으로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하여 투병생활을 하면서 난 많은 것들을 체험했고, 생각했고, 깨달았다. 그 모든 것들을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는 대로 글로서 상세히 쓰려고 생각하고 있다. 

 

병고에 시달리는 동안 체중이 40파운드가 빠졌는데 지금은 20 파운드를 되찾았다. 다른 기능들도 모든 면에서 수술 전의 75퍼센트 정도로 되돌아 왔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처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느끼고 깨달은 바는 많기만 하다. 그 모든 것들은 투병일지를 쓸 때 밝히기로 하고, 지금은 그들 중 세 가지만을 말하고 싶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고 또 내가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동안 아내와 아들과 딸들, 며느리, 사위들이 내게 보여준 희생과 사랑은 나를 울게 만들었으며, 조건 없는 사랑의 가치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내가 알게 된 것은 여러 성도님들과 동역자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으며, 그들의 기도의 힘이 나를 죽음에서 삶으로 옮겨주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기도처럼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는 힘은 없다. 기도의 응답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분들의 눈물의 기도로 인해 살아서 병원을 나오게 되었으니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나도 그들의 건강과 행복과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확장되게 해달라고 간구할 것을 다짐한다. 
 
이 모든 것 위에 나의 삶을 연장시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나는 확신한다. 안 받을 수도 있었던 수술을 받도록 인도하셨고, 잘못될 가능성이 1퍼센트로 없는 수술이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고, 그로 인해 온갖 고통을 당하도록 하신 분도 결국은 하나님이셨다고 난 믿는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며 희미하던 것들을 선명하게 보게 하시며, 하나님과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들을 통해 나를 회개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셔서 새로운 인생길을 걷도록 해주신 분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그리고 부끄럼 없이 말 할 수 있다. 

 

참으로 오래 전에 춘배군이 “함께 눈을 밟을까요?”라 했을 때 눈 내리는 들판 길을 걷던 여인은 혼자 걸으라며 그의 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나 수많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나와 동행하신 하나님은 “일어나 걸으라” 하시며 사경을 헤매는 날 붙잡아 일으켜 주셨다. 
이제 난 금년 한 해 동안 당한 고통과 아픔과 시련 그리고 그 때문에 이루지 못한 일들 때문에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으련다. 대신 나에게 새 생명을 허락하신 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기도를 통해 깨달아 그 분이 내게 주시는 인생의 사명을 수행하며 남은 인생길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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