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호
<계간수필>동인, 문협회원
자신의 뒷모습은 보기 쉽지 않다. 앞모습이나 옆모습은 거울 앞에 서면 바로 볼 수 있지만, 뒷모습은 몇 개의 거울을 동시에 비춰야 겨우 본다. 그래봐야 앞모습 같은 적극성이나 생동감은 없다. 본인의 의지가 사라진 뒷모습은 파장 뒤의 시장 거리를 닮았다. 그것도 자신의 모습인데, 정열과 혼이 빠진 껍질 같은 것인가.
누군가를 정면에서 보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나 의지를 레이저 광선처럼 발한다. 내로라하는 사람에게선 특히 자신의 능력이나 가진 것을 과시하려는 우쭐댐, 위압감, 또는 위선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적게 가진 이는 그런대로 말투와 몸짓에 결핍감, 초라함, 비굴 감이 느껴질 때도 있어 측은하다.
본인의 의지와 욕망이 강하게 표출되는 앞모습에서는 건강, 교양, 재물, 권세와 관련된 상황이 읽힌다. 하지만 떵떵거리는 사람도 홀로 가는 뒷모습에는 가을바람이 일고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함은 어인 일인가. 세상의 연줄을 끊고 홀로 떠날 때의 처량하고 기죽은 모습이 읽혀서 그럴 것이리라.
아름다워지려는 인간의 욕망에 끝은 없다. 어떤 이들은 앞모습을 꾸미는 데 열중하다가, 인공 개조도 서슴지 않는다. 내면을 채우고 빛내는 지루하고 힘겨운 노력보다, 쉬운 대로 겉을 꾸미고 보자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염려할 겨를이 있겠으며, 설사 그럴 마음이 있다 해도 얼마나 될까.
수다스러운 앞모습은 남을 현혹할 수도 있지만, 관심이 덜 가고 수동적인 뒷모습은 그럴 능력조차 없다. 앞모습은 혼이 없는 인공적인 아름다움일망정 본인의 의도 대로 보일지 모르나, 방치된 뒷모습은 버려진 채로 드러난다. 눈은 앞에만 있어서 뒷모습과 관련한 타인의 눈치도 살필 수 없으며, 잊고 지낼 때가 많다. 남들이 내 뒷모습을 어떻게 보든 정말로 의식할 필요가 없는가?
쇼핑몰에서 우연히 사람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젊은이들의 균형 잡힌 몸매와 탄력 있게 걷는 뒷모습에는 춤추듯 한 율동 미가 보였고, 명랑한 자태가 피안(彼岸)에 노니는 사람들 같았다. 얄팍한 어깨를 우쭐대며 걷는 이의 뒷모습엔 자기의 성취를 뻐기고 싶은 허영심이 읽혔다.
중년이나 노년의 뒷모습은 대체로 무거운 감정을 일으켰다. 세상의 짐을 혼자 진 듯 한쪽으로 기운 어깨, 세월의 무게처럼 내려앉은 엉덩이, 불편해진 다리를 절뚝이거나 끌 듯이 가는 뒷모습은 보기에 안타까웠다. 오그라진 등의 주인공은 힘겨웠던 역정(歷程)에 얽힌 사연을 밤새워 들려줄 것만 같았다.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사라진다.”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그런 뒷모습을 걱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사람에 대한 기억이나 평가는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면전에서보다는 없는 곳에서 이루어질 때가 흔하고, 사후에 옳은 평가가 나오기도 하는 것을 본다. 떠나간 누구를 그리워할 때는 겉으로 드러낸 그의 말이나 지위나 재물보다, 그가 건넨 미소와 따뜻한 속마음이 이미지로 남아서 오래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리 보면, 영혼과 인정이 깃든 교유(交遊)는 잘 잊히지 않는 것 같다.
샤를 드골(1890~1970)의 뒷모습은 실로 단출하였다. 그의 유언에 따라 국장(國葬)이나 조문은 사절하였고, 시골 성당에서 동네 지인들만 모여 추도사도 없는 장례미사를 올렸다. 각국에서 온 사절은 ‘파리 노트르담성당’의 국가 추도식에 참석해야 했다. 현대 프랑스에서 가장 공적이 크고 사랑받는 영웅은 어릴 때 죽어 성당의 가족묘지에 잠든 딸 옆에 묻혔다. 작은 석판에 이름, 생몰연대, 날짜만 새기게 했다.
한 시대를 주름잡은 위인도 죽으면 곧 잊히고, 거창한 업적도 옛 얘기가 된다. 드골은 이 점을 잘 인식했고, 자기보다 미약한 존재들인 장삼이사에게 말 없는 교훈을 남겼다. 프랑스는 나라를 상징하는 두 곳에 이 위대한 애국자의 이름을 붙여 최고의 영예로써 그를 기린다. 파리 신공항을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으로, 번화가 샹젤리제 거리가 시작되는 개선문 광장은 “샤를 드골 에뚜알 광장”으로 개명했다.
인간은 타인의 입과 눈을 의식한다. 남이 하는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평가 대상이 되는 우리는 자신을 거울에 비춰서 확인하기 쉬운 얼굴과 앞모습을 다듬는 데 꽤 정성을 들인다. 그런데 타인의 눈은 우리의 앞뒤를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훑으며 그로써 그들 마음대로 평가를 한다. 대강의 정보를 파악한 타인은 우리의 속마음까지도 유추하여 성급히 해석한다.
그러니까 앞모습을 상큼하게 꾸민 사람도, 뒷모습이나 떠난 뒤가 너저분하면 매력이 없다. 깊숙한 마음 씀으로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데까지 관심을 둘 수 있다면 성공일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앞 뒤의 자태를 곱게 유지하고 마음 씀의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챙기는 사람이라면 멋을 제대로 안다고 하겠다.
지난 길을 돌아본다. 시작은 늘 힘차고 희망적이었지만, 결과까지 아름다운 경우가 많지 않았음을 확인할 땐 얼굴이 화끈거린다. 앞으로의 길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렇게 살다가 떠난 자리에 향기를 남길 수나 있을까? 상념이 꼬리를 물어 잠들기 어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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