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옥재(문협회원)
며칠 전 신문 광고를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 남의 일로만 생각하고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절실하게 한인요양원의 필요성을 깨달았던 경험은 어디로 사라지고, 벌써 그 일을 잊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의 노년은 요양원과 관계가 없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싶어서다. 이미 수 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는 생의 마지막 일년을 요양원에서 지내셨다.
심장마비를 겪으신 후라 일반 가정에서는 돌봐드리는 일에 한계가 있어 결국 요양원으로 모셔야 했었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송함에 영어로만 소통이 되는 곳이었기에 자식들의 마음고생이 어머니 못지 않게 많았다.
당시엔 한인요양원이 없었기에 캐슬뷰 요양원을 택했다. 비록 외국인 시설이라 해도 3층은 한인 노인 70여 명이 수용되어 있어 한인이 전혀 없는 곳보다는 나았다.
24시간 한국어 TV 방송을 시청할 수도 있고, 가끔 한국음식도 접할 수 있고, 주말마다 예배도 보고, 머리와 손톱 발톱을 깔끔하게 손질해주는 한인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손길이 있어서 가족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비록 그렇다 해도 내 집을 떠나 사는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불편함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언어와 음식문화가 달라서다. 누구나 몸이 아프고 외로울 때 찾게 되는 음식은 가족이 사랑과 정성으로 만든 따뜻한 한국음식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육신의 고통을 간호사들과 소통할 수가 없었으니 매사에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또한 서양인 큰 체구에 맞춰진 화장실은 우리 동양인에겐 불편하여 볼 때마다 불안스러웠다.
몇 년이 더 흘러 한인 전용의 무궁화요양원이 문을 활짝 열었다. 꼭 가보고 싶었던 그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한국어로 간호사와 소통하고, 한식이 삼식 제공되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이 모두 한국어로 진행되는 걸 보니, 가족 같은 분위기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고향에 온듯 평안했다.
모든 시설이 우리에게 딱 맞춤이었다. 그제서야 외국인 요양원에서 한인 노인 한 분이 겨우 3개월 만에 한국어를 모두 잊어버렸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 오타와에 사는 손주들의 수영 레슨을 같이 간 적이 있다. 그 수영장은 웅장한 시설에 보안까지 철저했는데 외형으로만 보아도 규모가 대단했다. 아들에 의하면 유대인 커뮤니티 소속 건물이라고 하는데 근처에는 그들만의 학교, 은행, 요양원, 도서관 등 모든 공공시설이 함께 모여 있다고 한다.
가슴이 멍할 정도로 감동에 젖어, 과연 우리는 언제 이런 커뮤니티 시설을 모두 갖출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해본 적이 있다. 물론 그들이 이 땅에서 축적한 부와
명예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겠다. 헌데 우린 천심만고 끝에 세운 기존의 작은 한인요양원을 지켜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상태였으니 부끄럽지 않았겠는가. 사실 노년기에 들어선 한인 수에 비한다면 한인요양원이 더 필요한 실정인데 말이다.
한인요양원 건립은 일찍이(1993년) 동포들의 노력과 성금으로 시작하였으나,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려 어렵게 우리에게 다가온 곳이 무궁화 요양원이다.
겨우 60침상의 작은 규모로 개원하자마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 후 무궁화요양원의 소유권을 찾기 위해 법원명령에 의한 공개입찰에 대비하여 1차 모금(2017년)을 했었으나 기회를 놓치며 사설 요양원을 운영하는 리카케어에 매각되고 만다.
하지만 작년에 시작된 코로나19 부실 대응과 운영상의 실책으로 그 리카케어가 운영하는 사설 요양원들로부터 집단 사망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무궁화요양원의 입찰권이 다시 우리한테로 양도(2021년)되는 행운을 잡게 된 것이다.
거의 잃었다가 되찾은 무궁화요양원은 원래 온주 정부가 소수민족 복지정책의 하나로 한인사회에 제공되었던 것이니, 우리가 끝까지 우리 힘으로 지켜내야 할 명분 하나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이제 우리 부모님 세대는 거의 떠나시고 이민 1세들이 서서히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이곳에서 30-40년을 살았어도 아직도 한국말, 한국음식을 먹으며 작은 한국을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무궁화요양원이야말로 바로 백세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미래의 마지막 거주지인 것이다.
다행히 1.5세와 2세 전문인 중심으로 인수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대대적으로 2차 모금을 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이미 동포들 중 큰 뜻으로 앞장을
선 분들이 많아 약 260만 불은 모금되었다 한다. 그러나 아직도 성공적인 매입에 필요한 다운페이먼트 450만 불에 이르려면 갈 길이 멀다.
본격적으로 범 동포모금운동이 5월말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 ‘티끌 모아 태산이다’라 하지 않던가. 비록 팬데믹으로 우울하고 막막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각 가정마다 작은 정성으로나마 기꺼이 동참해주길 바란다.
이는 우리의 프라이드를 지키는 일이며, 부모님 사랑을 위해서 아니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실천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생각된다. 결코 불구경하듯 남의 일로만 여기지 말자. 동포들의 동참을 진심으로 호소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