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코비드’로 인하여 온 세상이 죽느냐 사느냐로 초긴장이 된 시기에 땅을 뒤집으며 집짓기에 열중인 사람들의 심리는 어디에 근원을 둔 것인지.
한 주먹 움켜진 손가락 새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을 바라보듯 망연히 바라보다가 불현듯 흑백이 대조되듯 그들의 삶이 떠오른 것이다. 미국 오하이오 주 벌린(Berlin)에 있는 아미 쉬 마을(Amish Country)에 다녀왔다. 마을은 초록색이 유난히 더 파랗게 보이는 청정마을이었다.
남자는 주로 까만 옷에 높은 모자, 여자는 발꿈치까지 덮이는 무색 원피스에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 수건을 쓰고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닌다. 뚜거덕, 뚜거덕 수레바퀴 밑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온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섞이지 않으려는 특별한 의지와 노력이 흥미로웠다.
처음 폰 힐로 이사를 왔을 때 대기는 맑다 못해 온 몸을 찬물로 씻어내듯 심령이 맑아지고 상쾌하였다. 폭포에서 치솟는 물보라가 보인다고 말 보탬을 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천둥치며 용트림하는 나이아가라폭포가 있다.
매일 아침 들린 다리를 건너고 끝없이 펼쳐진 들바람을 마시노라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넓이와 높이가 가없이 두둥실 뜨게 되는 것이다.
생명은 숨 쉬는 것이라지 않는가. 바람은 봄부터 겨울까지 꽃 향기 바람이었다. 흰 눈을 비집고 나온 쪽빛 크로커스가 고개를 내밀면 벚꽃, 목련, 라일락 저마다 향기를 내뿜는 아름다운 꽃들.
딸기, 체리, 블루베리, 포도, 복숭아, 사과, 배. 벌과 나비를 부르는 경쟁의 꽃 냄새는 사람을 먼저 취하게 하였다. 그뿐이랴. 거칠 것 없이 이어진 하이웨이 주변엔 메꽃, 달맞이꽃, 멋없이 껑충한 원추리가 주근깨투성이 얼굴에 주황색 웃음을 내뿜고, 가지마다 꽃을 단 쑥부쟁이가 온 세상을 보라색 향기로 덮어버리곤 하였다. 그 속에 다소곳이 미소 짓고 있는 하얀 구절초 무리가 좋았다.
인구 2천여 명의 전원마을은 40여 년 살던 런던을 떠나는 서운함을 새로운 기쁨으로 채워주기에 인색함이 없었다. 한 없이 자유롭고 조용하고 바쁘지 않은 삶을 즐겨왔다.
갑자기 웬 바람이 여기에도 불어 닥쳤는지 꽃바람은 먼지바람이 되어 마스크를 고쳐 쓰게 하였다. 새벽부터 종일 땅 파고 고르는 중장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높이고 내 집 마련을 위한 소박한 꿈이 떼를 지어 폭풍우처럼 밀려오면서 엉뚱한 변이를 일으켰는지 불쾌한 탁류가 되어 선한 꿈을 엎어버리는 듯하였다.
사랑하는 마을이 이곳 저곳 뜯겨나가는 듯 바라보는 마음이 아팠다. 자연을 그대로 누리며 살 수는 없을까. 미국에 남아있는 아미 쉬 마을여행은 이렇게 떠오른 탈출구였다.
아미 쉬는 17세기경에 생긴 전통주의 기독교추종자이며 기독교평화주의로 유명하다. 육체노동, 농촌생활 및 인간성을 중요시하며 단순한 옷차림, 단순한 생활, 자급자족, 공동생활을 지향한다. 이들은 외부인과의 상호작용, 복장, 종교적 의무, 제한된 기술사용에 관한 일련의 규칙서 Ordnung을 따라 교육하며 생활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아미 쉬’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마차에 성경을 간직하였다가 주일에 예배를 드린 후 다시 제자리에 보관한다. 성경을 사적으로 번역하려는 우를 막기 위해서라 한다.
이 시대에 주어진 삶을 살면서 우리는 과거를 어느 만큼 수용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 유익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전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여행 내내 따라다니는 의문이었다.
가축동물원을 가보았다. 핑크색 새끼돼지가 우르르 몰려온다. 푸들만한 새끼 양, 새끼염소 애완용으로 가지고 싶은 것들뿐이다. 까만 수건을 머리에 쓴 젊은 엄마가 한 살은 되었을까 포동포동한 아들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놓아 들이밀면 새끼 양이 핥아 먹는다.
까르르. 엄마의 손에 먹이가 떨어지자 아기는 돌아서서 내게 작은 손을 내밀었다. 깔깔~ 손을 내밀고, 올려주고, 함께 웃으며 부스러기까지 털어주었다. 이 여행에서 내가 간직해온 유일한 천사의 웃음소리이다. 유리알 구르는 맑은 웃음, 이명처럼 번쩍 정답이 떠올랐다.
갓 나서부터 ‘아미 쉬’ 환경 안에서만 양육할 수 있다면 청정마을 순수성은 가능하리라.
구절초 피던 자리에 빨간 벽돌의 타운하우스가 들어섰다. 그러나 내 눈앞에는 ‘순수’ 또는 ‘가을 여인’이란 꽃말의 구절초들만 삼삼하다. 문득 어쩌면 내가 밟고 서 있는 이 자리도 구절초 무리 지은 들길은 아니었을까. 역사의 지층으로 쌓인 저 깊은 곳을 향해 천사의 웃음소리가 울리는 구절초 들판을 천천히 걷는다.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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