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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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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 샬롬문화시리즈 1~3

105. 샬롬문화시리즈1 : 샬롬Shalom!!

 

 

인류 역사상 평화를 가장 갈망해온 민족은 아마도 유대인일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몇 천 년을 투쟁 해왔다. 그들이 지키는 도시, 살렘 Shalom은 평화라는 뜻 외에 건강, 지혜, 안녕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우리 일생에 가장 평화를 갈구하는 시기는 노년기이다. 평화로울 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지혜롭게 자신을 지키며, 또한 보호도 받아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이중섭의 엽서 한 장 만한 그림 ‘비둘기와 손’은 평화와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를 큰 손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암시같이 느껴진다. 이중섭의 일생은 평화와는 반대로 전쟁의 도가니 속에서, 민족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평화를 애타게 기다린 사람이다.

 

이중섭의 그림에 많이 나오는 측은한 황소의 눈은 피카소의 그림에도 자주 나오는 주제이다. 황소의 눈을 들여다 보면, 말 못할 어떤 고뇌와 참을성, 부지런함을 보이면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참아내는 듯이 보인다.

 

이 비둘기의 눈에도 검은 동자가 또렷하게 그려져 있다. 그가 사람이나 동물의 눈에 초점을 두는 이유는, 눈은 정신이 살아있음을 의미하며 그 눈이 흐려질 때 정신은 사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주위엔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할 많은 비둘기들이 그들의 울음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꾸~꾸~ 하면서 보살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 손은 크게는 사회복지시설일 수도 있고, 겨울에 손녀가 짜다 준 따뜻한 털신일 수도 있으리라.

외롭고 약한 사람, 소외 받는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오실 때, 우리의 손은 그 성령을 꼭 잡고, 평화와 사랑을 실천 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기도하는 샬롬의 손이 되어야겠다. 샬롬!!

 1995. 9. 14. <샬롬문화> 창간호

그림/ 이중섭의 엽서그림 「손과 비둘기」, 종이에 유채, 17×14cm.

 

 

106. 샬롬문화시리즈 2- <산책하는 노년의 부부>

 

 

 

 

노년기를 정답게 지내는 부부의 모습은 반 고흐가 그린 이 노부부의 뒷모습처럼 언제 보아도 따뜻하고 아름답다. 삶의 목표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두고 살아온 하세가와 다모쓰 장로 부부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일본 세이레이 복지사업단의 창시자인 하세가와 다모쓰 장로는 병과 전쟁으로, 혹은 늙어서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중의원에 몸을 담고 7선 의원까지 지냈다. 중의원에 재선 된 1952년에 드디어 일본 최초의 ‘사회복지사업법’을 통과시키는데 앞장섰다.

 

그는 ‘교육. 의료. 복지’를 신앙이 구체화된 사랑의 세 가지 형태라 보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거룩한 종’(聖隸-성예-세이레이)이 되어 무소유, 무보수로 일생을 바쳤다. 밤의 노도인 양 풍파 많은 그의 생애는, 필자가 우리말로 옮긴 그의 자전소설 전편 <밤도 낮처럼 환하게 빛나리>와 후편 <하나님, 저의 잔이 넘치나이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런 큰 뜻을 실현할 수 있게 해준 것은, 그를 영혼의 빛처럼 받아들여 결혼한 야에꼬였다. 그들은 일본에서 가장 가난한 젊은이들이 모였던 하마마쓰 전도소에서 만난 성경공부 동지였다.

그들은 63년이란 긴 세월을 가장 멋진 파트너로 함께 해로했다. 처음엔 동지로 만나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들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아가페 사랑의 표본이 되었다.

 

그 두 사람처럼 처음부터 사랑의 정신이 일치한 부부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가 늦게라도 그들의 사랑이 다시 일치하도록 노력할 때 성령이 역사하심을 깨닫게 된다.

황혼녘의 거리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인간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는 듯이 걸어가는 이 노부부는, 지금부터 또 어디를 향해 무엇을 꿈 꾸며 함께 걸어가고 있을까?

 

 1996.3.20. <샬롬문화> 봄호

 

 

 

107.  샬롬문화시리즈 3- <야곱의 꿈, 노년의 꿈이여> jacob's dream & elder's dream

                                  

 

사람들은 말한다. 하느님은 어떻게 저 얌체 같은 야곱을 더 사랑하시고 전에도 후에도 들어본 적이 없는 큰 복을 내리셨을까 하고.

 

그는 두 번씩이나 형을 밀어낸 사람이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쌍둥이로 세상에 나올 때도 먼저 나오려고 형의 발 뒤꿈치를 잡고 나왔다 해서 야곱이란 이름까지 얻었고, 형에게 붉은 팥죽 한 그릇으로 맏아들의 권리를 산 다음 늙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자기가 형인 양 속여 장자의 축복을 몽땅 받아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가 하느님이 주실 약속의 땅을 믿었기 때문에, 샤갈이 그린 ‘야곱의 사다리’처럼 ‘하늘로 들어가는 문’을 꿈 꾸었다는 것을. 그리고 형 에서를 속인 죄를 회개했을 때 하느님의 사람과 씨름하여 이겼으며, 그때부터 ‘야곱’의 삶이 ‘이스라엘’로 바뀌었다는 것을…

우리가 야곱처럼 젊은 날의 꿈을 이루어 보지 못했다면, 노년에라도 세속의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 하늘 문을 향해 내 마음을 열고, 자유롭게 나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노년의 꿈’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샤갈이 그린 ‘야곱의 꿈’과 그가 쓴 아름다운 시를 다시 펼쳐본다.

 

야곱의 사다리 위에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닫혀져 있다.

빛은 사그라지고

밤이 다가온다.

나는 어느 곳에 나의 색들을 감출 것 인가.

 

눈물, 그것이 쏟아지는 곳으로

마지막 기쁨, 마지막 시선이

내 형제들의 나라에 닿고

나는 그들을 향해 올라가고 내려온다.

 

야곱의 사다리에 대한 나의 꿈은

마치 내가 십자가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보인다.

오랫동안 지쳤던 나의 그림은 노래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울고 있다.

 

묘지에 흩어져 있는 나의 모든 그림을

불 꺼진 양초 냄새가 올라간다.

그림에 뛰어다니는 죽은 음악가들

그들은 고인들의 기도로 읊조린다.

  <샬롬문화> 1995 봄호

그림/ 마르크 샤갈 <야곱의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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