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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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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129. 식물의 대화(Plant Talking)


“잘 잤니, 페디움? 어젯밤엔 혹시 찬바람이 몰래 너를 찾아와 괴롭히진 않았니?. .응, 그런 일 없다구 살랑살랑 고개 흔드는 것 좀 봐, 그럼 아주 잘 잔 게로구나…. 자, 이젠 물 좀 먹구 일광욕 하자… 뭐, 밖에 나가서 하자구? 아이, 아직은 저 샘둥이 바람 때문에 밖에선 안돼요. 이 유리문 앞에서도 충분하다구요…. 자, 이 창문으로 더 가까이, 옳지, 옳지, 그래야지 아유, 요 솜털 좀 봐, 감마선을 쏘였나? 어제는 푸른 빛이더니 오늘은 희뽀얗네… 너의 조상은 비록 머나먼 남쪽나라에 살고 있었다 해도 너를 키워주는 이 땅이 진짜 네 고향이란다. ‘낳아준 엄마보다 길러준 엄마!’란 말도 있지 않니? 그러니 투정 말고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예쁘게 자라다오. 예쁘게, 꼭…”

 

이것은 마치 갓난 아기와 얘기하는 듯 하지만, 실은 아침마다 우리집 난초들과 내가 나누는 대화 한 토막이다.
말하자면 식물과의 대화, 즉 “Plant Talking”이다. 미국의 한 식물학자가 실험 끝에 지어낸 이름인데, 음악을 들려주면 닭이 알을 더 많이 낳듯이, 식물도 사람과 이야기하듯 대화를 나누면서 키우면, 더 잘 자란다는 것이다. 식물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관심과 애정이 생기고 따라서 필요한 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되어 무럭무럭 자라게 만든단다. 아기들도 가장 많은 영양을 섭취해야 될 시기에 엄마가 하루나 이틀만 소홀해도 그 아기는 곧 병이 나거나 심하면 성장기에 심리적인 장애마저 보이는 수가 있듯이, 식물도 그 초기의 섭생이 중요한 모양이다. 큰 나무보다 방금 옮겨 심은 화초나 갓 피어난 꽃이 더 손이 가는 걸 보면 수긍이 간다. 
나는 화초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아파트로 이사온 후 친구들이 난초 화분을 하나, 둘 선물로 갖다 주어 본의 아니게 많이 키우게 되었다. 난초를 길러 본 경험이 전혀 없던 나는, 자식 없는 사람이 갑자기 남의 아기를 떠 맡은 것처럼 처음엔 겁이 났다. 그러나 식물도 성질에 따라 알맞는 조건대로 정성껏 맞춰주기만 하면 신기할 정도로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초 중에도 약간 거칠어 보이나 개성이 강하고 가장 내 맘을 끄는 풍란은, 이젠 어엿이 거대한 동굴(구멍 뚫린 작은 돌멩이동굴)에 뿌리를 박고, 마디를 늘이고 있다. 캐나다로 이주할 때 비실비실한 실난을 버리려고 했는데, 작은 며느리가 키운다기에 주고 온 지 십 년이 넘는다. 어제 내 생일축하사진으로 그동안 잘 키워 예쁘게 무성하게 잘 자란 실난 사진을 보내주어 놀랐다. plant talking 소통이 잘된 듯해서 더 기뻤다.
나는 그 대화법에 전적으로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아기가 말문을 열기 전부터 엄마와 아기는 대화가 가능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기가 말을 할 줄 몰라도 하루 종일 아기와 이야기한다. 아동 심리학에서 엄마와 아기의 대화가 주는 정신적인 영향을 크게 평가하고 있다. 심리적인 것은 물론, 아기는 엄마에게서 직접 언어와 지혜와 사랑을 느끼고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방적이면서도 대화가 이루어지는 일은 얼마든지 더 있으리라. 

 

서울에서 어느 날, 우연히 K시인을 만나 함께 길을 걸었다. 우리를 버리고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떠난 극작가 암산 주태익 선생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주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이 이태밖에 안되지만, K는 오랜 세월을 그와 함께 했을뿐더러 하루라도 서로 얼굴을 못 보면 몸살이 나는 친구의 하나였으므로 슬픔도 나보다 몇 배 더했다. 그는 말했다.
“내세라는 게 있다면 岩山(주 선생님 별호)이 지금 우리를 보고 있겠지?”
나는 그 말을 얼른 받아, “내세라니요? 영생을 믿는 우리 크리스찬이 내세라고 하면 되나요? 지금 주 선생님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뿐 아니라 이 세상을 모두 내려다보고 계실 텐데요. 좁은 세상에서 살다가 높은 곳에 올라가보니 작품 소재도 마치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별처럼 많을 텐데… 하늘나라에선 연극이 필요없다고 하면 참 가슴 아프시겠지요?”
나는 주 선생님이 지금 우리를 보고 있는 듯 깜깜한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주 선생님과 헤어질 때 언제나 그랬듯이. “선생님! 안녕… 다음에 또 만나 얘기해요…”
별들이 약간 흐려지는 모습이 암산이 미간을 약간 찡그린 채 웃는 모습 같았다. 크리스찬은 인간과의 대화뿐만 아니라 초월자 하나님과의 대화도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는 다른 영적 생활을 체험하는 모양이다.

 

나는 가끔 어린이들이 기도할 때의 순수한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새삼 느낄 때가 많다. 나의 작은 아들 동순이, 국민학교 2학년 때 아빠 생일 아침에, 그날의 기도를 동순이 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눈을 감았고 그는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미안합니다. 오늘은 아빠 생신인데 선물을 못 샀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도 괜찮지요?. 아빠, 엄마 오래 살게 해주시구요. 우리도 더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아멘.”
이 솔직한 믿음이 그대로 자라주었으면 하는 생각 때문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식물과의 대화.
인간과의 대화.
하나님과의 대화.
그 어느 것이든 ‘대화’는 서로에게 관심과 이해를, 희망과 믿음을, 사랑과 인내를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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