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이가 조타”


(사진) 
김재욱 칠곡군수와 이원순 할머니가 할머니들의 시와 그림이 국어교과서에 실린 것을 자축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자연이 만들어내는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귀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누가 인생이 아름답다고 했나?”, “왜 이렇게 살아가는 게 힘들기만 하지”라며 투덜거리지만, 일상적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어도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우리들의 심성(心性)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삼가 댁내제절(宅內諸節)의 건강하심과 뜻하시는 일에 보람과 위안이 함께 하시기 바란다.


‘사실에 바탕을 두어 진리를 탐구함’을 ‘실사구시(實事求是)’라고 이른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유래한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물처럼 유연(柔軟)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삶 자세’를 강조했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했다. 우리는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아야만 한다.


“어무이가 조타”. 여든 넘어 한글을 배운 경상북도 칠곡 할매들의 詩 4편,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수록된다고 했다. 한글을 깨친 뒤 시집(詩集) 4권을 내 화제가 됐던 할머니들께서 국어 교과서에 이름을 올린다. 
“80이 너머도/ 어무이가 조타/ 나이가 드러도 어무이가 보고시따/ 어무이 카고 부르마/ 아이고 오이야 오이야/ 이래 방가따.” -이원순-

 

교과서에 만학도(晩學徒) 할머니들의 시(詩)를 싣는 것은 이례적(異例的)인 일이다. ‘성장’의 의미를 다룬 단원(單元)에 강금연 할머니의 ‘처음 손잡던 날’, 김두선 할머니의 ‘도래꽃 마당’, 박월선 할머니의 ‘이뿌고 귀하다’, 이원순 할머니의 ‘어무이’가 실린다. 
‘70여 년 동안 이름조차 쓰지 못했던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며 어느덧 삶까지 시로 표현을 했다’는 소개 글도 달린다. 천재교과서 측은 “보통 성장하면 어린 학생을 떠올리는데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고 시(詩)를 쓰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성장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배울 만한 좋은 성장 사례라고 생각해 교과서에 담았다”고 했다.

경북 칠곡군 약목면에서 이원순(87) 할머니는 소감을 묻자 눈시울을 붉혔다. 함께 교과서에 등단한 언니 강금연 할머니는 작년 1월, 김두선 할머니는 올 6월 별세하셨고, 박월선(96)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요양원에 계시다고 했다. ‘칠곡 할매’들은 2013년 칠곡군이 개강한 ‘성인 문해(文解) 교육’ 강의를 수강하면서 난생 처음 한글을 깨쳤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한글이었다. 한글을 배우며 시 여러 편을 썼다. 2015년 10월 동료 할머니들과 함께 시집 ‘시가 뭐꼬’를 출간 ‘칠곡 할매 시인’으로 불렸다. 늦깎이 공부의 고충을 담은 ‘시가 뭐꼬’는 2주 만에 1,000부가 완판(完販)됐고 지금까지 1만 부가 판매됐다고 한다. 이후 시집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작대기가 꼬꼬장 꼬꼬장해’ ‘내 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 애뻐요’도 냈다.

 

할머니들의 시는 서툰 맞춤법으로 투박하게 썼지만 뭉클한 감동을 준다는 평(評)을 받았다. 할머니들이 소소한 일상에서 느낀 감정과 살아온 인생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썼기 때문이다. 이원순 할머니의 시 ‘어무이’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이 할머니는 “첨에는 ‘시가 뭐꼬?’ 했는데 내 맘속에서 우러나는 대로 썼드니 그기 시라 카드라”며 “저거 쓸 때도 우리 엄마 생각이 나가 마이 울었다”고 했다. ‘각박한 세상에서 한없이 따뜻했던 우리 할머니가 떠오른다’는 반응도 많았다.

칠곡군은 2020년 할머니들과 ‘칠곡 할매 서체(書體)’도 만들었다. 할머니들이 넉 달 동안 2,000장 넘게 연습을 거듭한 끝에 완성한 것이다. ‘칠곡 할매 글씨체’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새해 연하장에 쓰면서 화제가 됐다. 덕분에 작년 1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기도 했다. 칠곡 할매 중 8명은 ‘수니와 칠공주’라는 랩(Rap)그룹도 결성했다. 뒤늦게 배운 한글로 가사를 써 7곡을 지었고 외신에도 나왔다. 이 할머니는 “내 시(詩)가 온데 간데 다 퍼져가꼬 학생들이 엄마아빠 중히 생각하고 사랑도 마이 받고 자랐으면 싶다”고 했다.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남에 손 빌려다가/ 내 이름 적는’ 까막눈의 설움을 딛고 시인으로 거듭난 이런 ‘성장’이 세상 어디 있을까?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 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이정록 / <더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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