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X)
눈빛과 몸짓만으로 숨막히는 관능미를 뿜어내는 모니카 벨루치 주연
2015년 11월6일 개봉했던 007시리즈 24탄 '스펙터(Spectre)'는 역대 본드 걸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당시 50세의 이탈리아 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에 대적하는 루치아 샤라 역으로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註: 그 전까지 데보라 커(Deborah Kerr, 1921~2007)가 47세 때 '카지노 로열'에서 본드걸로 출연한 기록을 깨뜨렸다.]
그녀가 15년 전에 주연했던 '말레나(2000)'라는 작품을 한 번 보면 그게 가능한 얘기인지 가늠이 될 것 같다.
13살 때부터 패션 모델을 시작하여 유럽 패션 중심지인 밀라노에서 활동하다 파리로 건너가 1996년 '라빠르망(L'Appartement)'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4년 후 이탈리아 영화계로 돌아와 찍은 작품이 '말레나'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관능의 화신'으로 극찬을 받는 이탈리아 배우로 등극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1992)'에서 단역이었지만 드라큘라 백작의 세 신부 중 하나로 나와 속이 비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풍만한 가슴과 뇌쇄적인 눈빛으로 공포스런 성적 팬터지를 보여줬던 모니카 벨루치는, 멜 깁슨 감독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에서 마리아 막달레나 역으로도 우리와 안면을 튼 배우이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2000년 미라맥스사 배급.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모니카 벨루치, 쥬세페 술파로. 음악감독 엔니오 모리코네. 러닝타임 109분(미국은 커트된 92분).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1988)'에서 순진무구한 소년의 맑은 눈으로 상처 입은 이탈리아 현대사를 바라봤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다시 햇빛 찬란한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로 돌아와 역시 13세 소년의 추억 어린 시선을 통해 전쟁과 파시즘의 폭력을 반추하며,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가슴 시린 노스탤지어와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아름다운 영상에 담은 영화 '말레나'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작품성보다도 모니카 벨루치의 전라(全裸) 노출장면이 많아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17분이나 커트된 것도 사춘기 소년의 상상 속에서 모니카 벨루치가 대부분 전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야하다는 느낌에 앞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과 따뜻한 영상, '시네마 천국'에서 느꼈던 사춘기 소년의 풋풋한 감정과 애교(?) 등이 있기 때문이리라.
영화의 배경은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이탈리아 파시즘이 지배하고 있는 지중해의 작은 섬 시칠리아. 거기서 13살짜리 소년 레나토(쥬세페 술파로)는 어느 날, 하루에 세 가지의 주요 사건을 경험한다. 첫째는 이탈리아가 전쟁에 참가한다는 사실이었고, 두 번째는 중고품이지만 자기 자전거를 장만했고, 세 번째는 난생 처음으로 범접할 수 없이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인 말레나(모니카 벨루치)를 보고 짧은 바지 속이 들썩거렸다는 것이다.
영화는 첫눈에 그녀를 흠모하게 된 소년 레나토의 끊임없는 그녀를 향한 눈길을 통해 1인칭 내러티브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말레나는 남편 니노 스코르디아를 아프리카 전장에 보내고 홀로 남아 늙은 선생이며 귀까지 먹은 아버지(피에트로 노타리안니)를 모시고 산다.
여성, 그것도 아름다운 여성이 혼자 살면 필연적으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말레나는 시칠리아 최고의 얼짱에 몸짱이었던 까닭에 그 '존재'만으로 소년 레나토를 포함하여 나이를 초월한 모든 마을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과 질시를 한 몸에 받는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말레나가 거리를 거닐 때마다 모든 동작을 멈춘 채 그녀만 바라보는 사람들. 그러나 그녀의 앞에서 아름다움을 찬양하던 남자들은 돌아서서는 그녀를 희롱하는 언사를 늘어놓기 바쁘고, 여자들은 남자들을 빼앗긴 데 대한 질투와 분노로 그녀를 험담하고 모욕한다.
이렇게 말레나에 의해 지배된 주민들은 그녀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과 망상으로써 말레나의 인생을 유린하고 억압한다.
그러나 그런 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레나는 밤마다 남편만을 그리워한다. 레나토는 여느 날처럼 밤중에 나무 위로 올라가 창을 통해 말레나를 엿보던 중, 그녀가 전쟁에 참가 중인 남편 사진 액자를 끌어안고 음악에 맞춰 혼자서 춤추는 광경을 목격한다.
소년은 그때 들었던 음악이 맘에 들었는지, 다음날 레코드 가게에 가서 힘들게 음반을 구입하여 밤엔 그 음악을 들으며 마스터베이션을 즐긴다. 어쩌면 남성들만의 보편적인 심리 내지 정서일지 모르지만 영화의 본질이 '훔쳐보기(peeping)' 내지 '관음(voyeur)'이 아니겠는가….
그러다 어느 날, 레나토는 빨래터에서 훔친 말레나의 속곳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레코드판을 틀어놓고 춘화(春畵)를 보며 그 만의 팬터지 세계로 빠져들어 늦잠을 자다가 아버지(루치아노 페데리코)와 어머니(마틸데 피아나)에게 들켜 흠씬 두들겨 맞고 혼쭐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나토는 사춘기의 여느 소년과 마찬가지로 끓어오르는 음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애교짓을 일삼는데, 부모는 그의 행위를 막을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만 헛수고다. 그러나 레나토는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건강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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