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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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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와 편견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거목 김대중 
-선입견 없는 인간의 참 진실을 

  

“Prejudice disabled me from falling in love with others and pride shuns others away from me.”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중

 

인간의 고정관념 중 하나인 ‘편견’에 대해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우상(偶像, Idol)이란 말로 설명했다. 
이는 인간이 올바른 지식을 얻을 때 장애가 되는 편중된 견해, 즉 그릇된 선입관을 말한다. 바로 4가지 우상(Four Idols)이 그것이다.

 

-종족(Tribe)의 우상: 인간의 입장에서 자연이나 세상을 보는 편견.
-동굴(Cave)의 우상: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세상을 판단하려는 편견.
-시장(Marketplace)의 우상: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그럴 것이라 착각하는 편견.
-극장(Theater)의 우상: 자신의 소신 없이 권위나 전통을 맹신하는 편견.

 

0…나는 이중에도 한국사회에 팽배한 ‘시장과 극장의 우상’에서 비롯되는 편견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성찰이나 경험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지배계층의 오만하고 비뚤어진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것에 의지하려는 것이다.
한번 뇌리에 박힌 그릇된 고정관념(편견)은 개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0…한국에서는 비뚤어진 편견이 정치 사회적으로 무수히 남용돼왔다. 왜곡된 편견은 극도에 치우친 이념으로 변질되고 집단화되어 국가사회를 분열시킨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좌빨” “00도 출신”이라는 단어만 갖다 붙이면 그 대상은 하루아침에 생매장된다.  
이들 용어가 사라지고 상대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국사회는 비로소 선진국 대열에 오를 것이다.    

 

0…나는 한국에서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3김씨(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와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개인 인터뷰도 여러번 했다.   
3김은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한국 현대정치사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며 때론 동지로, 때론 라이벌로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져온 것이 사실이다. 
‘3金’이라는 한묶음으로 분류되는 그들이지만 각자 뚜렷한 특징이 있다. 
난감한 질문을 알쏭달쏭한 선문답(禪問答)으로 피해가는 JP(김종필)의 노회함, 질문의 핵심과는 동떨어진 YS(김영삼)의 동문서답.  
이에 비해 DJ(김대중)는 질문의 요점을 진지하게 파악한 후 기사로 쓰기에 꼭 알맞은 답을 제시했다. 

 

0…나는 이민오기 전까지 청와대를 출입하며 DJ를 가까이서 직.간접적으로 만나 그 인품을 접했다.
그를 한번이라도 만난 사람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에 고개를 숙이게 돼있다. 개인적인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시대상황을 꿰뚫는 예리한 판단에 혀를 내두른다. 
그러나 한 인간의 공과(功過)를 두고 DJ처럼 극명하게 평가가 엇갈리는 예도 없을 것이다. 
0…미래를 내다보는 혜안(慧眼)으로 한국 현대정치사를 좌지우지한 사람, 정치 거목, ‘행동하는 양심’, ‘인동초’(忍冬草).  
반면, 지역감정을 조장한 파벌정치, 북한에 마구 퍼준 좌익 용공주의자 등 비판도 높다. 그라면 무조건 싫다는 사람도 많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DJ가 없었다면 한국의 민주화는 훨씬 뒤로 미뤄졌을 것이란 점이다. YS와 JP가 있긴 하지만 그들은 DJ가 있었기에 민주화 여정의 동반자로 갈 수 있었다.    

 

0…DJ의 목숨 건 투쟁이 없었다면 한국의 현대 정치사는 어디로 흘러갔을지 모른다. 
그는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한국사회에 터부시돼온 좌파 이데올로기를 극복해냈다.
지금도 혹자는 그를 용공(容共)주의자로 몰고 있지만 내가 만난 DJ는 그렇게 편협한 인물이 아니다. 

 

0…이란에 호메이니가 있다면 한국엔 DJ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DJ는 숨죽여 지낼 때 더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1970년대 ‘동교동 재야인사’로 불리며 신문사진에서 눈에 검은 띠가 둘러쳐진 그는 신비로움마저 자아냈다. 
당시는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지됐고 그를 지지한다는 것은 곧 좌익 용공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0…“한국인들은 참 이상하다. 한국인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고 한국인들 스스로 로비를 한다./ 김대중씨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 통이 전달됐다. 내가 노벨위원회에 들어온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도 어느 특정지역에서 날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경악했다. 대체 그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왜 다수의 한국인들이 김대중씨의 위대함과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감명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지난 2000년 11월,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린 한반도 국제심포지엄에서 노벨상심사위원회 간사였던 노르웨이 국립대학의 스팔니치뇨 교수가 한 말이다. 
노벨상을 타려고 범국가적 로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특정인에게 상을 주지 말라고 ‘역(逆)로비’를 한 사실을 밝힌 것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0…해외에서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 ‘자기를 죽이려 한 사람조차 끌어안는 탁월한 인격자’로 칭송받는 그가 정작 조국에서는 외면당했다. 
“내가 진실로 말한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누가복음 4장24절)는 예수의 말씀이 이처럼 적확할 수 없다. 
그동안 DJ를 싫어했던 사람은 그가 쓴 책을 단 한 줄이라도 읽어보고 비판을 하든지 말든지 했으면 좋겠다. 
소외받고 그늘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정책을 좌파정치라 몰아부치지 말고 가급적 이해하려는 자세도 가져봄직 하지 않을까.      

 

0…생각건대, 앞으로 상당기간 한국 정계에서 DJ를 대체할만한 인물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마침 그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기념영화가 상영된다고 한다. 자못 기대가 크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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