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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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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술잔

 

Editor’s Note

-모진 세월 헤치고 살아온 삶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그 이름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나는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이 거의 없다. 아니 아버지라는 용어 자체가 어색하다. 그 이름을 불러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0…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아버지와  함께 손을 잡고 다니거나 아버지 덕택에 잘 된 것을 보면 무척 부러웠다. 한편으론 “왜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나.” 속으로 원망도 많이 했다. 
 내가 지금도 부친의 후광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계층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이 나이토록 아버지라는 이름을 아예 잊고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빛바랜 사진첩들을 뒤적이다가 노랗게 색이 변한 옛날 사진들을 보노라니 새삼 눈에 띄는 장면들이 몇개 있었다. 바로 내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0…갓난아기 때부터 너댓 살 무렵까지인 것 같은데 너무도 새삼스러워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면서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구나!” 
 그런데 왜 나는 그동안 아버지 생각을 안하고 살아왔을까? 아버지라는 존재가 전혀 없었던 것 마냥… 그것은 아마도 먹고 사는데 열중하느라 옛 생각을 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다!           

 

0…사진 속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멋진 신사숙녀였다. 아버지는 예전 구세대답지 않게 하이칼라 머리에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맨 세련된 모습이셨다. 
 언젠가 친구들과의 계모임에 참석할 때 어머니와 나를 함께 데리고 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호탕하게 웃으시는 얼굴에서 쾌남아 인상을 짙게 풍긴다. 단아하신 어머니는 내 평생 보아온 모습과 똑같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세탁소 일을 하시다가 해방 후 귀국하셔서도 그 일을 하셨다고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0…아버지는 내가 여섯살 때 집에서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시더니 너무 고통스러워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 진단 결과 급성 복막염인데 시간이 너무 지나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다시 돌아오셨다. 그 몇시간 후 아버지는 참으로 허망하게 돌아가셨다.  
 요즘같은 시대엔 병이라고 할 것도 없는 질환으로 40대 중반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아버지 상여(喪輿)가 나가던 날 나는 깡충깡충 뛰어 놀았고 어른들은 그 모습에 눈시울을 훔치셨다.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급하시어 젊고 고운 어머니와 철모르는 다섯 남매를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셨는지. 

 

0…아버지는 대청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한적한 산기슭에 어머니와 합장돼 있다. 선산(先山)의 묘는 수몰(水沒)지역이라 호수에 물이 차면 조각배를 타고 가야 한다. 
 산소는 또 왜 그리 외지고 먼 곳에 썼냐고 성묘를 갈 때마다 투덜대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있다. 이런 불효가 없다. 
 아버지가 오래 살아계셔 효도하는 분들을 보면 부럽다. 우리 아버지가 좀더 오래 사셨더라면 나의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볼 때도 있다. 
0…나는 막내로 태어난데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가족들의 측은심 때문인지 형님 누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내 천성이 마음이 여리고 인내심이 부족한 것은 그런 성장 환경 때문이라 생각된다.   
 내가 나이들수록 건강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내 자식들만큼은 아버지가 오래 함께 있어 좋은 추억거리들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0…‘아버지’란 말엔 왠지 외롭고 고달픈 이미지가 스며있다. 한잔 술에 취해 잠든 아버지의 모습은 측은해만 보인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힘이 드실까.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 직장에서 무시당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집에 와선 내색 않고 그저 미소만 지으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오로지 가정과 자녀드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세상의 온갖 굴욕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한국의 아버지 상(像)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때론 자식들이 무시하고 대화에 끼여주지 않아도 그냥 허허 웃어넘기는 우리의 아버지.

0…6월 세번째 일요일(올해는 16일)은 캐나다에서 정한 아버지의날(Father’s Day)이다. 어머니날은 선물이다 외식이다 하여 떠들썩하지만 아버지날은 대충 넘어간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아버지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 드리는 것이 어떨까. 
 무기력하고 초라해 보이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 그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다.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용기를 주자. 그들의 기(氣)를 살려드리자. 가장(家長)의 빈자리는 없을 때 더 큰 법. 살아계실 때 잘 해드릴 일이다.  

 

0…‘아버지는 태산 같은 존재/ 나이가 들수록 작은 동산의 둔덕/ 흔들림 없는 아름드리였다가/ 누구보다 연약한 갈대/ 수많은 감정들을 가슴에다 채우고/ 가장이라는 짐을 지고 휘청대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인 것을!’   (김향숙 ‘아버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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