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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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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歌王) 조용필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 ‘친구여’  

 

 

 

 


 나는 이 노래를 눈물 흘리지 않고 부른 적이 별로 없다. 40대의 꽃같은 나이에 암으로 일찍 세상을 뜬 죽마고우 친구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지금도 차를 타고 가며 종종 이 노래를 듣는다. 카세트엔 이밖에 조용필 노래가 많다. ‘꿈’을 들으면 이민자인 나의 심정이 고스란히 들어있고, ‘그 겨울의 찻집’은 풋사랑에 가슴 설레던 청춘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혈기왕성한 청년시절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르며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고 부르짓던 때도 있었다. 조용필은 그야말로 나와 같은 세대와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왔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조용필과 이미자가 더 좋아진다.       


0…조용필은 1950년생으로 올해 만 68세다. 6.25 전쟁이 터지기 3개월 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한 그는 잘 알려진 ‘가왕(歌王)’, ‘작은거인’ 외에도 ‘풀빵’, ‘조방범’ 등의 별명을 갖고 있다. 염전업을 하던 부유한 집안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고교(경동)시절부터 음악에 빠졌고, 결국 고3때 음악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갈등을 겪으며 가출한다. 


 이후 미8군 기타리스트 겸 가수로 출발한 그는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함께 전설이 시작됐다. 당시 재일교포 고국방문과 맞물려 발표된 이 노래는 부산에서부터 열기가 일어 전국으로 퍼졌고, 조용필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된다. 그러나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가수활동이 한때 금지된다. 그때 그룹 ‘위대한 탄생’을 결성하고 1집 앨범 ‘창밖의 여자’를 발표하면서 조용필 천하가 열리기 시작한다. 내놓는 앨범마다 히트하며 한국 최대 콘서트 인원, 예술의 전당 7년 연속 공연 등 신기록을 써갔고, 조용필은 두 말이 필요 없는 대중음악의 산 전설이 됐다.


 조용필은 현존하는 한국 가수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인 동시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가요계의 제왕(帝王)으로 통한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는데, 조용필 본인이다. 스스로 '가왕', '국민가수' 같은 별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조용필' 이름 석 자로 불리기를 바란다. 


 사실 조용필은 166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짧은 성대를 갖고 있다. 턱도 작다. 노래는 후두(뒷머리)와 턱에서 만들어낸 소리를 혀와 입술이 조절하는 방식으로 부르는 법인데, 그는 가수로서 신체적 핸디캡을 많이 지닌 셈이다. 그럼에도 부적합한 신체적 조건들을 피나는 노력을 통해 자신에 맞게 재설계했다. 


0…조용필과 이선희 등이 포함된 남한예술단이 북한 평양에서 두 차례 공연을 펼쳤다. 조용필의 평양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2005년 8월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어 기립박수를 받은 바 있다. 그는 오는 5월 열릴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 준비로 일정이 빠듯했지만, "13년 전 평양 콘서트 때 관객들이 준 감동을 기억한다"며 흔쾌히 정부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공연을 앞두고 조용필은 후두염에 걸린 상태였다. 목에 염증이 올라와 고열과 통증에 시달렸다. 이선희도 대상포진 후유증이 있었고, 사회를 맡은 소녀시대 서현도 몸살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들 투혼을 발휘해 끝까지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었다.


 이번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의 주제는 '봄이 온다'였다. 꽁꽁 얼어붙었던 남한 대중음악인들의 북한 공연이 13년 만에 다시 활짝 펼쳐진 것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봄의 훈풍이 가져다준 감격과 감동, 바로 그것이었다. 남과 북이 한겨레, 한핏줄임을 생생하게 확인한 눈물겨운 순간이었다.  


 이번 공연은 이달 27일 열릴 남북정상회담의 사전행사 성격이었다. 공연엔 그동안 미치광이  야수(野獸)로만 보이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참석해 박수를 치며 관람했고, 공연 후엔 출연진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런 장면들은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꿈’같은 이야기였다. 김정은은 "문화예술 공연을 자주 해야 한다. 남측이 '봄이 온다'는 공연을 했으니 가을엔 결실을 보고 '가을이 왔다'는 공연을 서울에서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변화가 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0…"오늘 공연 제목인 '우리는 하나'처럼 음악을 통해 교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용필은 13년 만에 다시 평양 무대에 선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음악의 장르가 다르고 남북 음악 사이에 차이점이 있지만, 언어가 같고 동질성이 있다."고도 했다. 조용필은 공연에서 위대한 탄생과 함께 ‘친구여'와 '모나리자'를 불러 1만2천여 석의 공연장을 가득 메운 북한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남북 합동공연에는 북측 고위인사들이 대거 참석했고, 남북 출연진이 함께 피날레 송으로 '우리의 소원', '다시 만납시다'를 부를 때는 1만2천여 관객이 일제히 함께 손을 잡고 기립박수로 호응하는 감동의 무대가 연출됐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10분 이상 관객들의 박수가 멈추지 않았다. 


 섣부른 낙관일지 모르나 이런 흐름이 면면히 이어지다 보면 결국 민족통일의 길도 열리지 않겠는가. 일부에서와 같은 냉소의 시선을 거두고 큰 박수를 보내보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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