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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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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간데 없고-세월따라 달라져가는 오월

 

▲토론토 ‘사월의 꿈’ 합창단이 5.18 기념식에서 ‘오월의 노래’를 합창하는 모습   

 

 

 흔히 계절의 여왕이라 칭송받는 5월, 마냥 푸르고 아름다워야 할 이 5월이 모국에선 언젠가부터 눈물과 회한의 계절이 되고 말았다. 벌써 38년째, 광주의 그날 참극은 아직도 진상규명이 덜 된 채 갑론을박이 되풀이 되고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만 보아도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0…제38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지난 5월 18일(금) 저녁 토론토한인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의 기념식 분위기는 1년 전과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참석자 수가 작년보다 두 배 정도 많았다. 참석자들 면면도 많이 넓어졌다. 전에는 특정 진보단체 인사들이 대다수였으나, 올해는 보통 한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가장 달라진 점은 역시 한국정부를 대표해 나와 있는 총영사가 행사에 참석했다는 점이다. 수년 전만 해도 5.18 행사라면 좌파 운동권 인사들의 모임이라며 극도로 경계하던 공관 사람들이 이젠 공식적으로 행사에 참석해 국무총리 기념사를 대독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5.18 민주화운동이 삼일운동이나 8.15 광복절 같은 범국민적 행사로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5.18 토론토 기념식은 한인회와 민주평통이 주관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동포단체장이나 평통위원들 모습은 많지 않았다. 수년 동안 보아온 같은 얼굴이 많았다.        

                          
0…‘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부른 것은 지금부터 31년 전인 1987년 이맘때, 6월 항쟁을 앞두고 전국에 한창 민주화운동 바람이 불 때였다. 당시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민중항쟁을 맞아 직장생활을 하던 나도 종로와 광화문 일대를 누비며 소극적이나마 시위대열에 참여했다. 그때 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듣는데, 서사시 풍의 가사와 함께 선율에 비장미(悲壯美)가 돌아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는 대목에선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임을 위한…’은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를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어 가사로 만들었으며, 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전남대생 김종률이 계엄군의 폭력진압에 희생된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81년 작곡했다. 윤상원은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서 숨졌으며, 박기순은 들불야학 교사로 일하다 희생됐다. 


 이 노래는 82년 음반에 수록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시민단체와 노동.학생단체 집회 등에서 널리 불리게 됐다. 그러나 이 노래가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금은 외국의 운동권에서도 이 노래를 개사해 부를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여기까지 오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군사정권 시절인 80년대에는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일부 보수단체는 노랫말 속 '임'이 북한 김일성을, '새날'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칭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다 5.18 기념식은 97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정부주관 행사로 치러졌고, 행사의 마지막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마쳤다. 이때부터 2008년까지는 별 논란 없이 그저 운동권 노래 정도로 간주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5.18 행사에서 이 노래를 ‘제창’ 대신 ‘합창’으로 바꿔 논란이 일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제창이냐 합창이냐는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이 노래에 대한 퇴출 논란이 거세졌고 그 중심에서 국가보훈처가 혼란을 부채질했다. 보훈처는 이 노래를 대체할 새로운 노래를 만들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정부 행사에서 이 노래를 제외한다고 발표했다가 거센 반대여론에 부딪치는 등 갈팡질팡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파면당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마침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 노래를 제창으로 부를 것을 지시해 작년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임을…’이 떳떳이 불리게 됐다. 노래 하나 갖고 이처럼 곡절을 겪은 예는 없을 것이다.


0…일반적으로 제창(齊唱)은 애국가처럼 참석자 모두가 (의무적으로) 부르는 것이고, 합창(合唱)은 부르고 싶은 사람만 부르면 된다. 행사장에서 제창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그 노래가 단순히 배경 음악이 아니라 모든 참석자들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그 노래를 통해 행사의 뜻을 되새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제창이라 하더라도 강제성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즉, 행사 참석자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법적 처벌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창이냐 합창이냐는 논란은 다분히 감정적 측면이 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임을 위한 행진곡’. 이는 종북과는 상관이 없으며 출처 또한 종북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노래는 지난해 대통령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기존의 민주화운동 세대는 물론, 노래 자체가 생소했던 20~ 30대에게까지 전파되면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노래가 되었다. 


 이젠 변하는 시대와 함께 우리들의 사고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새 날이 올 때까지…’ 나의 카톡 화면에 적힌 문자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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