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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기 수필

    작은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에이젼트 Jaiki Kim
    Broker 김재기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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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야

얼마전 고국의 연예 프로그램을 보다가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정말로 젊고 예쁜 연예인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가 "도둑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예쁜 사람은 모든 것을 용서받는다지만 어떻게 방송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의아했다. 30년 전, 대한항공 폭파사건이 일어났을 때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의 소행에 공분했었다. 그런데 김현희의 사진이 공개되자 많은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그녀는 북한의 명령을 시행했을 뿐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했다. 작년인가, 멕시코의 마약 갱단 여두목이 잡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죄는 용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 여인의 공통점은 빼어난 미인이라는 점이다.

첫번째 여인은 전지현이라는 여배우로 영화 '도둑들'을 홍보하고 있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3천만달러짜리 다이야몬드를 훔치기 위해 열명의 내노라 하는 도둑들이 합심하여 작업하는 영화인데 그녀의 바람대로 그 영화는 '왕이 된 남자-광해'와 더불어 천만 이상의 관객을 유치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유치했다. 영화는 그래픽을 이용해 화려하게 찍었지만 나에겐 그저 산만하고 정신이 없는 그런 영화였다.

연말이 다가오면 가게에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자주 찾아온다. 연휴는 즐겁게 보내야 하겠고 돈은 없고 하니 쉽게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려는 자들이다. 은행이나 수퍼마켓은 돈은 많은 대신 경비도 심하고 방범용 카메라가 사방에서 작동을 하기 때문에 그저 만만한 게 컨비니언스다. 겨울에는 저녁 다섯시면 캄캄하니 그들의 작업 시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더 일할 시간이 많아져 자주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80년대 말 리치몬힐에서 가게할 때 하루는 가게 문 닫고 친구들과 새벽 두어시까지 놀다가 집에  들어와 막 잠이 들었을 때 전화가 울렸다. 밤에 전화소리는 유난히 더 컸다. 술은 조금 취했겠다, 잠은 쏟아지겠다, 귀찮은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알람회사에서 온 전화로 가게에 알람이 울려서 경찰을 불렀단다. 잠과 술이 동시에 확 깨며 대충 옷을 주어 입고 가게로 나갔다. 가서 보니 불은 내가 꺼 놓은 대로 꺼져있고 유리 문이 깨져있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 쪽에는 담배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가게 뒤편으로 가 보니 별 이상이 없어서 다시 앞 쪽으로 나왔는데 주차장에 경찰차 몇 대가 와서 번쩍 번쩍 하길래 무심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몇 개의 총구가 나를 겨누고 있어 얼마나 놀랐던지! 깜짝 놀라 손을 번쩍 들고 '꼼짝마라 자세'로 내가 이 가게 주인이라고 하니까 이름이 뭐냐, 어디에 사느냐, 여기는 왜 왔느냐고 빠른 속도로 묻길래 대답을 했더니 돌아서서 양손을 벽에 붙이란다. 한 명이 뒤에서 다가오더니 몸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트며 혹시 흉기를 가지고 있지 않나 조사를 하더니 손을 내리란다. 그리고 경찰이 하는 이야기가 다음부터는 절대로 경찰이 올 때까지 가게에 들어가면 안 된단다. 만약에 그 도둑이 안에 숨어있다가 나를 흉기로 공격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반문하길래 알았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정말 큰 일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찔했었다.

약간의 술 냄새가 났을 텐데도 경찰은 도둑만 신경써서 그랬는지 음주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었고 문제는 경찰이 가고 나서부터였다. 가게 문이 부서졌으니 집으로 갈 수도 없고 가게 안에 있자니 무서운데다 겨울이라 춥고 해서 차를 가게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했다. 시동을 켜고 가게를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의 술 기운에 잠은 쏟아지지 시동걸린 상태에서 차 안에서 잠이 들면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니 잠을 잘 수도 없겠다 참으로 진퇴양난이었다. 그리고 가끔 차 뒤쪽으로 혹시 도둑이 올까봐 거울로 살펴봐야 했다.

약 다섯 시간을 밖에서 무서움에, 추위에, 고독에, 피곤함에 떨면서 기다리다가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데 문이 깨져 찬 바람이 들어오니 너무 괴로운데다 카운터의 어느 부분은 경찰이 지문 채취한다고 사용을 못하게 해서 장사 또한 제대로 못했다. 제대로 세수도 못하고 밤새 밖에서 쭈그리고 있었으니 내 몰골은 형편이 없었을 것이다.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아 도둑놈들…."

예쁜 사람을 모두 용서해 줘야 한다면 그래 그럼 집사람도 모든 걸 용서해 주자. 그런데 심각한 문제 하나는 뭘 잘못을 해야 용서를 해 줄텐데 이걸 어쩌나. 어! 하나 있다. 삼십 몇년 전 나의 마음을 몽땅 훔쳐갔던 죄. 하지만 어차피 공소시효가 지나 용서해주나 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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