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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선의 大佳里(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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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93.끝)-보스포러스(Bosporus) 해협

 

터키에서의 마지막 아침입니다. 짐들을 꾸려 버스에 싣고 보스포러스 해협 선착장으로 갔습니다. 보스포러스, “소가 헤엄 쳐서 건넜다”는 뜻을 가진 그 유명한 보스포러스 해협을 유람하러 가는 길입니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소가 건넜기 때문에 보스포러스라고 이름 지어졌습니다. 왜 소가 헤엄을 쳐 건너게 되었을까요? 이 소는 또 어떤 소일까요? 제우스까지 들먹거려야 할 정도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늘의 신 제우스는 땅에 있는 물의 신, 이나코스의 딸인 이오와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이라고 해서 사랑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감히 누가 법을 만드는데….)

그런데 하늘의 여왕인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가 여신이라지만 그래도 여자이기에, 여자의 직감(?)으로 이걸 눈치채고 왠지 이상해지기 시작하는 남편 제우스의 뒤를 밟게 되었습니다.

제우스 또한 신이 아닌가요? 밀회의 장면을 잡으려 미행해 오는 헤라를 눈치채고, 사랑하던 이오를 잽싸게 송아지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이 때 나타난 헤라가 제우스에게 이 송아지를 자기에게 달라고 조르자 제우스는 난감하여 졌습니다. 못 주겠다고 하면 들통이 날 것 같고, 주자니 아깝고… 그러나 결국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승락을 하고 말지 않겠습니까!

허허, 못 믿을 손 남자의 사랑인가 봅니다. 아니 남자가 아니라 남신이라고 해야겠지요. 쬐금 책임감이 약한 제우스인 모양입니다. 지가 연애했으면 지가 책임 질 일이지…

신이라고 해도 남편은 부인에게 약하고, 여인인 여신에게는 그때에도 질투가 있었나 봅니다. 헤라는 송아지로 변한 이오를 백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에게 맡기고 엄중 감시를 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졸지에 소가 된 이오는 자기를 구해 달라고 애를 썼지만, 이미 소로 변한 후라 말이 안 통하여, 즉 소통하는 방법이 없던 차에, 자기 앞에 나타난 아버지 이나코스를 보고 발로 글을 써서 자기가 바로 아버지가 찾아 다니던 딸이요, 그 딸이 소가 되었음을 알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물의 신의 능력으로는 속수 무책, 오히려 모르고 있을 때보다 더 괴로워하게 되자, 하늘에서 이 모양을 본 제우스는 점점 더 괴로워 견딜 수가 없게 되었지요. 그래서 헤르메스를 불러 아르고스를 죽이라고 명령을 하였던 것입니다.

헤르메스는 날개 돋친 신을 신고,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잠이 오게 하는 지팡이를 짚고 천상의 탑에서 지상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 후 여차여차하여(다 쓰자면 좀 지루할 테니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르고스를 죽이고 이오를 석방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안 헤라는 더욱 복수심이 불타올라, 죽은 아르고스의 눈을 뽑아 자기 자신이 기르는 공작의 꼬리 장식으로 매달아 놓고, 이오에게는 더욱 큰 괴로움을 주기 위해서 소의 피를 빨아먹는 등에를 한 마리 보내었습니다. (다음에 공작을 볼 때에는 그 활짝 편 꼬리를 잘 보세요. 푸른 안광을 발하는 아르고스의 눈임을….)

이오는 이 등에(파리목 등에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흔히 '쇠파리'라고도 하는데, 소, 말, 사람 등 포유동물의 피를 흡혈하기 때문입니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하여 온 세상을 다 돌아다녀야만 하였습니다.

이태리와 그리스 사이의 바다를 헤엄쳐 건넜기에 그 바다 이름이 “이오니안 해”가 되었고, 일리리아의 들을 방황하다가 흑해와 지중해 사이를 이어주는 트라키아 해협을 횡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트라키아 해협이 그 때부터 보스포러스 해협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이오의 불행을 지켜볼 수가 없었던 제우스는 부인인 헤라에게 이제는 다시는 더 안 만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헤라의 질투를 풀어주어, 이오로 하여금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였다는 Happy Ending 전설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제우스가 남신의 체면치레는 한 셈인가요? ㅋㅋㅋ

우리는 이렇게 한가하게 뱃전에서 풍광을 구경하고 있지만 우리가 탄 배를 띄워주고 있는 이 해협의 물살은 무척 세어서, 물 줄기가 해협의 윗부분은 흑해에서 지중해에 이르기 전에 작은 호수처럼 생긴 마르마라 바다(Sea of Marmara)로 흐르지만, 그 아랫물길은 마르마라 바다에서 흑해로 흘러 들어가는 여간 사나운 뱃길이 아니랍니다.

아마도 소가 헤엄을 치면서 놀린 발장구로 아랫물은 뒤로 가고 윗물은 가슴팍이 밀어 앞으로 나갔기 때문일까요? 그 위를 여유롭게 날라 다니다 가끔씩 잠수하여 고기를 물고 올라오는 갈매기는 그 속내 사정을 알기나 하는지…

서양에 있는 동양의 진주라고 불리는 이스탄불을 가로질러 흐르는 해협을, 두주간에 걸친 여행의 마지막 날, 또한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가 유람하는 것입니다.

우리 만을 위해서 전세 낸 배를 타고 보스포러스 대교를 지나서 새로 만든 다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동안에 해변으로 보이는 수많은 별장들과 옛 유적들.

모두들 순간 순간 변하는 해변의 모습을 보노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에는 3개의 대교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다리의 이름은 '보스포러스 대교'입니다. 터키 공화국 창건 50주년에 맞추어 1973년에 개통되었다는 다리로, 영국과 프랑스의 기술로 건설된 총 길이 1560m, 양 교각간 거리가 1074m인 다리입니다.

두 번째 다리는 '파티흐 술탄 메흐메드 대교'로 정복자 메흐메드 황제의 다리라는 뜻입니다. 아타튀르크 다리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일본의 기술로 1988년 여름에 개통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현수교입니다. 아시아와 유럽 대륙의 양단에 세워진 교각간 거리는 1090m이고 중앙수면에서 다리까지의 높이는 64m입니다.

제3 보스포러스 대교는 2016년 8월 26일 개통한 교량으로, 최근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이자 프랑스 남부에 있는 사장교인 미요교 다음으로 두 번째로 긴 교량이라고 합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으로는 매년 5만 척이 넘는 선박들(화물선, 대규모 탱커, 크루즈 선박들)이 운행하고 있기에 대형 선박의 통행을 위하여 많은 교각을 세울 수가 없어서 힘든 공법인 현수교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동양과 서양을 양 옆으로 보면서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는 두 개의 다리 사이를 갔다 왔으니 우린 이 아침나절에 두 개의 대륙을 섭렵하며 드디어 천천히

‘흔적을 찾아서’의 여정을 마치게 되었나 봅니다.

 

 

 ‘흔적을 찾아서’를 마치며

 

지난 93주간 동안 저와 함께 ‘흔적을 찾아서’ 순례의 길을 함께 하시며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신 애독자 제위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천천히 열리는 사진 세상’으로 <한인뉴스 부동산캐나다>와 처음 연을 맺은 것이 2011년 12월 9일이었으니 10년하고도 4달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하여 올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해 주신 이용우 사장님과 매주 아름답게 편집을 해주신 편집위원 여러분들에게도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 동안 정말 세상은 많이 변하였던 것 같습니다.

사진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하기 시작하던 때 시작한 연재가 100회를 지속하는 동안 이제는 필름 사진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며 천천히 우리들의 뇌리에서 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진은 오히려 우리들의 일상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와서 이제는 어린 아이들까지 전화기로 사진을 찍어 주고받는 시절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긴 저 역시 일에서 헤어나 나름대로 여행을 다니다 보니 새롭게 눈이 떠지는 풍물들과 또 그 뒤에 가리워졌던 역사들의 향기가 그냥 허공으로 흩어지는 게 아쉬워 쓰기 시작한 여행기가 전부 276회에, 달팽이를 타고 천천히 흔적을 찾아 다닌 게 93회가 되었으니, 결국 지난 10년간, 470주간을 함께한 세월이 되었네요.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통제한 지난 2년여의 시간은 우리들의 삶에서 잃어버린 시간들이 되고 말았기에, 되돌아볼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도 없는 어둠의 시간들 속에 정신을 말려가며 육신을 늙어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그 시간 동안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힘겹게 살아온 여정들을 순례하며 오늘을 사는 저의 믿음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동안 함께한 여러 분들에게도 좋은 시간, 좋은 추억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하여 주신 <한인뉴스 부동산캐나다>의 이용우 사장님을 위시하여 모든 편집위원님들께, 그리고 여러 애독자님들께 깊이 감사 드리며 하시는 모든 일들이 형통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2022년 3월 연재를 마치며, 천천히 전병선 배상(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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