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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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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장군(1)

한니발장군(1)

 

 

패트릭 N. 헌트(Patrick N. Hunt) **『한니발(Hannibal)**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바르카 생애와 2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202)에서 로마에 맞선 그의 군사적 천재성을 다룬 전기.   책은 한니발의 전략과 전술을 깊이 있게 분석하며, 저자가 직접 알프스 횡단 경로와 주요 전장을 답사한 고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생생한 배경을 제공한다. 이역사 소설은 너무 흥미로워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 패트릭 N. 헌트의 경력

패트릭 N. 헌트는 책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깊은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자.

직책: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1993년부터 인문학, 고고학, 신화학 등을 가르쳐온 고고학자, 역사가, 전기 작가.

학력 연구: 영국 런던대학교 고고학 연구소에서 고고학 박사 학위(Ph. D.) 취득.

특히 한니발 연구와 관련하여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스탠퍼드 알프스 고고학 프로젝트 지휘했으며,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National Geographic Society) 후원으로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 경로와 전장을 직접 답사하는 광범위한 현장 연구수행.

주요 활동 수상:

왕립지리학회(Royal Geographical Society) 회원 익스플로러스 클럽(The Explorers Club) 국립 회원으로 선출.

내셔널 지오그래픽 탐험 전문가이자 미국고고학회(AIA) 강연자.

Ten Discoveries That Rewrote History Alpine Archaeology 다수의 저서와 100 이상의 학술 논문을 저술했으며, 다수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NOVA 다큐멘터리에 출연.

 

 

한니발 주요 내용 요약

1. 배경 한니발의 특성

배경: 한니발의 로마에 대한 증오는 1 포에니 전쟁 결과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쟁 패배로 카르타고는 시칠리아를 잃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으며, 이는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에게 깊은 분노를 남겼다. 어릴 한니발은 아버지 앞에서 로마에 대한 영원한 적개심 맹세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는 청소년기부터 스페인(히스파니아) 있던 카르타고 영지에서 군사 경험을 쌓았다.

한니발의 특성 (군사적 천재성): 헌트는 한니발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략가이자 전술가 명임을 강조다. 그의 천재성은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나타난다.

지형 환경 활용: 지형, 날씨, 환경적 특성을 이용해 전투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로마군을 놀라게 했다.

정보 수집 심리전: 첩보원과 현지 켈트족을 활용하여 적을 속였으며, 심지어 횃불을 떼를 이용해 로마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강점과 약점 파악: 자신과 적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에 맞춰 전투를 계획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2. 주요 승리 전쟁

한니발은 2 포에니 전쟁 초기에 이탈리아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알프스 횡단 (기원전 218): 한니발은 군대와 전쟁 코끼리 이끌고 험난한 알프스 산맥을 성공적으로 횡단하여 로마를 기습했다. 과정에서 병력의 절반가량을 잃었지만, 이탈리아 북부에서 반로마 감정을 가진 켈트족 동맹군을 확보하여 병력을 보충했다.

트레비아 전투 (Trebia, 기원전 218): 이탈리아 도착 대규모 승리로, 매복 전술을 사용하여 로마군을 격파했다.

트라시메누스 호수 전투 (Lake Trasimene, 기원전 217): 안개 호수 주변 지형을 이용해 로마군을 매복시켜 섬멸했다.

칸나이 전투 (Cannae, 기원전 216): 한니발의 군사적 경력 정점으로 꼽힌다.

8 명의 로마군을 상대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병과 보병의 협력을 통해 로마군을 포위 섬멸하는이중 포위(double envelopment)라는 완벽한 전술을 구사하여 5 이상의 로마군을 전사시켰습니다.

칸나이 승리 로마 침공을 못한 이유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한니발이 로마 시를 직접 공격하여 함락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헌트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한다.

협상 의도: 한니발은 로마 자체를 파괴하기보다는, 1 포에니 전쟁을 끝낸 루타티우스 조약처럼 카르타고에 유리한 조건으로 평화 협상 강요하기를 바랬다.

로마의 불굴의 의지: 로마는 아무리 패배를 겪어도 결코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로마는 한니발의 사절단조차 도시로 들이지 않으며 단호하게 항복을 거부했다.

공성전의 어려움: 한니발은 스페인의 사군툼(Saguntum) 8개월에 걸쳐 함락시킨 경험이 있었지만, 로마는 훨씬 크고 요새화된 도시였다. 한니발은 로마를 함락시킬 만큼의 대규모 공성 무기와 병력 충분하지 않았다.

로마의 지구전 (파비우스 전략): 로마는 직접적인 정면 대결을 피하고 보급로를 차단하며 한니발의 동맹군을 하나씩 분리시키는 파비우스 전략(Fabian strategy) 채택했다. 이로 인해 한니발은 이탈리아 남부에 고립되어 점차 힘이 소진되었다.

 

마지막 패전과 자결까지

마지막 패전: 자마 전투 (Zama, 기원전 202): 한니발은 이탈리아에서 15년간 머물렀지만 로마의 항복을 받아내는 실패했다. 이후 로마의 유능한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 카르타고 본토(북아프리카) 침공하자, 한니발은 본국 방어를 위해 소환되었다. 카르타고 근처에서 스키피오와 맞붙은 자마 전투 한니발이 겪은 유일한 주요 패전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카르타고는 전쟁에서 패배했다.

망명과 자결: 전쟁에서 패배한 한니발은 잠시 카르타고의 수페테(행정관) 재직하며 개혁을 시도했지만, 로마의 압력과 카르타고 귀족들의 질투로 인해 결국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소아시아의 여러 왕국을 전전하며 로마에 맞섰지만, 결국 로마가 그를 넘기라는 압력을 가하자, 기원전 183 비티니아(Bithynia,

(현재 튀르키예)에서 로마의 포로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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