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호 칼럼
<계간수필>동인, 문협회원
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고국의 소식을 쉽게 접한다. 뒤숭숭한 상황에서 ‘파이팅!’ 구호를 외칠 일이 그리 많은지? 운동선수로부터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유치원 봄나들이 때, 중학생들의 미술관 견학 시, 설악산에 오른 가족들도, 동남아 관광지에서,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군중 속에서, 인천공항에 와서도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 촬영을 한다. 가관인 것은 교장 연찬회 기념으로, 문화 예술인의 작품 발표회에서,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에 선 배우도, 국회 앞 계단에 모인 의원들도, 모임에 참석한 대통령과 장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캐나다의 한인 신문에 오른 교회 행사 때 교직자들이 주먹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보면 쓴웃음이 난다. 한국인이 모인 곳은 어디든 이 구호를 외치는 게 유행이다. 남녀노소의 구별도, 지식 교양 직업의 차이도, 때와 장소의 구분도 없다. 구호 제창에 동참하여 동질감과 소속감을 확인하는 것이 한인 사회의 문화 현상인 것 같다.
내가 처음 ‘파이팅!’ 하고 외쳤던 게 국민학교 4, 5학년 때였던가. 당시 많이 진주한 미군의 영향인지, 또래들과 야구, 축구 등 단체경기를 하며 ‘파이팅!’ 하고 외쳤다. 전쟁을 치른 뒤여서 ‘싸우자!’, ‘무찌르자!’, ‘쳐부수자!’라는 구호는 교과서, 노트, 잡지, 만화책 등 모든 출판물에 박혀 있었고, 길가의 벽보나 현수막에도 넘쳐났다. 우리들의 친선경기 때도 ‘잘하자!’ ‘이기자!’ 하면 될 것을, 굳이 살벌한 구호를 앞세우곤 했다. 캐나다에서는 토박이 백인들의 구호 제창 때도 ‘Fighting!’ 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럼 이것은 한국인만 쓰는 구호인지? 이유가 어떻든 아이들이 시합할 때 소박한 승리욕으로 ‘파이팅!’ 한다면, 참아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사회 일반이 한결같이 그런다면 좀 들여다봐야겠다.
한국사회의 적폐를 집약적으로 드러낸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는 멀리 사는 내 얼굴도 뜨겁게 했다. 현장을 찾은 공직자들은 힘찬 ‘파이팅!’ 소리와 함께 주먹 쳐든 기념촬영에 분주했다. 역사적 현장에 간 증거를 남기려는 듯, 흰 이를 드러내며 ‘파이팅!’하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어떤 이들은 그 직후 공직을 떠나야 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은 부족하고, 이웃의 참극 앞에서 외친 ‘파이팅!’ 구호는 공허하게만 들렸다. 아무리 산 사람의 세상이라 해도 그렇지, 40여 미터 바다 밑에 침몰한 여객선을 수색하여 건진 자녀들의 주검을 통곡으로 맞이하던 팽목항 방파제였다.
그곳이 과연 ‘파이팅!’ 구호를 질러댈 자리였나?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몰염치의 극치임을 몰랐을까?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그리도 무지몽매한 짓을 공공연히 벌였다. 제 가족은 이 비극과 무관함을 확인한 안도감, 비교되는 행복감에서 웃으며 외친 ‘파이팅!’만은 아니었기를 빈다.
외국의 경우를 보니, Go, USA! 또는 Go!, Allez France!(나가자 프랑스!), 中國加油!(즁꿔짜요우; 중국 힘내라!), Nipon Ganbare!(일본 힘내라!) 정도이다. 응원 구호가 모질거나 그악스럽지 않고, 의외로(?) 순하고 담담하다. 말은 그 민족의 문화를 담고 있다. 그들은 적대감을 띤 ‘Fighting(싸우자, 쳐부수자)!’이란 말을 전투 현장 외에는 쓰지 않나 보다. 지성적이고 품위 있는 민족들은 점잖은 언어를 쓰고 있다. 우리와 관련된 특정 사안에서 지성적이고 품위 있는 언행를 했는지는 일단 제쳐두고, 그들은 대체로 국제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품격 있는 나라요 민족으로 통한다.
주먹 쳐든 ‘파이팅!’ 제창에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전체주의 망령을 떠올리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낮춰보는 북한식 독재체제에서 자주 쓰는 방편이기도 하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했다. 범죄자를 쫓는 형사의 눈빛이 범인의 그것을 닮아가듯,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지금껏 혐오하고 비난했던 집단의 그것을 닮아갈까 봐 걱정된다. 민주화 과정의 극한투쟁 때 썼던 제스쳐를 민주화를 이룬 후에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단세포적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경제적으로 선진 사회’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달성한 이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갈대답게 이왕이면 제스쳐도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도록 마음을 썼으면 좋겠다.
21세기 국제화 시대인데, 모였다 하면 주먹 쥐고 거친 구호를 외쳐대는 그림은 좀 그렇다. 세계의 민족과 나라들은 선의의 경쟁과 협력의 대상이지 타도해야 할 적(敵)은 아니다. 그런 구호를 외치고 싶으면 ‘파이팅’만은 국방에 임하는 장병들의 몫으로 돌리고, 일반인들은 ‘한국 이겨라!’, ‘나가자 한국!’, ‘Victory Korea!’처럼 좀 부드러운 구호면 어떨까?
요즘 한국 음식이 과도하게 맵고 자극적인 맛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사나워지는 말투를 들으면 안타깝다. 이것도 심심하고 순하게 중용을 유지한다면 몸에 좋고 품위도 있을 텐데… 사적 취향의 영역이겠지만, 그런 것이 합쳐져서 우리 사회를 감싼 공기처럼 공동체적 생활문화의 내용과 외양을 형성한다. 가볍게 보아넘길 일은 아닐 듯싶다. 그러니 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품격있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염원하며 풍속과 관련한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사회발전이나 행복도 주위의 평화적 협력 속에 추구할 일이라고 보고, 나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자유롭고 건강한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다고 다른 민족들이 부러워하는 지금, 일사불란한 군사 문화나 선동 구호 같은 건 버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깊은 생각 없이 천편일률로 따라 하는 이런 습성에서도 벗어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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