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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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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나' (Malena) (중)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X)


눈빛과 몸짓만으로 숨막히는 관능미를 뿜어내는 모니카 벨루치 주연
 

   

 


(지난 호에 이어)
그러던 중 말레나는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탄에 빠진다. 마을사람들은 위로는커녕 여자들은 계속 험담만 하고, 남자들의 그녀에 대한 음흉한 망상은 더욱 짙어지고, 이로 인해 아버지로부터도 버림받는다. 말레나는 스스로를 변호할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 그냥 혼자인 채로 참고 당할 수밖에.
   이윽고 마을의 치과의사와 불륜관계이며 젊은 장교와도 내연의 관계란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돌자 견디지 못한 그녀가 자신을 변화하기 위해 재판을 의뢰한다. 치과의사와는 한번 인사 했을 뿐인데 치과의사 스스로가 소문을 냈음을, 젊은 장교와는 좋은 감정으로 두 번 만났을 뿐임을 사람들 앞에 증명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녀의 결백은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고, 이 마을에서 그녀가 사랑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는 심사가 뒤틀린 주장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변호사비를 대신해 몸을 요구하는 변호사 첸토르비(길베르토 이도네아)에게 겁탈을 당한다. 이때 레나토가 말레나 집 창문을 통해 이 광경을 훔쳐보다 충격으로 나무에서 떨어져 깁스를 하게 된다. 
   이미 관계를 맺게 된 현실을 받아들여 그와 결혼하고자 하나 마을에서 이미 창녀처럼 취급되는 그녀였기에 이 역시 마마보이 변호사의 모친으로부터 단박에 거절된다.
   레나토는 점점 스스로 말레나의 보호자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하는 행동이 마을사람들의 행동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지는 못한다. 말레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복수할 말이나 행동도 못하면서 그저 하느님께 보호해 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인격체가 아닌 '화제로서 존재'하는 그녀이기에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말레나의 현실적 고통에 대해서는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년과 관객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이다.
   얼마 후 전쟁의 여파가 시칠리아 섬에도 밀어닥쳐 마을이 폭격을 맞는다. 이로 인해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마저 잃고 그녀는 완전히 홀로 남게 된다. 자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녀에 대한 모욕과 망상은 멈추지 않는 현실. 그녀는 빵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긴 검은 머리를 자르고 짙은 화장을 하고 관능적인 옷을 입고서 그녀는 아름다움을 판다. 이때 말레나가 마을 광장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욕정에 사로잡힌 남정네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저마다 라이터, 성냥불을 들이미는 장면이 유명하다. 이탈리아에서는 매춘부가 담뱃불을 받아 피우는 것은 남자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여긴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는 말레나의 표정이 착잡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미 자신을 지탱해 오던 자존심을 버린 그녀이기에 오로지 돈을 보고 움직이는 그녀는 나치도 마다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처절함을 알아줄 리 없는 주민들은 이제 정숙한 젊은 아내였을 때보다 만족하는 모습들이었지만 아예 노골적으로 그녀를 창녀라 비난한다. 
   그 와중에 나치 장교를 맞아들이는 말레나를 훔쳐 본 소년 레나토는 충격을 받고 시름시름 앓게 된다. 이에 무지한 그의 모친은 무당을 불러 주술로 치료하려 한다. 그때까지 꼴통자식을 매일 몰아붙이던 그의 부친은 동네 쪽팔린다며 매우 난색을 표하지만 아들의 마음의 병을 알아차리고 파격적인 방법으로 레나토를 치료하는데… 글쎄 자식을 사창가로 데려가는 게 아닌가. [註: 이는 로마 시대부터 내려온 시칠리아의 전통이라고 한다.] 
   한 여자를 선택해야 된다는 말에 가장 말레나를 닮은 여성을 고른 레나토는, 상상 속에서 그녀와 정사를 벌이고 나서야 거짓말같이 낫는다.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다!
   드디어 독일이 패망하여 전쟁이 끝나고 미군 병사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환호하기 위해 광장에 모여든 마을 여자들은 애국심(?)을 내세운 배타적 집단주의의 광기에 의해 말레나를 끌어내 공개적으로 구타하고 강제적으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옷을 찢어버리는 등 잔혹한 폭행을 가한다. [註: 영화 도입부에서 아이들이 볼록렌즈로 '아무 죄도 없는' 개미 한 마리를 태워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이 뒷장면에 대한 은유였지 싶다. 또 이 장면은 데이비드 린 감독의 '라이언의 딸(1970)'에서 린치를 당하는 로지(새라 마일즈)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말레나는 아무에게도 동정 받지 못하는 사마리아의 여인처럼 처절한 분노와 공포 속에 무언의 비명을 지르지만, 남자들은 처참하게 얻어맞고 피흘리는 말레나를 그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쳐다만 볼 뿐이다. 어린 레나토도 마찬가지다. 
   말레나는 자신에게 상처와 치욕만을 안겨준 팔레르모를 몰래 도망쳐 메시나로 떠난다. 기차역에서 이를 지켜보는 레나토! 그리고 해변가 절벽 위에서 애지중지하던 레코드판을 바다로 날려버린다.
   그런데 여기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전사했다던 말레나의 남편 니노 스코르디아(가에타노 아로니카)가 한쪽 팔을 잃은 채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다. 
   집으로 갔으나 주인 없는 집은 피난민 수용소로 변해버렸고, 그녀를 찾기 위해 수소문했으나 아무도 그의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 마을사람들. 그러다 그의 아내가 창녀라는 말을 내뱉는 공산당원에게 "당신 같은 사람들을 위해 싸운 내가 한심하다!"며 대들자 오히려 걷어차이는 니노….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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