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회
(의학박사.전 토론토 아동병원 소아과 의사)
(1956년 미국 유학, 1962년 캐나다 이민, 2009년 영문 번역으로 캐나다한인문인협회 가입)
*본보는 캐나다한인문협회원들의 한영문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선정해 지면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흉악한 COVID-19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던 2020년 10월에 나는 90세 생일을 맞았다.
생일 축하 잔치는 배달시킨 중국 음식을 아침 겸 점심으로 아내와 아들과 먹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식욕이 감퇴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음식도 많이 먹지는 못하였다. 남은 하루는 평소의 일과를 따랐다. 심장, 갑상선, 혈압, 콜레스테롤, 전립선 등 약을 한줌 먹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일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내와 같이하는 신체운동이다. 수 년 전까지도 야외에서 뛰었으나 이제는 뛰지는 못하고 실내에서 에어로빅 체조를 하고 있다. 수십 년간 다니던 체육관은 COVID-19 때문에 문을 닫은 지 여러 달 되었다. 부득이 집안에서 유튜브 비디오를 따라 운동을 하는데 운동을 시작하면 숨이 가빠지고 땀이 나기 시작한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면 마음이 상쾌하고 몸이 가뿐하다. 혹자는 우리 같은 사람을 운동 중독자라고 부를지 모르겠다.
피로를 풀려고 안락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서 뉴스를 보기 시작하였으나 5분도 채 안 되어 잠이 들었다. 낮잠을 자고 난 다음에 컴퓨터 앞에 앉아 독서와 글을 쓰는 시간이 은퇴 생활을 하는 나에게 일종의 근무시간이다. 시력이 좋지 않아 종이책은 읽기가 힘들어 글자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전자책으로 글씨를 크게 확대하여 읽고 있다.
녹음된 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극심한 청력 장애로 보청기를 늘 끼고도 녹음을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Eric Olin Wright가 쓴 Reflections on Living and dying (삶과 죽음에 대한 감상)이다. 지난 달에 읽은 책은 신경과 전문의로도 저명한 Oliver Sacks가 사망하기 직전에 쓴 Gratitude (감사하는 마음)와 말기 환자 간병 전문의 Rachel Clarke가 작가인 Dear Life (사랑하는 목숨) 등이다.
내가 읽은 책 리스트들을 보는 독자에게 나의 뇌리가 ‘죽는다는 것’에 사로잡혀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될까 우려된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죽음이 주제이기는 하지만 독자를 침울하게 하지는 않는다.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평화롭게 별세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남은 인생
이 수 일이 될 수도 있고 수 개월, 수 년, 수십 년이 될 수도 있지만 여생을 어떻게 뜻있게 즐겁게 사느냐는 것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하룻밤에 6시간은 단잠을 잘 수 있고, 일어나 거동할 때 아픈 곳이 없고, 적은 음식이지만 세 끼를 잘 먹고 무사히 소화하고, 가벼운 전신 운동을 한 시간 할 수 있으니 축복받았다고 자처한다. 캐나다 평균 여생 통계에 따르면 90세 남자는 4-5년은 산다고 한다. 개인의 수명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친 혈족
의 수명이라 한다. 나의 부모님은 구십 세에 돌아가셨고 형님은 60대에 중풍으로 작고하셨다. 나의 수명이 혈족 수명에 따른다면 내가 백 세까지 살 가망성은 극소하다.
또한 캐나다 알츠하이머 협회는 65세 이후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이 5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85세 이상의 사람 4명 중 1명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밝혔다.
내가 예측할 때, 5년을 더 산다면 알츠하이머 발생 가능성은 50% 이다. 누가 허약한데다 치매 증상까지를 갖고 장수하기를 원하겠느냐? 내세를 믿지 않는 나는 사후에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아내 생전에 내가 먼저 간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살아갈 지가 걱정이다. 그러나 아
내, 자식의 인생은 그들의 일이지 내일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나를 위로해본다.
유리창 밖을 내다보니 단풍이 일색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단풍잎은 내일이면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는다. 그렇다고 오늘의 아름다움이 적어지지는 않는다. 나 자신에게 타이른다. “왜 내일 일을 걱정하느냐. 오늘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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