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다. 밖에 나가보니 빨간 단풍들은 다 떨어진 지 오래고 이제 노란 단풍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주말에 폭설이 내린다고 했는데 다행히 토론토에는 눈이 피해갔고, 북쪽에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토론토에 첫 발을 디뎠을 때의 그 엄청난 눈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눈은 가장 멋있을 때가 펑펑 내릴 때이고, 아름다울 때가 산야에 수북하게 쌓여 평온함을 줄 때이다.
거기에 동물이나 사람들의 발자국 몇 개가 찍혔을 때는 그야말로 우리의 존재감도 나타나고, 평화를 읊을 만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도 많은 발자국들이 엉켜지며 거기에 흙탕물이 튄 데다 쓰레기마저 섞이면 아름다움과 평화는 지저분함과 무질서로 변한다. 눈이 녹기 시작하면 흰색은 줄어들고 지저분한 색들이 더욱 짙어간다. 아름다운 눈이 무질서하게 바뀌어가는 모습은 우리들의 삶이고 투쟁의 역사이다. 깨끗한 상태로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올해는 더욱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정초부터 알던 분들이 한 분씩 한 분씩 돌아가셨고, 여름에도 안 좋은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다. 가을이 되니 더욱 많은 분들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의 부고 소식도 들었지만, 나보다 약간 위 연배거나 같은 나이의 분들도 꽤 많이 타계하셨다.
같이 단체 활동을 하셨던 분들도, 동포사회에 많이 알려진 분들도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추억 속의 인물들이 되었다.
골프시즌이 끝나갈 때쯤, 아는 선배와 골프를 치고 있었다. 요 몇 달 사이에 자기가 아는 후배 3명이 유명을 달리 했단다. 그런데 그 3명을 나도 나름 잘 아는 분들이었다.
“야, 이거 뭐, 올해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거야?”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나를 포함한 주위의 사람들 모두가 점점 ‘죽음의 연령대’에 진입을 한 거다.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오래 전에 이민 와서 과일가게에, 컨비니언스에, 세탁소 등을 운영하며 열심히 열심히 살아왔다. 열심히 살다가 집도 장만했고 이제 골프나 치며 유유자적한 은퇴생활이나 하려고 했는데 그만 몹쓸 병마가 덮쳐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며칠 전 그날따라 열심히 일하다 집에 돌아오니 바깥에 불이 환하다. 둘이 사니 바깥에 불을 켜 놓을 이유가 없는데, 어쩐 일일까?
주차장에는 아내 차 밖에 없는데, 누가 왔나? 하며 들어가는데 문을 열고 나오는 건 작은 손녀 라이언이었다.
아이고 세상에 이게 왠 떡이냐, 뜻밖에 손녀를 다 보다니.
큰 손녀가 댄스 클라스에 간 사이에 작은 손녀를 할머니에게 잠깐 동안 맡겨 놓은 거다. 잠시 후에 딸이 큰손녀와 같이 와 작은 손녀를 데리고 갔다.
가기 전에 내 뺨에 뽀뽀 한번씩 해 주고.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서도 힘든 하루가 다 녹는 것 같았다. 찰나 동안 손녀들을 봤고 그들이 떠났는데도 집안에 활기가 도는 것 같다.
그래 맞다. 아이들이 활기차게 커 나가는 것은 눈이 펑펑 내리는 아름다운 모습과 같다. 아이들이
자라나며 하나, 둘 알아가고 지식을 채워 가는 것은, 산야에 깔린 눈 위에 하나 둘씩 발자국이 찍혀가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발자국이 점점 많아지며, 흙탕물마저 섞이는 것은 우리가 이 험난한
삶에서 열심히 투쟁하는 거다. 하얀 눈이 녹으며 지저분한 것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우리에게 과도한 욕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다 낙엽처럼 지는 게 우리네 인생인데…
눈처럼 아름답게 왔다가 지저분한 상태로 소멸하는 우리네 인생.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분들 중 이 순간까지 돌아가신 분들은 낙엽으로 떨어진 빨간 단풍이라면, 이제 남아 있는 우리는 노란단풍들이다.
불리우는 그날까지 남은 인생 열심히 살다가 후회없이 세상을 떠나야 할 텐데.
노란 단풍나무야, 아직 우리를 놓지 말아다오. 202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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