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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호 블로그

    아호 해송(海松)
    <계간 수필> 동인, 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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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눈으로 본 이태원 참사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또한 관심을 끄는 곳을 직접 방문하여 즐기려는 마음은 숨길 수 없는 본능적 욕구다. 경제적 번영과 자유로운 인권을 확보한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도, 영화나 TV 드라마 등으로 소문이 난 관광 포인트에 많은 인원이 일시적으로 몰려 복작대다가 흩어지곤 하는 현상은, 산간을 흘러내리며 휘감고 굽이치는 물이, 느릿하게 때로는 화급하게 소리 지르며 몰려가는 것과도 닮았다.

이런 이치는 비단 관광객뿐만 아니라 정부의 실정失政을 비난하는 모임이든, 무엇을 촉구하는 집회이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5천만 명의 민주 시민이 어떤 뜻을 지녀서 모이고 함성을 지르는 행위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보수적, 독재적 사고思考에 길든 고루한 사람들은 이런 진보적(?) 사고, 열린 사회를 두려워하는 터라, 그런 진보적 주장이나 움직임 따위를 삐딱한 눈으로 보고 깎아내리려는 경향이 있다. 2022년 10월 29일 저녁 이태원 골목길에서 158명의 젊은이가 ‘압사’라는 어처구니없는 죽임을 당한 데 대해 책임을 피할 수 없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젊은이들의 미친 광기가…”였으며, “주최자가 없는 다중의 행사였으므로 합당한 법이 없어서, 사전 대비와 질서 유지가 어려웠고…”라는 거짓말을 늘어놓다가 질책받았다.

참변 다음날 현장에 온 대통령조차 비슷한 논조의 말을 했는데, 그는 6개월 전 취임 선서에서 맹세한 문구를 까맣게 잊은 사람 같다. 그들은 공직자의 존재 목적인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생명, 재산을 보호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같다. 참으로 뻔뻔하다. 국민을 섬긴다는 정신은 없고, 무슨 군주국의 임금처럼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마음만으로 가득했으니 그럴 수밖에. 지난 선거에서 국민이 무엇에 현혹되어 잘 못 생각했고, 잘 못 뽑은 게 입증되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에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있다.’라고 하였으며,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는 ‘경찰관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의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천재, 사변, 인공구조물의 파손이나 붕괴, 교통사고, 위험물의 폭발, 위험한 동물 등의 출현,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에 있을 때는 그 장소에 모인 사람, 사물의 관리자, 그 밖의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 억류, 피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대통령과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시장,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서울경찰청장 등이 이런 법률이 있다는 것을 알려고조차 않으니까, 참사 직후 무식한 소릴 지껄이며 책임추궁을 피하려는 모양새였다. 높은 직위의 행정 책임자들이 위의 법률이 있다는 걸 알고도 그런 말을 했다면 교활한 거짓말쟁이로서 엄히 처벌받아야 마땅한 위선자요, 모르고 한 말이라면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무식자로서 빨리 쫓아내야 한다.

8년 전의 세월호 침몰 때는 바다에서 일어난 사고였지만, 이번의 참변은 서울의 중심지 땅 위에서 일어난 것이라 생각할수록 불안하고 야속하다. 이태원 파출소나 서울경찰청 등엔 그날 위급성을 알리는 시민들의 제보나 호소가 빗발쳤음에도, 경찰 책임자 중 단 한 사람도 그에 응하지 않았으며, 어떤 긴급 조치를 취한 흔적이 없다.

사고 장소에서 멀지 않은 용산 녹사평역, 삼각지역,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일대에 상당한 경찰 기동대 병력을 대기 또는 휴식하게 버려둔 채로, 숨넘어가는 시민의 아우성은 끝끝내 외면했다. 이번 참사는 국가 조직이 국민의 기대를 배신한 것이고, 국민의 생명을 내팽개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어 씹을수록 맛이 쓰다. 그렇다면 ‘대통령,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시장, 용산구청장은 왜 존재하며, 경찰은 무엇 하러 있는 것인가?’라는 원초적 물음 앞에 다다른다.

그날 저녁 참사가 빚어진 해밀턴 호텔 옆 폭 3.5m 길이 35m에 불과한 T자형의 좁은 골목길에는 한 젊은 경찰관이, 시민들을 안전한 방향으로 이동시키려고 애타게 호소하는 장면이 어느 시민의 셀폰에 잡혔다.

(경관) “이동하세요! 멀뚱멀뚱 보고 있지 말고!”

(내레이터) “일부 시민이 다가오자, 그는 ‘안 된다, 돌아가라!’고 애원하듯 외칩니다.”

(경관) “다 빠지세요. 얼른, 다 빠지세요. 제발 좀 도와구세요. 제-발!”

(내레이터)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그는 높은 곳에 올라 쉰 목소리로 호소하는 모습도 담겼다.”

(경관) “사람이 죽고 있어요. 다 이쪽으로 – 다 이쪽으로 다 -. 사람이 죽고 있어요.”

그 시각, 이태원 골목에 백여 명의 경관이 있었다지만 그 말은 믿기 어렵고, 그 대부분이 마약범이나 성추행범 단속 목적으로 사복 차림이었다고 한다. 글쎄? 압사 현장에서 도움을 주려고 나서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법규상 반드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만 하고 피해 가려는 타성에 젖기 쉽다. 그럴 경우 눈앞에서 누가 다치든 죽든 본인과 직접적 상관이 없으면 외면하는 냉혈한冷血漢이 된다.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 얘기’에서처럼, 그날 대군중 앞에서 목쉬도록 외치던 이태원파출소 백 모 경사 같은 사람 10명만 그곳에 배치했더라면, 158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의 희생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의 떼죽음 앞에서 잔머리 굴리며 말장난이나 치는 그런 공무원 말고, 헌신적이며 마음이 따뜻한 공직자를 보고 싶다.

그 후 이어진 관련 고위직들의 책임 회피성 꼼수나 말장난은, 자신의 인명 경시 사상과 자기 직무에 대한 무지, 무책임성, 몰염치를 전 세계에 알린 ‘나는 이렇게 못난 사람이올시다.’라는 해프닝에 불과했다. 그들의 높은 교육과정과 빛나는 경력이 국민의 안녕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오히려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한 점에서 보면 무가치하다.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 인간은 목적 그 자체로써 대해야 한다.”라는 칸트의 촌언寸言이 가슴을 판다. (20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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