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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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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시아 칼리지(Brescia College)의 추억

 

캐나다의 유일한 여자대학 브레시아 칼리지가 폐쇄된다고 한다.

웨스턴대학의 3개 부속 대학(King's College, Huron College, Brscia College) 중 하나인 브레시아 칼리지는 2024년 5월부터 웨스턴대학에 흡수 통합되어 104년의 역사를 접는다는 것이다.

내 일생의 가장 귀한 충언과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요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토론토 스타'에서 이 기사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 옛일이 빠른 화면으로 지나갔다.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다.

공부를 더 하고 학위를 얻으려는 계획이 사, 오년 지연되자 육신의 피로감과 함께 끝없는 심적 자괴감이 엄습하였다.

가사와 육아에만 얽매인 삶을 살다 보니 언어와 지적 능력이 침체되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녹슬고 퇴적하여 삐거덕거리는 쇳소리가 나는 듯하였다.

이대로 녹슬어 폐물이 되고 말 것인가. 수없이 반문하다 '아니다'의 해답으로 귀결되었다. "공부를 할 것이다."

 

브레시아 칼리지는 1919년 천주교 Ursuline 수녀회에서 설립한 대학이다. 종교와 무관하게 모든 여성에게 광범위한 교육과정을 제공하지만 주로 가정학 전반과 식품학, 영양학 등 인류발달에 중점을 둔 대학으로 교수와 학생 비율은 14:1의 여성교육대학이다.

1960년대 북미주 여성 교육대학은 280개였으나 지금은 단지 26개, 그 중의 하나가 또 없어지는 것이다. 당시는 대학졸업생의 70%가 남성이었으나 1991년에는 51%가 여성이고, 2021년에는 고위 학력소지 여성이 120만 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이런 추세가 브레시아 칼리지의 폐쇄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이 된다.

 

내가 얼마나 따라갈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과제 앞에는 행동이 따라야 하는 실질적인 장애물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일년 만에 토플 테스트와 미시간 테스트 등 요구하는 영어 테스트를 모두 합격하고 대학에 등록을 하였다.

웨스턴대학교 브레시아 칼리지, 영양학, 식품관리학과 편입학생이 된 것이다.

집에서 학교 가는 길은 차로 가면 15분 걸리지만 전나무로 담장을 두른 수녀원 앞으로 해서 걸어가면 30분 정도 걸렸다. 주로 그 길로 걸어 다녔는데 언덕길이라 항상 숨이 차고 한 여름에는 땀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얼마나 무지한 결정을 했는지, 거의 만용에 가까운 일을 저질렀는지는 개학 첫날부터 깨달았다. 학사일정을 펴보는 순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몇시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읽어야 할 도서 목록과 다루어야 할 주제들, 현장답사, 케이스 스터디, 기말 프로젝트, 레포트 제출, 식품관리, 영양관리. 도대체 음식 이름 하나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데 '관리'라니 앞이 캄캄하였다.

 

더욱 기막힌 것은 배운 적이 까마득한 생물학과 전혀 배운 적도 없는 인체생리가 교과과정에 들어 있는 것이었다. 교육과정과 교육주제의 차이는 인간을 평가하는 이념과 철학의 현주소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게 만들었다.

한국인은 나밖에 없는 데다 주위에서는 길 건너 의과대학의 남편과 나의 과거 경력까지 소상하게 알고 있어 집중되는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제는 자존심을 걸고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 가서 읽으라는 책부터 읽기 시작하였다. 저녁을 먹은 후 아이들은 남편에게 맡기고 도서관이 문닫는 밤 11시까지 책을 읽고 공부를 하였다. 11시에 남편이 데리러 오면 그때부터는 개인교습 시간이었다. 생물이나 인체생리를 한국어로 해석해 주어야만 확실하게 이해되는 것이었다.

 

조금씩 적응되어가긴 했지만 육체적으로는 견딜 수 있는 한계점에 도달한 듯 휘청거렸다. 나의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격려하던 남편마저도 학업을 포기하라고 충고할 정도로 몸이 수척해져 갔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면 내가 세운 삶의 이상은 영원히 좌절되고 말 것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갈등을 극복하는 일이 더욱 크고 힘들었다.

대개 저녁 8시 이후에는 휑한 도서관에 관장 수녀님과 나만 있을 때가 많았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 수녀님이셨는데 의자에 단정히 앉아서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그를 보면 쉽게 범접할 수 없는고귀한 품성이 번져오곤 하였다.

 

그날은 의외로 수녀님이 밝은 미소를 띠고 내게로 오더니 말을 걸었다.

'무척 열심이시군요. 어때요 공부하기가요.' 다정한 말소리에 그만 눈물이 글썽거려지고 말았다.

'많이 힘듭니다. 20세 미만의 발랄하고 자신만만한 여학생들 틈에서 혼자 외톨이로 고투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낙심하지 마세요.' 신입생이 아무리 많아도 일년 지나면 반수로 줄어들고 또 일년이 지나면 그 절반, 졸업할 때는 불과 수십 명만 학위를 받습니다. 당신처럼 끈기 있고 용감한 사람만이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힘을 내세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넣어주신 수녀님. 천국에서도 하얗고 깨끗한 미소를 보내주실 것이다.

 

그 후 친절한 학과주임 교수는 음식, 식품의 명칭에라도 친근해지라며 병원에 파트타임으로 취직시켜주었다. 학생에, 가정 주부에 병원 파트타임 영양사로 일하느라 삼중으로 몸은 힘들었지만 끝내 "할 수 있다"는 생명줄을 부여 잡고 마침내 학업을 완수하게 되었다.

인생의 푯대 앞에서 뒤돌아보니 '가고 싶은 길'을 남기지 않았다는 너그러운 미소가 소슬바람처럼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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