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작정한 바가 있어 매일 새벽 성경 필사를 시작하였다. 코비드로 인해 비대면 온라인예배를 강요당하게 되면서 정신력과 신앙심의 불꽃이 스러지지 않기 위한 좋은 방편이 되어주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쓰노라면 타성적이 되어버린 설교와는 또 다른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하였다.
부활절을 앞두고 그 의미를 묵상하다 반짝 마음의 창에 비치는 것이 있었다. 신 구약성경에 나타난 두 가지 큰 질문이었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 하신 것이다. 먼저 것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그 아내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을 찾는 질문이고, 나중 것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에 환호하며 신원도 확실히 모른 채 열성으로 예수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시고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도망간 자에게, 후자는 따라 다니는 제자에게 하신 질문이다. 두 상황에서 공통점을 든다면 답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질문자와 응답자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 심리적 상태를 점검하려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두 상황에서 똑같이 시사(示唆)하는 바는 인간 자신의 존재위치를 분명히 알라는 일종의 경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질문과 원하는 바른 답을 두루 짚어 보는 마음속에 색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나의 삶에 두 질문을 대비하여 조명하며 상념에 잠기게 된 것이다.
‘나는 어디 있는가.’ GPS 위치추적기에 의한 지리적 위치를 묻는 것이라면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일생의 여정에서 내가 선 자리의 위치는 어디인지 나 자신도 정확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을 표적 삼아 어느 방향으로 걸어왔는지 뒤돌아보면 더더욱 머릿속은 헝클어진 실타래가 되고 만다. 캄캄한 밤. 북두칠성을 표적 삼아 방향을 정하고 길을 찾는다고도 하지만 과연 나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북극성 같은 표적은 무엇일까.
신앙의 세계에서 ‘신은 죽었다’ 외친 ‘니체’의 주장은 ‘창조주 신은 영원불변(永遠不變), 무소부재(無所不在),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다’라는 신학자들의 학설과 늘 정면충돌한다.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 틀에 담은 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자기사람을 찾는다는 반박에 크게 호응하는 무리가운데서 내 위치를 가늠할 뿐이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질문은 ‘네가 추구하는 대상, 삶의 보람으로 생각하며 탐구하는 주제의 정체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아느냐’와 같은 음성으로 들려 왔다.
문학의 길에서 수필을 써 온지도 20여년이 된다. 과연 나는 문학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 수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언제나 그 대답은 한 마디로 정확하게 답변할 수 없이 모호하거나 부분적이었던 것 같다.
“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함은 인류의 오랜 숙원이다. 그 갈증을 채워주는 것이 예술이요 그 갈증을 구현시켜주는 것이 문학이다.” 문협 강령 첫 구절에 나오는 선포다. 올해로 창립 45주년이 되는 문협은 10여 명으로 시작하여 130여 명으로 성장하였다.
“문학은 사실을 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한 시인은 말하였다. 한 사회의 지적 수준을 알려면 그 사회의 문인들을 살펴보라는 말이 있다. 한인사회가 지성적인 사회, 문화민족의 우월성을 갖춘 사회로 비치는데 나는 얼마만큼 기여하였는지 살펴보게 된다.
내가 수필을 쓰는 것은 나의 느낌과 생각을 정확하게 솔직하게 전달하여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켜 공감을 얻게 하는데 총체적 목적이 있다. 그 공감이 상대를, 주위를, 사회를 아름다운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를 원하여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적어도 수필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는 작업이 나만의 즐거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 작가로서의 자신을 수련하는 작업이 우선 필수 과업으로 인식되면 차를 몰고 들길을 달린다.
때는 봄. 무거운 옷 훌훌 벗어 버리고 새 싹이 움트는 들길을 달리노라면, 언 땅을 뚫고 솟아난 씩씩한 들꽃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긴긴 겨울 참고 견디고 이긴 승리자의 힘찬 노랫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는 것이다.
자연과 소통하고 사회와 사람들과 교류하며 역사를 통찰하는 이 모든 과정의 끝자락에 나부끼는 사랑의 푯대를 향해 달리는 문학의 자리. 내가 서있는 곳. ‘저 여기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두 활개 번쩍 치켜들고 소리 높여 화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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